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노무현 쇼크② 궁지 몰린 MB 위기 타개책



검찰 수사 비판 여론, MB 향한 날선 칼날로 탈바꿈
“촛불집회 막겠다” 경찰 투입 ‘악수’ 집권 최대위기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급작스런 서거로 궁지에 몰린 이명박 대통령이 위기를 타개할 패를 고르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의 책임이 무리한 수사를 한 검찰과 이러한 ‘전 정권 죽이기’ 수사의 배후에 서 있는 현 정권에게로 몰리면서 국민적 반발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으로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면서 정부를 향한 불만이 표출되고 있지 않지만 자칫 안으로 곪은 상처가 촛불집회로 터져 나올 경우 정권 퇴진운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각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때문에 여권은 4월 재보선 수습책으로 논의해온 ‘개각’을 민심수습책으로 꺼내드는 한편 직접적인 비난 여론에 노출된 검찰의 ‘물갈이’를 고려하고 있다. 이 대통령을 구할 위기 타개책이 속속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원인으로 무리한 검찰 수사가 지적되면서 청와대도 책임을 면키 어려워졌다. ‘죽은 권력’에 대한 ‘살아있는 권력’의 정치 보복이었다는 주장이 날로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여당은 서울 시청 앞 광장을 막아서는 등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가 촛불집회를 타고 청와대를 불태우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해 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국정 마비와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를 불렀던 촛불집회가 다시 한 번 재현될 경우 현 정부가 그 파장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각계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이다.

“노 서거는 일종의 고문치사”
‘탄핵’ 불 지피는 야권

그러나 경찰력을 투입해 ‘촛불’을 막으려는 모습은 도리어 ‘과도한 견제’라는 비판을 불렀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촛불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해하지만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발길을 막는 공권력 앞에 시민들은 분노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여기에 민주당 등 야권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정권 퇴진운동’의 불을 지피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유시민 전 장관은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앞두고 “정권과 검권과 언권에 서거 당한 대통령의 영결식”이라며 이명박 정부와 검찰, 언론에 직격탄을 날렸다.


민주당 송영길 최고위원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현 정부에 의한 일종의 고문치사”라고 주장했다.

송 최고위원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현 정권의 권력남용과 정치보복에 따른 것 때문이라는 것이 모든 국민의 한결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를 예로 들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잘못된 수사 내용을 조목조목 따져 물었다.

그는 “증거도 없이 특정 한 사람의 진술에만 의존해서 2개월 동안 발가벗겨 사실상 고문을 해서 사망에 이르게 한 일종의 고문치사와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비판하면서 “이런 검찰 수사에 대해서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 70여 대학 총학생회가 참여한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도 기자회견문을 통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거대한 애도의 물결엔 전직 대통령을 자살로 내몬 현 정권에 대한 분노가 녹아 있다”며 “피의사실을 사전에 낱낱이 언론에 흘리는 방식의 검찰 수사는 누가 봐도 명백한 정치보복성 표적수사였다”고 규정했다.

아울러 “공권력을 동원해 수천 명의 경찰이 조문객을 막고 시청 앞 광장을 원천봉쇄했지만 조문객의 수는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고 촛불의 숫자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며 “이미 이명박 정부에 대한 전 국민적 분노와 저항의 불길은 시작됐다”고 강조했다.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도 “촛불을 견제하고 서울시 광장을 열지 못하게 하는 것을 보면 정치적, 반민주적 공안권력의 강화된 것”이라고 지적하며 이 대통령에게 “이번 조문행렬에서 나타나는 민심의 향방과 성격을, 그들의 분노한 눈물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끝없는 야권의 공세에서 이 대통령을 구한 것은 뜻밖에도 북한이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중 북한은 핵실험에 이어 연거푸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 한반도를 긴장케 했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가 강경대응으로 맞받아치면서 남북의 긴장관계는 높아만 갔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국민적 관심도 남북관계로 시선을 돌렸으며 이명박 정부의 굳건한 버팀목인 보수세력의 결집 계기로 작용하는 효과를 낳았다. 취임 후 불편한 관계를 이어온 북한이 이 대통령을 집권 후 최대 위기 상황에서 구해준 셈이 된 것.

그러나 정치분석가들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한 국민적 쇼크 상황은 이 대통령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과의 문제로 시선이 분산되기는 했지만 그뿐이다. 대북문제로의 물타기만으로는 야권의 공세를 막고 전세를 뒤엎기에는 턱없이 모자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노 전 대통령의 서거 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급락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달 23일 실시한 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23.2%로 지난 1월9일(22.5%)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또한 국정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적 평가는 69.4%에 달했다.
이 대통령이 꺼내들 수 있는 타개책은 무엇일까. 이 대통령은 우선 전 대통령에 대한 도리를 다하는 것으로 그 첫 발을 뗐다.

MB정권 구한 북풍
오래된 경색에 약발 ‘뚝’

이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국민 모두 함께 애도해마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직접 조문을 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안전문제 등을 고려, 봉하마을 빈소를 방문하려던 계획을 변경하기는 했지만 ‘할 도리’는 다한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서울 경복궁에서 거행된 영결식에 참석, 노 전 대통령을 조문했다.

또한 ‘책임론’이 인 검찰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우선 임채진 검찰총장이 경질될 수 있다. 임 총장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알려진 직후 “인간적인 고뇌 때문”이라는 짧은 말과 함께 사표를 제출했다.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사태 해결이 우선”이라며 사표를 반려했다.

하지만 검찰에 대한 비판 여론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는데다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대검 중수부장, 중수1과장 등 핵심 수사 책임자들을 해임시키고 피의사실공표죄 등에 대해 사법처리까지 해야 한다”는 야권의 주장도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다.

비장의 카드 빼드는 MB
검찰청장 경질하면 살까

때문에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의혹 수사 종료 이후 임 총장을 경질시키고 이인규 대검찰청 중수부장, 홍만표 수사기획관, 우병우 중수1과장 등 노 전 대통령 수사를 진행해 온 수사팀을 대폭 교체하는 방안이 이야기되고 있다.

또한 김경한 장관의 교체설도 청와대와 검찰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김 장관이 현 중수부 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개각을 통해 자연스럽게 물러난다는 것이다.

검찰 내부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임 총장이 임기를 끝까지 마무리하고 싶어 사표 제출을 거부했던 것으로 안다”면서 임 총장의 사표 제출에 적지 않은 압력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그는 “박연차 게이트 수사 종료 후 임 총장이 경질되고 이인규 대검찰청 중수부장과 우병우 중수1과장은 전보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 같다”고 전했다.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 권력’에 대한 비판이 거세짐에 따라 향후 개각과 조직개편 등에서 검찰의 권력을 일부 줄이는 방안이 추진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대신 경찰력이 강화된다는 것. 이로 인해 검찰과 경찰이 오랫동안 대립각을 세워온 기소권 및 수사권 배분 문제가 재점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와 여권 주변에서는 ‘6월 개각설’이 거론되고 있다. 이미 4월 재보선 패배 후 “당도 그렇고 청와대나 정부 내각도 정비가 이뤄졌으면 한다”는 쇄신의 목소리가 높았던 만큼 6월 정계개편을 통해 분위기를 일신하자는 것이다.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데다 6월이면 윤진식 경제수석을 제외한 대부분의 청와대 수석들이 1년 임기를 채우게 돼 인사 단행 가능성이 높다. 또한 사정기관들도 장·차관 등에 대한 스크린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일각에서는 비경제부처 장·차관들의 교체가 거론되고 있다. 남북관계 경색 등을 이유로 외교 안보라인이 바뀔 것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비상시국이 된 이상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다만 일부 사회부처 장관들과 여성부 등이 교체 대상이라는 이야기는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6개월 이상은 곁에 두는 이 대통령의 인사 흐름을 볼 때 급격한 진용개편보다 6월 임시국회에서 주요 개혁법안이 처리된 뒤 7~8월께 내각과 청와대에 변화를 꾀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6월보다는 7월 개각설에 무게를 뒀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정치권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시계 제로’ 상태가 된 이상 6월 국회에서의 주요 법안 처리는 힘들 것이라는 게 정치권 대다수의 전언이다.

이들은 차라리 국정 쇄신을 통해 법안처리의 탄력을 얻고자 하는 시도가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 쇄신특위의 쇄신안과 개각이 함께 진행되면서 당정청을 망라한 대대적인 물갈이와 조직개편이 이뤄지고 이를 통해 국정동력을 얻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권 쇄신안 타고
‘6월 개각설’ 모락모락

장관급의 경우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데 비경제부처의 장·차관급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낙마 후 공석상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국세청장 인선까지 해결될 수 있어 6월 중 중폭 이상의 개각이 단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다만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미 청와대 참모진과 일부 장관을 교체할 것이라는 조기개각설이나 당 쇄신안에 대한 주장을 이 대통령이 모르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러한 방안에 이 대통령에 실망하고 있는 이들에게 다시 신뢰를 줄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는지, 노 전 대통령을 잃고 분노하고 있는 국민들을 아우를 ‘화합책’이 들어가 있는지, 그리고 이것이 정말 실행될 수 있는지의 여부가 ‘진정성’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