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로 새는 눈먼 나랏돈?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8.05 14: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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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고 축내는 '버스왕' 꼬리 잡힐까

[일요시사=사회팀] '국민의 발'인 버스,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버스 회사에는 공공성을 담보로 막대한 정부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그러나 투입된 예산이 각 업체별로 어떻게 집행되고 있는지 제대로 감시하는 곳은 하나도 없다. 정부의 관리·감독이 무뎌진 사이 일부 버스 회사들이 '눈먼 나랏돈'을 불법 전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사정당국이 국내 굴지의 운송업체 A사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첩보가 입수됐다. A사의 모 회장은 '버스왕'으로 불리는 버스재벌로 수천대의 버스 및 다수의 부동산을 소유한 대부호로 알려져 있다.

아시아 버스왕
지원금만 꿀꺽?

경기 외곽에서 만난 A사의 옛 직원 ㄱ씨는 과거의 답답한 기억 때문인지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외부로 알려진 것과 A사의 참 모습은 다르다"며 일례로 '버스 인센티브 제도'를 끄집어냈다.

버스 인센티브 제도란 경기도가 대중교통 선진화 등을 명목으로 지난 2005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제도. 경기도내 각 운송업체는 '경영 및 서비스 평가'에 따라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씩 인센티브를 챙겨가고 있다.

ㄱ씨는 이 인센티브 제도를 A사가 악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A사는 모두 15개의 운송업체를 계열사로 두고 있는데 이들이 챙겨가는 인센티브는 막대하지만 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제대로 아는 이가 거의 없다고 했다.


ㄱ씨는 버스업체에 대한 지원이 정부의 경영 및 '서비스' 평가에 따라 이뤄지므로 이 돈을 버스 회사의 모든 구성원과 "공정하게 배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기자가 확인한 평가 항목에는 ▲차내 서비스 수준 ▲교통사고 발생 및 위험지수 ▲운행횟수 준수율 등 버스 기사의 직무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항목들이 있었다.

경기도 내 또 다른 버스업체에서 근무 중인 ㄴ씨는 자신의 회사로부터 이 인센티브 명목으로 "별도의 상여금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ㄴ씨가 있는 회사는 경기 외곽에서 시내버스 약 40대를 운행하는 작은 업체다.

ㄴ씨는 "상여금을 돌려받을 때 도에서 (지원금을)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써야한다고 말해 현금으로 돌려준다란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같은 지원금을 두 업체가 다르게 쓰고 있는 셈이다.

감점 피하려 사고책임 기사에
직원 길들이기로 악용 의혹

그렇다면 A사는 정부로부터 받은 지원금을 어떻게 쓰고 있을까.

ㄱ씨에 따르면 A사는 이 지원금을 '직원 길들이기'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ㄱ씨는 "나 그만 둘 때까지 일반 직원들은 인센티브를 구경도 못해봤다"면서 "말 잘 듣는 팀장급들에게만 금반지를 좀 해주고, 자체 사보에는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썼다고 홍보하는 등 국가 세금을 마치 선심 쓰듯 전횡했다"고 폭로했다.

몇 년 전 ㄱ씨는 정부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A사가 각종 위법적 근무를 강요하자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버스 회사에 만연한 저임금·중노동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A사의 유력 계열사인 모 운수업체 기사들은 회사가 정한 운행횟수를 맞추기 위해 하루 15∼18시간의 근무를 2∼8일 연속으로 했다. 이런 중노동으로 인한 과로와 수면부족은 졸음운전으로 이어져 잦은 사고의 원인이 됐다.

그러나 업체는 산재 및 공상처리를 회피함은 물론 사고의 손실보상을 기사 자부담으로 돌렸다. 운행 중 사고는 '보조금 지원'을 위한 정부의 서비스 평가 시 감점 요인으로 지목되기 때문이다. 즉 정부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회사 직원들을 쥐어짜내는 야만적인 행태가 업계 관습처럼 이어져온 것이다.

회사는 웃고
기사는 울고

A사는 경기 구리, 광주, 남양주, 의정부 등 경기 서부지역 시내버스를 독점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또 동두천, 양주 등 경기 외곽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노선을 독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부산, 경북, 충북 등을 아우르는 시외버스 노선도 A사 손아귀에 있다.

국내 버스업계에서 A사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회사 운영에 필요한 피복·정비·식품 업체를 자회사로 갖고 있으며, 거대 자본을 등에 업고 터미널사업, 의료사업 등에도 진출했다. 더불어 A사는 한 유명 지역방송의 지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도 확인됐다.

최근 기자와 만난 한 버스 업계 관계자는 "인센티브 외에도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유류세 등 보조금이 버스 운영이 아닌 다른 곳에 출자되고 있는 것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사실상 돈이 업체로 넘어가면 이를 감시할 수 있는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인천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ㄷ씨는 "성과이윤(버스 인센티브 제도)은 사실상 눈먼 돈"이라며 몇 장의 문서를 내밀었다. 인천시가 작성한 '성과이윤 지급현황 표'였다.

인천시는 지난 2009년 1월부터 버스 회사의 재정적자를 100% 보조하는 버스 준공영제를 시행하고 있다. 즉 인천시의 성과이윤은 경기도의 적자 보전과는 돈의 성격이 다른 플러스알파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인천시가 지난 2009년부터 각 업체별로 지급한 성과이윤은 모두 86억여원에 달한다. 전체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이 돈은 고스란히 버스 업자의 호주머니를 채우고 있다.

매년 150억∼200억원 지급
인센티브 타내려 위장배차

인천시가 제정한 '수입금공동관리 준공영제 운영지침'에 따르면 "성과이윤은 성과평가 결과에 따라 사업자별 차등 지급 방식으로 운용한다"고 돼 있을 뿐 지원금의 사용목적과 사용처가 명기 돼 있지 않다. 이는 사업자가 받은 돈을 어디에 써도 법적 제제 근거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인천 일대에서 A사와 같은 위상을 점하고 있는 버스재벌 B사의 경우는 각 계열사로 지급된 성과이윤을 취합했을 때 연간 수억원의 ‘공짜’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인천시가 작성한 '운수회사별 성과이윤 내역'에 따르면 업체 별 지급현황은 2009년 하반기 기준 ▲S여객 3855만원 ▲S버스 3549만원 ▲S교통 4171만원 ▲I교통 3366만원 ▲J교통 3121만원 등이다. 이 업체들은 모두 B사의 계열사로 지원금의 합은 약 1억8000만원에 이른다.

2011년 하반기를 기준으로 하면 ▲S여객 9471만원 ▲S버스 4268만원 ▲S교통 1288만원 ▲I교통 2296만원 ▲J교통 2262만원 ▲G버스 4696만원 등 2억4000여만원으로 2년 새 약 6000만원가량이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묻지마 지원금
누구도 못말려

ㄷ씨는 "인천시는 준공영제가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시로부터 지급된 인센티브 규모가 작지만 경기도는 자율 체제기 때문에 인센티브 지급 규모가 훨신 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ㄷ씨는 "정부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평가 기간 동안 배차를 늘린 뒤 보조금을 받으면 다시 유휴차를 늘린다든가 오지 노선을 헐값에 인수한 뒤 보상금은 타내면서 배차를 줄이는 눈속임이 반복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기도의회 민경선 의원은 오래 전부터 A사의 독점적 버스 운영과 몰아주기식 보조금 책정을 비판해왔다. 그는 "A사가 교통 약자를 위한 저상버스를 도입하기로 해 놓고 기본 약속조차 이행하지 않았다"면서 "사실상 A사를 향한 지원금 퍼주기가 반복돼 왔다"고 지적했다.




민 의원이 제출한 '2011년 도정감사 자료'에 근거하면 A사는 경기도 전체 버스 재정지원의 3분의 1을 가져가면서도 ▲저상버스 도입율이 타 업체보다 낮고 ▲배차 가이드라인을 자주 위반했으며 ▲노후 차량 및 시설 개선 노력이 미흡했다. 그러나 A사는 어떤 페널티도 없이 매해 150억∼200억원의 재정지원금을 10년 가까이 도로부터 꼬박꼬박 가져갔다.

민 의원은 재정지원금을 부풀려 받는 수법으로 '차량 운행대수 부풀리기'를 지목했다. 실제 버스는 차고에 있지만 유류대를 허위로 작성, 운행대수를 부풀린 뒤 지원금을 실제보다 많이 타낸다는 것이다. A사 역시 이 같은 수법으로 몇 차례 배차를 줄였다가 현지 언론에 발각된 전력이 있다.

민 의원은 "여러 차례 A사와 관련한 위법 사항이 발견됐지만 지원금이 차감되거나 제대로 된 행정 조치를 취했던 적이 없었다"며 "재정지원금을 포함해 A사에 들어가는 정부돈만 600억∼700억원인데 이를 제대로 감독할 인력조차 없다"고 개탄했다.

2008년 A사로 지급된 인센티브는 59억원, 2009년은 64억원, 2010년은 42억원이다. 그리고 2011년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시내버스 인센티브 지원금을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도내 버스업체 간 서비스 경쟁을 활성화하겠다는 복안이었다.

이에 따라 A사로 지급된 인센티브도 늘어났다. 기자가 확인한 2012년 A사 계열 한 운송업체 인센티브 지원금은 4억4000여만원. 경기도 한 관계자는 "자료 유출 및 세부 공개가 금지돼 있어 정확히 말씀드릴 수 없지만 매해 40억∼60억원 정도가 A사에 지원되고 있는 건 맞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이 인센티브 제도가 준공영제를 채택하지 않은 광역단체 입장에선 합리적인 제도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국회 국토위 소속 한 관계자는 "이 인센티브 제도를 둘러싼 오해가 많은데 실제로 확인해보니 평가의 투명성이 높았다"면서 "오히려 경기도가 제일 먼저 도입한 뒤 다른 지자체가 이 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정당국 국내 굴지의 운송업체 내사
수천대 버스 보유한 '버스재벌'도마
정부 보조금 유용·횡령 여부에 초점

실제로 경기도는 투명한 평가를 위해 10여 명의 외부 전문가를 영입, '경영 및 서비스 평가' 때마다 담당 TF를 구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불어 A사 외 기타 중소업체들은 급여를 제때 지급할 수 있게 됨으로써 내부 반응이 좋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렇다면 도의 공식적인 입장은 어떨까. 도 관계자는 "의혹이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일부 대형 운송업체로 나랏돈을 퍼주는 게 아니란 얘기다.

이 관계자는 "잘 아시다시피 제도 자체는 다른 지자체에서 도입할 정도로 (그 합리성을) 인정받았고, 지원금을 산정할 때도 다각도로 검증하기 때문에 특정 업체에 돈을 퍼주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해당 관계자는 앞서 언급한 여러 의혹들을 차례로 해명하면서 "경기도는 준공영제가 아니기 때문에 적자 보전율이 30% 밖에 안 돼 업체들도 경영 상태가 열악한 편이다"고 반박했다.

A사 사정에 밝은 몇몇 관계자에 따르면 A사는 최근 일부 구조조정을 통해 경영난을 타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도 관계자도 인센티브 지원금의 사적 전용에 대해선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다. 한 관계자는 "업체에 지원금을 전달할 때 '직원들을 위해 쓰시라'고 권고하지만 그 이상은 경영 문제기 때문에 우리가 관여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업체 사정이 어려운데 인천시 업체처럼 인센티브를 주물럭할 수 있겠냐"고 의견을 전했다.

수상한 커넥션
악행은 여전해

그러나 ㄱ씨 등 A사에서 근무했거나 관계된 인사들은 A사의 자금 운용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과거 A사는 김문수 경기도지사에게 불법으로 정치자금을 전달했던 전력이 있는 회사"라며 "전직 국회의장, 현직 경찰서장, 국토해양부 고위 공무원 등 A사가 로비한 곳이 한 두군데가 아닐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 익명의 제보자에 따르면 A사는 최근 사고를 낸 직원에게 반성문을 쓰게하고, 이를 사내 전 직원에게 사인 받게 하는 등 인권유린적인 지침을 강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정된 운행횟수를 지키지 않고 버스를 차고지 인근 외곽 도로에 놀리는 등 편법을 부린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의 발'을 볼모로 한 A사와 관련한 의혹은 오늘도 끊이지 않고 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청라지구 버스비리 의혹

없던 '황금노선' 만들어 제공

인천경찰청 금융범죄수사팀이 지난 4월 버스업체로부터 향응을 제공받고 버스노선 변경 등 편의를 제공한 혐의(뇌물수수)로 공무원 황모(52)씨를 입건한 가운데 비슷한 정황이 포착돼 눈길이 모아지고 있다.

한 제보자에 따르면 인천 청라지구를 관통하는 '황금노선'을 허가해준 공무원 A씨는 현재 다른 부서로 보직을 옮겼다. 그러나 제보자는 공무원 A씨가 인천 한 대형 운송업체에 "황금노선을 무단으로 제공했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기자가 입수한 인천시 공문에 따르면 공무원 A씨는 지난 4월 "청라지구 개발지역 신규아파트 입주에 따른 시내버스 이용객의 불편을 해소하고자 버스노선의 신설 및 증차를 허가한다"고 명기했다.

하지만 준공영제가 시행 중인 인천시에서 신규 노선 허가나 증차가 '거의 없다'는 점에 주목한 제보자는 이를 특혜라고 지적한 것.

한편 인천경찰청 금융범죄수사팀은 시로부터 받은 보조금을 횡령한 혐의(업무상 횡령)로 신모(55)씨 등 버스업체 대표 4명을 지난 4월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2009년 1월부터 2010년 8월까지 시로부터 받은 버스준공영제 재정보조금을 임원·관리직 급여, 차량 할부금, 가스비 등에 불법 전용해 약 23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황씨는 버스업체 직원들과 함께 유흥업소에 다니며, 모두 26차례에 걸쳐 1400만원 상당의 향응을 제공받고 버스노선 변경 등 편의를 제공한 것으로 조사됐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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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5000만원 관봉권’ 출처를 두고 소문이 무성하다. 검찰은 대통령실 특활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전씨는 그저 ‘기도비’라고 진술 중이다. 검찰이 김건희씨까지 수사 대상에 올린 점을 보면 전씨의 진술은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 전씨가 전방위 로비를 벌인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김씨의 소환조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 일가를 향한 수사는 그간 서울중앙지검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로비 사건은 중앙지검이 아닌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부장검사 박건욱)가 포문을 열었다. 전씨는 통일교와 캄보디아 사업 및 정·재계를 가리지 않고 돈을 받았다. 윤석열 일가와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수상한 증거들 남부지검은 전씨를 수사하기 이전에 한 가상자산 사기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최근 정식 부서로 신설된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는 지난해 7월 ‘퀸비코인(QBZ)’ 관계자 이모씨 외 3명을 사기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사업 진행 능력이 없음에도 허위 자료를 제출해 스캠 코인을 상장했다. 1만명이 넘는 투자자로부터 가로챈 금액은 300억원에 육박한다. 남부지검은 수사 과정서 퀸비코인 관계자 이씨가 2018년 1월 자유한국당 경북 영천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정모씨를 전씨와 연결한 정황 및, 이들 간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했다.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정씨는 전씨 법당을 찾아 1억원을 건넸다. 이 사실을 파악한 남부지검은 지난해 12월 전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하고 그의 법당과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두 달여 전에는 경기 성남의 카카오 판교 서버를 압수수색해 전씨의 카카오톡 기록까지 확보했다. 전씨는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 대선캠프 네트워크본부서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그의 처남으로 알려진 ‘찰리’ 김모씨도 전씨와 같이 활동했다. 전씨는 김건희씨가 운영하던 전시기획회사 코바나컨텐츠의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전씨의 딸도 잠깐이지만 코바나컨텐츠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남부지검은 전씨가 윤 전 대통령과 김씨와의 친분을 이용해 로비 행위를 벌였다고 보고 수사를 시작했다. 실제 전씨가 로비 창구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남부지검은 지난달 30일 윤 전 대통령 사저인 아크로비스타를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피의자들이 2022년 4월부터 8월 사이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공직자의 배우자에게 선물을 제공했다”고 적시됐다. 청탁 사유로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ODA(공적개발원조) 사업 ▲YTN 인수 ▲유엔 제5사무국 한국 유치 ▲교육부 장관 통일교 행사 참석 ▲대통령 취임식 초청 등이 담겼다. 이 압수수색은 전씨를 통해 통일교 세계본부장 출신이자 2인자였던 윤모씨가 수천만원 상당의 그라프(Graff) 다이아몬드 목걸이, 샤넬 가방, 천수삼 농축차 등을 김씨에게 전달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다. 남부지검은 윤씨가 지난 2022년 7월 전씨에게 ‘김 여사가 물건(천수삼) 잘 받았다더라, 건강이 좋아지셨다고 한다’고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을 확보하기도 했다. ‘한국은행’ 찍혔는데…통상 정부 예산 활용 금융권 “개인이 갖고 있을 수 없다” 일축 검찰이 지난 3일 전씨를 청탁금지법 위반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한 만큼 김씨에 대한 소환조사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남부지검 수사팀 내부에서는 김씨를 대선 직전에 소환조사해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전씨는 “목걸이와 명품백을 잃어버렸다. (김 여사가 잘 받았다는 문자는) 거짓 문자”라고 부인하는 상황이다. 김씨 측도 “전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 자체가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 검찰은 윤씨가 전씨에게 윤석열정부의 캄보디아 ODA 사업 추진을 청탁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는 중이다. 검찰은 윤씨가 “윤 전 대통령과 독대했고 국가 단위 ODA 연대 프로젝트에 동의했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을 확인했다. 검찰은 지난 2022년 3월 윤씨가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전 대통령과 김씨를 인수위서 만난 뒤 캄보디아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통일교는 같은 해 메콩강 핵심 부지에 ‘아시아태평양유니언 본부’를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윤씨는 훈센(Hun Sen) 당시 캄보디아 총리와도 이 사업을 논의했지만 자금난으로 추진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윤씨는 2022년 5월 한 통일교 행사에서 “3월 22일 대통령을 만나 1시간 독대를 하면서 이 나라가 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하고 암묵적 동의를 구한 게 있다”고 말했다. 이어 “ODA는 비영리기구(NGO)가 펀딩 가능하고 국가가 지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검찰은 이 직후인 2022년 6월 기획재정부가 제4차 한-캄보디아 ODA 통합 정책협의서 대(對)캄보디아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 지원 한도액을 기존 7억달러에서 15억달러로 늘리는 기본 약정을 체결한 점을 주목했다. 한도액이 늘면 중기후보사업 승인 절차가 간소화돼 ODA 사업 수주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김씨가 나토 순방 당시 착용했던 6000만원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와 관련해 재산 신고 누락 논란이 불거지자, 윤씨는 전씨에게 “김 여사에게 빌리지 말고 하고 다니라”며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건넸다. 검찰은 지금까지 김씨 명의 휴대전화 3대를 확보했다. 이 중 1대는 김씨가 지난달 11일 서울 한남동 관저서 나오면서 보안 비화폰(안보폰)을 반납한 뒤 개통한 휴대전화다. 나머지 2대는 옛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서 사용하던 휴대전화로, 사실상 공기계로 알려졌다. 자택 압색 그 이후… 검찰은 100여개에 달하는 압수 대상에 윤씨 선물 명목으로 전씨에게 제공했다는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샤넬 가방, 인삼주 등도 적시했지만 확보하지 못했다. 법조계에서는 윤씨의 청탁이 성사됐거나 윤씨와의 직무 관련성 등이 입증된다면 김씨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와의 전화 통화에서 “카톡 기록과 전달됐거나 전달되려 했던 물품들은 이미 수사팀이 확보했으니 김씨가 대면 조사를 피하긴 힘들다”며 “남부지검서도 성역 없이 수사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현행법상 공직자의 배우자를 청탁금지법으로 처벌할 수 없으니 직무 관련성 입증이 관건”이라며 “입증만 된다면 알선수재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가장 중요한 건 전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할 당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전씨의 집을 압수수색하면서 5만원권 3300매(1억6500만원)를 확보했는데, 이 중 5000만원은 비닐 포장이 벗겨지지 않은 상태였다. 검찰은 전씨에게 이 관봉권의 출처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관봉권은 ‘제조권’과 ‘사용권’ 두 종류로 나뉜다. 제조권은 한국조폐공사에서 한은이 받아온 신권으로 돈다발에 십자 형태의 띠를 두르고 비닐로 싸 압축한 형태다. 사용권은 한은이 시중은행서 회수한 돈을 검수해 낡은 돈은 폐기하고 사용하기 적합한 돈만 골라낸 것이다. 발견된 돈다발 김씨와 전씨 사건서 등장하는 관봉권은 모두 사용권이다. 전씨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 돈다발은 한은이 적힌 비닐로 포장돼있었고, 비닐엔 기기 번호와 담당·책임자 일련번호도 적혀 있었다. 그러나 김씨 측이 옷값을 치를 때 썼던 관봉권은 비닐 없이 띠지만 둘러져 있는 돈다발 형태였다. 관봉권은 국가 예산으로 편성되는 대통령실(청와대)과 검찰, 국가정보원 등 사정기관의 수사나 조사에 필요한 특수활동비로 쓰이기도 한다. 과거 정부에서는 이 특활비가 로비 자금으로 악용됐다. 한은은 전국에 16개 지역 본부를 두고 금융기관에 관봉권을 보낸다. 서울엔 남대문 본점 및 강남본부 등 두 곳이 있다. 이 중 강남본부가 대통령실과 사정기관 등에 예산 조달을 담당해 왔다. 다만 민간인의 집에서 관봉권이 발견될 수 없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대개 일반 정부 예산은 관봉권 형태가 아닌 계좌이체 등을 통해 전달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수천만원 상당의 관봉권이 묶인 채로 남아 있는 건 영수증 내역도 남지 않는 특활비”라며 “통상 정보와 사정기관이 ‘돈의 주인’”이라고 말했다. 실제 검찰도 전씨의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 강남본부서 나왔다고 보고 있다. 이 관봉권에는 ‘2022년 5월13일’이라는 날짜가 기재돼있다. 윤 전 대통령 취임일 사흘 뒤다. 전씨는 검찰 조사에서 주로 돈은 ‘기도비’ 명목으로 받아왔지만 관봉권은 정확하게 누구에게 받은 돈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한은 방문 이후 전씨의 집에서 발견된 관봉권에 적힌 ▲기기번호 ▲담당자 ▲책임자 ▲발권국 항목 등의 의미를 확인했다. 기기번호의 뜻은 정사기(검수기) 기기번호와 기기호수를 뜻하고, 발권국 정보에는 정사 업무를 담당하는 발권국 화폐관리1팀을 의미하는 숫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MB 때 국정원 ‘입막음·로비’ 용도로 사용 검·정보 “이번엔 아니다”…남은 건 용산 포장지에 적힌 ‘2022년 5월13일 오후 2시5분59초’는 한은이 검수를 마친 시각이라고 한다. 다만, 한은은 개별 사용권이 어느 시점에 어느 금융기관으로 지급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금융기관서 화폐를 요청하는 경우 ▲지급한 금융기관명 ▲지급일자 ▲권종 ▲금액 등만 기록할 뿐, 어떤 사용권 묶음을 제공했는지는 별도 기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관봉권이 지난 대선 기간 전씨가 운영했던 윤 전 대통령 선거캠프 운영비일 수 있다고 보고 금융 흐름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올해 초 당시 네트워크 본부장으로 있던 오을섭씨를 소환조사하면서 양재동 캠프의 운영비 출처를 물어본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서는 해당 관봉권 출처가 불분명한 만큼 특활비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범죄 수사 경험이 풍부한 한 변호사는 “출처를 확인하기 어려운 한은 뭉칫돈은 대부분 특활비”라며 “특활비라면 한은 검수 이후 수천만원 상당의 돈이 필요한 곳은 보통 사정기관이다. 일반적으로 정부 예산은 뭉칫돈으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결국 사정기관 담당자들을 불러 확인해봐야 하는데 정보기관에서는 특활비 활용 자체가 보안으로 분류돼 확인도 어려울 것이다. 출처 규명에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와 접촉한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들은 ‘국정원 특활비’는 아니라고 단언했다. 앞서 이명박정부 청와대는 국정원 특활비를 상납받은 바 있다. 지난 2011년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국정원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폭로했는데, 당시 국정원은 관봉 형태의 특활비 5000만원을 장 전 주무관에 ‘입막음비’로 전달했다. 이 같은 내용은 검찰 수사와 공판 등을 통해 청와대서 국정원 특활비를 받아 장 전 주무관에 전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불분명한 출처 어디?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과거 국정원 특활비와 흡사해 보이지만 2022년 이후의 특활비 활용이나 대통령실을 통해 쓰인 ‘국정원 특활비’ 등에 대해서 들여다봤을 때 불법적이거나 위법하게 쓰인 사실이 없다. 한 개인에게 갈 일은 더더욱 없다”고 못 박았다. 검찰 관계자도 “남부지검서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검찰 특활비는 아니다. 남부지검 수사팀도 검찰과는 상관없는 관봉권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