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침투한 중국 '흑사회' 실체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9.24 13:3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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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무식한 조폭들이 몰려온다

[일요시사=사회팀] 중국 최대 폭력조직 '흑사회'의 부두목 뤼촨보(44)가 2년 전 국내로 입국해 자취를 감췄다는 소문이 돌았다. 뤼촨보는 국제 인터폴의 수배를 받고 있는 인물로 중국 현지에서는 거물급 조폭으로 통했다. 지난 11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뤼촨보가 검거됐다. 흑사회가 국내로 잠입했다는 소문은 사실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뤼촨보는 왜 한국행을 선택했던 것일까. 그리고 흑사회는 언제부터 한국에 손을 뻗었던 것일까.




지난 3일 중국 최대 폭력조직인 '흑사회' 간부급 조직원이 국내에 입국한 뒤 종적을 감춰 경찰이 수배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날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2011년 국내로 들어와 자취를 감춘 뤼촨보의 행방을 추적 중이라고 알렸다. 뤼촨보는 중국 공안은 물론 인터폴 수사망에도 오른 '거물급 조폭'이었다.

흑사회 조직원들
대한민국 접수?

지난 5월 경찰은 서울에 있는 한 외국인 전용 카지노에 뤼촨보가 나타났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그러나 경찰은 뤼촨보를 현장에서 검거하는데 실패했다. 평소 뤼촨보를 돕고 있던 재한 중국인 조력자들이 뤼촨보를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기 때문이다. 뤼촨보는 서울 강남의 한 고급아파트로 숨어들었다.

하지만 범죄자에게 영원한 도피처는 없었다.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인터폴 적색수배자 뤼촨보를 지난 11일 검거했다. 뤼촨보에게 적용된 혐의는 출입국관리법 위반이었다. 같은 날 경찰은 뤼촨보의 신병을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 인계했다고 밝혔다.

국제법상 적색수배자는 인터폴 190개 회원국에서 소재가 발견될 시 본국으로 강제 송환된다. 이에 따라 뤼촨보는 중국으로 추방된 뒤 중국 공안에 신병이 인계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거물 잔혹 범죄 저지르고 국내 잠입
강남 등지서 호화생활하다 2년 만에 검거

경찰에 따르면 뤼촨보는 사형선고를 받은 두목 대신 2000년부터 2011년 초까지 중국 칭다오 지역 흑사회 부두목으로 활동했다. 뤼촨보는 살인·폭력을 이용한 협박·갈취 등을 일삼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뤼촨보는 살인 현장 CCTV 등에 얼굴이 노출되면서 중국 공안의 추적을 받게 됐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뤼촨보는 2011년 5월 단기 관광비자를 발급받아 한국으로 도피했다. 그리고 최근까지 서울 강남의 한 고급 아파트와 인천 송도의 호화 오피스텔 등을 오가며 은신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뤼촨보는 2년여의 도피 생활 동안 체중이 10㎏ 가량 줄었으며, 검거 당시 초췌한 모습이었던 것으로 경찰 관계자는 전했다. 구속된 뤼촨보는 회색 반팔 티셔츠에 흰색 바지 차림이었다. 얼굴이 노출되는 것을 꺼린 그는 줄곧 고개를 숙였지만 때때로 경찰을 노려보는 등 신경전을 펼치기도 했다.

경찰은 뤼촨보의 내연녀 중국인 진모(25)씨가 살고 있는 서울 서초구에서 10일간의 탐문 수사를 벌인 끝에 10일 오후 6시께 반포동 아파트에서 은신 중이던 뤼촨보를 체포했다.

뤼촨보 조력자
국내에 더 있다

앞서 경찰은 뤼촨보의 자금줄이자 흑사회 조직원인 덩모(36)씨를 체포했다. 지난달 4일 오후 1시30분께 덩씨는 인천공항에서 잠복 중이던 경찰에게 검거됐다. 경찰은 중국 공안으로부터 덩씨가 국내에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와 공조해 덩씨를 붙잡았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덩씨는 본래 중국 상하이로 출국하려 했으나 공항 수속을 밟던 중 신분이 탄로 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조사를 받은 덩씨는 7일 오후 중국으로 강제 추방돼 중국 공안에 신병이 넘겨졌다.

덩씨는 지난해 8월 제주 한 리조트에 5억9000만원을 투자, 관계 법령에 따라 'F-2비자'를 발급받았다. 제주도는 지난 2010년부터 개발지역 내 미화 50만달러 혹은 5억원 이상의 콘도·별장 등 휴양시설을 매입한 외국인에게 국내 거주자격을 주는 F-2비자를 발급하고 있다.

올 7월말 기준 F-2비자를 발급받은 외국인은 모두 270여명. 이중 90%는 중국인인 것으로 한 지역매체는 보도했다. 제주도는 거주기간 동안 범죄행위 등 특별한 결격사유가 발견되지 않는 한 투자자와 직계가족에게 영주자격(F-5)을 주고 있다. 현재 이 투자이민 제도는 흑사회의 합법적 국내 진출 통로로 의심받고 있다.

실제로 덩씨는 이 투자이민제도를 악용했다. 한국과 중국을 합법적으로 오가면서 부두목 뤼촨보에게 자금을 댄 것이다. 뤼촨보가 타국에서 호화로운 도피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도 "자금줄이 끊기지 않아서"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뤼촨보가 살던 아파트 보증금은 8000만원, 월세는 250만원에 달했다. 이 아파트 안에는 골프장과 수영장 등 고급 레저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뤼촨보의 생활수준을 가늠케 했다.

뤼촨보 입장에서 덩씨의 돈은 '마르지 않는 샘'이었다. 덩씨는 국내에서 외국인 전용 카지노 에이전트로 활동하며 하루 3000만원에서 10억원 이상의 돈을 벌었던 것으로 한 매체는 보도했다.

덩씨는 중국인들을 카지노에 끌어들인 뒤 카지노가 벌어들인 수입의 10%를 수수료로 챙겼다. 이 돈의 일부는 뤼촨보의 도피자금으로 지원됐다. 뤼촨보는 검거 당시 약 2000만원의 현금을 쥐고 있었다.

일각에선 뤼촨보가 숨긴 자금이 더 많으며, 덩씨의 월수입은 수백억원에 육박했을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그러나 정확한 계좌 추적은 중국 정부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할 것으로 관측된다. 오히려 경찰은 뤼촨보의 도피를 도운 7명의 조력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상황이다.
경찰은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뤼촨보의 도피생활을 도운 조력자들의 명단을 확보했다. 이들은 대부분 흑사회로 의심받고 있다.
경찰은 7명의 조력자들이 뤼촨보를 대신해 부동산 계약을 하고, 통장을 만들면서 그의 도피생활을 도운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비호 아래 뤼촨보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하고, 등산을 하며 비교적 여유로운 생활을 누렸다.

 더불어 뤼촨보는 조력자들이 타인 명의로 개설한 2∼3개의 휴대전화를 번갈아 사용하면서 중국 흑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토종 조폭과
커넥션 있나

그런데 흑사회가 국내 수사기관의 포위망에 걸려든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1년 2월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중국을 통해 국내로 마약을 밀반입한 혐의로 중국 흑사회 선양파 두목 정모(35)씨 등 4명을 구속기소했다.


정씨 등은 부산 유태파, 서울 청량리파, 의정부 신세븐파, 충남 논산파 등 토종 조폭과 연계해 필로폰을 국내에 유통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 등은 북한에서 제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필로폰을 중국 옌타이항에서 부산항으로 가는 소규모 냉동어선에 실어 보냈다. 부산항에 도착한 필로폰은 국내 총책을 거쳐 각 지역 운반책에게 전달됐다.

정씨 등에 의해 1년여 동안 밀반입된 필로폰은 모두 5.95kg. 시가 기준으로 따지면 198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였다. 토종 조폭이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그 공급책인 중국 흑사회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자금 등 도피 도운 추종자 존재
토종 조폭과 연계 가능성 확인

그렇다면 흑사회는 과연 어떤 조직일까. 사실 흑사회는 실체가 없는 조직이다. 흑사회는 이탈리아의 마피아, 일본의 야쿠자처럼 중국의 폭력조직을 총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즉 한국의 양은이파·범서방파처럼 특정 범죄조직을 지칭하는 말이 아닌 것.

그 쓰임에 따라 다르지만 흑사회는 ‘어둠의 세계’ 정도로 의역할 수 있다. 혹자는 홍콩·마카오를 기반으로 한 폭력조직 '삼합회'와 비교하지만 '삼합회' 역시 보통명사일 뿐 그 실체는 없는 조직이다. 따라서 "삼합회가 흑사회에서 파생됐다"는 소문은 거짓이다.


통칭 흑사회로 아우를 수 있는 범죄조직은 워낙 많아 그 구분이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청홍방 등 4000여개의 조직과 80만∼100만명 규모의 조직원이 있다는 게 정설이다.

각 지역에 따라 흑사회가 돈을 굴리는 방법은 다르다. 바다를 끼고 있는 '광둥성 흑사회'는 마약 등 각종 밀수가 유명하며 '홍콩 삼합회'는 도박장과 유흥시설 운영에서 강점을 보인다.

타국과의 경계를 맞대고 있는 헤이룽장성·랴오닝성·지린성 흑사회는 매춘 등 인신매매 및 장기밀수의 원천으로 불리며 상하이 등 대도시로 진출한 흑사회는 한국처럼 기업화·합법화 과정을 밟아 부동산·금융·건설업 등에 손을 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뤼촨보가 활동했던 산둥성 역시 흑사회의 역사와 뿌리가 깊은 곳으로 이름 높다. 무엇보다 산둥성 흑사회는 한국 내 마약·밀수조직과 연분을 쌓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산둥성에 칭다오, 옌타이, 웨이하이 등 한국행 해로와 직접 연결된 항구도시가 있기 때문이다.

2년 전 검찰에 붙잡힌 정씨 등이 활동했던 무대는 산둥성이었다. 때문에 산둥성 흑사회는 국내로 반입되는 마약의 주공급원으로 지목받고 있다. 이번에 붙잡힌 뤼촨보 역시 산둥성을 근거로 한 흑사회 거물이라 국내 조직과의 커넥션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얼마 전까지 뤼촨보가 이끌어 온 조직은 보스의 이름을 따라 '니에레이파'라고 불렸다. 니에레이는 칭다오에서 부동산재벌로 이름을 알렸으며, 중국 공안의 중견간부 등과도 유착해 독자 세력을 형성했다.

니에레이파는 칭다오 인근의 유흥업소 등을 접수하는 한편 청부폭력과 도박장 운영 등 사업 영역을 넓히며 성장했다. 하지만 지난 2011년 초 중국 공안이 '범죄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두목 니에레이는 체포 후 사형선고를 받았다.

지난해 3월 니에레이가 사형을 언도받자 뤼촨보는 두목을 대신해 흑사회 보스 행세를 했다. 그는 나이트클럽에서 살인을 사주하고, 상권을 장악하기 위해 다른 조직원의 신체를 절단하는 등 잔혹한 범죄를 잇달아 저질렀다. 결국 뤼촨보는 두목과 같은 운명을 앞두게 됐다.

연변 흑사회
국내서 성장

비록 뤼촨보는 잡혔지만 아직 국내엔 흑사회를 자처하는 무리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연변·룽징 등 조선족자치구에서 활동하던 흑사회는 지난 2000년대 중반부터 국내로 진출, 서울 구로와 경기 안산 등 조선족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마약과 불법 의약품 등을 유통하는 방법으로 돈을 벌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국내 조직과 연계해 보이스피싱 등 신종 금융사기를 벌이고 있어 관련 피해 사례가 늘고 있다. 더불어 이들은 중국에서 일부 탈북자를 빼돌려 현지 성매매업소 등에 여성을 파는 수법으로 돈을 챙기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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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