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경제민주화 기조 후퇴 논란 전말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9.02 15: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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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옥죄기' 일단 멈춤 "6개월 만에 '백기'?"

[일요시사=경제1팀] 박근혜 대통령이 10대그룹 총수들과 청와대 오찬을 가졌다. 대통령은 기업들의 투자 확대를 당부했고 참석자들은 향후 투자계획을 설명하면서 정부 측의 지원을 요청했다. 일단은 서로 원하는 것을 주고받은 모양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재벌 달래기'를 두고 경제민주화가 대폭 후퇴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실상 경제민주화를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청와대로 국내 민간 10대그룹 총수들을 초청해 오찬간담회를 했다. 이 자리에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김창근 SK 의장, 구본무 LG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이재성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조양호 한진 회장, 홍기준 한화 부회장, 박용만 두산 회장, 허창수 GS 회장 등이 참석했다.

모두발언 요점
재계 기 살리기

박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그동안 어려운 경제여건에도 불구하고 투자확대와 일자리 창출에 노력해줘 감사하다"며 "지난 4월초 30대그룹이 149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과 12만8000명의 신규채용 계획을 발표한 것이 경기부양 노력에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또 "이러한 기업들의 노력과 정부의 추경을 비롯한 경기활력 회복을 위한 정책을 통해 최근 취업자 수가 2개월 연속 30만명 이상 늘어났고 2.4분기 성장률도 9분기 만에 0%대 성장에서 벗어나게 됐다"며 "창조경제 구현과 일감 나누기·동반성장 노력을 통해 경제민주화에 협조한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은 어려운 점이 많다며 기업들의 적극적이고 선도적인 투자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경제가 어려운 상황을 맞을 때마다 과감한 선제적 투자는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경제를 새롭게 일으키는 동력이 되어왔다"며 "규제 전반을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바꾸는 개혁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불합리한 규제가 새로 도입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경제민주화 입법과정에 대해서는 한 발짝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박 대통령은 "정부는 경제민주화가 대기업 옥죄기나 과도한 규제로 변질되지 않고 본래 취지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상법개정안에 대한 우려도 잘 알고 있다"며 "정부가 신중히 검토하고 더 많은 의견을 청취해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상법개정안은 감사위원을 맡을 이사는 다른 이사와 분리해 선임하도록 하고 대주주 의결권을 최대 3%까지만 허용하며 집중투표제 도입을 의무화하는 게 골자다. 감사위원의 독립성을 높여 대주주의 전횡을 감시·견제할 수 있도록 해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려는 게 취지다. 집중투표제는 1개의 주식에 선임될 이사의 수만큼 투표권을 부여해 소액주주가 지금보다 쉽게 이사를 선임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10대그룹 총수와 오찬 엇갈린 평가
경제 살리기에 밀려난 경제민주화

재계는 현재 상법개정안이 현실화되면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새누리당 내에서도 재계의 반발이 과장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태다.

이날 오찬에서 박 대통령은 경제 활성화와 기업투자 요구를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지난 대선과 현정부 경제분야의 핵심화두였던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는 기업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설득 정도의 수준만 언급했다.

이는 박 대통령이 하반기 국정 성과 창출에 주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투자가 필수적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정재계는 보고 있다. 이를 위해 반드시 기업들의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고 보는 것.

박 대통령은 지난 7월10일 언론사 논설·해설실장들을 만나 "(경제민주화 관련) 중점 법안들이 7개 정도였는데 6개가 통과됐다"며 "거의 끝에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제는 투자하고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 나가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들은 그동안 지속돼온 경제민주화 후퇴 논란에 불을 지폈다.


'상법개정안' 완화
"사실상 항복 선언"

실제로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 후퇴를 선언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날 오후 야당은 박 대통령의 청와대 오찬간담회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핵심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를 공식적으로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자리였다"고 비난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 중 "경제민주화가 대기업 옥죄기나 과도한 규제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겠다" "상법개정안에 대해 신중히 검토하겠다" "일자리 창출은 기업의 의지가 있어야 하는 것" 등은 사실상 대기업에 항복 선언을 한 것이라는 것.

민주당 배재정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를 포기할 테니 대기업 투자를 늘려달라고, 사실상 항복 선언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배 대변인은 일자리 창출에 대한 기업의 의지를 당부한 발언을 두고 "화룡점정이었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며 "박 대통령 논리대로라면, 정부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정부의 무능을 스스로 자인한 꼴"이라고 꼬집었다.

야당 "대통령 핵심공약 사실상 포기"
새누리당 "좀 더 논의하겠다는 취지"

그는 또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에 대해 "재벌들은 투자보다 현금성 자산을 늘리는 것에몰두했다"며 "재벌들이 곳간을 채워가는 동안, 청년들은 88만원에 인생을 저당 잡혔다. 중장년층은 실업과 노후불안에 시달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박 대통령은 '오답노트'부터 만들기 바란다. 전임 대통령의 실패에서 정말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인가"라며 "재벌 투자를 유도한다는 명분 아래 재벌들의 불법행위를 눈감아주거나 경제민주화를 후퇴시키는 것은 경제 살리기와 전혀 상관없다는 점을 명심하셔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의당 김제남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박 대통령이 재벌들의 요구사항을 일방적으로 청취하다시피 한 이번 청와대 오찬은 박 대통령이 자신의 대선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의 포기를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친기업적 태도를 표명하는 터닝포인트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김 대변인은 "투자활성화가 규제정책 때문이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지난 10여년간 정부는 일관되게 규제완화조치를 추구해왔고, 그 혜택은 대부분 재벌대기업들에게 돌아간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대기업은 지금까지 국내투자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해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과 10대그룹 총수들의 오찬이 경제민주화 후퇴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새누리당 유일호 대변인은 국회 정론관에서 야당의 경제민주화 포기 관련 비판에 대해 "오찬간담회를 함께하면서 재계의 현안과 경제 활성화를 위한 의견을 듣고, 올 하반기 국정운영의 최우선 과제로 제시한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대한 기업들의 협력을 당부했다"고 밝혔다.

상법개정안·집중투표제 '백지화' 가닥?


유 대변인은 박 대통령 발언에 대해 "우리가 경제민주화를 이뤄내는 동시에 현재의 어려운 경제환경의 개선을 위해 기업들이 솔선수범하여 투자해 우리 경제가 살아날 수 있도록 해주시고, 정부 또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뜻"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유 대변인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위한 공정거래법,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한 하도급법 등 경제민주화 관련 핵심법안들은 국회를 통과했다"며 "신규 순환출자 금지 등 나머지 경제민주화 완성을 위한 법안들도 국회에 제출되어 논의 중에 있다는 사실을 야당도 잘 알고 있다"며 경제민주화 후퇴는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오찬간담회에서 언급한 내용들은 대기업의 협조를 위해 정책적 과제를 지연시켰다는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경제민주화라는 용어 자체가 여권의 공식석상에서 사라졌고 핵심법안들은 아직 국회 상임위 문턱도 밟지 못했다.

대기업의 신규 순환출자 금지 법안과 보험·증권 등 제2금융권으로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확대하는 법안은 6월국회 처리가 목표였지만 정무위에 계류 중이다. 횡령·배임 등 재벌 총수의 중대 범죄에 대해 집행유예를 금지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개정안, 형 확정 이후 대통령 사면을 차단하는 사면법 개정안은 법제사법위에 머물러 있다. 이런 법안들은 국회에 장기 계류될 가능성이 높다. 새누리당도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부동산 거래 활성화에 정기국회 초점을 맞추는 등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 처리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핵심법안 대부분
국회 계류 중

정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기업은 '모든 계열사'에서 '총수 일가가 일정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로 축소됐고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제한 강화, 지주회사 전환촉진을 위한 금융 자회사 규제개편, 집단소송제, 사인의 금지청구제 등도 경제가 어렵다는 이유로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박근혜정부의 제1국정기조는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성장이다. 그런데 취임 첫해, 그것도 새 정부 출범 6개월 만에 박 대통령의 핵심공약인 경제민주화는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것도 없이 흐지부지될 위기에 처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10대그룹 총수들 무슨 말 했나

말씀들은 그럴싸한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세계 경제가 어렵다. 규제를 풀어준 것은 기업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창조경제는 한국경제가 나아갈 올바른 방향이며 기업들이 앞장서서 실행하고 이끌어 나가야 한다. (삼성의) 투자 고용 계획은 차질 없이 추진하고 있으며 SW 인재육성에 노력하고 기초과학을 육성하고 융복합 기술개발에 노력할 계획이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연 740만대 생산 중이며 해외 생산도 늘고 있다. 국내 임금과 물류비용의 상승으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지만 열심히 노력한다면 연 1000만대 생산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자동차, 철강 등 투자를 차질 없이 진행하겠다. 친환경과 첨단소재 개발도 노력 중이며 해외 협력업체 동반진출 지원에 힘쓰고 있다.

▲구본무 LG 회장=융복합 IT 기술, 에너지 저장장치, 전기자동차 등에 있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필요가 있으며 이중 전기차 시장 활성화를 위해 전기차 보조금 지원확대가 필요하다. (LG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책 읽어주는 휴대폰 사업, 저성장아동을 위한 성장호르몬 보급 등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신동빈 롯데 회장=(롯데는) 여성이나 지방대 출신 채용을 확대할 계획이며 지역 전통시장과 중소상인과의 상생에도 노력하겠다. 이를 위해 비닐 장바구니를 5만개 제작·배포하기로 했다. 잠실 제2롯데월드 등 관광산업 활성화에도 적극 나서겠다.

▲조양호 한진 회장=사회적 보상시스템 부재 등으로 고용시장 수급이 불균형을 보이고 있다. 정부와 기업이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 무인항공기 등 방위산업의 경우 사업연속성의 부족으로 어려움이 있다. 인천공항 허브화와 중국인 비자확대, 특급관광호텔 건립 규제 완화 등이 필요하다. (한진은) 60대의 신규 항공기를 도입할 계획이다. 이로 인해 1대당 250명의 고용창출효과를 예상하고 있다.

▲김창근 SK 의장=대중소기업 동반성장지수 평가가 줄 세우기 평가보다는 기업별로 자발적으로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중국의 석유국유기업인 시노펙과 합작투자가 상업생산에 돌입하는데 국가 지도자간 신뢰필요성에 대한 긍정적 사례로 볼 수 있다. 스마트 그리드, 빌딩관리시스템, 에너지저장장치 등 정보통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에너지 신 시장 창출을 추진하고 있다. 외국인투자촉진법 합작투자가 조속한 처리가 되면 이를 통해 울산에 1만개 일자리 창출효과가 있을 것이다.

▲허창수 GS 회장=외국인투자촉진법 처리가 시급하다. (GS는) 신재생에너지 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GS홈쇼핑이 중소기업 제품을 지원하고 있는 것은 동반성장의 주요 사례다.

▲박용만 두산 회장=72개 지방상공회의소 회장들을 모두 만나본 결과 투자와 일자리 창출 의지는 있지만 투자처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눈이 너무 좁고 턱이 너무 높다. 통상임금은 공멸의 문제다. 입법이 개별 기업의 경우 어디에 해당되는지 모를 만큼 쏟아져 나오고 있다. 기업들의 해외 진출 지원과 실패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 솔선수범에 대해 박수를 보내는 분위기를 만드는 등 상공인의 사회적 지위를 높일 필요가 있다. 원자력발전소 수출 등에 대한 국가적 지원과 정부 금융 지원도 필요하다.

▲홍기준 한화 부회장=(한화는) 80억달러 프로젝트인 이라크 주택 10만호 건설을 진행 중이다. 중소업체와 동반진출을 통해 제2의 중동 붐을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차원의 보증과 보험지원이 필요하다. 태양광산업에 대한 기회도 찾고 있다.

▲이재성 현대중공업 대표이사=심해저 자원개발과 해양플랜트에 대한 자원외교를 강화할 필요가 있는데 대통령께서 직접 나서서 물꼬를 터주기 바란다. 이제 골드러쉬에서 블루러쉬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호주, 브라질 등에 대한 경쟁이 치열하다. 세일즈 외교가 무엇보다 중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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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