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 그 많은 일본산 수산물 어디로?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09.09 14: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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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 공포’ 아이들 급식 무방비

[일요시사=사회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수산물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이 날로 커지고 있다. 방사능의 영향으로 수산물을 기피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수산시장은 울상이다. 문제는 올해 상반기에 일본에서 수입한 수산물이 이미 1만8000여 톤이라는 것이다. 시장에서 소비자가 외면하는 일본산 생선들은 도대체 어디로 갈까.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오염수 유출로 수입 수산물에 대한 방사능 오염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괴담’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정부의 제스처는 그저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몸부림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수산물에 대한 수요가 과거보다 줄어들었을지라도 이미 수입된 물량은 어디론가 수급되고 있다.

국민 97% “불안해”
정부 “괴담” 일축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불안감 탓일까. 노량진 수산시장은 예전보다 한산한 모습이다. 밝은 대낮에도 환환 조명을 켜놓고 손님을 기다리지만 수산물을 찾는 발걸음이 예전 같지 않다. 기자가 수산시장을 한 바퀴 돌며 수산물들의 원산지를 확인해본 결과 일본산으로 표기된 수산물은 찾아볼 수 없었다. 수입산의 대부분은 중국, 노르웨이 등이었고 국산은 부산, 남해 등으로 표기돼 있었다. 수산업자들은 표기된 원산지가 사실이라며 안전하다고 말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감출 수 없다.

그중에서도 특히 동태, 고등어, 대구는 방사능의 위험성에 가장 많이 노출된 생선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러한 생선들이 우리 아이들의 식판에 무분별하게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초·중·고교와 더불어 군대 등 공공기관에 수산물 밀어내기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마치 조류독감 때 군부대에 닭요리가 많이 나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최근 누리꾼들 사이에 수산물의 심각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오늘부터라도 절대 생선 및 젓갈류는 먹지 마세요. 생선회 역시 먹지 마세요. 일본 방사능 수증기 유출되기 시작했고, 벌써부터 기형 생선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국내에 들어오는 대부분의 생선들은 일본근해에서 잡히는 생선으로서, 국산으로 속이고 팔고 있습니다. 이미 다른 주변국들은 일본산 수입 전면 금지를 시켜놓은 상태이고 우리나라만 바보같이 눈치 보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고등어, 표고버섯이 피해야 할 1위 식품군입니다.”

‘누가 찾나’수산시장서 일본산 희귀 현상
올 상반기 수입량 1만8000톤 “모두 소비?”

이러한 의혹이 불거지면서 국내에 수입된 수산물에 대한 불안감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지난해 농수산식품부에서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요오드는 검출되지 않았으나 세슘은 대부분의 수산물에서 검출되고 있다. 이렇게 오염된 수산물을 시장에서 구입한 수산물에서도 재확인됐다. 놀라운 것은 명태 등의 수산물뿐만이 아니라 표고버섯에서도 방사성 세슘이 검출됐다는 점이다.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 위한 국회의원 연구모임’과 정의당이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가운데 96.6%가 ‘일본산 수입식품이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 오염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전국 만 19세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했으며, 신뢰수준 95%에 오차범위 ±3.1% 수준이다. ‘불안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매우 불안하다’ 69.2%, ‘불안한 편이다’ 27.4%에 달했지만, ‘안전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1.2%에 불과했다.

국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먹거리로 인한 국민들의 건강’(70.6%)으로 나타났으며, ‘방사능 환경오염’이 12.0%, ‘국내 수산물 시장 피해’ 8.1%, ‘사회불안감 확산’ 7.3% 등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일본산 수입 식품에 대한 대책에 대해서는 93.1%가 ‘적절하지 못하다’고 응답한 반면, ‘적절하다’는 4.6%에 그쳤다. ‘급식조례 제정 등을 통한 학교급식의 방사능 오염 검사 의무화’에 대해 89.1%가 필요하다고 한 반면, 7.2%만이 ‘필요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향후 정부가 취해야 할 대책을 묻는 질문에는 38.3%가 ‘일본산 농축수산물 전면 수입금지’, 34.5%가 ‘전수검역 등 검역 강화’, 24.1%가 ‘미량이라도 방사능 검출시 수입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 위한 국회의원 연구모임’의 대표의원인 김제남 정의당 의원은 “국민 대다수가 정부의 일본산 수입식품 대책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국민 여론이 확인된 만큼 정부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일본산 농수산물 수입금지, 검역강화 등 일본산 방사능식품 안전대책을 철저하게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사능이 급식으로
식재료 무방비 상태

지난 7월 22일 일본의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참사 핵발전소의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 들어갔다고 인정했다. 도쿄전력에 따르면 물 120만t에서 kg당 9000∼1만8000Bq의 세슘이 검출됐다. 수산물은 방사능 오염의 위험성에 상대적으로 높다. 원전의 오염수가 직접 바다로 흘러 들어갔기 때문이다. 특히 후쿠시마 또한 오징어나 고등어 같은 난류성 어종은 참사가 난 후쿠시마 해역과 한국 연근해를 회유한다. 원산지와 관계없이 방사성 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과학아카데미에서 발행한 BEIR 7의 보고서에 따르면, 피폭량과 암 발생은 비례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즉, 방사능에 피폭되면 그 피폭된 양에 비례해서 암발생 확률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기준치 이하에서도 피폭량에 비례해서 암발생이 증가한다는 것이 세계 의학계의 결론이다. 따라서 국가마다 다양하게 설정되어있는 기준치는 ‘안전기준치’가 아니라 ‘관리기준치’인 것이다. 세슘은 몸 밖으로 배출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축적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미국 국립암연구소에 따르면 100mSv 이하의 저선량 피폭으로도 백혈병 리스크가 발생한다. 그리고 피폭의 대부분은 음식을 통한 내부 피폭이 80∼95%를 차지한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산 명태 5446t이 국내로 유입됐다.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명태의 93.4% 이상이 일본산인 셈이다. 방사성 물질 세슘 검출 일본산 수산물의 수입량이 18배 증가하고 고등어·명태 등 ‘허용 기준치 미달’을 이유로 무차별 유통되는 상황이다.

민주당 유은혜 국회의원에 따르면 일본산 수산물은 학교 급식에 대량으로 납품됐다. 원산지를 둔갑시킨 일본산 수산물이 학교급식에 사용된 것이다. 때문에 안전한 급식을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

아이들은은 성인과 달리 방사능에 매우 민감하다. 아이들은 미량의 세슘에도 크게 다칠 위험이 있다. DNA가 받은 영향이 동일하다 하더라도 연령이 낮을수록 세포분열 속도가 빠르며 이에 따라 암 발생률도 더 커진다.

방사능에 의해서 발생하는 질병은 암(갑상선암, 유방암, 백혈병 등), 유전질환(선천성 기형, 사산, 유산, 지능저하, 불임), 심혈관질환(심근경색), 그 외 신장염, 폐렴, 중추신경계질환, 백내장 등이 있다.

경기도의회에서는 방사능오염물질의 심각성을 도민에게 인식하게 하고 도내 학교 급식에 방사능오염 식재료 사용을 사전 차단, 안전한 식품을 공급하도록 하는 ‘학교급식 방사능오염 식재료 사용제한에 간한 조례안’을 발의 심의중이다.

‘조류독감 때 닭요리처럼…’
학교·부대에 밀어내기 의혹
명태·고등어 메뉴 부쩍 늘어


지난달 26일 서울특별시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서울시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 식재료 공급에 관한 조례 제정을 위한 시민 대공청회’에서 김익중 동국대학교 의대교수는 “정부가 방사능에 오염된 수산물이 ‘기준치 이하라서 안전하다’고 하고 있지만 의학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 기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방사능에 의한 식품 오염 문제는 앞으로도 수십 년 정도 지속될 장기적인 문제이니, 정부나 교육기관 등은 소극적으로 대처하지 말고 음식으로 인한 피폭량을 실제로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시 김형태 교육의원은 “일본산 방사능 식재료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와 걱정이 날로 커지고 있다”며 “정부차원에서는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를 하루라도 빨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방사능에 오염된 식재료는 무엇보다도 어린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데, 아직까지도 어린 아이들과 학생들이 방사능 식재료에 무방비 상태로 있는 게 큰 문제”라며 “농산물의 경우 농약 잔류검사를 하지만, 방사능 잔류검사는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고 관계당국 및 기관이 방사능 잔류검사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방사능 측정기계를 신속히 도입해 학생들이 방사능에 오염된 식재료를 섭취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시 김형태 교육의원은 동료의원들과 협의해 ‘학교급식 방사능오염 식재료 사용제한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번 조례의 주요골자는 학생 및 학교 기관에서 급식으로 제공하는 수산물들에 대해 주요 핵종인 방사성 요오드와 세슘 및 스트론륨, 플루토늄의 정기 검사를 연 4회 이상 실시, 방사성 물질 검사 결과는 유효자리 한자리까지 공개하고 학부모에게 통보, 학생 및 학교 기관의 급식 관련자들에게 정기적인 정보 제공과 교육의 실시 등이다.

서울시의회 교육의원들은 대부분 이 조례에 공감한다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서는 예산문제를 꼬집기도 한다. 방사능 측정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1대당 약 1억4000만원의 기계를 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권역별로 나눠 쓴다고 해도 많은 예산이 소요된다. 하지만 국민의 건강 앞에 예산을 운운하는 건 적절치 않다.

학부모들의 우려
급식조례안 추진


이러한 서울시의 움직임에 최근 충남과 광주도 동참할 의사를 밝혔다. 또한 강원도도 조례 제정 움직임이 있다. 이 문제는 여야 구분이 없는 아주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공감하는 기류가 형성돼 있다. 그러나 조례가 통과되어 실시된다고 해도 수산물 전수검사가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한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모든 수산물을 일일이 다 검사하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례가 통과되어야 하는 이유는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들의 불안 때문이다. 요즘 학부모들은 아이가 하교하면 제일 먼저 묻는 것이 “오늘 반찬은 뭐 나왔니?”라고 한다. 아이의 입에서 ‘고등어’ ‘명태’ 등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고 한다.

학부모들은 이에 항의해보지만 학교 측은 교육부로부터 별도의 지침이 없기 때문에 특별한 대응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급식소의 영양사도 공무원이기 때문에 위로부터 내려오는 지침을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비단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식단을 먹는 교사들, 특히 기혼 여교사들도 불안에 떨고 있다.

또한 어린이집 영·유아들의 급식도 방사능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다. 녹색당 김현 사무처장은 “식품법에 따르면 50인 이상의 급식소는 원산지를 표시하도록 되어 있다”며 “하지만 서울시 서울형 어린이집 50군데 중 단 3곳만 원산지를 공개했다”며 어린이집 식재료 또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지적했다.

이렇듯 아이들 급식은 무방비 상태다. 방사능 검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간이검사를 하는 곳은 성북구청이다. 성북구청은 자체적으로 방사능 측정 기계를 사용하고 있지만 생선 파쇄 측정이 아닌 공기 측정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한다. 수산물 식자재 수급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일부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도시락을 싸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대책 없이 묵묵부답이다.

서울시 김형태 교육의원은 “뒤집어서 생각해보자. 한국에서 원전이 터졌다면 과연 일본은 어떻게 했을까. 단순히 수입금지 처분으로 끝냈을까. 아마 손해배상을 청구했을 것이다. 그러고도 남을 나라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일본 눈치를 보며 수입금지 처분을 내리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차관 때문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수입된다는 건
수급됐다는 것

정부는 미적지근한 태도로 기준치를 운운하며 수산물의 안전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산 농산물, 공산품에 대해서는 미량의 방사능 물질이 나와도 바로 반품한다. 반면 수산물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정부 스스로 이중적이고 비상식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이슈는 국정원, 이석기 등 정치적 사안에 포커스가 집중돼 있다. 물론 정치와 삶은 떼려야 뗄 수 없지만 먹거리 문제도 결코 도외시할 수 없다. 우리의 생명권과 직결된 일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하루빨리 일본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내려 국민들의 불안을 씻겨 줘야할 것이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일본산 수산물 수입금지 결의안
“방사능 공포 가실 때까지…”

방사능 오염 가능성이 있는 일본산 수산물 ‘수입 전면 금지’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될 전망이다. 민주당 이언주 의원은 지난 1일 안전성이 입증될 때까지 ‘일본산 수산물 수입금지 및 식품 안전조치 촉구 결의안’을 대표 발의했다.

결의안은 안전성이 입증될 때까지 일본산 수산물 수입 전면금지, 명백히 오염됐거나 개연성이 높은 식품들에 대한 수입 기준 강화, 전수조사 시행, 원산지 표시 감시 강화 등을 담고 있다. 이 의원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방사능 유출로 인한 국민의 불안감은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라며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최대한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결의안 발의 취지를 밝혔다.

민주당 이언주 의원 대표 발의

이어 “방사능은 기준치 이하라도 체내에 축적되므로 섭취하는 양과 빈도 및 섭취 주체의 연령과 건강상태에 따라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달라진다”며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인체에 민감하게 영향을 미치므로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아이들에게 그 양이 적다고 해서 방사능이 체내에 축적될 우려가 있는 것을 안이하게 방치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고 지적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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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