<화제의 인물> 축구화 벗는 이영표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0.28 11:5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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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빛낸 초롱초롱 ‘초롱이’

[일요시사=사회팀]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초롱이’ 이영표(36·밴쿠버 화이트캡스)가 은퇴했다.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부동의 왼쪽 풀백으로 활약했던 레전드. 그가 축구화를 벗고 제2의 인생을 설계한다.




한국 축구를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16강에 올려놓은 박지성과 거스 히딩크 감독의 화끈한 포옹, 이탈리아를 침몰시킨 안정환의 반지 세리머니. 2002년 한일월드컵 하면 떠오르는 감격의 순간이다. 한국 축구의 역사를 바꿔놓은 장면은 모두 이영표의 발에서 비롯됐다.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자 한국 축구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초롱이’ 이영표가 정든 그라운드를 떠난다.

정든 그라운드
떠나는 ‘초롱이’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밴쿠버 화이트캡스는 지난 23일(한국시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이영표가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영표는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어린 시절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배웠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며 “좋은 팀에서 좋은 사람들과 훌륭한 마무리를 할 수 있어 기쁘다”고 은퇴 소감을 밝혔다.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난 이영표는 안양공고와 건국대를 졸업했다. 초롱초롱 반짝이는 눈을 묘사해서 흔히 ‘초롱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빠른 스피드로 인하여 ‘바람’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00년 안양 LG(현 FC서울)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대표팀의 주축 멤버로 뛰었던 이영표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왼쪽 윙백을 맡아 맹활약을 펼쳐 4강 진출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조별리그 포르투갈전에서 터진 박지성의 골과 한국을 8강으로 이끈 이탈리아전 안정환의 헤딩 골을 어시스트해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일월드컵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낸 이영표는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고 네덜란드 에인트호벤에 입단해 유럽 무대를 밟았다. 이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과 독일 분데스리가 도르트문트,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힐랄을 거쳐 2011년 12월 MLS에 진출했다.

이영표는 2006년 독일 월드컵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도 출전해 월드컵 본선 무대를 세 차례나 경험했다. 통산 A매치 127경기에서 뛰었다.

이영표는 지난해 은퇴와 현역 연장을 놓고 고민하다 밴쿠버 구단의 요청을 받아들여 현역 생활을 1년 더 연장했다.

그라운드 떠나 행정가로 ‘제2의 인생’설계
3번 월드컵 본선 밟아…A매치 127경기 출전

이영표의 현역 마지막 경기는 28일 열리는 콜로라도와의 정규리그 홈 경기다. 이영표는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될 것 같다”고 밝혔다.

밴쿠버 화이트캡스 마틴 레니 감독(38)은 은퇴를 결정한 이영표(36)를 단 한 단어로 표현했다. 미국프로축구(MLS)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그는 한국시간 23일 “이영표는 전설이다”라고 말했다.


레니 감독은 “이영표는 클럽 역사상 가장 훌륭한 선수 중 한 명”이라며 “다른 선수들에게 프로 정신과 성공의 의미를 일깨워준 진정한 롤 모델이었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한편, 축구 행정가를 꿈꾸는 이영표는 은퇴 이후에도 밴쿠버에 머물며 영어와 구단 행정을 배우고, 캐나다의 대학에서 스포츠마케팅 공부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필드서 써간
조용한 전설

데뷔 시절부터 따라다녔던 그의 별명 ‘초롱이’. 지능적인 선수라는 평 덕분이다. 은퇴 직전에는 나이를 잊은 듯한 체력을 과시해 ‘철인’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한국 축구 사상 이처럼 커리어 내내 호평받은 선수는 드물다.
이영표는 누구보다도 행복한 커리어를 쌓았다. 그만한 실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왕성한 활동량, 영리한 지능, 양발을 고루 사용하는 풀백, 풍부한 국제 경험 등을 앞세워 아시아는 물론이고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수비수로 명성을 떨쳤다. 한때 튼햄 핫스퍼 시절 공격력이 다소 부족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으나 이만한 완성도를 지닌 선수를 보기란 흔치 않다는 점에서 전설이라는 말이 과언은 아니다.

이영표의 활약상 중 백미는 역시 2002 한·일 월드컵과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 시절 경험한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를 꼽을 수 있다. 2002 월드컵 당시 이영표는 2개의 도움을 올리며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한국의 4강 신화에 큰 공을 세웠다. 이영표는 조별 라운드 포르투갈전 후반 25분 왼쪽 측면에서 오른발로 감아올린 크로스로 월드컵 16강 돌파구를 뚫은 박지성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했다. 이어진 16강 이탈리아전에서는 1-1로 팽팽히 맞서던 연장 후반 12분 마찬가지로 왼쪽에서 오른발로 크로스를 올려 안정환이 골든골을 터뜨릴 수 있도록 했다. 가장 극적 순간에 가장 필요한 득점이 터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당시 활약상을 높게 평가받아 PSV 에인트호번에 입단한 후에도 이영표는 존재감 있는 플레이를 펼쳤다. 박지성이 유럽 진출 초기 적응에 애먹으며 어려움을 겪었던 반면, 이영표는 흔들림 없는 플레이를 펼쳐 콧대 높은 현지 팬들로부터 박수를 이끌어냈다. 특히 2004-2005 UCL 준결승 2차전에서 당시 세계 최고 오른쪽 풀백 카푸를 완벽하게 무너뜨린 후 올린 크로스로 필립 코쿠의 동점골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이 장면은 앞서 굳게 잠긴 AC 밀란의 골문을 열었던 박지성의 골과 더불어 당시 유럽을 뒤흔들었던 PSV 에인트호번의 돌풍을 설명함에 있어 빠지지 않는 장면이다.

PSV 에인트호벤에서 보인 활약상을 인정받아 한 단계 높은 무대, 그것도 전통 강호로 평가받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튼햄 유니폼을 입었다. 리버풀을 상대한 데뷔전에서 현란한 오버래핑으로 상대 측면을 뒤흔드는 플레이를 펼쳐 경기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는 등 강렬한 인상을 심었다. 이후 마틴 욜 감독의 신뢰 아래 입단 초기 주전 왼쪽 풀백으로서 기복 없이 탄탄한 수비를 펼쳐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벤와 아수-에코토, 가레스 베일의 가세 이후 팀 내 입지가 크게 흔들리기도 했다. 특히 후안데 라모스 감독 시절에는 거의 전력 외 취급을 받는 등 아픔을 겪기도 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 주역
지능적인 플레이에 철인체력 자랑

지금도 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는 이탈리아 세리에A AS 로마 이적 거부 사건도 이때 일어났다. 돌이켜 보면 토튼햄 시절은 좋았던 순간과 나빴던 순간이 공존했다.

하지만 독일 분데스리가 도르트문트 이적이라는 영리한 거취 판단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했다. 2008-2009시즌 위르겐 클롭 도르트문트 감독은 간판 수비수였던 데데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풍부한 경험을 지닌 이영표를 대체자로 영입했다. 당시 이영표는 22경기를 뛰며 클롭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도르트문트는 성실한 플레이로 데데와 마르셀 슈멜처 사이의 연결 고리 구실을 충실히 한 이영표의 플레이에 만족감을 드러냈고, 이영표가 국가대표로서 센추리 클럽(A매치 100경기 출장)에 가입하자 하프타임을 통해 성대하게 축하하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이영표는 설기현과 더불어 한국 선수들의 중동 무대 진출에 교두보를 놓은 선수이기도 하다. 이영표는 2009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 최고 명문 알 힐랄에서 두 시즌을 뛰며 통산 64경기에서 1골을 기록했다. 빈틈없는 수비와 날카로운 오버래핑으로 왼쪽 터치라인을 장악, 알 힐랄 팬들에게서 슈퍼스타로서 추앙받는 야세르 알 카타니 못지않은 인기를 끌었다. 당시 알 힐랄의 홈페이지에서 가장 많이 살필 수 있었던 선수 중 하나가 바로 이영표였다. 이 때문에 알 힐랄은 묵직한 연봉을 제시하며 이영표와 재계약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영표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재계약을 포기했다.

알 힐랄 퇴단 후 은퇴할 것이라는 설이 파다했으나 이영표는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FC 서울 클럽 하우스에서 후배 선수들과 몸을 만들더니 밴쿠버 화이트캡스에 전격 입단한 것이다. 밴쿠버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뽐냈다. 이미 적잖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입단하자마자 대부분의 경기에서 주전으로 출전하며 수비진의 한 축을 책임졌다. 지난해 3월에는 22경기 연속 풀타임으로 출장해 현지 언론으로부터 ‘철인’이라는 호칭까지 얻었다. 가히 이 정도면 밴쿠버의 하비에르 사네티급이라 해도 무방하다.


이영표는 동료 선수들에게서도 대단한 신뢰를 받았다. 지난 3월에는 시즌 아웃을 당한 미국 대표 수비수 제이 데메리트를 대신할 주장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이영표가 한사코 사양해 주장으로 뛰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으나 현지에서 이영표가 얼마나 크나큰 믿음을 얻는 선수였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기실 수비수로서, 더군다나 거칠디 거친 유럽에서 체격적으로 열세인 아시아 선수가 이런 커리어를 밟기란 정말 어렵다. 하지만 이영표는 특유의 성실함과 꾸준한 경기력을 인정받아 스스로 세계적 명성을 쌓을 토대를 마련함은 물론이며 현재 아시아 선수들의 유럽 진출 러시의 돌파구까지 만들어 냈다.

부르는 곳이 많았고 떠남을 결정할 때 아쉬워하는 이들도 많았다. 스포트라이트가 상대적으로 덜 미치는 포지션에서도 온전히 자신의 존재감을 떨친 선수였다.

이영표의 아성
누가 뛰어넘나

이영표는 K리그 안양 LG 치타스(당시),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 PSV 에인트호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튼햄 핫스퍼, 독일 분데스리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등 프로 생활 중 남긴 족적도 대단하지만 국가대표팀에서 이룬 위상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1999년 코리아컵에서 처음 태극 마크를 단 이영표는 2002 한·일- 2006 독일- 2010 남아공 등 세 번의 월드컵을 거치고 2011 카타르 아시안컵을 마지막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12년간 이영표는 무려 127번의 A매치에 출장해 홍명보(136회)·이운재(132회)에 이어 한국 역대 A매치 최다 출장 선수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왼쪽 터치라인에서 이영표가 보인 존재감은 대단했다. 악착같은 수비로 공격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했고, 공격 시엔 특유의 헛다리 개인기와 칼날 같은 크로스로 측면에서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런 이영표를 뛰어 넘기 위해 많은 선수들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가장 먼저 이영표의 후계자로 떠오른 이는 김동진(항저우 그린타운)이었다. 이영표와 똑같이 2000년 안양 LG 치타스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 김동진은 2003년 12월 동아시아 선수권대회 홍콩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른 뒤, 줄곧 이영표의 백업 멤버로 활약했다. 좋은 체격 조건과 과감한 슈팅으로 종종 골을 터뜨리기도 한 김동진은 이영표 은퇴 시 제1옵션으로 여겨졌으나 2010 월드컵 이후 컨디션 하락으로 더는 발탁되지 못했다.

김치우(FC 서울)도 종종 이영표의 후계자로 거론됐다. 2010 월드컵 예선전에서 ‘허정무호의 황태자’라 불리며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김치우는 왼쪽 측면 미드필더까지 소화 가능할 만큼 뛰어난 공격력을 갖춘데다 빼어난 프리킥 능력도 보유하고 있어 더욱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잦은 부상으로 컨디션 난조에 시달렸고 결국 이영표를 넘지 못하고 말았다.

철벽수비에 헛다리
“영원한 태극전사”

2010년엔 J리그 주빌로 이와타에서 뛰던 박주호도 슬슬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10년 1월 18일 열린 핀란드와 친선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른 박주호는 안정감 있고 깔끔한 플레이로 주목받았다. 이후 능력을 인정받은 박주호는 스위스 바젤을 거쳐 분데스리가 마인츠 05에 닿을 때까지 종종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이영표 후계자’ 타이틀을 향해 천천히 전진하고 있다.

2011년 이영표 은퇴 직후 바로 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어린 선수들도 있었다. 바로 윤석영(퀸즈 파크 레인저스)과 홍철(수원 삼성)이었다. 1990년생 동갑내기인 둘은 각기 다른 장점으로 자신이 ‘포스트 이영표’라 어필했다. 엄청난 체력을 자랑하는 윤석영은 수비 부분에서 강점을 드러냈고, 날카로운 왼발과 빠른 주력을 자랑하는 홍철은 공격형 풀백으로서 가능성을 보였다. 그러나 완성형에 가까운 이영표를 따라잡기에 이들이 보인 임팩트는 부족했다.

이후에도 박원재(전북 현대)·최재수(수원 삼성) 등이 번갈아 가며 이름을 올렸으나 계속 발탁되진 못했고, 2013년에 이르러 또다시 새로운 후계자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올 6월 한국 A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홍명보 감독은 김민우(사간 도스)와 김진수(알비렉스 니가타)를 발탁해 시험해 봤고, 김진수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13 EAFF(동아시아축구연맹) 동아시안컵 호주전서 데뷔 무대를 가진 김진수는 날카로운 크로스와 높은 축구 지능을 바탕으로 한 영리한 움직임으로 주목받았다. 김진수는 지난 9월 치른 크로아티아·아이티와 친선 경기에선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10월 브라질·말리와 치른 A매치서 다시 한 번 모습을 드러내 좋은 활약을 펼쳐 주가를 높이고 있다.

아름다운 은퇴
끝 아닌 시작

앞서 언급한 선수들 모두가 각자 장점을 가지고 있는 훌륭한 왼쪽 측면 수비수다. 그러나 태극 마크를 달고 나선 경기에서 누구도 이영표만큼 든든한 모습을 보이진 못했다. 또 누구도 이영표만큼 꾸준한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앞으로 이영표의 아성을 뛰어넘을 선수는 누가 될 것인가.

이광호 기자<khlee@ilyosisa.co.kr>

 

 

[이영표는?]

▲강원도 홍천 출생
▲안양공고 졸업
▲건국대 정치외교학 학사
▲안양 LG 치타스
▲시드니올림픽 축구 국가대표
▲컨페더레이션스컵 국가대표
▲한일 월드컵 국가대표
▲PSV 에인트호벤(네덜란드)
▲토튼햄 핫스퍼 FC(잉글랜드)
▲독일 월드컵 국가대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독일)
▲알 힐랄 FC(사우디아라비아)
▲남아공 월드컵 국가대표
▲AFC 아시안컵 국가대표
▲밴쿠버 화이트캡스 FC(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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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