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국감 관전포인트> 증인 출석 기업인 누구?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10.14 13:25:39
  • 댓글 0개

부르면 튀는 회장님 또 삼십육계 줄행랑?

[일요시사=경제1팀] 14일부터 11월2일까지 국정감사가 진행된다. 이번 국감에서는 200명에 가까운 기업인들이 대거 증인으로 채택됐다. 역대 최대 규모다. 기업인들의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피감기관이 600곳이 넘고 국감 기간도 휴일을 빼면 보름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부실·파행 국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4일부터 시작되는 국회 국정감사에 200명에 가까운 기업인들이 대거 증인으로 채택됐다. 지난 19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서 채택된 기업인 증인은 145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올해는 이마저도 경신, 역대 최고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국감 이슈는 다양하다. 일감 몰아주기, 골목상권 침해, 갑을 관행, 대·중소기업 상생 등 경제민주화 관련 이슈들로부터 통상임금, 4대강 담합, 동양 사태, 불산 사고 등 지난 1년을 뜨겁게 달궜던 기업 관련 이슈와 주요그룹 총수들의 모럴 헤저드까지 더해져 '기업감사'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실정이다.

현안도 많고
증인도 많고

지난 4일 전체회의를 통해 국감 증인 및 참고인 출석요구 의견을 가결한 정무위원회는 55명의 기업인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최근 금융권에서 가장 큰 현안으로 떠오른 '동양 사태'와 관련, 동양증권이 동양그룹 계열사의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개인투자자에게 적극 권유하는 등 불완전판매를 했는지 따져보기 위해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과 정진석 동양증권 사장, 이승국 전 동양증권 사장 등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정무위는 또 자본시장법 위반 및 주가조작 여부를 묻기 위해 이상준 전 골든브릿지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하고, 꺾기 등 부당영업 행위 여부를 따져보기 위해 박영빈 경남은행장을 채택했다.

이어 정부의 대부업체 저축은행 인수 가이드라인 마련과 관련해 최윤 아프로파이낸셜그룹 회장과 이동신 산와머니 대표를 부르기로 했다. 아프로파이낸셜과 산와머니는 대부 업계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같은 이유로 양석승 한국대부금융협회 회장과 문종복 신한신용정보 대표, 장유환 KB신용정보 대표도 증인으로 채택했다.

김종화 금융결제원 원장과 오필현 한국신용카드밴협회 회장은 밴(VAN)수수료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 증인으로 채택됐다. 스티븐 바넷 AIG손해보험 대표와 권용원 키움증권 대표, 존 와일리 ING생명 대표는 민원 과다 발생 및 감축 노력 미흡으로 증인 명단에 올랐으며 김종준 하나은행장과 서진원 신한은행장, 김양진 우리은행 수석 부행장은 지주회사 은행경영 불간섭과 관련해 증인으로 선정됐다.

KB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 4대 금융지주 회장들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았다.

국토교통위원회도 4일 전체회의를 열고 52명의 기업인을 국감 증인으로 채택했다. 올해 국토위 국감에서는 4대강 사업 의혹에 대한 신문이 핵심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감? 기감?…'묻지마' 무더기 증인 채택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출석 여부 관심 집중

이와 관련해 허창수 GS 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장)과 김중겸 전 현대건설 사장, 서종욱 전 대우건설 사장 등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정종환·권도엽 전 국토해양부 장관과 심명필 전 국토부 4대강살리기추진본부장, 장석효 전 도로공사 사장, 김철문 전 청와대 행정관 등 이명박 정부 인사들도 대거 증인으로 채택됐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 이순병 동부건설 부회장, 임병용 GS건설 사장,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 등 주요 건설사 대표이사들은 공사손해보험과 관련한 계열사 몰아주기 의혹과 관련해 증인으로 채택됐다.

이중근 부영 회장은 건설원가 부풀리기 의혹과 부영11차 분양전환 등과 관련해 두 차례 국감 출석요구를 받았으며 박중흠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은 해외건설노동자의 안전문제와 관련해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다.

20명의 기업인 증인을 채택한 환경노동위원회의 국감에서는 삼성전자서비스 위장도급·불법파견 의혹과 4대강 사업 책임 논란이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와 함께 쌍용자동차 사태 해법과 간접고용 문제, 유해화학물질 사고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와 삼성전자서비스 위장도급 의혹과 관련해서는 이유일 쌍용차 사장과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 김규한 쌍용차 노조 위원장이 증인으로 나온다. 박상범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이사는 환노위와 정무위 두 곳에서 증인으로 채택됐으며 윤갑한 현대차 사장, 이유일 쌍용차 사장, 장정우 서울메트로 사장, 최연혜 코레일 사장 등이 증인으로 나온다.

김영만 한국마사회장 직무대행과 이수길 한국마사회 제주지역본부장이 마필관리사 간접고용과 산업안전관리 문제와 관련해 증인으로 출석한다. 정부출연연구기관 중 유일하게 하청업체에 연구수행 관련업무를 맡겨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원자력연구원에서는 정연호 원장이 증인으로 참석한다.

도성환 홈플러스 사장과 샤시 쉐커라파카 옥시레킷벤키저 대표는 가습기 살균제 문제로 증인석에 앉게 됐으며 전동수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사장은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불산유출 사고에 대한 질의에 답할 예정이다. 최봉철 현대제철 부사장은 현대제철 당진공장 질식사고 등 산재 문제로 증인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재계 아우성
줄소환 논란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증인 목록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이름을 올려 화제를 모으고 있다. 신 회장은 롯데그룹의 가맹점·대리점에 대한 횡포와 골목상권 침탈 등 대기업 횡포와 관련해 출석할 예정이다. 신 회장과 함께 증인 목록에 이름을 올린 김성환 신세계푸드 대표이사는 중소납품업체 기술 탈취, 허인철 이마트 대표이사는 주변상권 대상 발전기금 조성 등의 사유로 국감장에 서게 됐다.

막판 진통을 겪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출석 여부는 장재영 신세계백화점 대표이사가 출석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또 명품 브랜드의 백화점 내 입점 현황을 조사하기 위해 조현욱 루이비통코리아 회장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수년째 반복되는 여름철 전력난 문제와 관련해서는 오창관 포스코에너지 대표이사와 유정준 SK E&S 대표이사 등이 증인대에 선다.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는 이석채 KT 회장과 종합편성채널 관계자들을 국감 증인으로 채택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회장은 KT의 노조탄압 의혹과 경영실태를 집중적으로 점검하기 위해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오는 28일∼31일까지 아프리카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서 열리는 아프리카 혁신 정상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어서 이번 국감 참석은 불가능할 전망이다.


증인 채택 기업인
이번엔 나올까?

미방위는 '막말 편파방송 의혹' '종편 승인자료 위법·편법 사례 검증'등을 이유로 김차수 채널A 보도본부장과 김민배 TV조선 보도본부장 등 종편관계자들과 사업자 선정 당시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이병기 전 방통위 상임위원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유료방송 시장점유율 규제'와 관련해서는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는 문재철 KT스카이라이트 사장과 김정수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사무총장이 모두 증인으로 채택됐다.

'통신사의 대리점 대상 횡포근절 및 상생협력 방안'과 관련해서는 최주식 LG유플러스 부사장, '휴대폰 단말기 가격의 적절성 여부 및 소비자 보호문제'와 관련해서는 백남육 삼성전자 한국총괄 부사장과 박종석 LG전자 MC사업본부 본부장이 증인으로 결정됐다.

원전 비리사태와 관련, 최명규 JS전선 대표이사와 오인석 새한티이피 대표이사 등이 증인으로 불려올 예정이다.

기획재정위원회는 역외탈세 의혹과 관련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인 재국씨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3남인 선용씨가 증인대에 서게 됐다.


이해광 한국공인중개사협회 회장은 부동산 세제 관련, 이재광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은 중소기업 지원과 관련해 일반 증인으로 채택됐다.

200명에 가까운 기업인들이 대거 증인으로 채택된 가운데 기업인 무더기 증인 채택의 실효성이 의문시되고 악용 가능성이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국감에서 정무위는 32명의 기업인을 채택했지만 재벌그룹 회장 등 6명이 불출석했다. 출석한 증인들도 절반 가량은 자리만 지키다 국감장을 떴다.

기업들의 불만도 뒤따르고 있다. 국감의 본래 취지인 '정책 감사'가 아닌 '기업 감사'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6일 공식 성명을 통해 "국감 증인은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국가기관의 기관장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이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 기업인 증인 채택은 예외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총은 "급변하는 대내외 경제 환경 속에서 촌각을 다퉈야 하는 기업 대표들이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될 경우 경영에 전념할 수 없어 경쟁력 하락이 우려된다"고 무분별한 증인 채택 자제를 촉구했다.

피감기관도 증인도 역대 최다
10대그룹 중 8곳 증언대 선다

국회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출석이나 제대로 하고 불만을 표시하라는 것. 그간 기업인들은 국감 때마다 해외출장이나 건강상의 이유로 출석을 기피해 여론의 표적이 됐다.

지난해에는 정무위 국감이 증인 불출석으로 파행되는 난항을 겪기도 했다. 증인으로 채택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 등이 약속이라도 한 듯 전원 불참했다. 당시 정무위는 격노했고 청문회에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한 기업인들을 검찰에 고발 조치했다.

법원도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지난 4월 재판부는 신동빈 회장에 대해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이번에는 벌금형으로 끝나지만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면 최대 징역형까지 선고할 수 있다"고 이례적으로 경고하기도 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국회에 자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지난 7일 페이스북을 통해 "15년 이상 국감을 해 본 경험에서 말한다"면서 "국회의 의례적인 권위를 뽐낼 시대는 지났다"고 지적했다.

이어 "증인으로 불러놓고 하루 종일 말 한마디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며 "기업인 증인 채택은 더욱 신중하게 선택하고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로 인해 부실·파행 국감에 대한 우려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국감을 받는 피감기관 숫자가 600곳을 넘고, 휴일은 제외하면 보름 정도에 불과해 제대로 된 감사가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대표적으로 피감기관이 60곳이 넘는 산업위는 의원 1명당 질의시간이 10분도 채 안된다.

국감 전부터 뜨겁게 달아오른 여야의 정쟁이 파행을 몰고 올 가능성도 있다. 새누리당은 '정치국감'이 아닌 '정책국감'을 하자고 주장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이명박정부의 국정실패부터 현 정부의 국정난맥상까지 날카롭게 파고들겠다는 각오다.

특히 최근 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동양그룹 사태의 피해 책임이 박 대통령에게 있다는 내용의 국감자료를 내놓아 파장을 일으켰다.

엇갈리는 의견들
파행 국감 우려

민 의원은 "박 대통령이 도덕적 해이 논란이 있는 현재현 회장을 대통령 해외 순방 때마다 수행시켜, 개인투자자들에게 동양그룹에 대한 공신력을 오인하도록 했다"고 주장했고,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세상 모든 일을 대통령 탓으로 돌리는 막말정치"라고 비판하는 등 신경전을 벌였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