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축구화 벗는 이영표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0.28 11:5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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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빛낸 초롱초롱 ‘초롱이’

[일요시사=사회팀]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초롱이’ 이영표(36·밴쿠버 화이트캡스)가 은퇴했다.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부동의 왼쪽 풀백으로 활약했던 레전드. 그가 축구화를 벗고 제2의 인생을 설계한다.




한국 축구를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16강에 올려놓은 박지성과 거스 히딩크 감독의 화끈한 포옹, 이탈리아를 침몰시킨 안정환의 반지 세리머니. 2002년 한일월드컵 하면 떠오르는 감격의 순간이다. 한국 축구의 역사를 바꿔놓은 장면은 모두 이영표의 발에서 비롯됐다.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자 한국 축구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초롱이’ 이영표가 정든 그라운드를 떠난다.

정든 그라운드
떠나는 ‘초롱이’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밴쿠버 화이트캡스는 지난 23일(한국시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이영표가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영표는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어린 시절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배웠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며 “좋은 팀에서 좋은 사람들과 훌륭한 마무리를 할 수 있어 기쁘다”고 은퇴 소감을 밝혔다.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난 이영표는 안양공고와 건국대를 졸업했다. 초롱초롱 반짝이는 눈을 묘사해서 흔히 ‘초롱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빠른 스피드로 인하여 ‘바람’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00년 안양 LG(현 FC서울)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대표팀의 주축 멤버로 뛰었던 이영표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왼쪽 윙백을 맡아 맹활약을 펼쳐 4강 진출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조별리그 포르투갈전에서 터진 박지성의 골과 한국을 8강으로 이끈 이탈리아전 안정환의 헤딩 골을 어시스트해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일월드컵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낸 이영표는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고 네덜란드 에인트호벤에 입단해 유럽 무대를 밟았다. 이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과 독일 분데스리가 도르트문트,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힐랄을 거쳐 2011년 12월 MLS에 진출했다.

이영표는 2006년 독일 월드컵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도 출전해 월드컵 본선 무대를 세 차례나 경험했다. 통산 A매치 127경기에서 뛰었다.

이영표는 지난해 은퇴와 현역 연장을 놓고 고민하다 밴쿠버 구단의 요청을 받아들여 현역 생활을 1년 더 연장했다.

그라운드 떠나 행정가로 ‘제2의 인생’설계
3번 월드컵 본선 밟아…A매치 127경기 출전

이영표의 현역 마지막 경기는 28일 열리는 콜로라도와의 정규리그 홈 경기다. 이영표는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될 것 같다”고 밝혔다.

밴쿠버 화이트캡스 마틴 레니 감독(38)은 은퇴를 결정한 이영표(36)를 단 한 단어로 표현했다. 미국프로축구(MLS)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그는 한국시간 23일 “이영표는 전설이다”라고 말했다.


레니 감독은 “이영표는 클럽 역사상 가장 훌륭한 선수 중 한 명”이라며 “다른 선수들에게 프로 정신과 성공의 의미를 일깨워준 진정한 롤 모델이었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한편, 축구 행정가를 꿈꾸는 이영표는 은퇴 이후에도 밴쿠버에 머물며 영어와 구단 행정을 배우고, 캐나다의 대학에서 스포츠마케팅 공부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필드서 써간
조용한 전설

데뷔 시절부터 따라다녔던 그의 별명 ‘초롱이’. 지능적인 선수라는 평 덕분이다. 은퇴 직전에는 나이를 잊은 듯한 체력을 과시해 ‘철인’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한국 축구 사상 이처럼 커리어 내내 호평받은 선수는 드물다.
이영표는 누구보다도 행복한 커리어를 쌓았다. 그만한 실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왕성한 활동량, 영리한 지능, 양발을 고루 사용하는 풀백, 풍부한 국제 경험 등을 앞세워 아시아는 물론이고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수비수로 명성을 떨쳤다. 한때 튼햄 핫스퍼 시절 공격력이 다소 부족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으나 이만한 완성도를 지닌 선수를 보기란 흔치 않다는 점에서 전설이라는 말이 과언은 아니다.

이영표의 활약상 중 백미는 역시 2002 한·일 월드컵과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 시절 경험한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를 꼽을 수 있다. 2002 월드컵 당시 이영표는 2개의 도움을 올리며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한국의 4강 신화에 큰 공을 세웠다. 이영표는 조별 라운드 포르투갈전 후반 25분 왼쪽 측면에서 오른발로 감아올린 크로스로 월드컵 16강 돌파구를 뚫은 박지성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했다. 이어진 16강 이탈리아전에서는 1-1로 팽팽히 맞서던 연장 후반 12분 마찬가지로 왼쪽에서 오른발로 크로스를 올려 안정환이 골든골을 터뜨릴 수 있도록 했다. 가장 극적 순간에 가장 필요한 득점이 터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당시 활약상을 높게 평가받아 PSV 에인트호번에 입단한 후에도 이영표는 존재감 있는 플레이를 펼쳤다. 박지성이 유럽 진출 초기 적응에 애먹으며 어려움을 겪었던 반면, 이영표는 흔들림 없는 플레이를 펼쳐 콧대 높은 현지 팬들로부터 박수를 이끌어냈다. 특히 2004-2005 UCL 준결승 2차전에서 당시 세계 최고 오른쪽 풀백 카푸를 완벽하게 무너뜨린 후 올린 크로스로 필립 코쿠의 동점골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이 장면은 앞서 굳게 잠긴 AC 밀란의 골문을 열었던 박지성의 골과 더불어 당시 유럽을 뒤흔들었던 PSV 에인트호번의 돌풍을 설명함에 있어 빠지지 않는 장면이다.

PSV 에인트호벤에서 보인 활약상을 인정받아 한 단계 높은 무대, 그것도 전통 강호로 평가받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튼햄 유니폼을 입었다. 리버풀을 상대한 데뷔전에서 현란한 오버래핑으로 상대 측면을 뒤흔드는 플레이를 펼쳐 경기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는 등 강렬한 인상을 심었다. 이후 마틴 욜 감독의 신뢰 아래 입단 초기 주전 왼쪽 풀백으로서 기복 없이 탄탄한 수비를 펼쳐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벤와 아수-에코토, 가레스 베일의 가세 이후 팀 내 입지가 크게 흔들리기도 했다. 특히 후안데 라모스 감독 시절에는 거의 전력 외 취급을 받는 등 아픔을 겪기도 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 주역
지능적인 플레이에 철인체력 자랑

지금도 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는 이탈리아 세리에A AS 로마 이적 거부 사건도 이때 일어났다. 돌이켜 보면 토튼햄 시절은 좋았던 순간과 나빴던 순간이 공존했다.

하지만 독일 분데스리가 도르트문트 이적이라는 영리한 거취 판단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했다. 2008-2009시즌 위르겐 클롭 도르트문트 감독은 간판 수비수였던 데데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풍부한 경험을 지닌 이영표를 대체자로 영입했다. 당시 이영표는 22경기를 뛰며 클롭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도르트문트는 성실한 플레이로 데데와 마르셀 슈멜처 사이의 연결 고리 구실을 충실히 한 이영표의 플레이에 만족감을 드러냈고, 이영표가 국가대표로서 센추리 클럽(A매치 100경기 출장)에 가입하자 하프타임을 통해 성대하게 축하하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이영표는 설기현과 더불어 한국 선수들의 중동 무대 진출에 교두보를 놓은 선수이기도 하다. 이영표는 2009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 최고 명문 알 힐랄에서 두 시즌을 뛰며 통산 64경기에서 1골을 기록했다. 빈틈없는 수비와 날카로운 오버래핑으로 왼쪽 터치라인을 장악, 알 힐랄 팬들에게서 슈퍼스타로서 추앙받는 야세르 알 카타니 못지않은 인기를 끌었다. 당시 알 힐랄의 홈페이지에서 가장 많이 살필 수 있었던 선수 중 하나가 바로 이영표였다. 이 때문에 알 힐랄은 묵직한 연봉을 제시하며 이영표와 재계약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영표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재계약을 포기했다.

알 힐랄 퇴단 후 은퇴할 것이라는 설이 파다했으나 이영표는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FC 서울 클럽 하우스에서 후배 선수들과 몸을 만들더니 밴쿠버 화이트캡스에 전격 입단한 것이다. 밴쿠버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뽐냈다. 이미 적잖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입단하자마자 대부분의 경기에서 주전으로 출전하며 수비진의 한 축을 책임졌다. 지난해 3월에는 22경기 연속 풀타임으로 출장해 현지 언론으로부터 ‘철인’이라는 호칭까지 얻었다. 가히 이 정도면 밴쿠버의 하비에르 사네티급이라 해도 무방하다.


이영표는 동료 선수들에게서도 대단한 신뢰를 받았다. 지난 3월에는 시즌 아웃을 당한 미국 대표 수비수 제이 데메리트를 대신할 주장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이영표가 한사코 사양해 주장으로 뛰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으나 현지에서 이영표가 얼마나 크나큰 믿음을 얻는 선수였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기실 수비수로서, 더군다나 거칠디 거친 유럽에서 체격적으로 열세인 아시아 선수가 이런 커리어를 밟기란 정말 어렵다. 하지만 이영표는 특유의 성실함과 꾸준한 경기력을 인정받아 스스로 세계적 명성을 쌓을 토대를 마련함은 물론이며 현재 아시아 선수들의 유럽 진출 러시의 돌파구까지 만들어 냈다.

부르는 곳이 많았고 떠남을 결정할 때 아쉬워하는 이들도 많았다. 스포트라이트가 상대적으로 덜 미치는 포지션에서도 온전히 자신의 존재감을 떨친 선수였다.

이영표의 아성
누가 뛰어넘나

이영표는 K리그 안양 LG 치타스(당시),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 PSV 에인트호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튼햄 핫스퍼, 독일 분데스리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등 프로 생활 중 남긴 족적도 대단하지만 국가대표팀에서 이룬 위상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1999년 코리아컵에서 처음 태극 마크를 단 이영표는 2002 한·일- 2006 독일- 2010 남아공 등 세 번의 월드컵을 거치고 2011 카타르 아시안컵을 마지막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12년간 이영표는 무려 127번의 A매치에 출장해 홍명보(136회)·이운재(132회)에 이어 한국 역대 A매치 최다 출장 선수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왼쪽 터치라인에서 이영표가 보인 존재감은 대단했다. 악착같은 수비로 공격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했고, 공격 시엔 특유의 헛다리 개인기와 칼날 같은 크로스로 측면에서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런 이영표를 뛰어 넘기 위해 많은 선수들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가장 먼저 이영표의 후계자로 떠오른 이는 김동진(항저우 그린타운)이었다. 이영표와 똑같이 2000년 안양 LG 치타스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 김동진은 2003년 12월 동아시아 선수권대회 홍콩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른 뒤, 줄곧 이영표의 백업 멤버로 활약했다. 좋은 체격 조건과 과감한 슈팅으로 종종 골을 터뜨리기도 한 김동진은 이영표 은퇴 시 제1옵션으로 여겨졌으나 2010 월드컵 이후 컨디션 하락으로 더는 발탁되지 못했다.

김치우(FC 서울)도 종종 이영표의 후계자로 거론됐다. 2010 월드컵 예선전에서 ‘허정무호의 황태자’라 불리며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김치우는 왼쪽 측면 미드필더까지 소화 가능할 만큼 뛰어난 공격력을 갖춘데다 빼어난 프리킥 능력도 보유하고 있어 더욱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잦은 부상으로 컨디션 난조에 시달렸고 결국 이영표를 넘지 못하고 말았다.

철벽수비에 헛다리
“영원한 태극전사”

2010년엔 J리그 주빌로 이와타에서 뛰던 박주호도 슬슬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10년 1월 18일 열린 핀란드와 친선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른 박주호는 안정감 있고 깔끔한 플레이로 주목받았다. 이후 능력을 인정받은 박주호는 스위스 바젤을 거쳐 분데스리가 마인츠 05에 닿을 때까지 종종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이영표 후계자’ 타이틀을 향해 천천히 전진하고 있다.

2011년 이영표 은퇴 직후 바로 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어린 선수들도 있었다. 바로 윤석영(퀸즈 파크 레인저스)과 홍철(수원 삼성)이었다. 1990년생 동갑내기인 둘은 각기 다른 장점으로 자신이 ‘포스트 이영표’라 어필했다. 엄청난 체력을 자랑하는 윤석영은 수비 부분에서 강점을 드러냈고, 날카로운 왼발과 빠른 주력을 자랑하는 홍철은 공격형 풀백으로서 가능성을 보였다. 그러나 완성형에 가까운 이영표를 따라잡기에 이들이 보인 임팩트는 부족했다.

이후에도 박원재(전북 현대)·최재수(수원 삼성) 등이 번갈아 가며 이름을 올렸으나 계속 발탁되진 못했고, 2013년에 이르러 또다시 새로운 후계자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올 6월 한국 A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홍명보 감독은 김민우(사간 도스)와 김진수(알비렉스 니가타)를 발탁해 시험해 봤고, 김진수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13 EAFF(동아시아축구연맹) 동아시안컵 호주전서 데뷔 무대를 가진 김진수는 날카로운 크로스와 높은 축구 지능을 바탕으로 한 영리한 움직임으로 주목받았다. 김진수는 지난 9월 치른 크로아티아·아이티와 친선 경기에선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10월 브라질·말리와 치른 A매치서 다시 한 번 모습을 드러내 좋은 활약을 펼쳐 주가를 높이고 있다.

아름다운 은퇴
끝 아닌 시작

앞서 언급한 선수들 모두가 각자 장점을 가지고 있는 훌륭한 왼쪽 측면 수비수다. 그러나 태극 마크를 달고 나선 경기에서 누구도 이영표만큼 든든한 모습을 보이진 못했다. 또 누구도 이영표만큼 꾸준한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앞으로 이영표의 아성을 뛰어넘을 선수는 누가 될 것인가.

이광호 기자<khlee@ilyosisa.co.kr>

 

 

[이영표는?]

▲강원도 홍천 출생
▲안양공고 졸업
▲건국대 정치외교학 학사
▲안양 LG 치타스
▲시드니올림픽 축구 국가대표
▲컨페더레이션스컵 국가대표
▲한일 월드컵 국가대표
▲PSV 에인트호벤(네덜란드)
▲토튼햄 핫스퍼 FC(잉글랜드)
▲독일 월드컵 국가대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독일)
▲알 힐랄 FC(사우디아라비아)
▲남아공 월드컵 국가대표
▲AFC 아시안컵 국가대표
▲밴쿠버 화이트캡스 FC(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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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