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좌지우지’ 동양 막후 실세들 대해부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10.22 11:3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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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 많아 배가 산으로 갔다

[일요시사=경제1팀] 대기업에 문제가 생기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인물들이 있다. 이른바 숨은 막후 실세들. SK그룹의 김원홍이 그랬듯 이번에 무너진 동양그룹 역시 그룹을 좌지우지했다는 핵심 이름들이 거론되고 있다. 결국 동양사태는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간 꼴’이라는 분석이다. 그 폐해는 그룹이 해체 위기에 몰리면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5만 여명의 금융소비자에 대해 2조원의 피해를 일으킨 동양 사태. 그룹이 법정관리에 이르기까지의 전말이 숨은 실세들의 부상으로 점점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사건의 초점은 한때 재계순위 5위까지 올랐던 동양그룹이 왜 역사 뒤안길로 사라졌는지, 동양 사태를 야기한 책임은 누구한테 있는가에 맞춰져 있다.

그룹 쥐고 흔든
이혜경 부회장

우선적으로 ‘동양 사태’는 사위 경영의 한계와 한때 재계에서 ‘내조의 여왕’으로 통했던 이혜경 부회장의 ‘오판’이 원인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 부회장은 동양그룹 창업주인 고 이양구 회장의 장녀이자,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의 부인이다.

그는 동생인 이화경 오리온그룹 부회장과 달리 30여년간 경영 일선에 나서지 않고, 자녀들의 교육과 가정살림에만 전념했다. 대신 검사 출신에 스마트했던 현 회장이 1983년 동양시멘트 대표로 부임한 후 줄곧 그룹 경영의 전반을 담당했다.

순탄하던 이들의 관계는 지분관계가 뒤바뀌면서 틀어지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1990년대까지는 현 회장이 경영을 맡고 있지만, 지주회사인 ㈜동양의 지분율은 이 부회장과 창업주의 부인인 이남희 서남재단 이사장이 더 높았다.


사위 경영인 역할만 해오던 현 회장이 2000년대 들어 금융 계열사를 인수하기 시작했고, 이 부회장을 제치고 1대 주주에 올라서면서부터 내부 불만이 쌓였다는 것이다.

현 회장의 영향력은 커졌지만 동양그룹 내부 상황은 날이 갈수록 악화됐다. 더 이상 이를 지켜볼 수만은 없었던 이 부회장은 2008년 경영일선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이화여대에서 생활 미술학을 전공한 경력을 살려 ‘디자인 경영’을 선언, 최고디자인경영자(CDO)로 나섰다. 그룹 내 디자인 업무를 시작으로 계열사의 디자인 관련 업무 역시 모두 이 부회장의 손을 거쳐나갔다.

이 부회장은 특히 2008년 건립된 강원 삼척시 파인밸리, 안성시 웨스트파인 골프장 등의 클럽하우스와 2009년 동양종합금융증권 골드센터 디자인을 직접 도안하는 등 디자인 경영에 상당한 애착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엔 ‘내가 아버지의 회사를 구해야 한다’는 포석이 깔려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동양그룹 내에서는 이 부회장의 비선 조직까지 생겨났다. 동양그룹 내 숨은 실세로 지목된 김철 동양네트웍스 대표도 이때 등장하게 된다.

동양 접수한
‘김철 라인’

1975년생으로 올해 39세에 불과한 김 대표는 2008년 이 부회장과 인연을 맺고, 동양그룹 기획실 산하 유통 부문 본부장(임원)급으로 영입되면서 영향력을 점차 확대했다.


그의 이력이나 경력에 대해선 그룹 내부에서도 거의 알려진 게 없다. 경상남도 출신으로 한국종합예술학교를 중퇴한 뒤 인테리어와 유통업 등에 종사하다 새롬기술의 후신인 솔본의 자회사 솔본미디어 대표를 지낸 것 정도만 알려져 있다.

동양그룹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 대표는 이 부회장이 심혈을 기울인 골프장과 증권 지점 디자인 과정에서 조언자 역할을 하며 신임을 얻었다고 한다. 이후 이 부회장의 후광과 비호를 통해 초고속 승진을 하면서 그룹 전반의 사업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2010년 5월 설립된 MRO(소모성자재공급업체) 회사 미러스 대표를 시작으로 2011년 동양시스템즈와 합병한 동양네트웍스 출범과 함께 대표를 맡으며 그룹 내 실세로 급부상 했다.

그룹 내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확보한 김 대표는 곧바로 인사권을 장악해 나갔다. 지난해 부터 소위 ‘김철 라인’으로 불리는 인물들을 핵심 계열사 대표로 앉히기 시작했다. 대표적 인물로는 이상화 동양시멘트 대표와 김정득 전 ㈜동양 건재부문 대표이사가 꼽힌다.

부인 이혜경 절대적 영향력 행사…인사도 장악
김철·이상화·김정득·오세경 두고 세력 확장

이 대표는 김 대표가 MRO 계열사인 미러스 대표로 있을 때 사업총괄본부장으로 일했다. 이 인연으로 지난 해 3월 동양시멘트 상무보(영업본부장)에 오른 지 불과 7개월 만인 같은 해 10월 동양시멘트 공동 대표이사로 선임되는 등 초고속 승진 인사의 주인공이 됐다.

또 다른 인물인 김 전 대표는 강릉고를 졸업하고 경남기업 이사와 금진생명과학 대표를 역임했다. 그는 김 대표가 세운 미러스에 2011년 2월 금진생명과학 주식 42만주(70%)와 경영권을 54억8500만원에 넘겼다.

이 거래를 계기로 김 대표와 가까워졌고 동양그룹에 합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김 전 대표는 지난해 4월 ㈜동양 건설부문 겸 동양시멘트이엔씨 대표까지 오르며 그룹 내 실세로 떠올랐다.

그러나 지난 2월 동양생명과학 잔여 보유지분을 동양네트웍스에 매각한 뒤 돌연 회사를 떠났다. 동양그룹 내에선 소위 ‘김철 라인’ 내의 다툼에서 밀려 갑작스레 사임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MB라인 출신
‘숨은 실세’

‘이 부회장-김 대표’가 주축인 비선 라인으로 분류되는 또 다른 핵심 인사는 감사권을 행사했던 오세경 전무다. 오 전무는 동양 네트웍스 법정관리 사태가 불거진 직후 김 대표가 있는 동양네트웍스로 소속을 옮겼다.

업계에 따르면 동양그룹은 오 전무가 지난해 입사한 시기를 기점으로 기존 법무조직을 법무와 감사를 통합해 담당하는 클린경영팀으로 재편했다. 클린경영팀은 오 전무가 담당했으며 여타 그룹사의 일반적인 법무조직과 달리 그룹 계열사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직접 감찰할 수 있는 독특한 위상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무는 본래 검사 출신으로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연루됐던 BBK 사건 때 이 전 대통령을 돕는 등 측근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오 전무는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시절부터 인연을 쌓아왔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이 청계천 개발 비리 의혹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자 이를 대비하기 위해 만든 ‘서울시 특명감사반’에 오 전무가 합류하면서 부터다.

오 전무는 이후 이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나서자 BBK, 다스 비리 의혹 등을 방어하는 역할을 담당했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법무행정분과위 전문위원을 맡기도 했다. 지난 18대 총선에서는 MB 라인으로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아 부산 동래구에 출마하기도 했으나 낙선하면서 공직에서 멀어졌다.

오 전무는 동양 건재부문 대표였던 김 전 대표와 개인적인 연을 바탕으로 동양에 입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오 전무가 ‘김철-이상화-김정득’ 등과 함께 김철 라인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 전무는 또 ㈜동양과 동양인터내셔널ㆍ동양레저 외에 동양시멘트ㆍ동양네트웍스 등 그룹 법정관리 현황을 마지막까지 알고 있었던 인물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사외이사·감사
산은출신 포진


오 전무 외에도 동양그룹 계열사의 사외이사와 감사, 비상근 상무이사 등이 동양 사태의 숨은 실세로 꼽힌다. 그 자리에 정계와 재계, 법조계 유력 인사가 대거 포진해 그룹 부실을 사실상 방치했다는 지적이다.

민주당 강기정 의원이 공시 자료 등을 분석한 결과 주식회사 동양과 동양시멘트, 동양증권 등 동양그룹 계열사 9곳에서 41명의 정권 측근 인사와 금융당국 관계자, 법조계 출신 인사가 발견됐다.

최연희 전 한나라당 의원이 동양파워 대표이사를 지냈고,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역임한 조동성씨와 이달곤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동양증권의 사외이사였다. 홍두표 동양시멘트 고문은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의 선대위 직능총괄본부 협력단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이와 함께 홍기택 현 KDB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2001년부터 2010년까지 동양증권의 사외이사를 지냈고, 김윤태 산업은행 부행장은 동양시멘트의 사외이사로 활동했다. 법조계에서는 법무부 차관과 법무연수원장을 지낸 한부환 변호사가 (주)동양의 감사위원으로 등재됐다.

“비선라인이 주도하다 피해 키웠다”
로비용? 보험용? 외부 방패세력도

강 의원은 “2011년 예금보험공사와 금융감독원이 동양증권을 검사했을 때 예금보험공사가 동양증권의 투자자 소송 가능성 등을 보고서에 포함했으나 금감원 최종보고서에는 관심촉구 수준으로 완화됐다”며 “당시 동양증권 상근감사가 금감원 출신권정국 감사였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듯 영입된 인사들이 동양그룹의 거수기로 전락하거나 로비의 통로로 활용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이들의 화려한 이력이 동양그룹 사태 예방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56년 역사의 동양그룹 몰락 원인을 놓고 아직 설왕설래가 여전하지만 동양이 무너진 이유 중 하나가 숨은 실세들에 있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진실로 보인다. 특수 관계로 묶여 있는 이들이 대기업 오너의 경영판단에 대한 문제제기, 경영실패에 대한 감시·감독·견제 등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실제 사외이사들은 동양그룹의 계열사 간 자금거래의 핵심고리였던 동양 파이낸셜 대부를 동양증권 100% 자회사로 두는 결정에 찬성표를 던지는 등 ‘동양사태’를 불러 온 원인 중 하나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 회장 뿐만 아니라 이 부회장 역시 그룹 붕괴의 중대한 책임을 갖고 있다”라며 “(이 부회장의 추천으로 동양에 들어온) 김 대표를 시작으로 그 라인 인물들이 줄줄이 주목받는 이유도 사실상 이 부회장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어 “당장의 내편들로 채워진 사외이사들 역시 지금의 동양 사태와 무관하다 볼 수 없다”며 “또 다른 동양을 막기 위한 여러 대비책 중 하나로 유명무실해진 사외이사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실세 의혹’김철이 지목한 실세는?
“보이지 않는 손 따로 있다”

김철 동양네트웍스 대표가 ‘동양그룹 숨은 실세설’에 대해 해명했다. 김 대표는 지난 15일 동양네트웍스 홈페이지를 안내문을 통해 “오해는 갈수록 증폭되고 의혹으로 번지고 있어 저는 어떠한 발언도 결정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 했다”며 “오늘은 사기꾼이 되고 있다. 미러스를 창업하고 부터 지금까지 함께 달려온 임직원들보기가 너무 부끄러워 의문에 관해 상세히 해명드리고자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 대표는 우선 자신의 동양그룹 입사 과정과 그룹의 실세설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그는 “동양그룹에 오게 된 계기는 이혜경 부회장이 디자인경영에 관한 포괄적인 계획안을 원해 실무와 이론이 적절히 융합돼 있다는 평가와 함께 전문가 추천을 받았다”며 “이는 일종의 컨설팅 의뢰로 당시에는 유학준비로 인해 입사를 거부했지만 수 개월 후 자연스럽게 회사에 조인했으며 대표를 맡은 건 2010년 스스로 미러스를 설립하면서부터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이미 그룹은 재무구조가 악화될 대로 악화돼 있었으며 그룹 전, 현직 기득 세력의 압력과 반대를 무릅쓰고 강남구청에 가서 자본금 1억원의 법인을 설립하며 스스로 대표이사가 됐고 초고속 승진이 아니라 단 한 번도 승진을 해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서 “내가 대표로 있는 동양네트웍스의 주식조차 한 주 갖지 못했다”며 “비자금에 관해서도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런 말이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선을 그었다.

김 대표 또 이번 동양그룹의 CP 문제를 주도한 것은 자신이 아닌 ‘제3의 실세’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CP발행의 당사자인 동양레저, 동양인터네셔날, 동양의 대표들은 그 분들이 취임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회사가 수천억의 CP 문제를 안고 있었다”며 “실제로 CP를 발행하는 업무는 해본 적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CP를 판매한 직원들 역시 회사의 고수익상품을 고객들에게 최선을 다해 판매했을 것”이라며 “이모든 정책을 만들고 운영한 분들이 아마 보이지 않는 손이거나 구조조정의 실세들일 것”이라며 지적했다.

김 대표는 끝으로 “동양네트웍스 임직원들은 현재까지 단한명의 이탈도 없이 숨 죽인채 협력업체에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가며 버티고 있다”며 “참 직원들보기 부끄럽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하나 답답하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나는 법정관리인 선임여부와 상관없이 당분간 회사를 정상화시키는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며 “나로 인해 불편을 겪으시는 모든 분들과 투자자, 협력사 그리고 동양네트웍스 임직원여러분께 고개 숙여 사죄 드린다”고 말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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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