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뒷담화> 억울한 '부영 모자' 사연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5.22 17: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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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에 물린 사모님…개주에 맞은 아드님

[일요시사=경제1팀] 대기업 회장의 부인이 개에 물렸다. 이를 저지하려던 아들은 폭행을 당했다. 산책 중에 당한 봉변이다. 그런데 마땅히 하소연 할 때도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고 한다. 사건을 접수한 경찰도 마찬가지다. 개 주인이 '마법의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재계 순위 20위(공기업 제외)의 임대주택업 회사인 부영그룹 회장의 부인과 막내아들이 공원 산책 중 개에게 물리고 개주인에게 폭행을 당하는 봉변을 당했다.

지난 9일 저녁 6시께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남산공원 인근 파출소에 한 통의 신고전화가 접수됐다. 사람이 개에 물렸고 개 주인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그날 저녁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의 부인 나모씨는 3남 이모씨와 함께 자택 주변 남산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그런데 목줄이 풀린 큰 개 한 마리가 이들 모자를 덮치면서 나씨의 오른손가락을 물었다. 이씨는 이를 제지하기 위해 우산으로 개를 때리며 밀쳐냈다. 문제의 개는 '리트리버' 종으로 성질이 비교적 온순하지만 사냥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목줄 풀려 봉변

이를 본 개 주인 A씨는 적반하장으로 이씨를 밀치고 발로 차는 등 폭행을 휘둘렀다. 곧바로 이씨는 A씨를 폭행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다. 나씨는 이씨가 부른 119구급대에 의해 종합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당일 퇴원했다. 부상 정도는 경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부영그룹 계열사 부영엔터테인먼트(이하 부영엔터) 대표이자 영화감독이다.

개를 키우는 사람은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동선을 고려해 적정한 길이의 목줄로 개를 묶어 놓거나 우리에 가두는 등의 방법으로 개가 사람을 무는 등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해야 할 주의 의무가 있다. 지난해 말에는 개가 사람을 물어 주인이 처벌을 받은 판례도 나왔다.


당시 법원에 따르면 개 주인 김씨는 자신의 집 마당에 자신의 개 '차우차우'를 목줄로 묶어 놓았다. 하지만 개를 묶은 목줄의 길이가 길어 그 옆에서 빨래를 널고 있던 이웃 두 명의 다리를 물어 각각 전치 2주·3주의 상처를 입혔다. 김씨는 벌금 150만원을 선고 받고 항소, 피해자와 합의를 이끌어내 벌금 30만원으로 감형됐다.

이번 사건에서도 피해자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A씨는 최소 벌금형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배짱을 부리고 있는 이는 오히려 A씨다. 17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부영그룹도,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A씨가 독일대사관 무관보이기 때문이다.

무관이란 자국을 대표해 외국에 파견된 군사외교관이다. 이들에게 부여된 주요 임무는 ▲주재국과 다른 나라의 군에 관한 첩보 수집 ▲주재국과의 군사 협력과 군사 외교 추진 ▲자국산 방산 제품 수출 지원 ▲자국에 필요한 군수품 구매 정보 수집 ▲주재국 관련 첩보 수집 등이다.

문제는 이들의 원활한 외교업무 수행을 위해 주어진 면책특권이다. 1961년 맺어진 비엔나조약에 근거를 둔 면책특권은 주재국의 간섭을 받지 않고 공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 그러나 사적인 범죄 뒤 면책특권을 앞세워 수많은 외교관들이 한국 법망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A씨도 이 면책특권을 앞세워 경찰 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이씨의 신고를 받은 경찰도 A씨를 이태원파출소로 연행했다가 외교관 신분을 확인한 뒤 집으로 돌려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용산경찰서 관계자는 "A씨를 조만간 소환해 조사하겠지만 면책특권이 있는 대사관 직원 신분이라 '공소권 없음'으로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아들과 남산 산책 중 대형견에 물려 
외교관 개주인 "배째라" 수사 불응
이중근 회장 일가 향후 대응에 주목

주한 독일대사관 측은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대사관 한 관계자는 "지금 베를린에 있는 본부와 이 사건에 대해 논의 중에 있다. 갑작스럽게 기사가 나와 우리도 매우 놀랐다"고 전했다.


부영그룹 측은 경찰이 사건을 조사 중이기 때문에 구체적 대응은 진행 과정을 지켜본 후 결정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 회장 일가의 대응이 주목된다. 이 회장이 '소송 종결자'라고 불릴 정도로 법에 대해 '빠삭'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지난해 6월 이 회장이 차명 재산에 증여세를 부과했던 세법 조항이 없어진 점을 이용,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거액의 증여세를 환수한 일이다. 이 회장은 79년 운영하던 건설업체가 부도가 나 금융거래가 정지되자 83년 ㈜부영과 ㈜대화도시가스의 비상장 주식 수백억원어치를 사들인 뒤 동생 신근씨와 매제 남형씨 등 명의로 차명 보유했다. 92년 다시 금융거래가 가능해졌지만 이 회장은 차명 재산의 명의를 되돌릴 때 내야 할 막대한 증여세와 취득세 때문에 차명 보유한 재산을 되찾지 않았다.

2007년 세무당국이 비상장 주식으로는 증여세 물납을 허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세제를 개편하기로 하자, 현금이 필요했던 이 회장은 그제서야 주식 물납 형태로 830억여원을 증여세로 내고 차명 주식을 자신 명의로 되돌렸다. 그러다가 지난해 6월 차명 재산 보유를 일종의 탈세 수단으로 규정해 실명 전환 시 증여세를 부과했던 국세청 내부 규정이 없어지자 이 회장이 국세청에 환급을 요구, 증여세를 대부분 되돌려 받은 것이다.

이 회장은 2009년 신세계와의 소송전에서도 승리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이 회장의 2층짜리 자택 앞에 이명희 신세계 회장이 신축 공사를 시작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이 회장은 자신의 집 앞에 짓는 이명희 회장 측 주택 공사를 중지시켜 달라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고 그해 8월25일 받아들여졌다. 이명희 회장은 공사를 중단했고 결국 양측 간 분쟁은 당초 2층까지 올릴 예정이던 건물을 1층에서 마무리하는 선으로 정리됐다.

이 회장은 A씨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아들 이씨에 대한 사랑도 각별하다. 이씨가 대표로 있는 부영엔터에 계열사 동광주택 자금을 대거 쏟아 붓고 있는 것. 이 회장은 동광주택의 대표이사를 겸하고 있다.

그냥 참고 넘길까

동광주택이 부영엔터에 지원한 돈은 2011년에만 총 35억원. 연이자 5.5%에 1년 뒤 완납하는 조건이었지만 부영엔터는 차입금 전액의 만기를 1년 연장했다. 또 다른 계열사 대화기건은 부영엔터의 채무를 떠 안기도 했다. 지난해 9월 이씨가 100% 보유하고 있는 주식 2만주가 대화기건에 무상 양도됐으며 부영엔터가 지난 2년간 자본잠식 상태였던 까닭에 상속세와 증여세는 한 푼도 발생하지 않았다. 대화기건의 최대주주는 나씨다.

심지어 부영엔터가 사무실로 사용하는 서울 양천구 목동 건물도 그룹 계열사인 부영주택 소유다. 보증금 1억원에 연간임차료는 고작 1100만원이다. 일각에선 이씨의 신작이 발표되면 부영그룹 직원들이 직접 나서서 영화표와 DVD를 구매하기도 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바 있다. 부영그룹의 향후 대응이 주목되는 이유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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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