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인 사고사' 유족들 애끓는 사연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9.23 11: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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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출생신고 하면서 남편 사망신고

[일요시사=사회팀] 부산 한 중견기업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했다. 전기설비직원 김모(34)씨는 야간작업 중 크레인에서 떨어지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하지만 사고 책임을 놓고 사측은 말 바꾸기를 반복하고 있다. 출산을 앞뒀던 김씨의 아내는 결국 남편의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했다.




향년 34세. 고 김모(34)씨는 코스닥 상장업체 T사의 전기설비 담당 직원이었다. 그는 지난 8월26일 저녁 9시30분께(추정시간)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이날 야간작업을 하던 김씨는 16m 크레인에서 떨어져 숨을 거뒀다.

유족이 김씨의 사망소식을 접한 건 같은 날 저녁 10시40분께였다. 김씨의 사망으로부터 1시간이 넘은 시각, 김씨의 아내는 T사의 한 직원으로부터 청천벽력과 같은 남편의 사망소식을 들었다. 오열할 틈도 없이 아내는 옷을 챙겨 입었다.

책임전가 급급

고인이 사망한 날, 김씨의 아내는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뱃속의 아이는 결국 아버지의 생전 모습을 보지 못했다. 유족들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김씨의 시신은 피가 깨끗이 닦인 채 병원 안치실에 누워 있었다.

유족들이 경찰을 통해 전해들은 사고 경위는 이렇다.


"김씨는 사고 당일 저녁 9시10분께 크레인의 소음이 심하다는 이유로 사측으로부터 작업지시를 받았다. 이어 김씨는 크레인 위로 올라가 수리를 하던 중 추락사했다."

유족 입장에선 도무지 믿기지 않는 설명이었다. 경찰의 수사 결과를 마냥 기다릴 수 없었던 한 유족은 회사 관계자를 찾아 "김씨가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T사 측은 "고공 작업의 경우 2인1조로 작업을 하는데 사고 당시 김씨가 동료에게 '파이프렌치를 가져다 달라'고 크레인 위에서 소리쳤고, 이에 동료가 공무부 사무실로 공구를 가지러 간 사이 김씨가 실수로 사망한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며칠 뒤 이 말은 거짓으로 판명났다.

27일 새벽 3시 김씨의 영정사진과 함께 빈소가 마련됐다. 이날 오후 빈소를 찾은 T사 측 대표자는 유족에게 "회사가 장례를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유족은 T사를 믿고 있었다. 그러나 사고 합의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T사 측이 태도를 바꿔 김씨의 과실 책임을 묻기 시작한 것이다.

협상 테이블에서 T사 측은 "김씨의 과실이 이번 사고의 원인이지만 산재는 기본적으로 7대3이고, 회사가 봐줘서 5대5까지는 맞춰주겠다"고 말했다. 보상 문제를 놓고 T사 측이 작업 중 사망한 근로자에게 일방적인 책임 전가를 시작한 것이다. 사건 내막을 알고 있던 유족 측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다면 김씨는 어떻게 사망한 것일까.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부산 강서경찰서는 지난 11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김씨가 작업 중 사망한 것이 맞다"고 확인했다. 경찰이 밝힌 김씨의 사망 장소는 부산 강서구 송정동에 위치한 T사 내부 사업장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수사가 진행 중인 민감한 사안이고 개인정보 노출이 우려되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답했다. 아울러 경찰은 "T사가 부산에서 상당히 큰 회사임은 맞다"고 말했다.


경찰 통화 후 공식적인 루트를 통한 확인 작업은 더이상 진행할 수 없었다. 나머지 부분에 대해선 유족 및 사고 관계자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김씨의 시신을 부검한 한 부검의는 "심장과 늑골이 파열된 상태 등을 볼 때 추락사는 확실하다"고 말했다. 타살 의혹은 없었다. 단 추락사에 비해 시신의 훼손 정도가 심각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안전모를 착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실제로 경찰 조사 결과 사건 현장 인근에서 김씨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안전모가 발견됐다. 그러나 T사 측은 첫 경찰 조사에서 "김씨가 안전모를 쓰지 않았다”고 진술해 유족 측의 반발을 샀다. 그러자 T사 측은 "관계자의 말을 듣고 그대로 진술한 것"이란 해명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유족이 확인한 현장 인근 CCTV를 보면 김씨가 크레인으로 올라간 시간은 9시10분께였다. 그러나 CCTV에 마땅히 찍혔어야 할 김씨의 동료는 그 자리에 없었다. 야간 고공작업 시 2인1조 근무수칙은 모든 사업장에 적용된다.

출산 앞두고 남편 사망…현장서 무슨일?
야간작업 중 추락…사측 책임 떠넘기기
"부산 재벌회사 화환도 안보내"

유족 측 관계자는 "야간에 위험한 작업을 시키면서도 기본적인 근무수칙 준수는 물론 현장 책임자의 안전 점검도 없었는데 이 사고를 어떻게 고인의 100% 과실로 몰아붙일 수 있느냐"고 말했다.

사고 당시 김씨와 함께 근무조로 투입됐던 동료는 "공구를 가지러 간 것은 맞지만 날씨가 너무 더워 잠깐 쉬고 있는 사이에 사고가 일어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김씨의 시신은 동료가 아닌 다른 곳에서 지게차로 작업 중이던 한 직원이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 측은 사망 추정시간으로부터 약 20분 정도가 지난 시간에 시신을 발견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즉 처음부터 2인1조로 작업에 투입된 것이 아니란 설명이다. 유족 측은 만약 김씨의 동료가 근처에 있었다면 김씨가 추락했을 때 난 소리를 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측과의 협상이 난항을 겪자 유족 측은 억울함에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각각 피켓을 들고 T사를 상대로 한 시위를 벌였다. 아이를 밴 김씨의 부인도 함께했다. 이 시위 과정은 포털사이트 DAUM '아고라'에 소개됐다. 네티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수많은 응원 댓글이 달렸고 정확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청원이 계속됐다. 하지만 이 글은 하루도 안돼 삭제됐다. T사 측의 신고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유족 측 관계자는 장례절차와 관련해서도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도의적인 차원에서 동생의 장례를 책임지겠다던 T사 측이 갑자기 입장을 바꿔 '식대는 우리가 낼 테니 나머지 비용은 유족 측에서 부담하라'는 말을 하는 등 아이 엄마와 유족을 욕보인 게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억울함이 없도록 하겠다'던 회장은 그 뒤로 한 번도 만날 수 없었다"며 "T사 측은 본인들에게 불리한 증언이 나오면 계속된 말 바꾸기로 일관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T사는 부산 지역을 기반으로 한 중견기업이다. 원자력·풍력·플랜트·조선업 등 수요산업에 필요한 핵심 단조부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체다. T사의 회장은 한때 주식시장에서 '1조원대 거부'로 통했다.


현재 T사의 직원은 400명 수준. 그러나 노조는 설립돼있지 않다. 사고 후 유족 측은 민주노총의 문을 두드렸다. 한 유족은 "왜 이제야 노조가 있는지 이해가 된다"고 탄식했다. 고인의 빈소에선 T사 측이 보낸 화환을 발견할 수 없었다.

"유족 우롱했다"

<일요시사>는 T사 측의 입장을 듣고자 했다. 그러나 "연락을 주겠다"고 답변한 담당자는 그 뒤로 아무 해명이 없었다.

협상이 진통을 겪으면서 김씨의 발인도 늦어지고 있다. 입관만 마쳤을 뿐 2주째 빈소도 그대로다. 텅빈 빈소에는 영정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특히 김씨의 아내는 남편의 장례와 아이의 출산을 동시에 맞는 기구한 운명에 처했다. 최근 유족은 산후조리 중인 아내를 대신해 아이의 출생신고와 김씨의 사망신고를 함께했다. 사진을 통해 본 김씨의 딸의 눈매는 아빠를 꼭 닮아 있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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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5000만원 관봉권’ 출처를 두고 소문이 무성하다. 검찰은 대통령실 특활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전씨는 그저 ‘기도비’라고 진술 중이다. 검찰이 김건희씨까지 수사 대상에 올린 점을 보면 전씨의 진술은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 전씨가 전방위 로비를 벌인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김씨의 소환조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 일가를 향한 수사는 그간 서울중앙지검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로비 사건은 중앙지검이 아닌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부장검사 박건욱)가 포문을 열었다. 전씨는 통일교와 캄보디아 사업 및 정·재계를 가리지 않고 돈을 받았다. 윤석열 일가와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수상한 증거들 남부지검은 전씨를 수사하기 이전에 한 가상자산 사기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최근 정식 부서로 신설된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는 지난해 7월 ‘퀸비코인(QBZ)’ 관계자 이모씨 외 3명을 사기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사업 진행 능력이 없음에도 허위 자료를 제출해 스캠 코인을 상장했다. 1만명이 넘는 투자자로부터 가로챈 금액은 300억원에 육박한다. 남부지검은 수사 과정서 퀸비코인 관계자 이씨가 2018년 1월 자유한국당 경북 영천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정모씨를 전씨와 연결한 정황 및, 이들 간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했다.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정씨는 전씨 법당을 찾아 1억원을 건넸다. 이 사실을 파악한 남부지검은 지난해 12월 전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하고 그의 법당과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두 달여 전에는 경기 성남의 카카오 판교 서버를 압수수색해 전씨의 카카오톡 기록까지 확보했다. 전씨는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 대선캠프 네트워크본부서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그의 처남으로 알려진 ‘찰리’ 김모씨도 전씨와 같이 활동했다. 전씨는 김건희씨가 운영하던 전시기획회사 코바나컨텐츠의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전씨의 딸도 잠깐이지만 코바나컨텐츠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남부지검은 전씨가 윤 전 대통령과 김씨와의 친분을 이용해 로비 행위를 벌였다고 보고 수사를 시작했다. 실제 전씨가 로비 창구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남부지검은 지난달 30일 윤 전 대통령 사저인 아크로비스타를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피의자들이 2022년 4월부터 8월 사이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공직자의 배우자에게 선물을 제공했다”고 적시됐다. 청탁 사유로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ODA(공적개발원조) 사업 ▲YTN 인수 ▲유엔 제5사무국 한국 유치 ▲교육부 장관 통일교 행사 참석 ▲대통령 취임식 초청 등이 담겼다. 이 압수수색은 전씨를 통해 통일교 세계본부장 출신이자 2인자였던 윤모씨가 수천만원 상당의 그라프(Graff) 다이아몬드 목걸이, 샤넬 가방, 천수삼 농축차 등을 김씨에게 전달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다. 남부지검은 윤씨가 지난 2022년 7월 전씨에게 ‘김 여사가 물건(천수삼) 잘 받았다더라, 건강이 좋아지셨다고 한다’고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을 확보하기도 했다. ‘한국은행’ 찍혔는데…통상 정부 예산 활용 금융권 “개인이 갖고 있을 수 없다” 일축 검찰이 지난 3일 전씨를 청탁금지법 위반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한 만큼 김씨에 대한 소환조사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남부지검 수사팀 내부에서는 김씨를 대선 직전에 소환조사해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전씨는 “목걸이와 명품백을 잃어버렸다. (김 여사가 잘 받았다는 문자는) 거짓 문자”라고 부인하는 상황이다. 김씨 측도 “전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 자체가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 검찰은 윤씨가 전씨에게 윤석열정부의 캄보디아 ODA 사업 추진을 청탁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는 중이다. 검찰은 윤씨가 “윤 전 대통령과 독대했고 국가 단위 ODA 연대 프로젝트에 동의했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을 확인했다. 검찰은 지난 2022년 3월 윤씨가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전 대통령과 김씨를 인수위서 만난 뒤 캄보디아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통일교는 같은 해 메콩강 핵심 부지에 ‘아시아태평양유니언 본부’를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윤씨는 훈센(Hun Sen) 당시 캄보디아 총리와도 이 사업을 논의했지만 자금난으로 추진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윤씨는 2022년 5월 한 통일교 행사에서 “3월 22일 대통령을 만나 1시간 독대를 하면서 이 나라가 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하고 암묵적 동의를 구한 게 있다”고 말했다. 이어 “ODA는 비영리기구(NGO)가 펀딩 가능하고 국가가 지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검찰은 이 직후인 2022년 6월 기획재정부가 제4차 한-캄보디아 ODA 통합 정책협의서 대(對)캄보디아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 지원 한도액을 기존 7억달러에서 15억달러로 늘리는 기본 약정을 체결한 점을 주목했다. 한도액이 늘면 중기후보사업 승인 절차가 간소화돼 ODA 사업 수주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김씨가 나토 순방 당시 착용했던 6000만원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와 관련해 재산 신고 누락 논란이 불거지자, 윤씨는 전씨에게 “김 여사에게 빌리지 말고 하고 다니라”며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건넸다. 검찰은 지금까지 김씨 명의 휴대전화 3대를 확보했다. 이 중 1대는 김씨가 지난달 11일 서울 한남동 관저서 나오면서 보안 비화폰(안보폰)을 반납한 뒤 개통한 휴대전화다. 나머지 2대는 옛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서 사용하던 휴대전화로, 사실상 공기계로 알려졌다. 자택 압색 그 이후… 검찰은 100여개에 달하는 압수 대상에 윤씨 선물 명목으로 전씨에게 제공했다는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샤넬 가방, 인삼주 등도 적시했지만 확보하지 못했다. 법조계에서는 윤씨의 청탁이 성사됐거나 윤씨와의 직무 관련성 등이 입증된다면 김씨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와의 전화 통화에서 “카톡 기록과 전달됐거나 전달되려 했던 물품들은 이미 수사팀이 확보했으니 김씨가 대면 조사를 피하긴 힘들다”며 “남부지검서도 성역 없이 수사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현행법상 공직자의 배우자를 청탁금지법으로 처벌할 수 없으니 직무 관련성 입증이 관건”이라며 “입증만 된다면 알선수재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가장 중요한 건 전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할 당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전씨의 집을 압수수색하면서 5만원권 3300매(1억6500만원)를 확보했는데, 이 중 5000만원은 비닐 포장이 벗겨지지 않은 상태였다. 검찰은 전씨에게 이 관봉권의 출처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관봉권은 ‘제조권’과 ‘사용권’ 두 종류로 나뉜다. 제조권은 한국조폐공사에서 한은이 받아온 신권으로 돈다발에 십자 형태의 띠를 두르고 비닐로 싸 압축한 형태다. 사용권은 한은이 시중은행서 회수한 돈을 검수해 낡은 돈은 폐기하고 사용하기 적합한 돈만 골라낸 것이다. 발견된 돈다발 김씨와 전씨 사건서 등장하는 관봉권은 모두 사용권이다. 전씨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 돈다발은 한은이 적힌 비닐로 포장돼있었고, 비닐엔 기기 번호와 담당·책임자 일련번호도 적혀 있었다. 그러나 김씨 측이 옷값을 치를 때 썼던 관봉권은 비닐 없이 띠지만 둘러져 있는 돈다발 형태였다. 관봉권은 국가 예산으로 편성되는 대통령실(청와대)과 검찰, 국가정보원 등 사정기관의 수사나 조사에 필요한 특수활동비로 쓰이기도 한다. 과거 정부에서는 이 특활비가 로비 자금으로 악용됐다. 한은은 전국에 16개 지역 본부를 두고 금융기관에 관봉권을 보낸다. 서울엔 남대문 본점 및 강남본부 등 두 곳이 있다. 이 중 강남본부가 대통령실과 사정기관 등에 예산 조달을 담당해 왔다. 다만 민간인의 집에서 관봉권이 발견될 수 없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대개 일반 정부 예산은 관봉권 형태가 아닌 계좌이체 등을 통해 전달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수천만원 상당의 관봉권이 묶인 채로 남아 있는 건 영수증 내역도 남지 않는 특활비”라며 “통상 정보와 사정기관이 ‘돈의 주인’”이라고 말했다. 실제 검찰도 전씨의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 강남본부서 나왔다고 보고 있다. 이 관봉권에는 ‘2022년 5월13일’이라는 날짜가 기재돼있다. 윤 전 대통령 취임일 사흘 뒤다. 전씨는 검찰 조사에서 주로 돈은 ‘기도비’ 명목으로 받아왔지만 관봉권은 정확하게 누구에게 받은 돈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한은 방문 이후 전씨의 집에서 발견된 관봉권에 적힌 ▲기기번호 ▲담당자 ▲책임자 ▲발권국 항목 등의 의미를 확인했다. 기기번호의 뜻은 정사기(검수기) 기기번호와 기기호수를 뜻하고, 발권국 정보에는 정사 업무를 담당하는 발권국 화폐관리1팀을 의미하는 숫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MB 때 국정원 ‘입막음·로비’ 용도로 사용 검·정보 “이번엔 아니다”…남은 건 용산 포장지에 적힌 ‘2022년 5월13일 오후 2시5분59초’는 한은이 검수를 마친 시각이라고 한다. 다만, 한은은 개별 사용권이 어느 시점에 어느 금융기관으로 지급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금융기관서 화폐를 요청하는 경우 ▲지급한 금융기관명 ▲지급일자 ▲권종 ▲금액 등만 기록할 뿐, 어떤 사용권 묶음을 제공했는지는 별도 기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관봉권이 지난 대선 기간 전씨가 운영했던 윤 전 대통령 선거캠프 운영비일 수 있다고 보고 금융 흐름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올해 초 당시 네트워크 본부장으로 있던 오을섭씨를 소환조사하면서 양재동 캠프의 운영비 출처를 물어본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서는 해당 관봉권 출처가 불분명한 만큼 특활비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범죄 수사 경험이 풍부한 한 변호사는 “출처를 확인하기 어려운 한은 뭉칫돈은 대부분 특활비”라며 “특활비라면 한은 검수 이후 수천만원 상당의 돈이 필요한 곳은 보통 사정기관이다. 일반적으로 정부 예산은 뭉칫돈으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결국 사정기관 담당자들을 불러 확인해봐야 하는데 정보기관에서는 특활비 활용 자체가 보안으로 분류돼 확인도 어려울 것이다. 출처 규명에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와 접촉한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들은 ‘국정원 특활비’는 아니라고 단언했다. 앞서 이명박정부 청와대는 국정원 특활비를 상납받은 바 있다. 지난 2011년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국정원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폭로했는데, 당시 국정원은 관봉 형태의 특활비 5000만원을 장 전 주무관에 ‘입막음비’로 전달했다. 이 같은 내용은 검찰 수사와 공판 등을 통해 청와대서 국정원 특활비를 받아 장 전 주무관에 전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불분명한 출처 어디?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과거 국정원 특활비와 흡사해 보이지만 2022년 이후의 특활비 활용이나 대통령실을 통해 쓰인 ‘국정원 특활비’ 등에 대해서 들여다봤을 때 불법적이거나 위법하게 쓰인 사실이 없다. 한 개인에게 갈 일은 더더욱 없다”고 못 박았다. 검찰 관계자도 “남부지검서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검찰 특활비는 아니다. 남부지검 수사팀도 검찰과는 상관없는 관봉권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