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노무현 쇼크①‘참담한 순간’ 6대 미스터리

들릴 듯 말 듯…귓가에 맴도는‘봉화산 메아리’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영결식이 끝났지만 아직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들이 속 시원하게 풀리지 않고 있다. 경찰의 오락가락한 태도 탓이다. 경찰은 ‘이랬다 저랬다’를 반복하며 뒤엉킨 실타래를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다. 그저 증언에 기대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이 틈새로 인터넷 등 세간에선 터무니없는 각종 ‘설’들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실정이다. 노 전 대통령 서거를 둘러싼 의혹들을 다시금 조목조목 짚어봤다.

정확한 사고 경위 등 풀리지 않은 의문들 여전히 ‘미궁’
경찰 수사 ‘오락가락’ 사이 터무니없는 ‘설’ 모락모락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두고 말들이 많다. 서거 경위에 대한 경찰의 수사에 미심쩍은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경찰은 당초 수사 내용을 모두 뒤집은 상태. 하지만 여러 의문점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의문1>‘이랬다 저랬다…’
경호원 진술 번복 왜?

경찰은 노 전 대통령이 산행에 동행한 이모 경호원에게 심부름을 시킨 뒤 투신한 것으로 잠정 결론 내렸다. 노 전 대통령이 경호원에게 “정토원에 선 법사(선진규 원장)가 계신지 보고 오라”고 지시한 뒤, 경호원이 정토원에 다녀온 3분 사이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렸다는 것이다.
1차 조사 때 “부엉이바위에 도착해 투신할 때까지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있었다”는 경호원의 진술이 거짓으로 밝혀진 셈이다. 3차에 걸친 경찰의 수사 발표도 모두 제각각이다.
경찰은 “경호에 실패했다는 충격과 자책감, 흥분, 불안, 신분상 불이익 등 심리적 압박으로 허위 진술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지만, 언제 또 번복할지 모르는 경호원의 진술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다시 말해 상황에 따라 경호원의 진술이 바뀔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경찰이 전면 재조사를 통해 확보한 객관적인 자료가 뒷받침돼야 경호원의 진술이 신빙성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전직 대통령이 서거한 사건인 만큼 철저하게 경위를 밝히기 위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의문이 풀릴 때까지 보강수사를 계속할 방침이다.

<의문2>‘30분간 무슨 일이…’
경호 기본원칙 무시 왜?

경호원의 아마추어 같은 행동에도 의문이 생긴다. 이 경호원은 1991년 경호원 공채로 채용돼 노 전 대통령을 취임 당시부터 경호했고, 2008년 퇴임과 함께 봉하마을에서 계속 경호 업무를 수행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호원은 노 전 대통령을 줄곧 모신 베테랑 경호원답지 않게 경호수칙을 무시했다.
경찰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의 산행에 동행한 경호원은 단 한 명이다. 보통 VIP가 외부 활동시 최소 ‘2인1조’경호를 원칙으로 하는 점을 감안하면 허술한 경호가 아닐 수 없다.
경호 전문가들도 “전직 대통령이 산행을 하는데 경호관이 한 명밖에 수행하지 않은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이 벼랑 끝에서 몸을 던질 당시 경호원은 자리를 지키지 않았다. 아무리 심부름을 갔다 해도 경호 상대를 혼자 남겨뒀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경호원이 노 전 대통령의 지시로 자리를 뜬 시각이 오전 6시14분께, 그리고 산 밑에서 노 전 대통령을 발견해 동료에게 차를 대라고 전화한 시간이 오전 6시45분이므로 약 31분간 ‘경호 공백’상태였다.
‘경호 대상에서 눈을 떼지 말라’는 조항은 경호원의 기본수칙으로, 만약 불가피하게 자리를 떠야 하는 용건이 발생하면 무전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게 원칙이다. 경찰은 경호 공백 31분 동안 경호관들의 행적에 수사를 집중하고 있다.

<의문3>‘119 코앞에 두고서…’
베테랑 어설픈 행동 왜?


경호원이 노 전 대통령을 발견하기까지 과정과 발견한 이후 수습도 논란거리다.
이 경호관은 노 전 대통령이 실종된 상황에서 휴대전화로 동료에게 연락했다고 진술했다. 항시 무전기를 차고 귀에 리시버를 꽂은 채 본부(노 전 대통령 자택)에 수시로 보고하는 경호원이 무슨 이유로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는지 의문이다.
또 노 전 대통령을 발견한 경호원의 초기 대처도 어설펐다. 경호원이 부엉이 바위 밑에서 누워 있는 노 전 대통령을 찾은 것은 6시45분, 노 전 대통령을 가장 먼저 살펴본 세영병원에 도착한 시각이 7시다. 병원 이송이 15분 걸렸다는 얘기다.
세영병원 측은 “병원에 도착 당시 의식불명 상태”란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현재로선 노 전 대통령이 현장에서 즉사했는지, 이송 과정에서 숨을 거뒀는지 사망 시점이 명확치 않지만, 경호원이 빨리 발견해 응급 처치만 제대로 했으면 노 전 대통령이 회생할 수 있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응급의학계에 따르면 응급환자 발생시 초기 대응 5분이 생명을 좌우한다. 심폐소생술, 인공호흡 등 적절한 조치가 5분 안에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최초 목격자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뇌가 치명적으로 손상되거나 사망할 확률이 높아진다.
경호원은 이런 응급조치와 절차를 숙지하고 있다. 그러나 경호원은 노 전 대통령의 얼굴을 흔들고 목 부위 경동맥의 맥박만 확인한 뒤 우측 어깨에 메고 산을 내려와 공터에서 차를 기다리는 동안 그때서야 인공호흡을 실시했고, 곧바로 도착한 경호차에 노 전 대통령을 태우고 세영병원으로 후송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추락하면서 충격을 심하게 받은 노 전 대통령을 경호원이 무리하게 어깨에 메고 이동한 점, 응급차가 아닌 승용차로 이송한 점 등을 지적하고 있다. 도리어 부상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경호원들이 119에 구조 연락을 하지 않는 점도 의혹을 더한다. 진영 119센터는 봉하마을 사저에서 불과 4.19㎞ 정도로 응급차로 5분 거리에 있었지만, 경호원들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경찰은 “경호원이 다급한 상황에서 경황이 없어 일단 병원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에 우선 메고 갔다”고 전했다.

<의문4>‘일부러 벗기도 힘든데…’
등산화·상의 탈의 왜?

노 전 대통령의 양복 상의와 등산화가 엉뚱한 곳에 떨어진 이유에 대해서도 경찰의 과학적인 설명이 부족하다.
노 전 대통령의 상의는 낙하지점에서 11m 떨어진 곳에서, 등산화 한 쪽은 벗겨진 상태로 시신 주변에서 발견됐다. 상의도 그렇지만 특히 등산화의 경우 보통 신발과 달리 신고 벗기가 쉽지 않다. 네티즌 사이에서 ‘타살설’등이 퍼지는 배경이다.
경찰은 노 전 대통령의 상의와 등산화가 각각 추락하는 도중과 옮기는 과정에서 벗겨졌다고 일축했다.
경찰은 “등산화는 노 전 대통령이 아래로 추락해 굴러 떨어지면서 (목이 없는) 등산화가 벗겨진 것 같다”며 “상의는 혈흔이 많이 묻은 점으로 미뤄 경호관이 투신한 노 전 대통령을 업고 옮기는 과정에서 떨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사건 현장에 혈흔이 없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서거 당일 경찰이 수거한 상의와 등산화에 노 전 대통령의 피가 묻어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수그러들었다.

<의문5>‘누군가 봤을 만한데…’
 사건 목격자 전무 왜?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순간을 지켜본 목격자의 존재 여부에도 시선이 쏠리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경호를 받지 않았던 31분 동안 행적을 판단할 만한 목격자는 공식적으로 아직 없다.
경찰은 “사건 당일 목격자를 상대로 재조사에 들어가는 등 탐문수사를 확대하고 있다”며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본 사람 등 또 다른 목격자를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5시47분께 사저를 나와 등산로 입구 마늘밭에서 일하는 동네주민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이 만난 사람이나 노 전 대통령을 본 사람이 없다.
하지만 최근 노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 목격 진술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일부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종합하면 마을 주민과 사저 경비 초소 대원 등이 노 전 대통령이 추락할 당시 소리를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을 한 주민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의 사저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고추밭에서 일하던 중 제법 큰 물체가 땅바닥에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며 “새벽이라 소리는 굉장히 크게 들렸지만 비명소리는 듣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또 경호관이 투신한 노 전 대통령을 부둥켜안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이들 증언은 등산객 유무와 수색작업 여부 등 경찰의 발표와 조금씩 차이를 보여 앞으로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의문6>‘평소 글과 다른데…’
단문식 메모 유서 왜?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유서엔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 많은 이들을 힘들게 했다… 원망하지 마라… 삶과 죽음은 하나… 화장해 달라… 동네에 작은 비석 하나 세워 달라’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경찰은 “유서는 사저 박아무개 비서관이 발견했고, 유족 측 정재성 변호사를 통해 경찰에서 입수했다”며 “유서 파일을 유족 측의 동의 하에 디지털 증거분석한 결과 작성 시간과 저장시간 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사망 당일 오전 5시21분에 서재 겸 거실에 있는 컴퓨터로 유서 작성을 시작해 5시26분 1차 저장을 했다가 5시44분 최종 저장한 뒤 5시47분께 사저를 나왔다.
하지만 이 유서를 놓고 진위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우선 유서는 노 전 대통령의 육필이 아니다. 서명이나 사인도 없다. 따라서 유서를 다른 사람이 작성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경찰은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유서가 14줄이라고 밝혔으나 실제론 더 많은 분량이 있지 않겠냐는 추측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의 평소 집필 습관을 감안하면 극히 평범하고 단문 형태의 짧은 유서가 미심쩍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직설적인 화법과 과감한 성격상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또 다른 메시지를 남기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빙빙 돌리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내뱉고 보는 스타일로 말솜씨가 좋은 달변가로 유명했다. 핵심이 명확하고 과격한 글로도 정평이 나 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