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기획> '군 의문사' 애끊는 눈물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8.14 11:55:48
  • 댓글 0개

"심장에 소금 뿌린 고통 속에 삽니다"

[일요시사=사회팀] 그들이 물었다. 왜 10년도 지난 일에 아직도 미련을 두느냐고. 그러나 아들의 싸늘한 주검을 마주한 순간 유족의 시간은 멈췄다. 그들은 아들이 죽던 날의 끔찍한 기억을 수백번 아니 수천번이고 복기하면서 무관심이라는 또 다른 벽과 싸우고 있다.



여름의 찌는 듯한 햇살이 머리를 내리쬐던 지난 6일. 경기도 화성에서 만난 고 강태기 상병의 유족은 담담히 기자를 맞이했다.

장례 못한
유족의 고통

벌써 10년도 지난 일. 하지만 유족의 쓰라린 상처는 그들의 가슴에 10년째 응어리져있었다.

"내 심장을 반으로 갈라 소금을 뿌린데도 자식을 잃은 어미의 슬픔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어요." 강 상병의 어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강 상병은 지난 2003년 1월12일 육군50사단 123연대에서 운전병으로 근무하던 중 의문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이 사건을 조사한 헌병대 정모 중사 등은 강 상병의 죽음을 자살로 결론짓고 수사를 마무리했다.


자살의 원인은 애인의 변심, 그러나 강 상병에게 '애인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헌병대는 '짝사랑하는 여자의 변심'으로 자살 원인을 수정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10년째 평행선을 긋고 있다.

유족 측은 당국의 조사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고인의 아버지는 "아들의 사망 당시 주번 사령,사관,하사의 보고 내용이 하나도 없던 것은 물론 아들의 죽음을 우리가 확인하자 '빨리 부검을 해야 한다'고 말한 군 관계자의 태도에서 이질감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고인의 부검에 입회한 외삼촌의 진술서 등 관련 자료를 보면 유족이 아닌 평범한 사람도 가질만한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강 상병은 목을 매달아 숨진 것으로 돼있는데 외삼촌은 "자살이라면 목 턱부터 귀 밑으로 밧줄 자국이 있어야 하지만 뒷머리(뒷 목덜미)에 밧줄 자국이 선명한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헌병대가 자살의 증거로 제시한 나일론 밧줄 역시 매듭이 엉성해 누군가 사고 후 자살로 위장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설명했다.

또 외삼촌은 "부검 당시 위에서 확인된 내용물이 사건 당일 부대가 제공한 점심식사 메뉴와 달랐다"며 사망시간과 사건 당일 고인의 동선 일부가 조작됐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제3의 의료기관을 통해 감정한 강 상병의 경추 상태는 그가 자살자가 아님을 암시하고 있다. 서울정형외과 등 복수 의료기관이 X-RAY를 통해 판독한 고인의 목에서는 '1번 경추 골절' 및 '황인대' 파열이 발견됐다.

감정서에 따르면 목을 매 자살할 시 (심한) 추락으로 인한 견인력이 작용하지 않으면 골절 또는 황인대 파열의 가능성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특정 조건 하에 골절이 발생한다고 하여도 스스로 목을 매면 '1번 경추'가 아닌 '2번 경추'가 골절되므로 고인은 자살 후의 일반적인 외상을 보이고 있지 않은 것으로 진단됐다.


오히려 담당의는 "(고인에게) 외부로부터의 급작스런 충격이 가해져 두부(머리)에 황인대 파열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소견을 덧붙였다. 황인대 파열은 사고 후 2~3시간 내외의 신속한 수술만 있어도 생존할 수 있는 증상으로 의사는 설명했다.

아울러 기자가 확인한 돌연사 혹은 타살의 증거로는 ▲생전 고인의 유족, 선후임, 지휘관 등 모두가 어떠한 자살 징후나 이상 징후를 발견하지 못한 점 ▲고인과 함께 군생활을 했던 한 병사가 "그곳에서 무서운 일이 일어났다"며 "시체를 옮긴 뒤 자살로 조작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던 점 ▲유일한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 '짝사랑하는 여자의 변심'을 조사기관인 헌병대 스스로가 오판했다고 인정한 점 ▲사체가 의사(縊死)했을 시 동반되는 배변이나 사정이 없었다는 점 등이다.

그러나 헌병대는 "타살 가능성 및 안전사고의 가능성이 없음으로 자살로 수사를 종결한다"며 유족 측이 제기한 의혹을 일축했다. "자살할 이유가 없었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정확한 자살 경위는) 태기(고인)와 신만이 알고 있다"는 답변으로 뭉뚱그렸다.

타살과 자살
명예가 달렸다

강 상병의 시신은 지금 국군수도 병원 영안실에 보관돼 있다. 정식 명칭은 영안실이지만, 실은 차가운 냉동고다. 이 어두컴컴한 냉동고에서 강 상병의 육신은 오늘도 진실이 밝혀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강 상병처럼 화장도 못한 채 냉동고에 보관돼 있는 시신은 모두 23구. 그마저도 진실을 밝힌다며 부검을 해 온전히 수습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외에도 모두 146기의 유골이 매장을 거부한 채 이승을 떠돌고 있다.

강 상병의 어머니는 "아들을 보러 올해도 네 번을 갔다 왔는데 아직도 그곳에 가면 숨부터 막히더라"며 "자식의 부검 사진을 받아든 내가 어떻게 맨 정신으로 10년을 버텨왔는지 모르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강 상병 사건처럼 과거로부터 군내 사망사고가 자살로 둔갑한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군 의문사 의혹이 점화된 도화선이자 산 역사로 불리는 '김훈 중위 사망사건'도 어느덧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15년을 맞았다.

사고사를 자살로?…10년째 뒷짐 진 국방부
사인 두고 유가족 제기한 의문점 수두룩
냉동고 보관 시신 23구…매장도 못한 유골 146기

그동안 국방부는 "김훈 중위의 사인을 자살로 단정할 수 없다"는 입법,사법,행정부의 판단에도 끝내 '버티기'로 일관했다. 이에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해 8월 "김 중위가 자살했다고 볼 수 없음으로 순직처리를 해야한다"는 권고를 냈다.

하지만 국방부는 "자체 보강 조사를 하겠다"고 밝힌 뒤 이면으로는 김 중위의 자살 증거를 모으는 등 "김 중위가 자살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지난해 9월 국방부 조사본부가 작성한 '육군 중위 김훈 사망 재조사 추진경과'에 따르면 군은 "(김훈 중위의) 정상적인 판단 능력이 상당히 저하된 상태 여부"에만 조사 초점을 맞췄다. 또 정신과전문의, 심리학자를 관련 전문가로 섭외, 사실상 '정신질환에 의한 자살'로 사건을 종결시켰다.


국방부는 김훈 중위 사건이 일어난 1998년 2월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김 중위가 타살됐다"는 의미 있는 증거들을 모두 무시했다. 그가 사망한 1998년 2월24일, 국방부가 수사 시작도 전에 "김 중위가 자살했다"고 브리핑한 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죽음이 아무 의심도 없이 땅 속에 묻혔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구슬픈 비가 내리던 7월의 주말. 서울 인근 한 커피숍에서 만난 김 중위의 아버지 김척 예비역 중장은 산더미 같은 자료를 일일이 설명하며, 국방부의 행태를 강력히 비판했다.

앞서 복수 언론에 수십차례 보도된 것처럼 김 중위는 누군가에 의해 타살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범인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 전 중장은 "내 아들을 죽인 범인을 찾는 것보다 잘못된 진실을 바로잡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고인에 대한 순직처리와 책임자 처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못박았다.

일부 잘못 알려진 것과 달리 김 전 중장은 아들의 순직처리와 관련한 국방부의 어떠한 통보도 받지 못했다. 국방부는 지난 3월 "김 중위를 순직처리 하겠다"고 브리핑했다가 돌연 말을 바꿨는데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김 전 중장에게 돌아갔다.

김 전 중장은 "그 일이 있고 나서 엄청 많은 사람들의 축하 전화를 받았는데 알고 보니 순직처리를 보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며 "국방부가 또다시 유족에게 상처를 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족은 애간장
국방부는 모르쇠


지난 7월5일 민주당 김광진 의원이 주관한 '군에서 의무복무 중 사망한 군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정책토론회' 자료집을 보면 승장래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은 지난해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대법원이 김 중위의 자살을 인정했다"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이어 승 전 본부장은 "법률 전문가들도 (김 중위의) 자살을 인정했다"며 김 중위의 순직처리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승 전 본부장과 국방부 조사본부는 김 중위의 순직을 군내에서 가장 끈질기게 반대하는 세력으로 꼽힌다.

이와 함께 김 중위 사망 당시 JSA 경비중대장으로 재직한 김익현 대위는 ▲자신의 지휘 부대가 북한과 긴밀히 내통했고 ▲최전방에서 부하가 사망했으며 ▲고인이 된 부하의 명예를 심각히 훼손했음에도 일체의 징벌 없이 최근 대령까지 진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과거 김 대위(대령)와 함께 JSA에서 근무했던 모 병사의 진술서에 따르면 김 대위는 음주가 금지된 판문점에서 만취 상태로 목격되는 등 지휘관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김훈 사건'과 함께 김 대위는 오히려 탄탄대로를 걸었다. 군 의문사 책임자가 오히려 더 인정받고 있는 꼴이다.  

김 전 중장은 "4개 국가기관은 물론 대한민국의 99%가 '자살이 아님'을 알고 있는데 오직 국방부 일부 책임자들만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며 "이제 다시는 군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 '자살이냐 아니면 오발이냐'고 묻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훈 중위 순직 15년째 모르쇠
책임자 '떵떵' 유가족 '피눈물'

기자가 확인한 '김훈 중위 부하 병사 진술서'에 따르면 사건 직후 병사들의 증언이 자살과 타살로 서로 엇갈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진술을 자살로 조율하는 건 수사관들. 한 병사는 군에서 원하는 진술을 해주는 대가로 용돈을 받았다는 진술을 하기도 했다.

진술을 받아내기 위한 수사 과정에서의 강압적인 방법도 눈길을 끌었다. 폭언이나 폭력은 기본이고, 동료 부대원들을 포섭해 따돌리기까지 하니 "정말 죽고 싶었다" "내가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죄책감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한 번 고민이 시작되면 결국 다른 동료들의 진술에 맞춰 자신의 진술을 번복하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앞서 언급한 '강 상병 사건' 역시 핵심 증인들이 갑자기 말을 바꾸며 침묵을 선택해 사건이 장기화된 케이스다.

그리고 이 같은 비극의 궁극적인 원인은 군이 초동수사를 소홀히 한 채 사건의 초점을 자살로 몰고 가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의문사 사건'의 경우 처음부터 군 당국이 타살을 의심하고, 사건을 면밀히 수사했었더라면 유족이 피눈물을 흘린 시간은 진실을 규명하는데 걸린 26년이란 시간보다 훨씬 짧았을 것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이승원 일병 사건'도 마찬가지. 어머니의 15년에 걸친 끈질긴 싸움이 아니었다면 '이 일병'을 향한 선임병들의 구타와 가혹행위, 성추행 등의 범죄행위는 '자살'이란 은막 속에 그대로 감춰졌을 것이다.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에 앞장서고 있는 고상만 김광진의원실 보좌관은 의문사 문제 해결을 위한 아주 간단하면서도 과감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병원의 의료사고처럼 군 사망사고의 입증 책임을 군 당국에게 맡기자는 것이다. 즉 "자살이 아니다"라는 논리적 정황을 유족이 아닌 군이 직접 입증하란 것이다.

고 보좌관은 "신체검사 때 적격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 군대에서 죽은 채로 나오면 그 책임은 당연히 국가에 있는 것"이라며 "유족이 군의 조사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민,관,군이 합동으로 조사단을 편성, 재조사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의문사 해결
입증을 군에게

그리고 이를 위해 선행돼야 할 건 바로 군 사망자에 대한 예우개선이다. 자살과 타살에 대한 예우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진실규명 역시 어렵기 때문.

김광진 의원실이 현재 입법을 검토 중인 '의무 복무 중 사망 군인에 관한 특별법(가안)'을 보면 "의무 복무중인 사병, 그리고 마찬가지로 의무 복무 기간에 있는 부사관 및 장교에 대해 의무 복무 중 사망했다면 '국가유공자법'에 따라 순직 처리된 경우를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사망 군인에 대해서 특별법에 의거, 현행 국가유공자법에서 부여하는 보훈 혜택으로 똑같이 예우한다"는 조항이 있다.

법안을 관통한 논리는 명쾌하다. 국가가 필요해 데려갔으니 무사히 나오도록 책임을 지는 것도 결국 국가의 몫이란 것.

이 특별법안은 본래 9월 정기국회서 입법이 예고됐으나 여야가 대치중인 관계로 조기 처리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하지만 입법 취지가 상임위인 국방위 소속 의원들의 고른 호응을 얻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긴 전쟁을 치른169명의 유족들이 한시름 놓을 수 있는 날이 오길 그려본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척 장군의 공개 편지

국군 통수권자이신 대통령님께 요청합니다.

1998년 2월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241GP에서 사망한 김훈 중위 아버지입니다.

저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통령께서 김훈 중위 사건을 포함한 군 의문사 사건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시고, 적극적으로 조치해 주실 것을 요청 드립니다. 

그 이유는, 군을 기피하는 사회에서 국가와 군을 위해서 충성을 다한 젊은 장병들이 군에서 사망하였을 경우, 국가가 관리를 소홀히 하고, 형식적인 수사 등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군에서 사망한 장병들을 개인이 나약하여 군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군부적격자로 낙인을 찍어 자살자로 처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군에서는 3일에 1명씩 자살자로 처리되고, 그 인원은 1년이면 100여명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매년 수백명의 유족들이 피눈물을 뿌리면서 슬픔과 고통, 불명예 속에 마지못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국민들을 군의문사 유족이라고 합니다.

(이런 유족들이 있다는 건) 많은 국민들이 매우 불행한 상태에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김훈 사건에서 보듯이 지난 15년 동안 입법부인 국회국방위원회, 사법부인 대법원, 그리고 행정부인 대통령 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그리고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조사한 결과 4대 국가기관에서는 군의 수사가 잘못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김훈 중위는 자살자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타살의 증거를 갖고 있지만 범인을 지목할 수 없어 진상규명불능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국방부는 발 벗고 나서서 전우의 명예와 국민의 인권을 찾아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헌법에 명시된 기본사명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부당하게 일체 근거도 없이 자살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시정명령을 내렸는데 이것을 항거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하는 것은 국방부가 국민의 신뢰를 스스로 저버리는 것입니다.

저는 국방장관에게 12번이나 내용증명을 보내고 올바른 재수사와 사건조작 관련자 처벌을 요구했습니다.

국가가 의무만 강요하고, 국민의 권리를 지켜주지 않는다면 누가 국가를 따르겠습니까?

대통령님께서는 이런 군의문사 사건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적극적으로 조치해주시면 국민의 행복, 국가의 안보력이 크게 증진 될 수 있습니다. <석>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에너지 정책은 범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발언으로 이재명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이 윤곽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어른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대통령실은 “국회 기후위기특위에서 활동하는 등 미래 환경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3선 국회의원”이라고 소개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성환 의원을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22대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위원장 한정애, 민주당) 위원으로 활동하며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대선공약 대통령실은 그가 “‘기후 위기는 모두의 생존 위기’라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잘 이해하고 그동안의 입법 경험을 바탕으로 환경문제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 김 후보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이번 김 후보자의 지명으로 이재명정부의 환경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김 후보자는 지난 2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나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모든 에너지 체계를 바꾸고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체계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그는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기료가 오른다’는 우려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균등화발전비용(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가장 싼 전원은 이미 풍력과 태양광”이라며 “다만 아직 한국에선 여러 기회 비용, 시간 비용, 금융 비용이 쌓여 상대적으로 비쌀 뿐이다. 실제 요금이 오를 일은 없다. 오히려 그런 식의 접근이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원전에 대해서는 “각 나라 특성에 따라 원전을 쓰는 나라가 있는데 한국도 탈원전을 바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주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를 쓰고 원전을 보조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이 (이재명정부의) 탈탄소 정책 기조”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으로 신설 예정인 기후에너지부 장관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기후에너지부는 분리돼있는 기후와 에너지 관련 부처 업무를 통합한 조직이다. 그는 “기후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지 빠른 시일 내로 큰 방향을 잡겠다”며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조직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필요”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에너지 ‘전환’을 예고하면서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떠오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내세운 바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태양광 사업이 크게 대두돼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문정부는 출범하면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기 위해 설비를 확충하기로 했다. 태양광, 풍력발전소 등이다. 당시 내용대로면 총 110조원에 이르는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는 국가 예산과 공기업, 민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정부 임기 내내 전국 단위로 태양광 사업을 위한 지원금이 뿌려졌다. 당시 문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탈원전 로드맵을 동시에 진행했다. 일부 원전이 영구적으로 정지됐고 짓고 있던 원전 공사가 중단됐다. 단계적 원전 감축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온 잡음이다. 특히 태양광 사업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은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문정부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국가 주력 사업이었던 만큼 정권이 바뀐 이후 새 정부의 표적이 된 상황에서 실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천문학적 예산 투입 윤석열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을 진행했다. 윤정부 국무조정실은 일부 표본만 조사했는데도 불구하고 2000억원이 넘는 돈이 불법으로 사용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은 전국 12개 지자체와 한국전력, 한국에너지공단을 대상으로 ‘전력산업 기반기금 사업’ 운영 실태에 대한 합동 점검을 벌인 결과 총 2267건(2616억원)의 위법·부당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금은 산업자원통상부(이하 산업부)가 전기 요금의 3.7%를 징수해 조성한 돈으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지원과 보급에 주로 사용됐다. 5년간 투입된 금액은 12조원에 이른다. 1차 조사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서 부적절한 대출과 보조금 부당 집행, 회계 부실 등이 적발됐다. 태양광 사업의 경우 점검 대상의 17%인 1129건에서 1847억원의 위법 대출 등이 확인됐다. 2차 점검에서는 적발 금액이 2배로 늘었다. 국무조정실은 2019~2021년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쓰인 금융지원사업(1조1325억원) 내역과 2017~2021년 보조금 지원 규모가 컸던 25개 지자체의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금융지원 사업에서 4898억원,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보조금 사업에서 574억원, 전력 분야 연구개발 지원사업에서 266억원, 기타 전력기금 사업에서 86억원의 부정 집행 사례가 나타났다. 당시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지원금 대부분은 태양광 사업에 쓰였다”며 “가장 규모가 컸던 부정 금융지원 사업 사례 중 99%는 태양광 사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태양광 업자들은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불법 대출을 받았고 가짜 세금계산서로 공사비를 부풀려 지원금을 타냈다. 감사원 조사로 검찰 수사까지 대출을 받은 뒤 세금계산서를 취소, 축소하는 등 탈루가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가짜로 버섯 재배 시설이나 곤충 사육 시설, 축사 등 농림축산업 시설을 만들어 놓고 신재생 시설을 짓겠다고 대출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농지에 신재생 시설을 지을 때는 용도변경 등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지 않고 생산한 전력을 팔 때 받을 수 있는 보조금 한도도 커진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한 마을회는 마을 창고를 짓겠다며 전력기금에서 돈을 받아 부지를 사들였지만 실제 창고는 짓지 않았고 부지는 마을회장이 6촌에게 되팔았다. 지방자치단체의 문제도 드러났다. 한 군은 타낸 보조금을 다 쓰지 못하고 약 24억원이 남자 이를 다른 계좌로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한 시는 보조금을 빼돌려 관용차를 사기도 했다. 감사원 조사도 이뤄졌다. 감사원은 2023년 11월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목표와 이행, 인프라 구축, 관리 등 3개 분야로 나눠 추진 과정과 집행 전반을 들여다봤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7년 신재생 발전 목표를 상향하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검토했지만 막상 후속 조치 이행에는 소홀했다. 감사원은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내려온 목표에 따라 무리한 계획이라도 수립해야 했다는 이유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도 면밀한 검토 없이 강행되고 짧은 기간 내 일관성 없이 변경됨으로써 정책 혼선과 신뢰성 저하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서 전반적 점검 8000억 넘는 예산 줄줄 샜다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만큼 정부 부처가 이를 맞추기 위해 과도하게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문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야기될 수 있는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감췄다는 지적도 나왔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부는 문정부의 국정 과제대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릴 경우 2030년까지 전기요금을 40% 가까이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시 청와대의 압박에 12년 동안 10.9%만 오를 것이라고 국민 부담을 축소했다. 태양광 사업의 여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새만금 태양광 발전사업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1월 군산시청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군산시 태양광 발전사업 수주 과정에서 뒷돈이 오간 정황이 포착됐고 이를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당시 군산시장은 군산시가 1000억원 규모의 태양광 사업을 추진할 때 자신의 고교 동문이 대표로 있는 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업체가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금융사가 제시한 연대보증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계약 체결을 지시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앞서 검찰은 새만금 태양광 사업을 주도한 회사 대표를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태양광 발전사업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에게 로비를 해주겠다며 뒷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진술로 비리 의혹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핵심 수사 대상에 올랐던 건설사 대표가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도 일어났다. 관련 시장은 반응 오는 중 이 대통령이 기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김 후보자가 재생에너지를 언급하면서 관련 시장이 다시 들썩이는 모양새다. 실제 태양광 관련 주가가 오르는 등 주식시장에는 벌써부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윤정부는 문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통째로 부정하다시피 했다. 반대로 문정부의 정책을 다시 끄집어낸 이정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