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추적> '원세훈 사건 키맨' 건설 로비스트 생생증언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7.08 17: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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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아닌 다른 실세 있다

[일요시사=사회팀] 대형 관급공사마다 수주를 따냈던 한 건설업체가 있었다. 수도권 지역 1위 전문건설업체로 불린 W건설은 지난해 부도와 함께 수많은 의혹을 낳았다. 지난 정권 핵심실세와의 커넥션이 불거진 이 건설업체의 비밀은 무엇일까. 



시작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었다. 원 전 원장에 대한 수사가 확대되면서 정치권에 나돈 기밀 문건이 하나 있었다. 해당 문건에 따르면 사건은 2010년 7월로 거슬러갔다.

한국남부발전에서 발주한 삼척그린파워발전소, 해당 토목공사 하청업체 선정과 관련 원 전 원장의 외압이 있었다는 첩보가 입수됐다. 원 전 원장이 뒤를 봐준 것으로 지목된 건설업체는 W건설과 황보건설이었다.

하청업체 선정에
외압 첩보 입수

이들은 각각 1공구와 2공구의 하도급업체로 선정됐다. 1공구의 원도급 업체는 두산중공업이었으며, 2공구는 두산중공업과 대림산업이 공동으로 시공을 맡았다. 이상호 당시 한국남부발전 기술본부장(현 사장)은 원 전 원장을 대신해 이들 원도급 건설사에 압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았다.

결과적으로 원 전 원장과 황보건설의 숨겨진 커넥션은 황보건설 대표 황모씨가 입을 열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여환섭 부장검사)는 최근 황씨로부터 지난 2009년 이후 수차례에 걸쳐 1억원이 넘는 현금을 원 전 원장에게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그러나 황보건설과 함께 거론된 W건설은 구체적인 혐의가 드러나지 않았다. W건설 전 대표 김모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우린(W건설) 수의계약이 아닌 저가입찰로 정상적인 절차를 밟았고 원 전 원장과는 일면식도 없다"면서 "두산중공업과는 몇 년 전부터 협력관계에 있었는데 뭐가 문제냐"고 답했다.

W건설은 지난 1994년 설립된 전문건설업체다. 2011년 기준 시공능력평가액은 토건 486억원, 건축 480억원, 토목 333억원으로 국내 전체 건설사 중 300위권을 기록했다. 2010년 12월 기준 자본금은 33억원, 종합신용등급과 현금흐름등급에서 각각 BBB-(양호)와 CF3(양호)로 기준점을 넘겼다.

MB정부 실세 만나고 관급공사 '싹쓸이'
정국 뒤흔들 또 다른 핵뇌관 W건설 커넥션

주로 굵직한 관급공사를 수주했던 W건설은 인천지역 전문건설업체 중 1위로 평가 받았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W건설은 일반 건설사로 치면 현대건설 정도의 위상이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W건설은 지난해 부도를 맞았고 같은 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를 두고 한편에서는 기획부도 의혹이 일었다.

W건설은 부도 직전인 2010년까지 10년 연속 흑자를 기록한 기업으로 이름 높았다. 그러나 2년 뒤 돌아온 어음을 막지 못하고 허망하게 문을 닫았다. W건설의 협력사들은 그 피해를 떠안아야 했다.

삼척그린파워발전소 하도급 입찰 당시 W건설과 경쟁했던 한 건설사 관계자는 "W건설이 입찰을 전후로 무리한 수주 때문에 머지않아 문을 닫을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했다"며 입찰 전후 분위기를 전했다.

잘나가다 갑자기…
기획성 부도 의심


W건설은 한국철도시설공단, 한국도로공사, 한국수자원공사(K-Water) 등 주로 공기업이 발주한 관급공사를 수주 받았다. 호남고속철도 제5-1공구 구조물 및 터널공사, 삼척-동해 간 고속도로 건설공사(제4공구), 청주내덕(율량)-청원북일(북이) 일반도로 건설공사(2공구)는 물론이고, 지난 2009년 착공한 1조2000억원 규모의 경인 아라뱃길 시설공사에도 사업자로 참여했다.

KSICON(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W건설은 지난 3년간 하도급 공사로만 3956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원도급 계약까지 합하면 4373억원에 이른다. 중소건설업체 중 이 정도 실적을 기록하는 업체는 흔치 않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업계에서 기술력과 영업력을 인정받았다는 얘기다.

업계에서 김씨는 마당발로 통했다. 자연스레 따르는 로비 의혹도 많았다. 아라뱃길 시설공사에 SK건설과 함께 공동도급사로 참여했던 W건설은 아라뱃길 개통을 두 달 앞둔 시점에 부도를 맞으면서 이른바 '먹튀' 논란에 휩싸였다.

익명의 제보자는 W건설이 입찰을 따낸 호남고속철도 공사에서 '하도급 몰아주기' 혜택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W건설은 호남고속철도의 총 19개 공구 중 5개 공구(1-1공구, 2-3공구, 3-1공구, 4-2공구, 5-1공구)의 공사를 맡았다. 한 건설업체가 단일 공사에서 5개 공구의 공사를 따낸 건 이례적이라는 설명이다.

각 공사의 착공시기는 2009년 8월부터 2010년 11월까지였다. 2010년 들어서는 5월, 6월, 9월, 11월로 1∼3개월마다 한 번씩 공사에 들어갔다. 원도급사는 각 공구마다 모두 달랐으며 하도급 금액의 합은 1000억원을 상회했다.

'제2의 황보건설' 대형 관급공사 대거 수주
정관계 인사 로비 의혹…특혜설 도마

호남고속철도 공사를 발주한 한국철도시설공단 측은 "몰아주기가 불가능한 구조"라고 의혹을 일축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압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각 원도급사에 특정 하도급업체를 선정할 것을 부탁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설득해야 할 업체도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오히려 원도급사 한 곳을 선정되도록 밀어주는 게 자연스럽다"며 "특정 하도급업체를 밀어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전문건설업계 관계자의 말도 비슷했다. 그는 "영업의 달인이 아닌 이상 5개 원도급에 모두 로비가 들어가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공사 시기가 집중돼있어 일정은 빡빡하지만 해당 업체의 시공능력을 봤을 때 (무리가 있지만) 공사는 가능하다"고 의견을 냈다.

다만 "한 업체가 특정 국책사업의 5개 공구 수주를 따낸 건 일반적인 사례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호남고속철도 공사에 참여한 30개 하도급 업체 중 W건설을 포함한 12곳의 업체는 현재 부도를 맞았다.

한국도로공사가 발주한 동홍천-양양 간 고속도로 건설공사(8·9공구), 삼척-동해 간 고속도로 건설공사(1 4공구), 담양-성산 간 고속도로 건설공사(3공구)에도 의혹이 제기됐다. 800억원에서 1300억원에 이르는 공사 규모도 규모지만 공사 시기가 호남고속철도 착공 시기와 아슬아슬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W건설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W건설은 업체 특성상 터널이나 지반 구조물을 작업하는 데 장점을 보였다"며 "이런 업체들은 고속국도 사업과 같이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관급공사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즉 주로 민간 건설사가 발주하는 아파트 공사 등에서는 해당 업체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얘기다.


확실한 건 W건설이 시공능력 이상의 대형 관급공사를 대거 수주하면서 경영상 어려움에 처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W건설은 삼척그린파워발전소 1공구 공사 당시 또 다른 도급업체를 하도급의 하도급으로 끌어들이다가 건설협회 측의 제지를 받은 적이 있다.

의혹 대부분 부인
"소문이 너무 와전"

현재 W건설처럼 관급공사 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건설사는 어림잡아 5곳. 황보건설을 비롯해 태아건설, H건설, T건설 등이 도마에 오르내리고 있다. 한 대기업 건설사 관계자는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원도급 업체가 하도급 업체에 선수금을 꽂고, 이를 다시 회수하는 방식으로 뒷돈을 챙기는 건 업계에 비일비재한 일"이라고 귀띔했다. 최근 W건설이 주목받았던 건 바로 이 같은 방식으로 김씨가 과거 대기업에 비자금을 조성해 준 의혹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한 유명호텔. 건물 로비에서 만난 홍모씨는 "W건설과 관련해 할 얘기가 있다"며 접근했다. 홍씨는 업계 일각에서 '로비스트'로 알려진 인물. 홍씨는 최근 모 대기업 건설사 비자금 조성 혐의로 수차례 검찰 조사를 받았다.

먼저 홍씨는 "W건설을 둘러싼 소문이 와전됐다"며 김씨와 관련한 대부분의 의혹을 부인했다. 홍씨는 "(부도 직전인) 2011년 하반기부터 W건설에서 일했는데 가장 놀란 부분은 김씨가 결제를 한 번도 안 한 것"이라며 말을 이었다.

홍씨에 따르면 W건설은 지난 수년간 저가 입찰 원칙을 고수했다. 을의 입장에서 하나라도 더 많은 수주를 따내기 위해 무리를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홍씨는 "내가 회사 장부를 살펴보니 매달 20억원 이상씩 적자를 보고 있었다"며 "'이럴 바에는 차라리 부도를 내자' 내가 그렇게 말했었다"고 회고했다.


W건설은 지난 2004년까지 대우건설의 오른팔로 불리며 고공 성장을 이뤘다. 홍씨는 "김씨가 일을 대우랑만 했었다"며 "예전 고 남상국 사장 때 비자금도 많이 해줬다"고 폭로했다. 홍씨에 따르면 김씨는 남 사장과 돈독한 관계였는데 W건설이 공사에서 손해를 보면 원도급인 대우건설이 손실을 보전해주는 방향으로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남 사장이 유명을 달리하자 W건설은 대우건설과의 커넥션이 완전히 끊겼다. 하지만 서종욱 사장 부임 후 일부 협력 관계를 회복했다는 게 홍씨의 증언이다.

"몰아주기 불가능”vs “이례적 수주"
"대기업 비자금 브로커" 그는 누구?

홍씨는 현대건설과의 인연도 털어놨다. 과거 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대북송금 및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 김씨와 함께 검찰 조사를 받았다는 것. 2000년 11월께 W건설은 현대건설이 시공하는 동해고속도로 동해-주문진 간 건설공사 중 115억원 규모의 토목공사를 수주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국회 정무위 간사였던 이모 전 의원은 정 회장을 국정감사 증인 명단에서 제외하는 조건으로 W건설의 하도급 선정을 청탁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그러나 검찰 수사과정에서 정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김씨와 홍씨는 수사 종결과 함께 풀려났다.

홍씨는 "이렇게 매번 고생만 하고 덕 본 데는 없는 회사가 바로 W건설"이라며 "특혜를 받았느니 윗선에다가 로비를 했느니 지금 말이 많은데 윗선에서 보호해줬으면 김씨가 오늘 이 지경까지 왔겠느냐"고 반문했다.

홍씨는 삼척그린파워발전소 수의계약 의혹에 관해서도 김씨의 입장을 대변했다. 홍씨는 "W건설과 황보건설은 성격이 다르다"며 "황보건설은 그 당시 춘천지검 강릉지청장, 동해해경청장 등 만나는 사람이 어마어마했는데 우리는 두산중공업과 단 둘이 담판을 짓고 정정당당하게 계약했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W건설이 저가 수주로 유명해서 입찰을 딴 것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고 항변했다.

일련의 로비 의혹에 대해서도 "단순히 밥을 먹었을 뿐"이라는 해명을 내놨다.

김씨는 MB정부 실세의 측근 A씨에게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그러나 홍씨는 "김씨가 실세의 측근을 몇 차례 만난 건 맞지만 도움은 받지 않았다"며 "4년 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외곽조직인 국실련(국민행복실천연합) 행사에서 그 측근을 만나 밥을 같이 먹었지만 청탁한 적은 없고, 관련 조사도 이미 다 받았다"고 밝혔다.

홍씨에 따르면 김씨는 유명 사업가와의 친분으로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그 측근을 소개받고, 몇 차례 식사를 대접했다. A씨를 소개한 사업가는 지난 MB정부 때 버마 정부로부터 해상광구 4곳의 탐사개발권을 따내 박영준 전 차관과의 커넥션이 돌았던 인물이다. 일각에서는 '여권의 숨은 실세'라는 평도 있다.

"로비스트면
왜 망했겠냐"

홍씨는 기자 앞에서 김씨와 직접 통화하며 "김씨가 '그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김씨가 민주평통자문회의 등 이런 저런 모임을 많이 해 오해를 샀던 부분이 있었다"며 "(김씨가) 원래 무엇을 부탁하는 성격이 아니어서 내가 대신 부탁을 하고는 했는데 그런 소문들이 모여 (김씨와) 나를 로비스트로 본 게 아니겠냐"고 말했다.

최근 김씨는 자신의 재산을 법원에 의해 차압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 명의의 부동산도 경매에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홍씨는 "쓴 돈에 비해 10분의 1도 못 건진 게 김씨"라면서 "만약 조사받을 게 있다면 떳떳이 받겠다"고 입장을 전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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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