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질론 휩싸인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08.19 13: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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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먹는 ‘경제수장’ 언제까지 버틸까

[일요시사=사회팀] 박근혜정부가 발표한 세제개편안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원점 재검토’할 방침이라며 우선 급한 불을 껐다. 하지만 이번 사태와 관련해 경제라인의 문책론이 정치권으로 퍼지면서 현오석 경제부총리의 경질론까지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2일 정부 세제개편안 ‘원점 재검토’를 천명하면서 현오석 경제부총리 와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의 책임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새 정부 경제정책을 이끄는 경제팀에 대한 박 대통령의 발언이 사실상 질책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이번 개편안의 틀을 짠 현 부총리는 야당으로부터 ‘세금폭탄 원인 제공자’라는 공격을 받고 있다.

세제개편안 역풍
여야의 화살까지

지난 8일 기획재정부의 세제 개편안 발표 이후 4일 만에 입을 연 박근혜 대통령은 중산층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기존 소득세 추가 부담 기준선은 당초 연소득 3450만∼7000만원에서 5500만∼7000만원으로 상향 조정됐다. 현 부총리는 국회에서 열린 당정협의회에 참석해 박 대통령의 ‘원점 재검토’를 지시한 세법 개정안과 관련해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정무적 판단이 부족해 이렇게 됐다”며 사과했다.

그러나 박근혜정부의 첫 세제개편안은 서민·중산층 세 부담이 늘어난다는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불과 나흘 만에 수정되면서 취임한 지 불과 6개월 된 현 부총리가 경질론에 휩쌓였다.

이렇게 세제개편안이 고개를 들자 야당은 날을 세우고 현 부총리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여기에 보다 못한 여당 일부 의원도 가세해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이를 두고 지난 13일 민주당은 정부의 세제개편안 수정안에 대해 “부자감세 철회 없이 서민·중산층 증세라는 기조가 그대로 유지됐다”며 “조삼모사식 국민 우롱 수정안”이라고 비판했다.

세제개편안 논란…결국 고개 숙인 부총리 
부정적 여론 확산되자 급수정 ‘우왕좌왕’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중산층에 대한 진정성을 보이려면 재벌ㆍ부유층 보호 경제정책을 펴온 현 경제라인에게 ‘원점 재검토’를 맡길 게 아니라 서민과 중산층을 살필 새로운 팀을 기용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서민·중산층에 대한 진정성을 보이려면 재벌 보호를 주도해온 경제부총리와 경제수석 등 현 경제라인에 원점 재검토를 맡기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중산층ㆍ서민 세금폭탄저지 특별위원회’는 이날 장병완 정책위의장 주재로 대책회의를 가진 뒤 기자회견을 열어 “대통령 지시 하루 만에 번갯불에 콩 볶듯이 마련한 수정안은 말 그대로 졸속대책이 아닐 수 없다”고 평가했다.

장 정책위의장은 “서민계층의 세 부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마땅하지만 그에 앞서 대기업·고소득자에 대한 감세기조 철회만이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유일한 방안”이라며 “새 수정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국민들의 계속되는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책위 제2정조위원장인 조원진 의원은 지난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말고 현오석 부총리와 조 수석은 스스로 사퇴해주길 바란다”며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조 의원은 “세계 경제가 어려운데 결국 대한민국이 살아날 수 있는 길은 국민이 우리 정부와 대통령을 믿고 가는 길밖에 없다”며 “그러려면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국민에게 희생을 요청해야 하는데 지금의 경제팀은 그럴 능력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피하기 힘든 경질론

새누리당은 정부의 세제개편 수정안에 대해 “대체로 공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일부 의원들은 지난해 대선 때 공약한 복지정책부터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새누리당 김태흠 원내대변인은 “수정안을 검토한 의원총회에서 앞으로 복지공약을 어떻게 이행할지와 함께 세제개편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정부 수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이후 국민과 야당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더 논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새누리당 심재철 최고위원은 “기초연금, 무상보육, 고교 무상교육을 (현재 재원으로) 다 할 수 있겠느냐”며 “복지를 하려면 세금이 필요하다는 것을 국민에게 솔직히 얘기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내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 실천을 위해 증세 문제를 근본적이고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어 당론을 모으는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새누리당 이혜훈 최고위원은 “현 부총리는 고소득 탈세자에 대한 추징 의지부터 보여달라”고 요청했고, 새누리당 유기준 최고위원은 “정부 경제팀의 현실 인식이 얼마나 안일한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특히 ‘거위털 뽑기’라며 국민들 기분만 상하게 한 조 수석은 즉각 경질 대상”이라고 했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 현 경제팀에 대해 불신을 드러내기는 했지만 공개석상에서 사퇴를 요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조세저항 한숨 돌렸지만…거세지는 압박
야당에 여당까지 날선 비판 “사퇴 촉구”

일부 새누리당 의원들은 현 부총리와 조 수석의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다만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임명된 지 5개월로 한창 일을 해야 할 시점인데 문책론은 적절하지 않다”며 진화에 나섰다. 정부의 세제개편안 원안에 대해 “결과적으로 증세”라고 규정했던 황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나는 아직 거기(경제팀 문책)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여당 내에서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일부에 불과하다. 정부의 세제개편안 수정안이 미흡한 것으로 나타나거나 향후 경제 전망이 어두울 경우 경질론은 더욱 심화될 수 있다.

다만 현 시점에서 청와대는 경제팀 문책을 검토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국무회의에서 교체설이 제기된 현 부총리에 대해 “열심히 해오셨다”며 재신임 한 바 있다. 조 수석 역시 이달 5일 청와대 참모진 개편 당시 교체 명단에서 빠졌다.

그간 경제팀이 박근혜 정부의 국정철학을 공유하며 대통령 최대 공약인 복지 확충을 위한 재원 마련 등을 주도해 온 점도 감안해야 한다.


이와 관련 청와대는 경제팀 교체만이 능사는 아니란 입장을 갖고 있으면서도 경제팀에 대한 정치권 안팎의 평가가 좋지 않다는 사실 역시 간과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세제개편안 수정안의 향방에 따라 경제팀의 입지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경제팀이 세 부담 논란이 촉발된 중산층의 불만을 조기에 효과적으로 달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원점 재검토’
청와대의 고민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현 부총리는 경기고와 서울대 상대를 거친 이른바 ‘KS’ 출신이다. 대학졸업 직전인 1973년 행정고시 14회로 관가에 입문했다. 76년부터는 경제기획원(EPB)에서 일했다.

현 부총리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짜고 거시경제의 키를 쥐고 있던 핵심 부서인 경제기획국(현 경제정책국)에서 잔뼈가 굵은 정보통으로 알려져 있다. 해당 부서는 수많은 장관급을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현 부총리는 주로 경제정책국에서 일했지만 예산실 심의관을 지내기도 했다.

현 부총리는 평소 합리적이고 온화한 스타일로 업무에 있어 매우 신중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책을 짤 때도 기존의 틀을 넘는 창의적인 접근법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관료 생활의 끝자락은 평탄하지 않았다.

문제는 경제정책국장으로 일한 98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고 한국경제가 최대 위기에 처했을 때다. 그러나 5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고, 국고국장으로 전보됐다. 당시 ‘윗선’과 코드가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이 많았다. 현 부총리의 주변에선 합리적이지만 때로는 소신을 굽히지 않은 그의 성격 때문으로 판단했다.


현 부총리는 2000년 세무대학장에 부임했으나 세무대학이 폐교하면서 면직돼 공직을 떠났다가 2001년 9월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특별보좌관에 위촉됐다. 당시 현 내정자는 진 념 전 부총리에게 무보수로 경제 현안 등에 대해 조언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02년부터 약 6년간 한국무역협회의 무역연구소장을 지냈다. 사실상 야인 생활을 하던 현 부총리는 정부 밖에 있었지만 민간-정부의 경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다.

실제 현 부총리는 2003년에서 2006년까지는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으로 활동했다. 또 2004년 FTA 민간자문회의 위원, 2007년 관세청 FTA추진위원회 위원장, 2008년에서 2009년엔 공공기관경영평가단 단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9년 국내 최고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되면서 관가에 한발 더 다가섰다. 그는 임기 3년을 마치고 지난해 1년 연장하면서 4년간 KDI를 최전선에서 이끌어왔다.

특히 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서 유로존의 재정 위기에 따른 글로벌 침체로 이어지는 기간을 KDI 원장으로서 보낸 만큼 정책 이해도가 높다는 평이 많다. 관직을 10년 이상 떠나 있었지만 고차원의 정책감각을 보유하고 현안에도 밝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력 때문이다.

현 부총리 내정 당시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의 마지막 공직이 고작 ‘1급 자리’였기 때문이다. 경제부총리에는 관행적으로 차관이나 다른 부처 장관을 거친 인물이 경제부총리에 임명돼 왔다.

바람 잘 날 없는
박근혜정부 내각

그럼에도 긍정적인 평가가 우세했다. 정부 안팎에선 현 부총리가 경제정책이나 흐름을 짚고 분석하는데 국내에서 최고로 꼽히는 전문가로 이미 정평이 나 있고, 항상 미래를 내다보는 자세와 거시경제에도 밝기 때문에 새 정부의 첫 경제부총리로 손색이 없다는 견해를 내놨다.

우여곡절 5년 만에 경제부총리에 오른 현 부총리는 ‘박근혜노믹스’를 주도할 컨트롤타워로 주목 받았다. 그러나 첫 작품인 세제개편안이 강한 역풍을 맞으면서 휘청거리고 있다. 서민·중산층 세 부담이 늘어난데 대해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박 대통령이 지난 12일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지시했고 13일 세제개편안이 나흘 만에 수정되면서 현 부총리에 대한 경질론이 확산됐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현오석 부총리는?

▲충북 청주(64세)
▲경기고, 서울대 경영학 학사, 행정학 석사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 박사
▲1973 제14회 행정고시 합격
▲1989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
▲1993 대통령 비서실 경제비서관
▲1999 국민경제자문회의 기획조정실 실장
▲2000 재정경제부 세무대학 학장
▲2002 연세대, 고려대 국제학대학원 객원교수
▲2004 FTA 민간자문회의 위원
▲2008 카이스트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2009 제13대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2010 서울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 민간위원
▲2012 세계은행 지식자문위원회 자문위원

 


<기사 속 기사>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의 거취는?

현오석과 함께 사퇴 압박

개편 세제 수정 논란으로 현오석 경제부총리와 함께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사퇴 요구를 받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경제 정책을 총괄하고 있으니 세제 개편안 사태에 대해 두 사람이 함께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조원동 수석은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 차관보, 국무총리실 국정운영실장 등을 두루 거쳐 ‘경제 전문가’로 통하는 인물이다.

조 수석은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거쳐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석ㆍ박사를 취득했다. 행정고시 23회 출신으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 차관보 등을 역임하며 부동산 정책 등 거시경제 정책을 총괄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기획조정분과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기획조정 능력을 인정받아 국무총리실 국정운영실장과 사무차장도 지냈다. 2011년에는 조세연구원장으로 선출돼 경제정책의 밑그림을 그리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왔다는 평가다.

조 수석은 현 부총리와 개인적인 인연이 적지 않다. 현 부총리는 조 수석의 경기고 6년 선배이면서 서울대 경제학과 동문이다. 현 부총리가 행시 14회로 23회인 조 수석자보다 9회 선배로 공직에 진출했으며 둘 다 옛 경제기획원에서 20년 이상 크고 작은 경제정책을 다뤄본 경험이 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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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