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스포츠> 골프클럽과 우승의 상관관계

올 시즌 전반기 남·여 챔프들이 이용한 클럽은?

2013시즌 남자 투어는 턱없이 부족한 대회 탓에 너무 일찌감치 전반기를 마무리해 선수들이나 팬들 모두 아쉬운 느낌이고, 여자 투어는 쉼 없이 달려온 풍성한 잔치 끝에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선수들은 한 달여의 서머 브레이크 기간 동안 전반기에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며 도약의 발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클럽은 조력자로서 스윙기술과 멘탈 못지않게 선수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선수들의 클럽, 특히 우승 선수들의 클럽에 대해 아마추어 골퍼들은 관심을 갖게 되고, 이는 클럽 선택의 가이드라인이 되기도 한다.
최근 투어 사용률을 근거로 한 투어 마케팅은 골프용품 브랜드에서 가장 주력하는 마케팅 수단 중 하나가 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전반기에는 KPGA투어 5개 대회와 KLPGA투어 10개 대회 등 총 15개 대회가 열렸다. 특히 KLPGA투어는 다승자가 김보경(2승)이 유일할 정도로 춘추전국시대의 양상을 보여줬다.
그렇다면 과연 남녀 챔프들이 쓰는 클럽은 과연 우승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쳤을까? 드라이버, 페어웨이우드, 아이언, 퍼터, 골프볼 등 선수들의 핵심 장비를 부문별로 나눠 분석해봤다.

골프볼 시장 타일러·스릭슨 양분

▲아이언은 편중 없이 ‘골고루’=아이언은 한쪽에 편중되지 않고 전체적으로 고른 분포다. 보통 선수들이 용품 계약을 맺을 때 적어도 드라이버부터 아이언까지는 같은 라인의 브랜드로 계약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드라이버 등의 우드류 클럽과 브랜드 분포가 대동소이하지만 강경남의 경우 3, 4번 롱아이언은 타이틀리스트 712U를 사용하고, 나머지 번호의 아이언은 캘러웨이 X-FORGED를 사용한다.
캘러웨이는 투어에서 대부분의 클럽 사용률이 매우 뛰어나고, 특히 아이언의 경우 KLPGA투어에서 사용률 1위를 지키고 있지만 많은 우승을 이끌어내진 못했다.

▲우드류는 역시 테일러메이드 강세=최근 몇 년간 드라이버와 페어웨이우드, 하이브리드 등 우드류 제품군에서 테일러메이드는 프로와 아마추어를 막론하고 많은 골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전세계 주요 프로골프투어에서 테일러메이드의 드라이버 및 우드류 클럽은 사용률 상위권을 점령하고 있으며, 전반기 국내 투어 우승자들의 우드류 클럽 중에서도 테일러메이드 제품을 사용하는 선수가 가장 많았다.
대다수의 선수들이 드라이버와 페어웨이우드, 하이브리드 모두 같은 브랜드의 제품을 사용했지만 매경오픈 우승자인 류현우(테일러메이드 드라이버 사용)는 캘러웨이의 엑스핫 페어웨이우드와 엑스유틸리티를 조합했고, 금호타이어 우승자인 김다나(코브라 앰프셀 드라이버, 페어웨이우드 사용)는 하이브리드를 타이틀리스트 913H로 조합했다.

▲웨지, 보키 디자인이 압도적=웨지는 선수가 용품 계약을 맺을 때 옵션으로 걸어두는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해 표면적으로 계약은 하되, 선수 개인의 선호도가 반영된다는 뜻이다. 퍼터만큼의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우드류와 아이언에 비해 비교적 자유롭다.
전반기 국내 투어에서 우승자들에게 압도적인 선택을 받은 웨지는 타이틀리스트의 보키디자인 SM4 웨지다. KLPGA 투어 우승자 중에는 양수진과 허윤경이 각각 일본 브랜드인 포틴과 웨지맨의 제품을 사용했다.

▲골프볼은 2개 브랜드 양분=골프볼은 타이틀리스트와 스릭슨이 양분했다. 우승자 전체 14명 중 10명이 타이틀리스트, 4명이 스릭슨의 골프볼을 사용했다. 타이틀리스트 골프볼의 대표 격인 Pro V1과 Pro V1x, 스릭슨의 Z-STAR시리즈가 선수들의 우승을 도왔다. 아마추어 시장에서는 국산 골프볼인 볼빅이 시장점유율을 높이며 매우 선전하고 있지만 아직 올 시즌에는 우승 소식이 없다.


▲챔피언 퍼터, 오디세이 최다=퍼터는 선수의 개인 선호도가 거의 100% 반영되는 클럽이다. 선수들 사이에서도 상금과 직결되는 클럽으로 ‘귀한 몸’이신 퍼터는 14개 클럽 중 절대적으로 따로 국밥이다. 그래서 선수들의 사용 클럽 중 가장 다양한 브랜드를 볼 수 있는 것도 퍼터다. 베티나르디, 크램스키, 게린(Guerin) 라이프퍼터 등 퍼터 전문 브랜드가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전반기 국내 투어 우승자들은 대부분 대중적인 브랜드의 제품을 선호했다. 우승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브랜드는 오디세이였다. 우승을 확정짓는 퍼팅을 오디세이가 여섯 번, 스카티 카메론이 네 번 기록했다.
2013년 골프용품 시장은 LPGA투어에서 단연 독보적인 챔프 자리에 오른 ‘박인비 열풍’이 강타했다. 메이저대회 3회 연속 우승 쾌거를 이룩한 박인비가 사용하는 클럽과 볼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인비 열풍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브랜드는 젝시오와 스릭슨이다. 젝시오는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 중 하나다. 다만 중장년층 브랜드라는 인식 때문에 젊은 골퍼에게는 크게 어필하지 못했던 상황.

챔피언 따라 용품시장 희비 엇갈려
클럽 선택의 가이드라인은 챔피언

그런데 박인비가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시니어 클럽’이라고 불리는 젝시오로 기량을 뽐내며 편견을 불식시키고 있다.
또 한 가지, 프로는 무조건 어려운 클럽을 사용할 것이라는 인식도 깨뜨렸다. 박인비가 “젝시오의 편안함에 만족했다”고 밝힌 것이 그 배경이다. 젝시오 포지드 아이언의 경우 목표치 대비 300% 이상 판매고를 올렸다.
스릭슨도 대박을 맞았다. 올해 스타플레이어와 계약을 체결한 후 ‘챔피언은 바뀐다’를 외치던 스릭슨은 박인비를 통해 ‘챔피언의 볼’에 등극했다. 그동안 세계 볼 시장은 특정 브랜드의 독주에 가까웠다. 경쟁 브랜드가 힘을 제대로 써볼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박인비 열풍이 스릭슨에 빛이 되고 있다.
특히 박인비가 올해 메인스폰서 체결이 지연되는 동안 스릭슨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쓴 덕에 브랜드 노출 효과를 톡톡히 봤다. 그 결과 스릭슨 볼은 국내 시장에서 전년 동기대비 200% 이상의 매출 신장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박인비 열풍에 조용히 미소 짓는 브랜드가 테일러메이드다. 현재 박인비가 사용하는 로켓볼즈 페어웨이우드와 하이브리드가 이미 단종이 된 모델. 하지만 테일러메이드는 박인비를 통해 두 가지 효과를 누리고 있다. 먼저 테일러메이드라는 브랜드에 대한 호감이다. 소비자는 해당 모델을 구매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 테일러메이드라는 브랜드에 신뢰를 갖게 된다. 이러한 신뢰는 현재 출시되고 있는 모델의 판매에 긍정적인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다.
또 하나는 박인비가 실제 사용한 모델의 판매량 증가다. 신제품이 출시된 후에도 재고가 시중에 유통되는 것은 당연하다. 세계적으로 판매량이 많은 테일러메이드라는 점에서 시중에서 이전 모델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박인비 열풍이 불며 이러한 제품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최근 온라인 시장에서 로켓볼즈 페어웨이우드와 하이브리드는 물론 드라이버까지 거래가 활발하다는 소식이 들리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젝시오·스릭슨 매출 승승장구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곧장 바꾸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반대인 선수가 있다. 선수의 성향 차이인데 잘 안 바꾸는 선수가 덜컥 우승을 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사람들이 ‘신제품이 출시됐는데 왜 옛 모델을 써?’라고 물어올 때 말문이 막히기 때문이다.” 골프용품업체 홍보담당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최근 화제의 중심에 선 박인비도 마찬가지다. 올해 신제품으로 재무장한 품목이 있는가 하면 변함없이 손에 익은 옛 모델을 쓰기도 한다.

얼어붙은 시장 따뜻한 햇살 ‘박인비’
상반기 클럽·볼 총 매출 3900억원

박인비는 클리블랜드골프 588 투어 액션 웨지 3개를 쓰고 있다. 이 모델에 뒤이어 출시된 신제품이 꽤 많은 상황. 해당 업체는 내심 박인비가 최신 모델을 썼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그런데 아쉽지만 고마운 것이 실상이다.소비자인 골퍼는 해당 모델뿐만 아니라 588 웨지, 클리블랜드골프라는 큰 테두리 안에 박인비 웨지를 넣어두고 있다. 실제로 박인비 웨지를 찾아 골프숍을 찾고, 최신 클리블랜드 웨지를 구매하는 골퍼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비슷한 입장인 브랜드가 오디세이다. 이미 오래 전 단종된 화이트아이스 세이버투스는 박인비 때문에 시장에서 큰 화제가 된 모델이다.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다는 점이 골퍼들을 당혹하게 했다. 다행이라면 박인비 퍼터를 찾아 골프숍을 방문한 골퍼들이 발길을 돌리기에 앞서 최신 오디세이 퍼터를 살펴본다는 것.
이와 함께 골퍼들이 애타게 찾던 박인비 퍼터, 세이버투스를 실제로 만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오디세이가 세이버투스의 재출시를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탓이다. 그렇게 된다면 박인비 열풍에 기름을 끼얹을 가능성이 크다.

“왜 옛 모델 써?”아쉽지만 고마워…


상반기 국내 골프클럽시장 규모는 얼마나 될까. 아직 국내에는 이에 대한 정확한 통계자료가 없다. 8일 리서치 회사인 GFK코리아가 발표한 서울 경기 인천 경남 경북 등 5개 지역의 오프라인 매장 매출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를 유추해볼 수 있다.
GFK코리아에 따르면 5개 지역의 상반기 골프클럽 매출은 총 2540억3000만원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는 충청 호남 강원 제주지역이 빠져 있다.
GFK코리아 관계자는 “2011년 전국의 오프라인 매장을 전수 조사한 결과 수도권과 영남권의 매출이 전체의 70~80%를 차지했고 나머지 지역은 20~30%였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충청 호남 강원 제주지역의 매출을 20~30%로 잡을 경우 508억~762억원이다. 이를 더하면 상반기 전국 오프라인 매장의 총 매출은 3048억~3302억원으로 추정된다.여기에 인터넷 등을 통한 온라인 판매액도 포함시켜야 한다. 업계에서는 온라인 판매가 오프라인 매출의 20% 정도로 보고 있다. 온라인 매출은 609억~660억원 정도라는 얘기다. 이에 따라 국내 상반기 온·오프라인 골프클럽 판매 총액은 3657억~3962억원으로 추산된다.
GFK코리아가 5개 지역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체 판매금액 중 아이언세트가 936억2500만원(점유율 36.9%)으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드라이버가 604억5200만원(23.8%)으로 2위, 3위는 골프볼 246억8400만원(9.7%), 4위는 풀세트 240억원(9.5%), 5위는 페어웨이우드 180억원(7.1%) 등의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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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