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배달원의 억울한 옥살이 사연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9.02 14:5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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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잡았나 만들었나…진실은? 

[일요시사=사회팀] 소설가 공지영이 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정윤수는 여자 3명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는다. 하지만 그는 아내의 수술비 300만원을 구하려고 한 술집 여인의 집에 찾아갔을 뿐이다. 함께 갔던 선배가 술집 여인과 그의 딸, 파출부를 죽였고 윤수는 돈만 훔쳐 달아났다. 그러나 윤수는 선배의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사형수가 된다. 과연 소설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한 남성의 사연을 들어보자.



9년 전 고성옥(당시 48·남)씨는 새벽에는 신문을 돌리는 배달원으로, 낮에는 집수리 및 도배 일을 하던 평범한 40대 가장이었다. 그러나 2004년 9월 8일 새벽 3시30분께 제주시 연동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벌어진 특수 강도 및 강간 미수 사건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놨다.

잃어버린 7년

고씨는 이날 피해자 장모(당시 41·여)씨가 살고 있는 집의 작은방 창문을 통해 침입해 장씨를 흉기로 위협, 14K 반지 1개와 목걸이 1개 등 35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뒤 폭행하고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쳤다는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경찰은 노란색 티셔츠와 면장갑, 소형 커터칼을 물증으로 내세우며 고씨를 범인으로 몰아세웠다. 고씨는 시종일관 혐의 내용을 전면 부인했지만, 결국 경찰은 고씨를 입건했고 이는 법원에서도 그대로 인정됐다.

고씨는 제주지방법원에서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2005년 7월 광주지방법원에 항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고씨의 옥살이는 7년 동안 이어졌다.


2011년 9월. 고씨는 만기 출소했다. 고씨는 “돈도 없고 배경도 없는 사회적 약자의 설움을 누구보다도 절실히 느낀 세월이었다”고 말했다. 누군가가 “강도야”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달아나는 범인을 ?다 놓친 뒤 모든 죄를 뒤집어 쓴 그날을 잊지 못한다는 것이다. 고씨는 “차라리 범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며 “하지만 범인이 아니기에 분하고 억울해서 죽지도 못하고 눈물로만 살아왔다”고 말했다. 다 잊고 용서해 보려 하기도 했지만 잃어버린 명예만큼은 되찾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고씨는 그해 11월 제주경실련공익지원센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등과 함께 7년 전의 진실을 캐나갔다. 제주경실련공익지원센터 등은 3년에 걸쳐 면밀하게 관련 증거를 검토하고 관련 증인들을 만나 면담한 결과 고씨의 주장이 진실임을 확인했고, ‘고성옥씨 7년 억울한 옥살이 진실찾기 모임’을 결성했다.

진실찾기 모임은 그 첫 번째 활동으로 지난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고씨의 무죄를 주장했다. 고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무슨 말을 해야 제 심정과 무고함을 알릴 수 있을지 막막하다”며 “당시 사건 시간으로 볼 때 사건을 일으킬 수도 없는데 경찰관은 이를 묵살한 채 증거를 조작했다”고 말했다.

고씨는 “증거와 관련해 피의자 사인과 도장이 있어야 함에도 경찰이 알아서 처리했고 조서에서 발견된 지문 차이가 조작의 증거”라며 “이 사건은 범죄증거로 범인을 잡은 것이 아니라 국가가 범인을 만들고 해결한 사건”이라고 밝혔다.

‘누명의 덫’걸려 7년간 강도·강간범으로
진실찾기 모임 10가지 이유 들어 무죄 주장

진실찾기 모임은 ▲객관적 증거 부족 ▲경찰의 객관적 증거와 사실 묵살 ▲신뢰성 없는 피해자 진술 ▲경찰의 타인 족적 인멸 ▲경찰의 증거조작 및 법정 허위증언 등을 제시하며 고 씨의 무죄를 주장했다.

양시경 제주경실련 대표는 “피해자는 사건이 일어난 시각에 강도가 1시간이나 있었다고 진술했지만, 고씨는 신문배달을 하고 있었고 이는 신문부수를 확인하면 입증된다”며 “고씨를 고용했던 조선일보 신제주지국장이 당시 증인으로 채택돼 고씨가 하루에 배달하는 신문부수와 시간을 진술, 알리바이를 증언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건 당일 신문 배달을 시작한 시간(새벽2시 30분)과 이미 배달한 신문 부수(180부)를 계산하면 범행이 일어난 시각에 사건현장에서 약 1시간동안 시간을 지체할 수 없음이 입증된다는 주장이다.

진실찾기 모임은 반면 경찰이 증거로 삼은 진술에는 신뢰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피해자는 경찰 진술조서에서 목격자 송씨가 사건현장인 집에서 고씨가 뛰쳐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했지만, 송씨는 실제 경찰 진술에서 사건 현장과는 70m 떨어진 사거리에서 고씨를 처음 목격했다고 진술했다”고 강조했다.

범인의 인상착의로 지목된 ‘노란 티셔츠’에 대해서도 경찰의 주장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진실찾기 모임은 “당시 고씨가 하얀색 런닝 셔츠를 입고 있었음에도 경찰은 고씨의 신문 배달 오토바이 바구니에서 발견된 노란 티셔츠를 증거로 삼았지만, 이는 주변에 거주하는 여성이 법원에 출석해 문제의 노란 티셔츠가 자신의 것이며 사건 발생 전에 잃어버렸다고 진술했다”고 반문했다.

이어 “당시 낮에는 자활후견센터의 주선으로 도배와 집수리를 하던 고씨가 안주머니에 늘 갖고 다니던 소형 커터칼을 범행용 흉기로 둔갑시켰다”며 “범행을 준비하는 강도가 어린이들이 사용하는 소형 커터칼을 가지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도 지적했다.

이들은 또 경찰의 증거 인멸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 피해자 옆집에 거주하며 범행 장소를 목격한 증인이 “사건현장에 뚜렷하게 남아있는 발자국을 보았다”고 진술, 경찰이 고씨의 운동화와 대조한 결과 일치하지 않아 증거를 인멸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이웃주민이 청소해서 족적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등 거짓말로 증언했다는 게 진실찾기 모임의 설명이다. 

면장갑에 대한 증거인멸 의혹도 있다. 이들은 “당시 범인이 도망치면서 추격하는 고씨와 거리가 좁혀지자 범인이 무엇을 던지기에 고씨는 훔친 물건을 되돌려주는 줄 알고 주웠더니 면장갑이었다”며 “고씨는 도배를 하며 사용하기 위해 주머니에 넣었고, 경찰은 면장갑에서 묻어나온 머리카락을 고씨의 모발로 의심해 국과수에 감정의뢰했지만 그 결과 고씨와는 전혀 상관없는 제 3자의 모발이 나왔다”고 말했다.

진실찾기 모임에 따르면, 이를 알게 된 경찰이 무리한 수사의 잘못을 덮으려고 모근이 있음에도 없어서 시행하지 않았다는 거짓 핑계를 대고 사실과 다른 허위 감정서를 작성했다.

양 대표는 “고씨가 과거에 살인미수 전과가 있다는 이유로 짜맞추기식 수사는 있어서는 안된다”며 “고씨는 국가공권력과 사법부의 잘못된 오판이 낳은 무고한 희생양”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진실규명에 어려운 점이 많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고씨의 억울한 7년 옥살이 누명을 벗기는데 온 힘을 다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고씨는 “고향도 못 가고, 친구도 못 만나고, 자식과 손주를 생각하면 너무 괴롭다”며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이제라도 명예를 되찾고 또 다른 사법 피해자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사과정 위법?

임문철 신부는 “2011년 출소 뒤 민변 등 법률단체를 찾아가는 등 노력을 했지만 재심사유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런데 한 법률전문가는 당시 변호사가 조금만 더 적극적인 노력을 했으면 모르겠다는 발언을 했다”며 “이건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법 피해자들을 양산하는 시스템적인 문제”라고 밝혔다.

진실찾기 모임은 경찰이 승진에 대한 욕구 때문에 증거를 조작하고 은폐수사를 했고, 이것이 법정에서도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이날 기자회견 직후 당시 지구대 경찰관 2명과 제주경찰서 감식담당관 등 3명을 고발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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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