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파기환송' 김승연 사건 파장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10.01 11: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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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 돌렸지만 경영공백 어찌할꼬

[일요시사=경제1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다시 재판을 받게 됐다. 대법원이 상고심에서 파기환송 처리한 것. 김 회장이 일단 실형을 피하면서 한화그룹은 숨을 돌린 모양새. 그러나 한화그룹의 '경영시계'는 여전히 멈춰있다. '이라크 재건' '태양광 사업' 등 굵직굵직한 사업들은 동력을 얻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대법원이 회사와 주주들에게 수천억원대 손해를 입힌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사건에 대해 지난 9월26일 파기환송 처리했다. 이로써 김 회장의 배임·횡령 사건은 다시 항소심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됐다.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이날 오전,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 회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3년과 벌금 51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다시 재판 받는다

재판부는 일부 배임 행위에서 유·무죄 판단이 잘못됐다고 지적, 일부 유죄 부분과 일부 무죄 부분을 파기했다. 파기된 부분은 부실계열사 금융기관 채무에 대한 부당지급보증 부분, 부동산 저가 매도 부분 등에 대한 배임죄 성립 여부다.

우선 부실계열사의 금융기관 채무에 대한 지급보증과 재지급보증을 하나의 배임행위로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원심은 지급보증 만기로 재지급보증을 하면서 채권자가 달라졌기 때문에 별도의 배임혐의로 판단했다. "부실 계열사가 새로운 대출을 받아 기존 대출을 갚는 과정에서 1차 대출에 보증을 서준 회사가 두 번째 대출에도 그대로 보증을 유지했다면 새로운 손해가 생긴 것은 아니다"는 게 재판부 입장이다. 이에 따라 제외되는 금액은 345억원으로 추산됐다.


부동산 저가매각에 따른 손해액도 다시 계산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부동산 감정평가에서 법령이 요구하는 요인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 감정평가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부동산 저가매각 이후 계열사를 인수·합병하는 후속조치에서도 별도의 배임·횡령 혐의가 있는지 심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부실계열사에 대한 지원의 경우 '경영상 판단' 원칙에 따라 면책돼야 한다는 김 회장 측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경우 신고도 되지 않은 위장 부실계열사를 부당지원한 것으로 이를 허용하면 각종 법령상 제한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지원 기준이 없었던 점, 이사회 결의 등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경영상 판단 원칙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김 회장은 위장 계열사에 대한 부당지원 등을 통해 한화 계열사와 소액주주, 채권자들에게 수천억원대의 손실을 끼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에 벌금 51억원을 선고받은 뒤 2심에서 징역 3년과 벌금 51억원으로 감형됐었다.

김 회장은 항소심에서 징역 3년으로 감형받아 집행유예를 받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을 채운 상태다.

형법상 집행유예는 징역 또는 금고형이 3년 이하일 때 가능하다. 한화그룹도 '파기환송 후 집행유예'라는 시나리오에 실낱같은 희망을 계속 이어가게 됐다.

김 회장이 개인의 이익을 취하지 않은 점, 사재를 털어 계열사 피해액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1186억원을 법원에 공탁해 계열사 손해를 회복시키려 노력한 점,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한 점 등도 정상 참작의 요소가 될 전망이다.


"배임액 다시" 재판 원점…집유 가능성
이라크 건설 등 굵직한 사업들 올스톱

그러나 정작 집행유예 판결이 나올지는 미지수다. 대법원의 횡령·배임 범죄에 대한 집행유예 기준에 따르면 양형기준을 벗어난 판결을 하는 경우 판결문에 이유를 적어야 한다. 법원으로써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배임액이 줄어들었다고 하더라도 대법원이 파기환송한 일부 무죄 판단이 유죄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

한화그룹은 파기환송심에서 김 회장의 집행유예를 이끌어내기 위해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 부재로 한화그룹이 경영 공백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화그룹은 김 회장 구속 이후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김 회장의 경영 공백이 1년을 넘으면서 현상유지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라크 신도시 추가 건설, 태양광 신규 투자 등 굵직굵직한 사업들은 모두 올스톱돼 있다.

가장 애를 태우는 건 이라크 신도시 추가 건설 문제다. 김 회장은 지난해 80억달러 규모의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공사를 수주했고 이를 계기로 한화건설은 100억달러 규모의 2차분 사업을 추가로 수주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아왔다. 이라크 정부는 누리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를 통해 한화와의 추가사업을 타진해 왔다.

이라크 정부는 2017년까지 주택·에너지·IT·의료·보안 등에 총 2750억달러를 이라크 재건사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또 2030년까지 에너지 분야에 5000억달러를 투자하는 등 정유공장, 발전소, 도로, 인프라, 공공시설 및 군 시설 등 다양한 분야에 최소 7000억달러에 달하는 예산을 쏟아붓는다는 청사진을 갖고 있다.

한화건설이 수주한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공사는 이라크 정부가 전후 복구사업의 일환으로 발주한 10만 세대 규모의 국민주택건설 및 단지조성공사로 한화건설이 수주한 해외건설사업 중 최대 규모다.

한화는 신도시 건설 공사 수주 뿐 아니라 건설 및 철도·항만·도로 등 기간사업과 발전소·정유공장·석유화학공장 등 생산설비 공사에도 참여할 계획이었다. 또 신도시에 건설되는 학교에 태양광을 활용한 발전설비 공사도 담당할 예정이었다.

이라크에서 한화건설이 100억달러 규모 재건사업을 추가 수주할 경우 한화 임직원 500여명과 협력업체 1500명 등 하루 평균 2000여명의 현장인력을 투입할 수 있다. 연인원으로 환산하면 73만명의 일자리가 창출되는 셈이다. 중소협력사 동반진출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동반성장의 발판도 다질 수 있다.

하지만 김 회장의 경영공백이 장기화되면서 추가 수주에 대한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김현중 한화건설 부회장 등 사업단이 이라크정부를 설득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더구나 이라크 재건사업의 시장규모가 확대되면서 중국, 터키, 인도는 물론 유럽 건설사들이 앞다퉈 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짙어지는 먹구름

그룹의 신성장동력인 태양광 사업도 문제다. 태양광 같은 발전 사업을 하려면 각국 정부의 협조가 필수다.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오너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김 회장이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 당연히 한화그룹의 대규모 공장 증설 등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태양광 시장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는 만큼 말레이시아 큐셀 공장 증설은 시급한 과제지만 발이 묶여 있다. 투자금액이 최소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에 달하는 만큼 투자를 비상경영위원회에서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김 회장이 그룹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절대적"이라며 "공백 상태에서 그룹경영이 제대로 될 리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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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