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터졌다!" 먹거리 이물질 잔혹사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8.27 09:5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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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왔다" vs "넣었다"…과연 진실은?

[일요시사=경제1팀] '쥐식빵' '쥐머리 새우깡' '튀김가루 쥐 사체' '커터칼 참치캔'. 지난 5년간 온 나라를 뒤흔들었던 대형 식품 이물질 사건들이다. 이 중 이물질 유입 경로가 명확히 밝혀진 사건은 단 하나. '쥐식빵'뿐이다. 나머지는 제조업체의 실수인지, 소비과정의 문제인지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최근 발생한 '개구리 분유' 사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소비자와 제조업체의 말이 정반대여서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 전망이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분유에서 개구리 사체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한 장의 사진이 게재됐다. 사진 속에는 약 4cm가량의 개구리 사체가 분유 속에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게시물을 올린 이는 자신을 6개월 된 딸을 둔 주부라고 밝힌 후 "분유에서 이물질이 발견됐습니다. 이번엔 개구리네요"라며 "크기는 약 4cm에 달합니다. 말라비틀어진 모습이네요"라고 적었다.

이 사진은 지난 20일 MBC <뉴스데스크>에 보도됐다. 이날 <뉴스데스크>는 전남 목포에서 남양유업이 제조한 분유에서 길이 4.5cm의 죽은 개구리가 발견돼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조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남양유업 적극대응
경찰에 수사의뢰

보도에 따르면 목포 상동에 사는 주부 양모씨는 6개월 된 딸에게 줄 분유를 타 먹이기 위해 분유통을 열었다가 반건조 상태의 개구리 사체를 발견하고 신고했다. 양씨는 "아프지만 말라고 아기한테 계속…. 제가 죄인 같고 계속…"이라며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뉴스데스크>는 분유 제조사의 상표를 모자이크 처리했지만 제조사 특유의 ‘왕관’모양의 로고가 수차례 노출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의 제조사는 남양유업인 것으로 밝혀졌다.

논란이 커지자 남양유업은 적극 대응에 나섰다. 일단 제조공정에서는 문제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남양유업의 반박을 정리하면 이렇다.


남양유업 분유는 최소 0.4mm, 최대 4mm의 거름막 7개를 통과하기 때문에 4.5cm의 개구리는 통과할 수 없으며 분유 생산라인은 완전 무인 자동화 공정이어서 외부와 차단·밀폐돼 있어 이물질이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남양유업은 "특히 분유는 수분 5% 미만의 극히 건조한 상태로 분유 완제품에 생물이 혼입된다 하더라고 삼투압에 의해 2주의 시간동안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상태가 된다"며 "이 경우 부서질 정도로 건조하게 된다. 제조과정 중 혼입됐다면 온전한 형체를 유지한 개구리를 발견할 가능성은 없다"고 강조했다.

남양유업의 해명대로 제조과정에 문제가 없다면 다음 가능성은 소비과정으로 넘어간다. 소비 단계 조사를 진행한 목포시 보건소는 신고자 거주지 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서 신고자 양씨는 "지난 3일 지인으로부터 집들이 선물로 분유를 받았고, 13일 이를 개봉했으며 19일 개구리가 혼입된 사실을 발견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신고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없었고 이에 따라 제조업체(남양유업 세종공장)의 관할 지자체인 세종시로 사건이 이첩됐다.



보건소 측은 "거주지 형태가 아파트여서 인근에 논이나 연못이 없어 개구리가 서식할 만한 환경이 아니었다"며 "일단 소비 단계에서 특별한 혼입 정황이 포착되지 않아 제조업체 관할 지자체로 넘겼고 앞으로 제조단계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남양유업 측은 "피해를 주장하는 소비자가 사는 곳은 지역 여건상 개구리, 가재 등 생물이 많은 곳이어서 어린이들이 자주 채집할 수 있는 환경"이라며 "어린이 중 한 명이 해당 분유 캔을 다 먹은 분유 캔으로 오인하고 죽은 개구리를 분유 통 안에 넣었을 가능성도 상당 부분 존재한다"고 반박했다.

남양유업은 또 "개구리가 발견됐다는 제품을 식약처에서 조사 중이다"며 "정확한 원인규명을 위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남양유업 '개구리 분유'파문 일파만파
유입경로 밝혀지기 힘들어…미제로 남나


식약처 관계자도 "현재 분유제조공정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며, 곧 조사가 매듭 되면 공식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맨 눈으로는 보이지도 않는 작은 구멍 7개를 4.5cm에 달하는 개구리가 어떻게 통과해 혼입됐을까. 그게 아니라면 누가 멀쩡한 분유통에 개구리를 넣었을까. 사건이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2010년 발생한 '이마트 튀김가루'가 재현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이마트 튀김가루 사건은 지난 2010년 5월 한 소비자가 이마트 시화점에서 구입한 튀김가루에 쥐 사체로 보이는 이물질이 들어 있는 걸 발견하고 신고하면서 논란이 됐다. 해당 제품은 삼양밀맥스가 제조하고 이마트가 자체 브랜드(PB) 상품으로 판매한 제품이었다.

검찰과 식약처(당시 식약청)는 해당 제품과 쥐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 유전자 감식 등 분석 작업을 벌였다. 발견된 쥐는 내장이 말라붙어 있어 위장에서 음식물이 검출되지 않은 점 등으로 미뤄 죽은 뒤 오랜 시간이 지나 건조된 상태로 튀김가루에 들어갔다는 잠정결론이 나왔다.

검찰과 식약청은 삼양밀맥스 제조과정을 살폈다. 삼양밀맥스는 제조 공정에 문제가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살아 있는 쥐를 제조공정에 투입하기도 했다. 고온·고압의 과정을 거친 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고 이 결과에 따라 삼양밀맥스는 "제조 공정에서 문제가 있던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자연스레 의혹은 소비자의 자작극으로 옮겨졌고 보건당국은 당사자 거주지 일대의 쥐를 잡아 DNA 조사를 벌이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마땅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이에 검찰과 식약청은 유통과정에서 쥐가 들어갔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삼양밀맥스 직원과 이마트 직원을 불러 조사했지만 혐의점을 찾기 못했다.

결국 검찰은 삼양밀맥스와 이를 신고한 소비자 모두 혐의를 발견하지 못해 무혐의 처리했다. 이에 이마트와 삼양밀맥스는 생쥐 튀김가루를 제조·유통했다는 혐의는 벗었지만 기업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식약청이 조사과정에서 튀김가루에서 발견된 쥐와 같은 종류의 쥐 사체가 공장 주변에서 발견됐다는 사실도 밝혀 사실상 제조사의 문제점을 부각해 설명했기 때문이다. '튀김가루에서 죽은 쥐가 나온 것은 업체의 잘못'이라고 단정 짓는 식의 중간발표를 한 셈이다.

이후 삼양밀맥스는 몇 달간 개점휴업 상태가 이어졌고 검찰이 "삼양밀맥스의 잘못은 없다"고 발표를 했지만 식양청에선 아무 반응이 없었다.

2008년 3월에는 '쥐머리 새우깡' '지렁이 단팥빵' '커터칼 참치캔' 등 충격적인 사건이 3건이나 발생했다.

유입경로 미스터리
사건 미궁 속으로

커터칼이 발견된 참치 캔은 동원F&B의 제품이었다. 문제의 커터칼 조각이 나온 곳은 창원 공장 내 참치 캔 제조 6개 라인 중 하나로, 2009년 7월 이 라인에서 생산돼 유통기한이 '2014년 6월29일'로 찍힌 통조림으로 모두 16만7000여개에 이른다고 공장 측은 설명했다.

식양청은 칼날 이물이 검출된 것과 관련, 컨베이어벨트 생산라인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혼입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식양청에 따르면 문제의 제품이 생산된 지난 2007년 7월4일에 생산라인의 컨베이어벨트가 끊어져 약 32분간 생산 작업이 정지됐으며, 이때 공장 관계자가 문제가 된 커터칼과 동일한 칼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제품에 사용되는 빈 캔의 입고검사 과정에서도 동일한 칼이 사용됐으며, 지난 2006년 11월에도 커터칼날 이물이 검출됐다는 소비자 불만 신고가 있었다고 식약청은 전했다.

식약청은 또 제조공정을 정밀 조사한 결과 금속성 이물을 걸러낼 수 있는 금속검출기 및 X-레이가 이물의 위치에 따라 이를 검색하지 못하는 기계적 결함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조사결과 상관없이
천당·지옥 넘나들어

동원F&B는 이와 관련 회사 홈페이지 배너 안내문을 통해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 드린 점 다시 한 번 고객 숙여 사죄를 드린다"면서 "'우리가 만든 식품 우리 가족이 먹는다'는 생산 철학을 바탕으로 제조과정 전반에 대해 더욱 철저한 확인과 점검을 하겠다"고 밝혔다.

온 국민의 간식으로 사랑받아온 장수 스낵 농심 '새우깡'은 '쥐우깡 파문'으로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었다. 소비자들은 오랜 시간 정든 새우깡을 손에서 놓았고 농심이 광고를 한 언론들에게까지 불씨가 번지면서 농심은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에 빠졌다. 졸지에 '생쥐깡'이라는 오명도 붙었고 지금까지도 식품 이물질 검출의 대명사로 불린다. 굴지의 식품업체 농심은 매출 감소와 이미지 실추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농심 측은 해당 제품의 생산을 중단했고 문제가 된 제품과 같은 조건에서 생산된 노래방 새우깡 2만5719상자와 시중에 풀린 노래방 새우깡 6만 상자 등 8만5000상자를 수거해 소각했다. 종전 대비 매출의 50%를 회복하는데 정확히 106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쥐머리 새우깡'은 "제조과정에서는 쥐가 온전한 형태로 제품에 들어가기는 어렵다"라는 검찰과 식양청의 조사결과 발표만 있었을 뿐 정확한 유입 경로는 파악되지 않았다.

SPC는 '지렁이 단팥빵' 사건으로 천당과 지옥을 넘나들었다. 이 사건은 "단팥빵에 지렁이가 들었다"라고 제보한 김모씨가 광주 북부경찰서에 공갈미수 혐의로 구속되면서 발생 50일 만에 종결됐다.


동원-커터칼, 삼립-지렁이
농심 '쥐'때문에 대망신

사건을 수사한 광주 북부경찰서는 국과수에 정밀조사를 의뢰, 국과수는 "발견 당시 지렁이가 빵 속에 들어 있던 게 아니다"라는 소견을 밝혔다. 단팥빵이 200도가 넘는 고온에서 구워지는 데 반해 지렁이는 발견 당시 물기가 남아 있었고, 열을 받은 흔적도 없다는 것이었다. 경찰 조사 결과 '지렁이 단팥빵'이 발견된 곳 인근에서 지렁이가 다수 서식하는 것도 확인됐다. 경찰은 결국 지렁이 단팥빵을 제보하고, 진술 번복을 조건으로 5000만원을 요구한 김씨를 구속했다. 

그러나 경찰과 재판부는 속시원한 결론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이 사건을 심리한 광주지법 형사 4단독(장정희 판사)은 공갈미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씨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지렁이가 어떻게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는지 지금으로서는 밝힐 수 없다"며 물음표를 찍었다.

경찰과 삼립도 "제조 과정에서 들어갈 수는 없다"는 결론만 내렸을 뿐이다. 결국 김씨는 공갈협박에 대한 혐의만 적용되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불과 50일이었지만 SPC가 입은 피해는 컸다. 빵을 제조한 삼립은 사건 발생 직후 생산을 중단하고 전국에 유통된 3만5000개의 제품을 전량 회수했다. 기업의 이미지에도 큰 타격이 가해졌다.

이를 교훈으로 삼은 SPC는 2년 뒤인 2010년 12월 발생한 '쥐식빵' 사건에서 신속한 대응에 나섰으나 피해는 여전했다. SPC는 사건 발생 직후 즉각 긴급상황팀을 구성하고 경찰 수사 의뢰, 식약청 신고, 기자회견을 모두 단 하루 만에 속전속결로 해치웠다. 경찰 수사 결과 쥐식빵 사진 유포자는 경쟁업체인 뚜레쥬르(CJ푸드빌)의 가맹점주였음이 확인되면서 사건은 종결됐다.

'실수' 인가
'고의' 인가

그러나 크리스마스 직전에 발생한 이 사건으로 파리바게뜨 등 대형 체인점은 물론 동네 빵집들까지 성수기 매출에 큰 타격을 입었다. 파리바게뜨 측은 전국 2600여 곳의 점포에 사건 이후 일주일동안 빵과 케이크 예약 주문을 취소해달라는 전화가 빗발쳤으며 소규모 자영업 형태의 동네 빵집들도 유탄을 맞았다. 미리 만들어놓은 케이크가 수백 개씩 창고에 쌓일 정도였다. 당시 대한제과협회는 "제과점들이 매출 감소로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다"며 "혐오감을 줄 만한 화면의 노출이나 '쥐식빵'이라는 용어 사용을 자제해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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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