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스캔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4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5.21 11:4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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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된 인사 참사…술친구가 꽂아줬다?

[일요시사=사회팀]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윤 전 대변인의 사건 당일 행적도 의문이지만 과연 '예고된 인사 참사'를 누가 밀어붙였는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윤 전 대변인과 피해 여성, 청와대의 진술이 서로 엇갈리는 가운데 이번 사건의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짚어봤다.



"예고된 인사 참사다. 언젠가는 사고 한 번 크게 칠 줄 알았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섹스 스캔들'이 터지자 인수위 시절부터 그를 지켜본 한 기자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이 '고위층 성접대' 사건에 연루, 내정 6일 만에 옷을 벗은데 이어 윤 전 대변인은 미국발 섹스 스캔들에 휘말리며 청와대를 '패닉'에 빠뜨렸다.

[미스터리1]

[누구와 마셨나]

미국 내 한인 여성 온라인 커뮤니티인 '미시USA'에 올라온 글은 충격 그 자체였다. '청와대 대변인 윤창중이 박근혜 대통령 워싱턴 방문 수행 중 대사관 인턴 여대생을 성폭행했다'는 내용이었다. 피해 여성은 이번 방미 일정을 돕기 위해 미국 대사관에 임시 고용된 교포 출신 여대생으로 알려졌다.


윤 전 대변인은 지난 7일 저녁부터 이 피해 여성과 술을 마셨다. 그리고 다음날 조원동 경제수석과 최순홍 미래전략수석이 프레스룸에서 진행하는 브리핑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시각 윤 전 대변인은 주미 한국문화원 소속 운전기사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워싱턴 댈러스 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전날 술자리에서 윤 전 대변인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외신 보도 및 본보의 취재 내용을 종합한 윤 전 대변인의 사건 당일 행적은 이렇다. 7일 저녁 윤 전 대변인은 청와대 수행단 숙소인 윌러드 호텔 인근에 있는 W호텔에서 인턴 여대생과 술을 마셨다. W호텔은 윌러드 호텔과는 도보로 약 10분가량 떨어진 곳에 있으며, 여대생 숙소인 패어팩스 호텔과는 약 30분 거리다.

윤 전 대변인과 이 여성이 술을 마신 곳은 W호텔 지하에 있는 호화 주점 'J&G Steakhouse & Wine Bar'다. 이 자리에는 윤 전 대변인의 운전기사가 동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운전기사의 증언에 따르면 당초 윤 전 대변인은 이 여성과 W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술을 마시려고 했다. 그러나 스카이라운지 예약이 꽉차있자 지하에 있는 J&G Steakhouse & Wine Bar로 자리를 옮겼다는 것이다.

이날 오후 9시30분께 이들 3명은 지하 바의 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고, 윤 전 대변인과 여성 인턴은 서로 마주 보며 앉았다. 이어진 술자리에서 윤 전 대변인은 여성 인턴과 2시간여 동안 와인 2병을 마셨다. 평소 소주나 맥주를 잘 마시지 않는 윤 전 대변인의 음주 습관과도 일치하는 대목이다.

같은 날 자정 무렵 지하 주점의 영업시간이 종료되자 이들은 W호텔 로비로 자리를 옮겼다. 이 과정에서 운전기사는 차를 빼기 위해 자리를 떴다. 윤 전 대변인과 여성 인턴은 로비에서도 술을 마신 것으로 전해졌다. 술에 취한 윤 전 대변인은 운전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들을 페어팩스 호텔로 데려가 줄 것을 요구했다.

숙소에 도착한 윤 전 대변인은 기자와 청와대 직원들이 상주하는 후문을 피해 정문에서 내렸고, 여성 인턴은 1분 뒤에 내리도록 했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윤 전 대변인이 이 여성을 자신의 숙소로 데려가려고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현재까지 이들이 어떤 대화를 주고 받았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여성 인턴의 신원과 관련해서는 일체 함구에 붙여졌으나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박지원 의원의 첩' 등의 루머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현지 관계자는 전했다.

엇갈린 주장으로 파문 장기화 조짐
윤창중-피해여성-청와대 진실게임


[미스터리2]
[의도적? 우발적?]

복수 매체를 통해 공개된 현지 경찰보고서에 따르면 윤 전 대변인에 대한 성추행 신고는 8일 오후 12시30분께 접수됐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56세의 남성은 7일 밤 10시께 '515 15th Street NW. Washington DC'(주소지 상 W호텔)에서 신고자의 엉덩이를 허락 없이 움켜잡아 만졌다. 이 56세의 남성은 바로 윤 전 대변인이다.

윤 전 대변인은 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있던 시각, 자리를 피해 프레스센터로 향하던 중 자신을 수행하던 여성 인턴과 술자리를 가졌다. 그리고 이 술자리에서 여성 인턴의 엉덩이를 주물렀다. 이어 다음 날에는 자신이 묵고 있던 호텔방에서 이 여성 인턴을 알몸으로 맞았다. 수치심을 느낀 이 여성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흐느꼈다.

지난 11일 윤 전 대변인은 기자회견을 통해 성추행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엉덩이를 움켜잡았다는 의혹에 대해 "허리를 툭 치면서 '앞으로 잘해, 미국에서 열심히 살고 성공해'라고 한 게 전부"라고 대꾸했다. 또 "헤어지면서 내일 아침에 모닝콜을 넣어 달라했더니 다음날 아침 인턴 여성이 급작스레 찾아와 속옷 차림으로 문을 연 게 성추행이 됐다"고 억울해했다.

이와 관련 해당 사건을 수사 중인 미국 워싱턴 경찰국은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경찰 보고서를 릴리즈 하는 등 보도에 협조적이었던 현지 경찰은 '윤창중 사건'이 한국 언론에 의해 대서특필된 후 입을 닫았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CCTV만 확인해도 윤 전 대변인의 행적 등을 파악할 수 있는데 수사가 느리게 진행되는 건 아무래도 외교적인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일 것"이란 의견을 전달했다. 최초 신고를 접수받은 워싱턴 경찰국 측은 지난 15일 "사건을 FBI에 넘기지 않고 자체적으로 수사를 종결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따라서 이 성추행 사건은 '중범죄'가 아닌 '경범죄'로 분류돼 조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최초 성폭행으로 알려졌던 이 사건은 성추행 쪽으로 가닥을 잡는 분위기다. 특히 윤 전 대변인이 잠자리를 요구했다는 추가적인 진술이 없는 상황에서 강간 미수 등의 혐의 적용은 불가할 전망.

하지만 사건 당일 밤 '만취 상태'로 알려졌던 윤 전 대변인이 피해 여성을 자신보다 차에서 뒤늦게 내리게 하는 등 '조치'를 취했다는 점을 볼 때 범행이 우발적이었다는 주장은 신빙성을 잃고 있는 상황이다. 또 복수 관계자는 "윤 전 대변인이 '자료를 가려오라'며 인턴 여성을 아침부터 호출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당 여성을 부른 뒤 알몸 상태로 문을 연 것부터가 성폭행의 의도가 있지 않았겠냐는 것.

이와 함께 인턴 여성이 호텔에서 '1차 성추행'을 당한 후 한국문화원 쪽에 피해 사실을 알렸으나 한국문화원이 이를 묵살했다는 의혹도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현재 한국문화원은 윤 전 대변인의 국내 도피를 적극적으로 도운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16일에는 인턴 여성의 '2차 피해' 직후 이 소식을 전해들은 한국문화원과 청와대 수행단 측이 인턴 여성의 회유를 시도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이 과정에서 윤 전 대변인도 인턴 여성에게 찾아가 사과를 하려했지만 인턴 여성이 방문을 잠근 채 경찰에 신고하자 윤 전 대변인이 도피를 결심했다는 후문이다.

[미스터리3]
[입국 지시 받았나]

"서로가 알면서도 쉬쉬한 거겠죠. 보고는 청와대 윗선까지 다 들어갔을 겁니다. 만약 보고를 못 받았다면 그게 더 큰 문제 아닙니까?"


참여정부 출신 한 인사는 비서실의 기강 해이를 지적했다. 윤 전 대변인은 성추행 신고가 접수되자 같은 날 오후 1시30분께 워싱턴 댈러스공항에서 대한항공편으로 출발, 한국시간으로 9일 오후 4시55분 인천공항에 입국했다. 그는 400여만원에 달하는 비즈니스석을 이용하면서 마일리지를 적립하는 꼼꼼함을 보였다.

귀국 직후 윤 전 대변인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조사를 받고 "인턴의 엉덩이를 만졌다"는 진술을 청와대에 했다. 이어 자신의 진술이 맞다는 친필 사인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윤 전 대변인은 청와대 경내에는 들어가지 않고 기자회견 전까지 잠적했다. 이 무렵 윤 전 대변인은 자신의 변호사를 만나 '기자회견문'을 다듬는 등 파문이 커질 것에 대비했다.

윤 전 대변인은 귀국 전 이남기 홍보수석과 만났다. 8일 오전 9시께부터 9시30분께까지 사건 뒷수습을 논의했다. 이들은 스캔들 직후 '귀국을 종용했다' '귀국을 종용한 적 없다'는 입장으로 갈려 진실공방을 벌였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청와대 출입기자는 "청와대 라인이 모두 '너(윤 전 대변인)가 알아서 해'라는 분위기였다"며 "뉘앙스로 봤을 때 귀국을 종용한 건 모르겠지만 방관하거나 도와준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윤 전 대변인은 현지 경찰 수사망을 피해 한국으로 귀국했다. '미국 현지에 있는 것보다는 한국으로 돌아와 사건 추이를 지켜보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이에 대해 이 수석은 "윤 전 대변인이 미국에 남겠다고 했던 기억이 없다"며 "귀국 후 수사를 받거나 미국 경찰에 소환되거나 둘 중 하나를 택일하라고 했는데 본인이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청와대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통상 방미 기간 중에는 수행단의 여권이 통합 관리되는 게 관례"라면서 "윤 전 대변인이 독단으로 여권을 달라고 해서 마음대로 돌아오고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즉 청와대가 직간접적으로 윤 전 대변인의 귀국을 도왔다는 얘기다. 실제로 방미 수행단 홍보팀은 사건을 보고 받은 직후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윤 전 대변인을 귀국시키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가 퇴색되는 등 외교적 마찰을 우려한 조치였다.

회의를 마친 이 수석은 윤 전 대변인에게 자신의 숙소키를 내어주고 윌러드 호텔에 머물도록 지시했다. 페어팩스 호텔에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이 포진한 상태였다. 즉 청와대 홍보수석이 현지 경찰 몰래 피의자를 은닉한 모양새였다.

윌러드 호텔을 빠져나올 때는 한국문화원에서 제공하는 차편을 이용했다. 처음 문화원 측은 윤 전 대변인이 스스로 택시를 타고 공항에 갔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청와대와 한국문화원의 비호 아래 공항으로 이동한 셈이다.

또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윤 전 대변인의 귀국 항공편은 8일 오전 9시께 대사관이 직접 예약한 것으로 확인됐다. 윤 전 대변인과 이 수석이 만나기도 전에 대사관이 먼저 움직여 피의자의 항공권을 예매한 것이다. 즉 윤 전 대변인의 귀국 시나리오는 청와대, 대사관, 한국문화원의 합작품이란 설명이다.

"대통령 뉴욕에 있는데 전용기 워싱턴 이탈 왜?"
친분 있는 막후 권력이 추천?

[미스터리4]
[누가 책임지나]

주미 대사관이 예약해준 티켓을 들고 한국으로 돌아온 윤 전 대변인. 그러나 이어진 경질 기자회견과 해명 기자회견, 비서실장의 대국민 사과와 대통령 유감표명까지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모양새다.

지난 13일부터 이 수석은 청와대로 출근하지 않고 있다. '윤창중 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것. 현재는 박 대통령의 재가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 수석은 윤 전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을 "'자체적으로 판단해' 윗선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은 상황 발생 26시간 만에 사건을 보고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에 대해 다수 정치권 관계자는 "허태열 비서실장이 보고 받지 않았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비서실장 퇴진론을 들고 나온 상황이다. 이 엄청난 스캔들을 이 수석 혼자서 드리블했다고 보긴 어렵다는 것.

얼마 전 몇몇 기자들을 중심으로 소문이 전해진 '대통령 전용기 이탈' 의혹은 이 전 수석의 '독단'과 맞물려 새롭게 주목 받고 있다. 재미블로거 안치용씨가 자신의 블로그 '시크릿 오브 코리아'를 통해 폭로한 내용은 박 대통령이 뉴욕에 체류 중일 때 대통령 전용기가 뉴욕을 이탈, 워싱턴에 다녀왔다는 전용기 신호가 발견됐다는 내용이었다. 즉 박 대통령 몰래 대통령 전용기가 누군가에 의해 움직였다는 의혹인 셈.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만약 해당 의혹이 사실이라면 현재 청와대 내 공직기강이 얼마나 해이한 지를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사건이 될 것"이라며 "이번 '윤창중 사건'만 봐도 보고 받았다는 사람은 없는데 모두 알아서 움직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청와대 안팎에서는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윤 전 대변인을 인선한 인물이 따로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상황이다. 윤 전 대변인을 박 대통령에게 추천한 사람으로 청와대 막후 권력 A씨가 거론되고 있는 것.
복수 관계자는 "A씨와 윤 전 대변인이 오래도록 술친구였는데 어느 날 보니 한 사람은 언론에 드러나지 않고, 윤 전 대변인은 청와대로 들어가 굉장히 놀랐다"고 진술했다.

청와대 인선 과정 당시 유력 후보로 꼽히던 사람들은 대개 며칠 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일례로 김행 대변인은 한 방송국 촬영장에서 전화를 받고 인수위 합류 사실을 알게 됐으며, 박선규 전 대변인 역시 지역 행사에 있던 중 전화를 받고 인수위에 합류했다.

이 같은 배경 하에 인수위 당시 청와대로 입성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유력 후보군은 박 전 대변인과 김 대변인이었다. 이들이 청와대 인선과 관련한 전화를 받았다는 소문이었다.

한 여당 관계자는 "의원들 사이에서는 청와대 대변인으로 박 전 대변인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윤창중'이 호명돼 모두가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며 "박 대통령은 인사에 관해 당 사람들과 잘 얘기하는 스타일이 아니다"고 전했다. 즉 박 대통령이 인사에 관해 얘기하는 사람은 정치권 밖에 따로 있다는 설명.

윤 전 대변인의 인선 사실을 며칠전부터 파악하고 있던 한 관계자는 "A씨의 측근과 절친으로 알려진 인물이 인수위 당시 윤창중이 뽑힐 거라는 소문을 내고 다녔다"라며 "지금 모든 책임소재가 박 대통령에게 가고 있는데 실은 다른 곳에 책임이 있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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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미영 팀장’ 동반 탈옥 비쿠탄 마약왕 풀스토리

[단독] ‘김미영 팀장’ 동반 탈옥 비쿠탄 마약왕 풀스토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김미영 팀장’으로 불린 보이스피싱 총책 박모씨와 함께 필리핀 구치소서 탈옥한 조직원들의 실체가 드러났다.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서 처음 만난 이들은 보이스피싱과 마약 유통을 결합한 신종 범죄조직을 꾸렸다. ‘비쿠탄 마약왕’으로 알려진 송모씨는 2022년 수원서 필로폰을 소지한 채 붙잡힌 김모씨의 상선이라는 정황이 드러났다. 지난 8일 본지가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를 최초 보도한 이후, 외교부 측은 루카스 베르사민 필리핀 대통령비서실장에게 “탈옥한 이들에 대한 조속한 검거와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해달라”는 공적 서한을 전달했다. 현재 박씨에 대한 검거 작전은 필리핀 이민청 도피사범추적팀과 필리핀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 경찰 부서)가 협력하고 있다. 새벽 탈출 어디로 갔나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약 2년 전 비쿠탄 교도소에 수감된 이들은 지난해 11월 필리핀 나가시(市) 카마린스 수르 주 구치소로 이감됐다. 3명 모두 불법 고용과 인신매매 혐의 등으로 기소되면서다. 복수의 제보자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1일에서 2일 새벽 사이 미리 준비한 오토바이와 차량을 이용해 탈옥했다. 필리핀 교정 당국은 지난 2일, 인원 점검 때 박씨 일당이 탈옥한 것을 뒤늦게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교도소에 CCTV가 설치돼있지 않아 탈옥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일부 훼손된 철조망을 찾아냈다고 한국 정부에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카마린스 수르 구치소에 대해 현지 제보자는 “담장이 낮고, 보초도 허술해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기에 탈옥이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라며 “그들은 비쿠탄 교도소보다 허술하다는 점을 노리고 변호사를 통해 가짜 범죄를 만들어 이감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탈옥한 일당이 도피하는 동안에도 보이스피싱과 마약 유통을 결합한 신종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씨는 2012년부터 필리핀 현지에 콜센터를 차린 보이스피싱 1세대다. ‘김미영 팀장’이라고 소개하며 전화나 문자메시지로 금융기관을 사칭해 개인정보를 빼냈다. 박씨가 보이스피싱으로 가로챈 금액만 4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08년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서 근무하다가 수뢰 혐의로 해임된 경찰 출신으로 드러나면서 더욱 충격을 안겼다. 경찰 근무 당시 접했던 범죄 수법을 토대로 ‘김미영 팀장’ 사기 수법을 고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10년간 보이스피싱 조직을 운영해 온 박씨는 2021년 10월6일 마닐라 인근서 붙잡혔다. 당시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박씨가 마닐라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이들에 맞서 중무장했다. 붙잡힌 박씨는 “필리핀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국내 송환을 피하고 상대적으로 보안이 취약한 필리핀 교도소에 수감되기 위한 노림수였다. 비쿠탄 교도소 출신 제보자는 <일요시사>와 통화서 “(박씨는)비쿠탄 내에서 식사를 판매하는 아저씨로 통했다”며 “박씨가 송씨, 신씨와 어울리면서부터 교도소 내에 마트를 인수해 장사할 정도로 돈을 많이 벌었다”고 증언했다. 보이스피싱과 결합한 마약 유통 대포폰으로 텔레그램 마약방 개설 비쿠탄 교도소는 식사가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죄수들이 직접 돈을 벌거나 영치금을 통해 생계를 이어간다. 죄수들은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조직을 꾸려 보이스피싱, 대포폰, 마약 유통 사업을 할 수밖에 없다. 최근 박씨와 함께 탈옥한 송씨, 신씨가 비쿠탄 교도소 내에서 동업을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박씨와 함께 탈옥한 송씨와 신씨에 대한 새로운 증언들도 쏟아졌다. 제보자에 따르면, 신씨는 타인 명의로 개통한 유심칩을 판매하는 역할을 맡았다. 신씨는 불법 유심칩 1개당 한국 돈 약 25만원을 받고 팔았다. 신씨에게 산 대포 유심칩으로 신분을 철저히 숨길 수 있게 된 송씨는 텔레그램으로 마약 전달책을 모집하고 유통하는 이른바 ‘마약방’을 개설했다. 평소 신씨가 재테크 사기, 주식 및 코인 리딩방 등을 운영해오면서 모은 수천명의 회원들은 송씨가 운영하는 마약방으로 초대됐다고 한다. 송씨는 채팅방서 ‘두목’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했다. 또 박씨는 신씨의 도움을 받아 수억원가량을 비트코인으로 환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비쿠탄 교도소 출신 제보자는 “마약과 거리가 멀었던 박씨가 송씨와 안면을 트면서 보이스피싱보다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을 함께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송씨가 필리핀 파사이 등에 있는 마약 공급책을 통해 한 달에 5kg 정도의 필로폰 유통을 지시했다”며 “송씨는 비쿠탄서 만난 중국 마피아로부터 싸게 구입한 필로폰 등을 드라퍼(전달책)에게 전달해 한국으로 수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송씨가 드라퍼에게 준 배달료는 한화 약 1000만원가량으로 전해진다. “한국 싫어” 가짜 범죄 다수의 전달책이 송씨의 필로폰 배달을 시도한 정황은 곳곳서 드러났다. 송씨가 고용한 운반책은 2022년 1월25일, 수원의 한 모텔서 필로폰을 소지하다가 붙잡힌 김모씨였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당시 수원중부경찰서는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30대 남성 김씨를 긴급체포했다. 김씨는 이날 오전 8시7분께 장안구 영화동의 한 모텔서 필로폰을 소지했다. 앞서 ‘한 남성이 모텔서 마약을 소지하고 있다’는 신고를 접수받은 경찰은 현장으로 출동했다. 경찰은 모텔 안에서 필로폰이 포장된 비닐백 30개를 발견하고 이를 압수 조치했다. 또 김씨를 상대로 진행한 마약 간이 검사서 양성반응을 확인했다. 경찰조사에서 김씨는 투약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텔레그램으로 필로폰 거래를 지시한 ‘orjinal8282’가 상선이라는 사실을 숨기려고 거짓으로 진술했다. 경찰에 따르면, orjinal8282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자가 김씨에게 “수원으로 가서 모텔을 잡고 기다려라”며 “사탕(엑스터시) 50, 어름(필로폰) 50 좀 있다가 드랍해서 갖고 있어”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송씨와 비쿠탄 교도소서 함께 지냈던 제보자는 “orjinal8282는 송씨의 아이디”라며 “김씨가 붙잡혔다는 소식을 들었던 마약방 회원들은 송씨가 김씨의 고용주(상선)이었다고 적었다”며 텔레그램 채팅방 사진을 전했다. 송씨가 넘긴 마약을 유통하려고 한 사람은 또 있었다. 지난해 1월23일, 충남 서산서 아내를 살해하고 저수지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필리핀으로 도주한 강주천이다. 그는 한국 경찰의 공조 요청으로 필리핀서 검거됐으나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강주천은 지난해 6월 비쿠탄 수용소서 탈옥했다가 8일 만에 체포됐다. 탈옥 후 체포 당시 1kg의 필로폰을 소지하고 있었다. 강주천은 도피 자금을 벌기 위해 송씨의 지시를 받아 필로폰 배달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밥 먹듯… 탈옥 시도 비쿠탄 관계자들은 이른바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이 큰돈을 벌자, 박씨와 송씨 일당도 마약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봤다. 지난해 중순 박왕열은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서 “이젠 나보다 송씨가 마약왕에 가깝다”며 “한국으로 보내는 양이 내가 보낸 것보다 많다”고 말했다. 앞서 박왕열은 2016년 10월 필리핀 한 사탕수수밭서 한국인 3명을 총으로 쏴 살해한 사건의 범인이다. 이 사건은 드라마 <카지노>를 통해 유명해졌다. 그는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에 구금됐다가 2017년 3월 탈옥해 두 달 만에 잡혔다. 2019년 10월에는 재판을 받고 구치소로 돌아가던 중 재차 도주해 2020년 10월 다시 검거됐다. 박왕열은 이 기간에 마약왕 전세계로 거듭났다. 국내 마약 유통·판매 총책이었던 ‘바티칸 킹덤’ 이모씨에게 수억 원대의 마약을 공급했다. 이는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 등에게 팔렸다. 박왕열의 옥중 마약 유통 의혹은 이미 경찰 수사를 통해 사실로 드러났다. 지난 4월12일, 경남경찰청 광역수사대는 A씨 등 3명을 국내 중간 판매책에게 마약류를 판매한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유통책 중 한 명은 2022년 12월 NBP서 박왕열을 만나 국내로 밀반입해 보관 중인 마약류를 판매키로 공모하고, 지난해 1월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이용해 특정한 장소에 마약을 놓고 사라지는 이른바 ‘던지기 수법’으로 엑스터시 100정, 필로폰 10g을 국내 중간 판매책들에게 600만원(도매가)을 받고 공급했다. 그동안 경찰은 박씨 일당 등 한국인 범죄자의 강제송환을 추진했으나 지지부진한 상태다. 박씨 일당은 필리핀서 죄를 짓고 형을 받으면 국내 송환이 지연된다는 점을 노렸기 때문이다. 경찰은 현재 박씨에게 적용된 혐의 중 인신매매는 허위로 만들어낸 범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수원 모텔서 잡힌 전달책 상선” 박왕열 “이젠 송씨가 마약왕” 박씨가 쓴 꼼수는 이미 필리핀 도피 사범들 사이에 만연하다. 현재 필리핀 도피 사범은 5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 송환을 거부하는 범죄자들은 필리핀 현지 변호사를 통해 ‘가짜 범죄’를 만든다. 비용은 한국 돈으로 많게는 3000만원서 적게는 100만원 정도가 든다. 제보자에 따르면 “가짜 케이스를 만드는 건 흔한 일”이라며 “강간, 사기, 폭행 정도의 가짜 범죄를 만들어 재판에 출석하면서 국내 송환을 계속 미루는 것”이라고 전했다. 박씨가 국내로 송환될 경우, 최소 징역 15년서 25년 이상 집행될 수 있다. 지난해 6월 재판부는 2012년 3월부터 2016년 6월까지 중국과 필리핀서 보이스피싱 총책으로 활동하며 피해자 435명에게 26억여원을 가로챈 B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송씨의 경우, 마약을 수출입·제조·매매하거나 매매를 알선 또는 그럴 목적으로 소지·소유한 것에 대한 처벌이 가해진다. 해당 혐의가 인정되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며, 영리 목적 또는 상습적이라는 사실이 입증될 경우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까지 내려질 수 있다. 필리핀 당국과 한국 정부도 탈옥범들을 추적 중인 가운데, 현지 법 적용을 고려하면 다시 붙잡히더라도 국내 송환이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필리핀서 저지른 다른 범죄의 조사와 재판이 끝나지 않아 한국으로 송환되려면 최소 6년이 걸린다. 특히, 탈옥 행위로 현지 법을 중대하게 위반한 만큼 현지서 징역형을 선고받을 가능성도 크다. 송씨와 박씨에 관한 국내 송환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볼 수 있다. 필리핀서 장기간 수용 생활을 하는 한국인을 국내로 이송하면 좋으나, 현재 수용자 이송 조약은 체결돼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법무부는 “송환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인물의 이송 요청을 지속하고 있다”며 “필리핀 이민국과 논의를 이어가는 중”이라고 밝혔다. 법무부의 이 같은 입장은 예전과 다르지 않다. 시간이 가는 동안 이송 조약조차 체결하지 못한 점은 한국 정부의 소극 행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법무부가 보이스피싱 혐의가 아닌 마약 유통 혐의로 송환을 적극적으로 요청한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필리핀 정부가 ‘재량’을 근거로 거절할 가능성도 있으나 법무부는 이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머나먼 국내 송환 이상화 주필리핀대사는 지난 14일 오전과 오후에 각각 필리핀 외교부 차관과 법무부 차관을 만나 박씨에 대한 조속한 검거와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요구했다. 한편, 박씨 일당 외에 인질강도 혐의로 수배돼있던 한 남성도 최근 현지 교도소를 빠져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필리핀 현지 경찰이 쫓고 있는 한국 국적의 수배범만 박씨 일당을 포함해 6명 이상인 것으로 파악됐다. 수배범들은 대부분 사기 혐의로 수배가 걸려 있었다. 이 중에는 10건 이상 수배가 걸린 수배범들도 있었다. 그만큼 교정시설 보안이 취약하다는 뜻이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