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데렐라 실화' 재벌가 사위 현주소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10.08 10: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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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잘 만나 팔자 고친 백년손님들

[일요시사=경제1팀] 사위는 '백년손님'이라는 말이 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사위는 식구보다는 손님에 가깝다는 뜻이다. 하지만 재벌가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말이다. 아들 못지않은 사위들이 종종 눈에 띈다. 사위들의 경영참여가 늘고 있는 추세다. 물론 그렇지 않은 기업도 있다. <일요시사>가 '백년손님' 딱지를 뗀 사위와 처가와는 거리를 두고 살고 있는 사위들을 소개해 봤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과 담철곤 오리온 회장은 국내 최초로 처가의 사업을 물려받은 사위들이다. 그들의 장인 고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는 북한에서 홀로 월남, 슬하에 딸만 둘을 뒀다. 장녀 이혜경 부회장은 76년 현 회장을 만나 결혼했다. 당시 부산지검의 검사였던 현 회장은 고려대 초대 총장을 지낸 현상윤씨의 친손자이며 이화여대 의대 교수를 역임한 현인섭씨의 3남2녀 중 셋째다.

이듬해인 77년 동양시멘트 이사로, 법조인에서 경영인으로 변신을 한 현 회장은 이 창업주 아래에서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았다. 81년엔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를 땄고 83년 동양시멘트 사장, 88년 동양증권 회장을 거쳐 89년 동양그룹 회장에 올랐다.

둘째 딸 이화경 부회장은 10년 이상 열애 끝에 80년 담 회장과 결혼에 골인했다. 담 회장의 선친은 화교 출신으로 대구에서 한의원을 경영했다. 이화경 부회장과는 담 회장이 서울로 유학 오면서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친구로 만났다.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교에서 마케팅을 공부했던 담 회장은 결혼 직후 동양시멘트에 입사했다가 1년 뒤 동양제과로 회사를 옮겼고 89년 사장에 올랐다.

인생역전
승승장구

이 창업주가 타계한 89년부터 2001년까지는 '한 지붕 두 사위'시대가 지속됐다.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은 현 회장은 시멘트와 금융 부문을, 담 회장은 제과와 엔터테인먼트 쪽을 맡아 자연스럽게 계열분리가 이뤄졌다.


분리 후 두 회장은 부부 경영을 앞세워 신사업 확장, 내실 다지기 등 저마다의 방법으로 독자행보를 걸어왔다.

현 회장이 이끄는 동양그룹은 현재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져있다. 현 회장이 담 회장에게 친 'SOS'는 거절당했고 지난 9월30일, 1100억원의 기업어음(CP)을 막지 못해 ㈜동양과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등 3개사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오리온도 사정이 그리 좋지는 못하다. 지난 2011년 6월 회사 돈으로 고가 미술품을 사들여 자택에 장식품으로 설치하는 등의 수법으로 226억원을 횡령하고 74억원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담 회장이 구속기소된 후 지난 4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로 인해 국민들은 담 회장의 '두 얼굴'에 혀를 내둘렀고 회사 명성에는 금이 갔다. 여기에 담 회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오리온의 실적이 더 오르면서 '무용론'까지 제기됐다.

오리온은 현재 외국인 지분율이 40%에 육박해 경영권도 안전하지 않다. 이는 담 회장이 현 회장의 손을 뿌리친 이유로 분석되고 있다.

이 창업주의 동양그룹과는 달리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그룹은 재계에서 '사위복'이 가장 많은 기업으로 꼽힌다. 정 회장은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난 고 이정화씨와 결혼해 슬하에 성이, 명이, 윤이, 의선 등 1남3녀를 뒀다.

둘째 딸 정명이 현대커머셜 고문의 남편인 정태영 현대카드·현대캐피탈·현대커머셜 사장은  재벌가 사위들 중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로 평가받고 있다.

정 사장은 정경진 종로학원 회장의 장남으로 서울대 불문과를 나와 미국 MIT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87년 현대종합상사 기획실 이사로 시작해 현대정공, 현대모비스, 기아자동차, 현대자동차를 거쳐 지난 2003년 현대카드 사장을 맡아 3년이나 적자였던 현대카드를 공격적이고 과감한 경영과 톡톡 튀는 마케팅으로 취임 2년 만에 흑자로 돌려세웠다.


'동양가 희비' 손 벌린 현재현 등 돌린 담철곤
사위복 터진 삼성·현대차…경영 실적 '방긋'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등의 광고 카피는 모두 그의 주도하에 만들어졌다. 

셋째 딸 정윤이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전무와 혼인한 신성재 현대하이스코 사장 역시 철강 경기 침체 속에서 견실한 실적을 거두며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루퍼란대학교 경영학과와 페퍼다인대학 MBA과정을 수료한 그는 95년 현대정공에 입사해 정윤이 전무를 만났다. 2001년 임원으로 승진했으며 2002년 관리본부 부본부장(전무), 2003년 영업본부장 및 기획담당(부사장)을 거쳐 2005년 대표이사 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지난 2011년에는 단독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영업본부장 시절 1조원대에 머물던 현대하이스코의 연간 매출액을 2조3000억원으로 끌어올리며 강한 인상을 남겼고 지난해에는 매출 8조4000억원, 영업이익 4350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2.9%, 0.3% 성장시켰다.

맏딸인 정성이 이노션 고문과 결혼한 선두훈 영훈의료재단선병원 이사장·코렌텍 대표는 현대차그룹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2008년 현대차그룹에서 독립한 인공관절개발사 코렌텍 지분만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인공 고관절 수술 분야에서 명성을 날리다 2001년 고향인 대전으로 내려가 부친이 일구어 놓은 병원에 자리 잡았다. 현재 대전 선병원은 전문 경영인인 둘째 선승훈씨가 경영을 맡고, 치과의사인 셋째 선경훈씨가 치과병원을 담당하면서 삼형제가 이끌어가는 병원으로 유명하다.

선 대표가 이끌고 있는 코렌텍은 국내 인공관절 시장에서 고관절 부문 1위, 슬관절 부문 3위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코렌텍은 세계 최초로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한 인공관절 제조에 성공해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삼성전자도 이건희 회장의 사위들도 지난해 우수한 경영성과를 거두면서 '사위복'이 있는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회장은 슬하에 1남2녀를 두고 있다. 첫째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남편 임우재 삼성전기 부사장은 최근 급성장한 회사 실적으로 미소를 짓고 있다.

서울고를 나와 단국대 전자계산학과를 졸업한 임 부사장은 지난 95년 삼성물산에 입사해, 3년 뒤 이부진 사장과 결혼했다. 이후 미국 MIT로 유학을 떠났다가 삼성전자 미주본사 전략팀, 2005년 삼성전기 기획팀 상무 등을 거치며 경영수업을 했다. 5년간 상무보와 상무를 거친 후 지난 2009년 12월 전무로 승진했고 지난해 삼성그룹 임원인사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초고속 승진
핵심보직 중용

삼성전기는 올 상반기 삼성전자의 갤럭시S4 출시와 카메라모듈 사업의 성장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1.1% 상승한 매출액 4조4283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같은 기간 각각 33.4%, 31.5% 증가한 3355억원, 2705억원을 냈다.

둘째 딸인 이서현 제일모직·제일기획 부사장과 결혼한 김재열 삼성엔지니어링 사장도 탁월한 실적을 선보이며 그룹 내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2002년 제일기획 상무보로 입사, 2004년부터 제일모직에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2011년 12월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을 맡은 김 사장은 지난해 9월 볼리비아 국영석유가스공사 'YPFB'와 8억4000만달러 규모의 플랜트 건설 계약을 체결하며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삼성엔지니어링은 국내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세계 건설사 순위 20위권에 진입하는 쾌거를 올렸다.

범삼성가로 꼽히는 신세계에는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사위인 문성욱 이마트 부사장이 있다. 2001년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과 결혼한 문 부사장은 2011년 말부터 이마트 해외사업을 총괄해오고 있다.

현대가 맏사위
"내 갈길 갈란다"

장영신 애경 회장의 맏사위 안용찬 애경·제주항공 부회장도 맹활약하는 사위 중 한명이다. 연세대 경영학과와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 MBA를 거쳐 87년 애경에 입사한 안 부회장은 처남인 채형석 부회장의 소개로 채은정 애경산업 부사장과 결혼했다.

지난 2006년 생활·항공 부문 부회장을 역임하며 관할 사업을 총괄하기 시작한 그는 제주항공과 네오팜 등 계열사들의 실적을 크게 개선시키면서 리더십과 경영 능력을 부각시키고 있다.

제주항공은 지난 한 해 동안 항공기 4대를 새롭게 도입하고 신규 노선 공략에도 적극 나섰으며 아토피 피부염 보조치료용 보습제를 만드는 네오팜 또한 관련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견고한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제주항공은 올 상반기에만 매출액 2057억원, 영업이익 62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매출액은 지난 2011년 한 해 액수와 맞먹고 영업이익은 지난해 실적(22억원)을 크게 넘어섰다. 네오팜은 올 상반기 100억원의 매출과 1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고 최종건 SK 창업주의 둘째 사위인 박장석 SKC 사장도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79년 SK네트워크에 입사한 박 사장은 2004년부터 SKC 사장을 맡아 비디오테이프, CD, DVD 등 주력사업 쇠퇴로 맞은 SKC를 위기에서 끌어 올렸다는 평을 받고 있다.

지난해 SKC는 2조6292억원의 매출액과 1447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영업이익이 전년대비 32.1% 감소했으나 태양광사업 침체 속에 선방했다는 분석이다.

윤영달 크라운-해태 회장의 외동딸 윤자원씨와 결혼한 신정훈 해태제과 대표이사는 미국에서 MBA과정을 수료하고 컨설턴트 회사에 근무하며 해태제과 인수 작업을 주도한 장본인으로 2005년 해태제과 상무로 입사했다. 이후 윤 회장과 함께 공동대표이사를 맡았으며 2008년 멜라민 파동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며 경영자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대부분 처갓집 도와 경영
거리 두고 개인플레이도

사회적으로 사위들의 경영참여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서 사위의 경영참여 불가 등의 원칙을 지키고 있는 그룹들도 있다. LG그룹, 금호아시아나그룹, 코오롱그룹 등이 대표적이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양자 광모씨를 포함, 1남2녀를 두고 있다. 지난 2006년 장녀 연경씨와 결혼한 윤관 블루런벤처스 사장은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공학 대학원을 졸업한 후 2000년부터 블루런벤처스에서 일해 왔다. LG그룹의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연경씨도 가사에 전념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윤 사장의 LG그룹 경영 참여가 조심스레 점쳐지곤 하지만 딸들을 경영에 참여시키지 않는 장자승계 원칙을 고수하는 LG그룹 일가의 가풍상 쉽지 않을 전망이다.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딸 자혜씨와 결혼을 한 이재연 아시안스타 회장과 막내딸 자영씨와 부부 사이인 이재원 전 일성제지 회장은 LG그룹 계열사의 일부 지분을 보유하고 있을 뿐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는 않다.

구 창업주의 자리를 이은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딸 미정씨와 결혼한 최병민 대한펄프 회장도 마찬가지로 한국제지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등 그의 부친인 고 최화식 대한펄프 창업주의 유지를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도 사위는 '백년손님'일 뿐이다. 고 박인천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주의 맏딸 경애씨는 경상도 출신 제헌의원인 배태성씨의 장남 영환씨에게 시집갔다. 영환씨는 현재 삼화고속 회장직을 맡고 있다. 차녀 박강자 금호미술관 관장은 강대균 대한전자재료 회장과 결혼했다. 삼녀인 박현주 상암커뮤니케이션스 부회장은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과 결혼했다.

박 창업주의 차남인 박정구 전 금호그룹 회장은 슬하에 1남3녀를 뒀다. 장녀인 은형씨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차남 김선협 포천아도니스CC 대표와 결혼했으며 차녀 은경씨는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의 차남인 장세홍 대표와 혼인했다. 3녀인 은혜씨는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의 차남 허재명 일진머티리얼 대표와 결혼했다.

그룹 경영권을 이어 받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장녀인 세진씨는 최성욱 변호사에게 시집을 갔고 최 변호사는 김앤장법률사무소에 재직 중이다.

잘 키운 사위
아들딸 안부럽다

코오롱그룹 또한 정·관계는 물론 재계 유력가문들과의 사돈 관계를 통해 탁월한 능력을 보유한 사위들이 있음에도 이들의 경영 참여를 배제하고 오너를 통한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코오롱그룹은 현재 장자승계 방식을 통해 경영권을 이어가고 있다. 이원만 창업주에 이어 장남인 이동찬 명예회장과 장손인 이웅렬 회장이 차례로 그룹을 승계했다. 이외 다른 형제나 사위들은 모두 기업 경영에서 한발 물러서 있다.

먼저 이 명예회장의 장녀인 경숙씨는 영남대 교수인 이문조씨와 결혼했다. 차녀인 상희씨는 고 고흥명 한국파이롯트 회장의 외아들인 고석진씨와 결혼했으며 삼녀인 혜숙씨는 고 이학철 고려해운 창업주의 장남인 동혁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동혁씨는 현재 고려해운 대주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후 컬럼비아 대학 석사를 마치고 해운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사녀 은주씨는 신병현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의 외아들인 영철씨와 가정을 꾸렸으며 막내딸인 경주씨는 사업가인 최윤석씨와 결혼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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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br>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