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침투한 중국 '흑사회' 실체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9.24 13:3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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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무식한 조폭들이 몰려온다

[일요시사=사회팀] 중국 최대 폭력조직 '흑사회'의 부두목 뤼촨보(44)가 2년 전 국내로 입국해 자취를 감췄다는 소문이 돌았다. 뤼촨보는 국제 인터폴의 수배를 받고 있는 인물로 중국 현지에서는 거물급 조폭으로 통했다. 지난 11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뤼촨보가 검거됐다. 흑사회가 국내로 잠입했다는 소문은 사실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뤼촨보는 왜 한국행을 선택했던 것일까. 그리고 흑사회는 언제부터 한국에 손을 뻗었던 것일까.




지난 3일 중국 최대 폭력조직인 '흑사회' 간부급 조직원이 국내에 입국한 뒤 종적을 감춰 경찰이 수배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날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2011년 국내로 들어와 자취를 감춘 뤼촨보의 행방을 추적 중이라고 알렸다. 뤼촨보는 중국 공안은 물론 인터폴 수사망에도 오른 '거물급 조폭'이었다.

흑사회 조직원들
대한민국 접수?

지난 5월 경찰은 서울에 있는 한 외국인 전용 카지노에 뤼촨보가 나타났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그러나 경찰은 뤼촨보를 현장에서 검거하는데 실패했다. 평소 뤼촨보를 돕고 있던 재한 중국인 조력자들이 뤼촨보를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기 때문이다. 뤼촨보는 서울 강남의 한 고급아파트로 숨어들었다.

하지만 범죄자에게 영원한 도피처는 없었다.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인터폴 적색수배자 뤼촨보를 지난 11일 검거했다. 뤼촨보에게 적용된 혐의는 출입국관리법 위반이었다. 같은 날 경찰은 뤼촨보의 신병을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 인계했다고 밝혔다.

국제법상 적색수배자는 인터폴 190개 회원국에서 소재가 발견될 시 본국으로 강제 송환된다. 이에 따라 뤼촨보는 중국으로 추방된 뒤 중국 공안에 신병이 인계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거물 잔혹 범죄 저지르고 국내 잠입
강남 등지서 호화생활하다 2년 만에 검거

경찰에 따르면 뤼촨보는 사형선고를 받은 두목 대신 2000년부터 2011년 초까지 중국 칭다오 지역 흑사회 부두목으로 활동했다. 뤼촨보는 살인·폭력을 이용한 협박·갈취 등을 일삼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뤼촨보는 살인 현장 CCTV 등에 얼굴이 노출되면서 중국 공안의 추적을 받게 됐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뤼촨보는 2011년 5월 단기 관광비자를 발급받아 한국으로 도피했다. 그리고 최근까지 서울 강남의 한 고급 아파트와 인천 송도의 호화 오피스텔 등을 오가며 은신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뤼촨보는 2년여의 도피 생활 동안 체중이 10㎏ 가량 줄었으며, 검거 당시 초췌한 모습이었던 것으로 경찰 관계자는 전했다. 구속된 뤼촨보는 회색 반팔 티셔츠에 흰색 바지 차림이었다. 얼굴이 노출되는 것을 꺼린 그는 줄곧 고개를 숙였지만 때때로 경찰을 노려보는 등 신경전을 펼치기도 했다.

경찰은 뤼촨보의 내연녀 중국인 진모(25)씨가 살고 있는 서울 서초구에서 10일간의 탐문 수사를 벌인 끝에 10일 오후 6시께 반포동 아파트에서 은신 중이던 뤼촨보를 체포했다.

뤼촨보 조력자
국내에 더 있다

앞서 경찰은 뤼촨보의 자금줄이자 흑사회 조직원인 덩모(36)씨를 체포했다. 지난달 4일 오후 1시30분께 덩씨는 인천공항에서 잠복 중이던 경찰에게 검거됐다. 경찰은 중국 공안으로부터 덩씨가 국내에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와 공조해 덩씨를 붙잡았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덩씨는 본래 중국 상하이로 출국하려 했으나 공항 수속을 밟던 중 신분이 탄로 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조사를 받은 덩씨는 7일 오후 중국으로 강제 추방돼 중국 공안에 신병이 넘겨졌다.

덩씨는 지난해 8월 제주 한 리조트에 5억9000만원을 투자, 관계 법령에 따라 'F-2비자'를 발급받았다. 제주도는 지난 2010년부터 개발지역 내 미화 50만달러 혹은 5억원 이상의 콘도·별장 등 휴양시설을 매입한 외국인에게 국내 거주자격을 주는 F-2비자를 발급하고 있다.

올 7월말 기준 F-2비자를 발급받은 외국인은 모두 270여명. 이중 90%는 중국인인 것으로 한 지역매체는 보도했다. 제주도는 거주기간 동안 범죄행위 등 특별한 결격사유가 발견되지 않는 한 투자자와 직계가족에게 영주자격(F-5)을 주고 있다. 현재 이 투자이민 제도는 흑사회의 합법적 국내 진출 통로로 의심받고 있다.

실제로 덩씨는 이 투자이민제도를 악용했다. 한국과 중국을 합법적으로 오가면서 부두목 뤼촨보에게 자금을 댄 것이다. 뤼촨보가 타국에서 호화로운 도피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도 "자금줄이 끊기지 않아서"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뤼촨보가 살던 아파트 보증금은 8000만원, 월세는 250만원에 달했다. 이 아파트 안에는 골프장과 수영장 등 고급 레저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뤼촨보의 생활수준을 가늠케 했다.

뤼촨보 입장에서 덩씨의 돈은 '마르지 않는 샘'이었다. 덩씨는 국내에서 외국인 전용 카지노 에이전트로 활동하며 하루 3000만원에서 10억원 이상의 돈을 벌었던 것으로 한 매체는 보도했다.

덩씨는 중국인들을 카지노에 끌어들인 뒤 카지노가 벌어들인 수입의 10%를 수수료로 챙겼다. 이 돈의 일부는 뤼촨보의 도피자금으로 지원됐다. 뤼촨보는 검거 당시 약 2000만원의 현금을 쥐고 있었다.

일각에선 뤼촨보가 숨긴 자금이 더 많으며, 덩씨의 월수입은 수백억원에 육박했을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그러나 정확한 계좌 추적은 중국 정부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할 것으로 관측된다. 오히려 경찰은 뤼촨보의 도피를 도운 7명의 조력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상황이다.
경찰은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뤼촨보의 도피생활을 도운 조력자들의 명단을 확보했다. 이들은 대부분 흑사회로 의심받고 있다.
경찰은 7명의 조력자들이 뤼촨보를 대신해 부동산 계약을 하고, 통장을 만들면서 그의 도피생활을 도운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비호 아래 뤼촨보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하고, 등산을 하며 비교적 여유로운 생활을 누렸다.

 더불어 뤼촨보는 조력자들이 타인 명의로 개설한 2∼3개의 휴대전화를 번갈아 사용하면서 중국 흑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토종 조폭과
커넥션 있나

그런데 흑사회가 국내 수사기관의 포위망에 걸려든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1년 2월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중국을 통해 국내로 마약을 밀반입한 혐의로 중국 흑사회 선양파 두목 정모(35)씨 등 4명을 구속기소했다.

정씨 등은 부산 유태파, 서울 청량리파, 의정부 신세븐파, 충남 논산파 등 토종 조폭과 연계해 필로폰을 국내에 유통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 등은 북한에서 제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필로폰을 중국 옌타이항에서 부산항으로 가는 소규모 냉동어선에 실어 보냈다. 부산항에 도착한 필로폰은 국내 총책을 거쳐 각 지역 운반책에게 전달됐다.

정씨 등에 의해 1년여 동안 밀반입된 필로폰은 모두 5.95kg. 시가 기준으로 따지면 198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였다. 토종 조폭이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그 공급책인 중국 흑사회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자금 등 도피 도운 추종자 존재
토종 조폭과 연계 가능성 확인

그렇다면 흑사회는 과연 어떤 조직일까. 사실 흑사회는 실체가 없는 조직이다. 흑사회는 이탈리아의 마피아, 일본의 야쿠자처럼 중국의 폭력조직을 총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즉 한국의 양은이파·범서방파처럼 특정 범죄조직을 지칭하는 말이 아닌 것.

그 쓰임에 따라 다르지만 흑사회는 ‘어둠의 세계’ 정도로 의역할 수 있다. 혹자는 홍콩·마카오를 기반으로 한 폭력조직 '삼합회'와 비교하지만 '삼합회' 역시 보통명사일 뿐 그 실체는 없는 조직이다. 따라서 "삼합회가 흑사회에서 파생됐다"는 소문은 거짓이다.

통칭 흑사회로 아우를 수 있는 범죄조직은 워낙 많아 그 구분이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청홍방 등 4000여개의 조직과 80만∼100만명 규모의 조직원이 있다는 게 정설이다.

각 지역에 따라 흑사회가 돈을 굴리는 방법은 다르다. 바다를 끼고 있는 '광둥성 흑사회'는 마약 등 각종 밀수가 유명하며 '홍콩 삼합회'는 도박장과 유흥시설 운영에서 강점을 보인다.

타국과의 경계를 맞대고 있는 헤이룽장성·랴오닝성·지린성 흑사회는 매춘 등 인신매매 및 장기밀수의 원천으로 불리며 상하이 등 대도시로 진출한 흑사회는 한국처럼 기업화·합법화 과정을 밟아 부동산·금융·건설업 등에 손을 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뤼촨보가 활동했던 산둥성 역시 흑사회의 역사와 뿌리가 깊은 곳으로 이름 높다. 무엇보다 산둥성 흑사회는 한국 내 마약·밀수조직과 연분을 쌓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산둥성에 칭다오, 옌타이, 웨이하이 등 한국행 해로와 직접 연결된 항구도시가 있기 때문이다.

2년 전 검찰에 붙잡힌 정씨 등이 활동했던 무대는 산둥성이었다. 때문에 산둥성 흑사회는 국내로 반입되는 마약의 주공급원으로 지목받고 있다. 이번에 붙잡힌 뤼촨보 역시 산둥성을 근거로 한 흑사회 거물이라 국내 조직과의 커넥션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얼마 전까지 뤼촨보가 이끌어 온 조직은 보스의 이름을 따라 '니에레이파'라고 불렸다. 니에레이는 칭다오에서 부동산재벌로 이름을 알렸으며, 중국 공안의 중견간부 등과도 유착해 독자 세력을 형성했다.

니에레이파는 칭다오 인근의 유흥업소 등을 접수하는 한편 청부폭력과 도박장 운영 등 사업 영역을 넓히며 성장했다. 하지만 지난 2011년 초 중국 공안이 '범죄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두목 니에레이는 체포 후 사형선고를 받았다.

지난해 3월 니에레이가 사형을 언도받자 뤼촨보는 두목을 대신해 흑사회 보스 행세를 했다. 그는 나이트클럽에서 살인을 사주하고, 상권을 장악하기 위해 다른 조직원의 신체를 절단하는 등 잔혹한 범죄를 잇달아 저질렀다. 결국 뤼촨보는 두목과 같은 운명을 앞두게 됐다.

연변 흑사회
국내서 성장

비록 뤼촨보는 잡혔지만 아직 국내엔 흑사회를 자처하는 무리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연변·룽징 등 조선족자치구에서 활동하던 흑사회는 지난 2000년대 중반부터 국내로 진출, 서울 구로와 경기 안산 등 조선족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마약과 불법 의약품 등을 유통하는 방법으로 돈을 벌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국내 조직과 연계해 보이스피싱 등 신종 금융사기를 벌이고 있어 관련 피해 사례가 늘고 있다. 더불어 이들은 중국에서 일부 탈북자를 빼돌려 현지 성매매업소 등에 여성을 파는 수법으로 돈을 챙기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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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