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기획> '군 의문사' 애끊는 눈물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8.14 11:55:48
  • 댓글 0개

"심장에 소금 뿌린 고통 속에 삽니다"

[일요시사=사회팀] 그들이 물었다. 왜 10년도 지난 일에 아직도 미련을 두느냐고. 그러나 아들의 싸늘한 주검을 마주한 순간 유족의 시간은 멈췄다. 그들은 아들이 죽던 날의 끔찍한 기억을 수백번 아니 수천번이고 복기하면서 무관심이라는 또 다른 벽과 싸우고 있다.



여름의 찌는 듯한 햇살이 머리를 내리쬐던 지난 6일. 경기도 화성에서 만난 고 강태기 상병의 유족은 담담히 기자를 맞이했다.

장례 못한
유족의 고통

벌써 10년도 지난 일. 하지만 유족의 쓰라린 상처는 그들의 가슴에 10년째 응어리져있었다.

"내 심장을 반으로 갈라 소금을 뿌린데도 자식을 잃은 어미의 슬픔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어요." 강 상병의 어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강 상병은 지난 2003년 1월12일 육군50사단 123연대에서 운전병으로 근무하던 중 의문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이 사건을 조사한 헌병대 정모 중사 등은 강 상병의 죽음을 자살로 결론짓고 수사를 마무리했다.

자살의 원인은 애인의 변심, 그러나 강 상병에게 '애인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헌병대는 '짝사랑하는 여자의 변심'으로 자살 원인을 수정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10년째 평행선을 긋고 있다.

유족 측은 당국의 조사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고인의 아버지는 "아들의 사망 당시 주번 사령,사관,하사의 보고 내용이 하나도 없던 것은 물론 아들의 죽음을 우리가 확인하자 '빨리 부검을 해야 한다'고 말한 군 관계자의 태도에서 이질감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고인의 부검에 입회한 외삼촌의 진술서 등 관련 자료를 보면 유족이 아닌 평범한 사람도 가질만한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강 상병은 목을 매달아 숨진 것으로 돼있는데 외삼촌은 "자살이라면 목 턱부터 귀 밑으로 밧줄 자국이 있어야 하지만 뒷머리(뒷 목덜미)에 밧줄 자국이 선명한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헌병대가 자살의 증거로 제시한 나일론 밧줄 역시 매듭이 엉성해 누군가 사고 후 자살로 위장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설명했다.

또 외삼촌은 "부검 당시 위에서 확인된 내용물이 사건 당일 부대가 제공한 점심식사 메뉴와 달랐다"며 사망시간과 사건 당일 고인의 동선 일부가 조작됐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제3의 의료기관을 통해 감정한 강 상병의 경추 상태는 그가 자살자가 아님을 암시하고 있다. 서울정형외과 등 복수 의료기관이 X-RAY를 통해 판독한 고인의 목에서는 '1번 경추 골절' 및 '황인대' 파열이 발견됐다.

감정서에 따르면 목을 매 자살할 시 (심한) 추락으로 인한 견인력이 작용하지 않으면 골절 또는 황인대 파열의 가능성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특정 조건 하에 골절이 발생한다고 하여도 스스로 목을 매면 '1번 경추'가 아닌 '2번 경추'가 골절되므로 고인은 자살 후의 일반적인 외상을 보이고 있지 않은 것으로 진단됐다.

오히려 담당의는 "(고인에게) 외부로부터의 급작스런 충격이 가해져 두부(머리)에 황인대 파열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소견을 덧붙였다. 황인대 파열은 사고 후 2~3시간 내외의 신속한 수술만 있어도 생존할 수 있는 증상으로 의사는 설명했다.

아울러 기자가 확인한 돌연사 혹은 타살의 증거로는 ▲생전 고인의 유족, 선후임, 지휘관 등 모두가 어떠한 자살 징후나 이상 징후를 발견하지 못한 점 ▲고인과 함께 군생활을 했던 한 병사가 "그곳에서 무서운 일이 일어났다"며 "시체를 옮긴 뒤 자살로 조작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던 점 ▲유일한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 '짝사랑하는 여자의 변심'을 조사기관인 헌병대 스스로가 오판했다고 인정한 점 ▲사체가 의사(縊死)했을 시 동반되는 배변이나 사정이 없었다는 점 등이다.

그러나 헌병대는 "타살 가능성 및 안전사고의 가능성이 없음으로 자살로 수사를 종결한다"며 유족 측이 제기한 의혹을 일축했다. "자살할 이유가 없었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정확한 자살 경위는) 태기(고인)와 신만이 알고 있다"는 답변으로 뭉뚱그렸다.

타살과 자살
명예가 달렸다

강 상병의 시신은 지금 국군수도 병원 영안실에 보관돼 있다. 정식 명칭은 영안실이지만, 실은 차가운 냉동고다. 이 어두컴컴한 냉동고에서 강 상병의 육신은 오늘도 진실이 밝혀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강 상병처럼 화장도 못한 채 냉동고에 보관돼 있는 시신은 모두 23구. 그마저도 진실을 밝힌다며 부검을 해 온전히 수습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외에도 모두 146기의 유골이 매장을 거부한 채 이승을 떠돌고 있다.

강 상병의 어머니는 "아들을 보러 올해도 네 번을 갔다 왔는데 아직도 그곳에 가면 숨부터 막히더라"며 "자식의 부검 사진을 받아든 내가 어떻게 맨 정신으로 10년을 버텨왔는지 모르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강 상병 사건처럼 과거로부터 군내 사망사고가 자살로 둔갑한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군 의문사 의혹이 점화된 도화선이자 산 역사로 불리는 '김훈 중위 사망사건'도 어느덧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15년을 맞았다.

사고사를 자살로?…10년째 뒷짐 진 국방부
사인 두고 유가족 제기한 의문점 수두룩
냉동고 보관 시신 23구…매장도 못한 유골 146기

그동안 국방부는 "김훈 중위의 사인을 자살로 단정할 수 없다"는 입법,사법,행정부의 판단에도 끝내 '버티기'로 일관했다. 이에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해 8월 "김 중위가 자살했다고 볼 수 없음으로 순직처리를 해야한다"는 권고를 냈다.

하지만 국방부는 "자체 보강 조사를 하겠다"고 밝힌 뒤 이면으로는 김 중위의 자살 증거를 모으는 등 "김 중위가 자살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지난해 9월 국방부 조사본부가 작성한 '육군 중위 김훈 사망 재조사 추진경과'에 따르면 군은 "(김훈 중위의) 정상적인 판단 능력이 상당히 저하된 상태 여부"에만 조사 초점을 맞췄다. 또 정신과전문의, 심리학자를 관련 전문가로 섭외, 사실상 '정신질환에 의한 자살'로 사건을 종결시켰다.

국방부는 김훈 중위 사건이 일어난 1998년 2월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김 중위가 타살됐다"는 의미 있는 증거들을 모두 무시했다. 그가 사망한 1998년 2월24일, 국방부가 수사 시작도 전에 "김 중위가 자살했다"고 브리핑한 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죽음이 아무 의심도 없이 땅 속에 묻혔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구슬픈 비가 내리던 7월의 주말. 서울 인근 한 커피숍에서 만난 김 중위의 아버지 김척 예비역 중장은 산더미 같은 자료를 일일이 설명하며, 국방부의 행태를 강력히 비판했다.

앞서 복수 언론에 수십차례 보도된 것처럼 김 중위는 누군가에 의해 타살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범인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 전 중장은 "내 아들을 죽인 범인을 찾는 것보다 잘못된 진실을 바로잡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고인에 대한 순직처리와 책임자 처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못박았다.

일부 잘못 알려진 것과 달리 김 전 중장은 아들의 순직처리와 관련한 국방부의 어떠한 통보도 받지 못했다. 국방부는 지난 3월 "김 중위를 순직처리 하겠다"고 브리핑했다가 돌연 말을 바꿨는데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김 전 중장에게 돌아갔다.

김 전 중장은 "그 일이 있고 나서 엄청 많은 사람들의 축하 전화를 받았는데 알고 보니 순직처리를 보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며 "국방부가 또다시 유족에게 상처를 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족은 애간장
국방부는 모르쇠

지난 7월5일 민주당 김광진 의원이 주관한 '군에서 의무복무 중 사망한 군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정책토론회' 자료집을 보면 승장래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은 지난해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대법원이 김 중위의 자살을 인정했다"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이어 승 전 본부장은 "법률 전문가들도 (김 중위의) 자살을 인정했다"며 김 중위의 순직처리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승 전 본부장과 국방부 조사본부는 김 중위의 순직을 군내에서 가장 끈질기게 반대하는 세력으로 꼽힌다.

이와 함께 김 중위 사망 당시 JSA 경비중대장으로 재직한 김익현 대위는 ▲자신의 지휘 부대가 북한과 긴밀히 내통했고 ▲최전방에서 부하가 사망했으며 ▲고인이 된 부하의 명예를 심각히 훼손했음에도 일체의 징벌 없이 최근 대령까지 진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과거 김 대위(대령)와 함께 JSA에서 근무했던 모 병사의 진술서에 따르면 김 대위는 음주가 금지된 판문점에서 만취 상태로 목격되는 등 지휘관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김훈 사건'과 함께 김 대위는 오히려 탄탄대로를 걸었다. 군 의문사 책임자가 오히려 더 인정받고 있는 꼴이다.  

김 전 중장은 "4개 국가기관은 물론 대한민국의 99%가 '자살이 아님'을 알고 있는데 오직 국방부 일부 책임자들만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며 "이제 다시는 군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 '자살이냐 아니면 오발이냐'고 묻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훈 중위 순직 15년째 모르쇠
책임자 '떵떵' 유가족 '피눈물'

기자가 확인한 '김훈 중위 부하 병사 진술서'에 따르면 사건 직후 병사들의 증언이 자살과 타살로 서로 엇갈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진술을 자살로 조율하는 건 수사관들. 한 병사는 군에서 원하는 진술을 해주는 대가로 용돈을 받았다는 진술을 하기도 했다.

진술을 받아내기 위한 수사 과정에서의 강압적인 방법도 눈길을 끌었다. 폭언이나 폭력은 기본이고, 동료 부대원들을 포섭해 따돌리기까지 하니 "정말 죽고 싶었다" "내가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죄책감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한 번 고민이 시작되면 결국 다른 동료들의 진술에 맞춰 자신의 진술을 번복하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앞서 언급한 '강 상병 사건' 역시 핵심 증인들이 갑자기 말을 바꾸며 침묵을 선택해 사건이 장기화된 케이스다.

그리고 이 같은 비극의 궁극적인 원인은 군이 초동수사를 소홀히 한 채 사건의 초점을 자살로 몰고 가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의문사 사건'의 경우 처음부터 군 당국이 타살을 의심하고, 사건을 면밀히 수사했었더라면 유족이 피눈물을 흘린 시간은 진실을 규명하는데 걸린 26년이란 시간보다 훨씬 짧았을 것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이승원 일병 사건'도 마찬가지. 어머니의 15년에 걸친 끈질긴 싸움이 아니었다면 '이 일병'을 향한 선임병들의 구타와 가혹행위, 성추행 등의 범죄행위는 '자살'이란 은막 속에 그대로 감춰졌을 것이다.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에 앞장서고 있는 고상만 김광진의원실 보좌관은 의문사 문제 해결을 위한 아주 간단하면서도 과감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병원의 의료사고처럼 군 사망사고의 입증 책임을 군 당국에게 맡기자는 것이다. 즉 "자살이 아니다"라는 논리적 정황을 유족이 아닌 군이 직접 입증하란 것이다.

고 보좌관은 "신체검사 때 적격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 군대에서 죽은 채로 나오면 그 책임은 당연히 국가에 있는 것"이라며 "유족이 군의 조사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민,관,군이 합동으로 조사단을 편성, 재조사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의문사 해결
입증을 군에게

그리고 이를 위해 선행돼야 할 건 바로 군 사망자에 대한 예우개선이다. 자살과 타살에 대한 예우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진실규명 역시 어렵기 때문.

김광진 의원실이 현재 입법을 검토 중인 '의무 복무 중 사망 군인에 관한 특별법(가안)'을 보면 "의무 복무중인 사병, 그리고 마찬가지로 의무 복무 기간에 있는 부사관 및 장교에 대해 의무 복무 중 사망했다면 '국가유공자법'에 따라 순직 처리된 경우를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사망 군인에 대해서 특별법에 의거, 현행 국가유공자법에서 부여하는 보훈 혜택으로 똑같이 예우한다"는 조항이 있다.

법안을 관통한 논리는 명쾌하다. 국가가 필요해 데려갔으니 무사히 나오도록 책임을 지는 것도 결국 국가의 몫이란 것.

이 특별법안은 본래 9월 정기국회서 입법이 예고됐으나 여야가 대치중인 관계로 조기 처리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하지만 입법 취지가 상임위인 국방위 소속 의원들의 고른 호응을 얻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긴 전쟁을 치른169명의 유족들이 한시름 놓을 수 있는 날이 오길 그려본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척 장군의 공개 편지

국군 통수권자이신 대통령님께 요청합니다.

1998년 2월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241GP에서 사망한 김훈 중위 아버지입니다.

저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통령께서 김훈 중위 사건을 포함한 군 의문사 사건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시고, 적극적으로 조치해 주실 것을 요청 드립니다. 

그 이유는, 군을 기피하는 사회에서 국가와 군을 위해서 충성을 다한 젊은 장병들이 군에서 사망하였을 경우, 국가가 관리를 소홀히 하고, 형식적인 수사 등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군에서 사망한 장병들을 개인이 나약하여 군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군부적격자로 낙인을 찍어 자살자로 처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군에서는 3일에 1명씩 자살자로 처리되고, 그 인원은 1년이면 100여명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매년 수백명의 유족들이 피눈물을 뿌리면서 슬픔과 고통, 불명예 속에 마지못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국민들을 군의문사 유족이라고 합니다.

(이런 유족들이 있다는 건) 많은 국민들이 매우 불행한 상태에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김훈 사건에서 보듯이 지난 15년 동안 입법부인 국회국방위원회, 사법부인 대법원, 그리고 행정부인 대통령 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그리고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조사한 결과 4대 국가기관에서는 군의 수사가 잘못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김훈 중위는 자살자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타살의 증거를 갖고 있지만 범인을 지목할 수 없어 진상규명불능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국방부는 발 벗고 나서서 전우의 명예와 국민의 인권을 찾아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헌법에 명시된 기본사명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부당하게 일체 근거도 없이 자살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시정명령을 내렸는데 이것을 항거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하는 것은 국방부가 국민의 신뢰를 스스로 저버리는 것입니다.

저는 국방장관에게 12번이나 내용증명을 보내고 올바른 재수사와 사건조작 관련자 처벌을 요구했습니다.

국가가 의무만 강요하고, 국민의 권리를 지켜주지 않는다면 누가 국가를 따르겠습니까?

대통령님께서는 이런 군의문사 사건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적극적으로 조치해주시면 국민의 행복, 국가의 안보력이 크게 증진 될 수 있습니다. <석>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