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토로> '신격호 애타게 찾는' 부산 아지매 사연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7.08 11:3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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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꼭 한번 만나야 합니다"

[일요시사=경제1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을 애타게 찾고 있는 한 아주머니가 있다. 목소리에서 간절함이 묻어난다. 지난 10년간 편지도 수차례 보냈다. 신 총괄회장 별장에 찾아가기도 했다. 평범한 아주머니가 재계 5위 그룹 총수를 찾는 이유는 뭘까.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님을 만나야 합니다. 꼭 전해야만 하는 물건이 있습니다."

부산 연제구 거제2동에 거주하는 평범한 가정주부 김명숙(62)씨의 간절한 소망이다. 김씨는 지난 10여 년간 신 총괄회장을 만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한번도 마주하지 못했다.

김씨에 따르면 이들의 인연은 신 총괄회장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어져왔다. 신 총괄회장의 부친 고 신진수씨와 김씨의 부친 김진태씨가 절친한 사이였다는 것.

"신 총괄회장의 집은 매우 가난했습니다. 며느리(신 총괄회장의 첫째 부인 노순화 여사)가 많이 아팠는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치료를 해 주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당시 제 부친은 동네에서 부유한 축에 속했습니다. 자가용과 함께 운전기사까지 있을 정도였습니다. 제 부친은 종종 그 집의 며느리를 태워 병원 통원을 시켜줬습니다."

부인 남겨두고
나홀로 일본행

신 총괄회장은 1922년 경남 울주군 삼남면 둔기리에서 빈농 신진수·김필순씨의 5남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35년 언양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신 총괄회장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집에서 농사일을 거들었다.


1년 뒤인 36년 면장을 지낸 큰아버지 신진설씨의 도움으로 간신히 울산농업보습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지만 학업성적은 신통치 못했다. 또래에 비해 덩치는 별로 크지 않았고 말수도 적었으며 신중한 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습학교 졸업 후 그는 백두산 밑에 있는 '명천국립종양장'의 연구생으로 1년 동안 있었다.

18세가 되던 40년 신 총괄회장은 같은 마을의 노순화 여사를 아내로 맞아 결혼하고 경남 양산에 있는 경남도립종축장의 기수보로 직장을 옮겼다. 그러나 그는 직장 부근에서 혼자 하숙을 했다. 이때 그는 일본으로 밀항할 생각을 품었다. 이듬해 신 총괄회장은 돈도 벌고 못다한 공부를 더하기 위해 단돈 83엔을 쥐고 홀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얼마 뒤 장녀인 신영자 롯데장학복지재단 이사장이 태어났다.

도쿄에 도착한 신 총괄회장은 스기나미에 있는 연립주택의 다다미방 하나를 빌려 자취생활을 하고 있던 고향친구들과 함께 기거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우유배달을 했고 대학진학을 위해 와세다 중학교 야간부에 입학했다.

원래 문학 전공을 꿈꾸던 신 총괄회장은 와세다공업고등학교(현 와세다대학 이학부) 야간부 화공과에 적을 뒀다. 문학으로는 먹고 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각에서는 징병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시각도 있다. 당시는 전쟁준비를 하던 때라 실업계 학교에 지망해야 징병을 면할 수 있었다.

신 총괄회장에게 첫 사업기회는 한때 아르바이트를 했던 전당포와 고물상 주인 일본인 하나미쓰 노인이 매사에 성실했던 신 총괄회장을 눈여겨 보면서 시작됐다. 44년 어느 날 하나미쓰는 신 총괄회장에게 자신이 전액 출자(6만엔)한다는 조건으로 군수용 커팅오일(기계를 갈고 자르는 선반용 기름) 제조공장을 차릴 것을 제의, 이를 받아들인 신 총괄회장은 도쿄 아오모리에 공장을 임차해 사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공장은 미군의 폭격으로 잿더미가 됐다. 신 총괄회장은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두 집안 부친 신진수-김진태 절친 사이 인연
일본 밀항후 한국에 남은 본부인·장녀 돌봐

친구들은 신 총괄회장에게 귀국할 것은 종용했지만 46년 신 총괄회장은 도쿄 스기나미구의 낡은 창고에 '히라끼 특수연구소'라는 간판을 내걸고 커팅오일을 응용해 만든 비누와 포마드 등 유지제품을 생산·판매해 1년 반 만에 차입금 6만엔을 전부 상환했다. 전쟁 직후 생필품이 귀했던 일본의 상황 덕분이었다.


기세를 몰아 신 총괄회장은 추잉껌 제조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풍선껌은 비행기의 창유리를 녹인 초산비닐수지에 송진과 도료인 가소제를 섞은 것을 가마솥에 넣어 녹인 후 여기에 사카린과 향료 등을 추가해 만들었다. 원료는 통제를 받지 않아 얼마든지 확보가 가능했고 가마솥과 칼만 있으면 껌의 제조가 가능했다.

신 총괄회장은 47년 약제사 1명을 고용하고 수동식 기계를 설치 2엔짜리 풍선껌을 만들었다. 이번에도 역시 대박. 신 총괄회장은 48년 롯데를 설립했다. 신 총괄회장이 감명 깊게 읽은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샤롯데'에서 이름을 따왔다. 신 총괄회장은 훗날 "롯데라는 이름은 내 일생일대의 최대수확이자 최고의 선택"이라며 흡족해했다.

신 총괄회장은 당시 최고스타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광고모델로 사용하고 2엔짜리 껌에 1000만엔의 상금을 거는 이벤트를 실시하는 등 탁월한 마케팅능력을 발휘, 롯데 껌으로 일본 껌 시장을 장악해 나갔다. 그러던 중 신영자 이사장을 홀로 키우던 노순화 여사가 51년 29세의 나이에 세상을 떴다.

"신 총괄회장의 첫째부인은 원래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신 총괄회장은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 저희 집에 부인 병간호를 부탁했고 약 3년 정도 아버지가 철도병원까지 입원 및 통원 치료를 도왔습니다."

신 총괄회장은 52년 일본인 다케모리 하쓰코씨와 재혼했다. 당시 일본 외무성 대신의 여동생으로 결혼 후 남편성을 따 시게미쓰로 바꿨다. 신 총괄회장의 일본 이름은 다케오 시게미쓰다. 2년 뒤인 54년 신동주 일본 롯데그룹 부사장이, 55년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태어났다.

남편 성공 못보고
쓸쓸히 눈 감아

56년 세계 최대 껌 메이커인 미국 리글리가 일본에 상륙하면서 신 총괄회장은 위기를 맞았지만 10여 년간의 사투 끝에 껌 전쟁은 롯데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신 총괄회장은 껌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59년 3월 자본금 2000만엔의 롯데상사를 설립하고 61년부터는 초콜릿 제조사업에 착수했다.

당시 일본 초콜릿 시장은 메이지제과와 모리나가제과가 석권하고 있었다. 후발업체인 롯데는 이들을 능가하기 위해 유럽에서 손꼽히는 초콜릿 제조기술자와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설비를 확보했다. 64년부터는 'VIP초콜릿'이라는 상표로 시장공략에 나섰고 68년 롯데는 연매출 700억엔에 종업원 3000여 명의 일본 최대 종합과자 메이커로 성장했다.

롯데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것은 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부터였다. 이후 국내 일본 자본 진출이 늘었고 이를 계기로 신 총괄회장도 67년 한국에 롯데제과를 설립하면서 고국에 진출했다. 성공한 재일교포 사업가로 한국에 진출한 신 총괄회장은 초기 형제 간 골육상쟁을 겪었다.

"3년간 입원
치료 도왔다"

신 총괄회장의 바로 아래 동생인 철호씨는 59년에 서울 용산구 갈월동에서 ㈜롯데와 롯데화학공업을 설립하고 넷째 동생 춘호씨와 함께 껌과 캔디, 비스킷, 빵 등을 생산했다. 그러던 중 신 총괄회장이 모국 사업발판 마련을 목적으로 ㈜롯데와 롯데공업을 정리하려 하자 동생들이 크게 반발한 것. 하지만 결국 철호씨는 캔디와 비스킷 부분을 떼내어 '메론제과'를 설립하고 춘호씨는 '롯데공업'을 차려 라면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춘호씨는 신 총괄회장에 의해 '롯데'라는 상호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서 완전한 독립을 하고 ㈜농심을 설립했다.

신 총괄회장은 71년 껌 국내 생산을 개시하고 73년 기업공개 및 상장을 했다. 이후 한국 롯데그룹은 급속하게 성장해 현재 국내 재계 순위 5위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73년 당시 발행가 500원이던 주가는 2013년 현재 160만원대를 유지하고 있으며 76개 계열사를 소유, 일본 롯데보다도 사업 규모가 더 커지게 됐다.


김씨는 신 총괄회장이 한국에 들어와 자신의 가족들을 찾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에서 사업가로 성공한 신 총괄회장이 우리 가족을 찾았는데 65년 제 부친이 돌아가시고 연락할 길이 없어 만나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롯데그룹 쪽에 수차례에 걸쳐 편지를 보내고, 신 총괄회장의 별장에서 잔치가 열릴 때마다 '신격호 회장을 만나야 합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만들어 찾아가기도 했지만 여태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씨가 공개한 A4용지 2장 분량의 편지는 "울주군 삼동면 본리 562번지 고 김진태씨 자녀입니다"로 시작, "신 회장님이 우리 가족을 찾았다는 데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다보니 만나뵙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연락처를 알려드리며 만나뵙기를 원하옵니다"라고 적혀있다. 편지와 함께 김씨의 아버지인 고 김진태씨의 흑백 사진도 첨부돼 있다.

신 총괄회장은 매년 5월 고향 울주군 둔기리의 호숫가 앞 잔디밭에서 사재를 들여 잔치를 벌이고 있다. 69년 대암댐 건설로 고향마을이 물에 잠기자 전국에 흩어진 고향사람들을 수소문해서 모았고 71년 돼지머리에 막걸리를 기울이며 시작된 잔치는 지금껏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있다.

신 회장 일본 가면서 부인 간호 부탁
신영자 홀로 어렵게 키우다 세상 떠나

모임 이름도 마을 이름을 따 '둔기회'라고 지었다. 롯데 측은 둔기회 회원들을 관리하며 매년 잔치에 모이도록 연락을 하고 있다. 수십명이던 회원수는 회원들의 자손들이 늘어나면서 지금은 1000여 명을 훌쩍 뛰어넘었다.


지난 5월6일 열린 제43회 둔기회에도 전국 각지에서 1000여 명이 몰렸다. 장기자랑과 딱지치기, 제기차기 등 추억의 놀이 체험이 이어졌고 어린이들을 위한 비눗방울 공연도 마련됐다. 신 총괄회장은 인근 별장에서 친지들과 담소를 나눴다.

"신 회장님이 탄 것으로 보이는 차가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제 옆을 지나쳤지만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제가 신 회장님을 찾고 있다는 사실이 어떻게든 알려져 부친의 유지를 받들 수 있었으면 합니다."

김씨가 신 총괄회장을 만나려는 이유는 오직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신 회장님에게 전하라는 물건이 있습니다. 내용물은 밀봉 상태로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꼭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아버지 유언
받들고 싶다"

신 총괄회장은 지난해 11월 일본에 있는 가족과 지인을 만나기 위해 출국했다가 12월 귀국한 뒤 소공동 롯데호텔 34층에 마련돼 있는 집무실 겸 숙소에 머무르고 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편지를 수차례 보냈다고 하는데 그룹 쪽에는 관련 편지가 도착한 적이 없다"며 "또한 지난 5월 잔치에서 신 총괄회장은 차를 이용하지 않고 도보로 이동해 만일 플래카드를 들고 잔치를 찾았다면 만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신 총괄회장 비서실에는 일주일에 몇 건씩 비슷한 내용의 전화가 온다"며 "전달할 물건을 비서실을 통해 전달하면 그룹 측에서 확인하고 조치를 취하겠다"고 덧붙였다.

"부친 유언 따라 전해줄 물건 있다"
롯데 "비서실 통해 전달하면 조치"

신 총괄회장의 맏딸 신 이사장은 롯데쇼핑 사장을 맡고 있다. 부산여고와 이화여대 가정학과를 나와 신 총괄회장이 국내에 진출한 67년 장오식 전 선학알미늄 회장과 결혼해 1남3녀를 뒀다. 장남 재영씨는 재계에서 은둔의 재벌 3세로 통한다. 공식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으며 이렇다 할 그룹 경영 활동이 전혀 없다. 맏딸 혜선씨는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둘째딸 선윤씨는 화장품 전문업체 블리스를 이끌고 있으며 롯데백화점 에비뉴엘관 오픈을 진두지휘한 인물로 유명하다. 막내딸 정안씨는 2004년 영국계 로펌 클리포드&챈스의 이승환 변호사와 결혼했다. 이 변호사는 한국케이블TV대구방송 회장과 영남일보 주필을 지낸 이종명씨의 아들이다.

신 이사장은 새어머니인 시게미쓰 여사와는 팔짱을 끼고 다닐 정도로 사이가 좋다. 친어머니 노순화 여사의 제사는 신동빈 회장이 한국에 정착한 이후 매년 꼬박꼬박 챙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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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