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원 추태 ‘천태만상’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4.29 15: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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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망신시키는 꼴불견 “한명씩 꼭 있다”

[일요시사=경제1팀] ‘샐러리맨의 꽃’이라 불리는 대기업 임원들의 추태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 기업 임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그 꼴불견의 천태만상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폭언과 폭행, 성폭행에 이르기까지 수법도 다양하다. 이들은 한 번의 실수로 그동안 공들여 쌓아온 개인의 명예가 여지없이 실추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다.



최근 포스코에너지 고위직 임원이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에게 폭행을 휘두른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당사자인 A씨는 지난 22일 포스코에너지로부터 보직해임 처분을 받았지만 사건의 파장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라면과 바꾼
임원 자리

항공업계에 따르면 A씨는 지난 15일 대한항공 인천발 미국 LA행 비행기 안에서 기내 비즈니스석 서비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여 승무원을 폭행했다. 

A씨는 기내식으로 제공된 밥과 라면이 다 익지 않았다며 수차례 다시 준비해 오라고 요구, 그래도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손에 들고 있던 잡지로 여 승무원의 머리를 가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한항공 사무장과 기장은 기내 폭행 사건을 비행기 착륙 전 LA공항 관계자와 수사기관에 신고해 미국 연방수사국(FBI) 요원이 출동했다. 미 FBI는 폭행 A씨에게 입국한 후 미 수사 당국 조사를 받을 것인지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갈지를 선택하라고 요구했고, 결국 임원 A씨는 바로 귀국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승객은 항공기 보안이나 운항을 저해하는 폭행·협박, 위계행위를 하면 안 된다. 또 기장은 기내 안전을 해치는 행위나 인명·재산에 위해를 주는 행위, 또는 항공기내 질서를 어지럽히거나 규율을 위반하는 행위를 한 승객을 상대로 체포 신청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A씨가 대기업 임원으로서 품위를 지키지 못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포스코에너지의 모기업인 포스코가 홈페이지에 공식 사과문을 게재했지만 네티즌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이 사건을 풍자한 ‘포스코 라면’, ‘기내식의 황제’ 등의 여러 가지 패러디들이 등장했다. 신라면 패러디에서는 승무원 얼굴을 때린 것을 두고 ‘매운 싸다구맛’이라고 비아냥거리며 ‘기내식의 황제가 적극 추천합니다’라는 말풍선과 함께 ‘개념 무첨가’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A씨는 23일자로 사직서를 제출, 회사에서도 이를 곧바로 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1983년 포스코에 공채 입사한 후 포스코터미널, 포스코켐텍 등을 거쳐 2년전 포스코에너지로 자리를 옮긴 뒤 지난 3월 인사에서 ‘샐러리맨의 별’이라고 불리는 상무로 승진까지 한 인사다. 포스코는 임원 승진 비율이 대기업 평균 1%보다 더 낮아 280명당 1명 정도의 임원이 나올 정도로 어렵다.

이러한 최상위의 자리에까지 오른 대기업 임원이 이번에 비행기 기내에서 보여준 추태는 우리사회 지도층의 추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크다는 지적이다.

사회특권층 추태
‘나라망신 일쑤’

사실 사회지도층들의 비행기내 난동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2007년 12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김해발 대한항공 1104편 항공기(서울행)에 탔다가 이륙준비를 위해 좌석 등받이를 세워달라는 승무원의 요구와 기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소란을 피웠다. 결국 비행기 출발이 1시간가량 지연됐고 박 전 회장은 2심에서 벌금 1000만원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2005년 9월에는 모 대기업 부장 B씨가 영국 런던으로 향하는 기내에서 난동을 부리다 경찰에 인계돼 처벌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B씨는 조리실에서 승객에게 물을 뿌리고 생수로 발을 씻는 것도 모자라 승무원을 발로 걸어 넘어뜨리고 성희롱 발언을 하는 등 추태를 일삼았다. 결국 B씨는 영국 경찰에 연행되는 망신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내 난동뿐 아니라 각종 범죄를 저지른 대기업 임원들도 있었다. 최근에는 현직 대기업 간부가 지적장애인을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그는 경찰서 유치장에서 철창에 머리를 찧는 ‘자해 소동’까지 벌여 응급실 신세를 지기도 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지난 11일 내연녀의 집에서 지적장애 3급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강간)로 STX중공업 차장 C씨를 구속하고 이를 방조한 혐의로 C씨의 내연녀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주말부부인 C씨는 지난 1월9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내연녀의 집에서 30대 지적장애(3급)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범행 당일 내연녀의 집을 찾은 C씨는 마침 방 안에 있던 지적장애 여성과 강제로 성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내 승무원 농락 ‘라면 상무’파문 일파만파
장애인 성폭행 임원…술집 여주인 성추행 간부
택시기사 ‘묻지마 폭행’10대 소녀 몰카 망신도

내연녀 와 피해자는 한동네에 살며 친분을 쌓은 사이로 전해졌다. 피해자의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내연녀가 C씨의 성폭행을 도운 정황을 포착, 내연녀도 불구속 입건했다.

C씨는 당초 범행 사실을 부인하다 피해자의 체내에서 자신의 DNA가 발견됐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가 나오자 혐의를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된 C씨는 수갑을 찬 채로 철창에 머리를 수차례 찧는 등 자해 소동을 벌인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터빈·엔진 등 동력기관 분야의 전문가로 알려진 C씨는 경찰 조사를 받은 약 3개월 동안에도 정상적으로 회사에 출근했지만 지난 2일 구속되자 회사측에 진단서를 제출하고 병가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대기업 임원인데
똑바로 대접 못해?”

지난 2012년 2월에는 CJ그룹의 한 임직원이 여성을 성추행 한 뒤 오히려 큰 소리를 치는 등 소동을 벌이다 덜미가 잡혔다. 서울 중구 중림동의 한 실내포장마차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고 계산하던 CJ그룹 부장 D씨는 가게 여 사장이 돈을 받는 순간 “주방에 바퀴벌레가 있다”고 소리쳐, 여사장의 고개가 돌아간 틈을 타 볼에 입을 맞췄다.

화가 난 여 사장은 D씨를 쫓아냈지만 곧 다시 돌아온 D씨는 여 사장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내가 CJ 임원인데 똑바로 대접 못하겠느냐”며 가게 안에서 행패를 부렸다.

이 상황을 알게 된 여 사장의 남동생이 곧장 가게로 달려와 D씨를 경찰에 신고했고 사건은 남대문 경찰서에 넘겨졌다. 경찰서에서도 D씨의 범행 일체를 부인하다 남동생이 당시 상황이 녹화된 CCTV를 보여주자 그제서야 “미안하다.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좋게 합의했으면 한다”며 추행 사실을 자백했다.


더욱이 D씨는 CJ식품계열의 주력 상품 출시에 앞장서면서 이목을 끈 인물로 알려져 대기업 임직원의 도덕성에 비판이 제기됐다.

앞서 지난해 1월에는 만취한 대기업 임원이 택시기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 용산경찰서에 따르면 두산그룹 전무 E씨는 술에 취해 인사불성 상태에서 택시기사를 폭행한 혐의(상해)를 받았다. 경찰에 따르면, 택시기사는 술에 취해 잠든 E씨를 깨워 “어디로 가시냐”고 물었고, E씨는 다짜고짜 택시기사의 턱을 구둣발로 차고, 주먹을 휘둘러 눈을 가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09년에는 ‘청정원’으로 유명한 대상그룹의 지주회사 대상홀딩스의 대표가 10대 청소년 성추행이라는 복병에 시달려 충격을 줬다.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따르면 대상홀딩스의 대표이사 F씨 등 일행 3명은 4월 22일 밤 10시께 서울 중구 서소문동 대한빌딩 앞에 앉아있던 10대 소녀의 치마 쪽을 쳐다보며 휴대전화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이에 소녀의 일행 중 남성 1명이 항의하면서 몸싸움을 벌이다 모두 경찰에 연행됐다. 이들의 성추행을 지켜보고 만류했던 공익근무요원도 F씨 일행에게 폭행을 당했다.

결국 일행 3명은 모두 폭행 혐의가 적용돼 입건됐고, 경찰은 F씨 일행에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을 벌인 소녀의 일행 남성에 대해서만 ‘정당한 행위’로 간주하고 검찰에 불기소 의견을 냈다.

하지만 소녀와 F씨가 합의에 성공함에 따라 성추행 기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강제추행 혐의는 피해자가 고소·고발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친고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휴대폰으로 소녀의 사진을 찍은 혐의를 받고 있는 맥쿼리 증권 부사장만 ‘성폭력범죄처벌법 위반 혐의’가 적용돼 불구속 입건됐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재계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기업 브랜드를 좌우하는 대기업 대표인사가 “10대 소녀를 성추행했다”는 전례 없는 사건이기 발생했기 때문이다. 당시 재계 한 관계자는 “자기 딸 같은 나이인 아이에게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별들 몸조심
주의보 발령

이처럼 과거부터 최근까지 대기업 임원들의 ‘도덕성 문제’가 도마에 오르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상당수 대기업들은 임원들에게 ‘몸조심 발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해당 임원의 명예실추는 물론 그 기업의 국내외 이미지까지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나아가 기업 총수의 리더십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경제민주화와 동반상생이 정·재계 화두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대기업 총수들은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 임원의 특권의식’에 대한 비난이 확산되면 ‘경제민주화가 지나치다’는 대기업의 항변이 먹혀들겠느냐는 우려도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치권과 정부 당국이 대기업의 세금 탈루와 부당 거래 등 폐단을 캐내려고 두 눈을 부릅뜬 상황에서 대기업 임원의 잘못된 처신이 불거지면 이롭지 않다는 것이 재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라며 “때문에 이번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 국내외 출장 또는 회식자리 등에서 말과 행동을 조심하자는 분위기가 일부 기업들에 조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후약방문처럼 무슨 일이 발생한 다음에야 시정하겠다는 등 야단법석을 떠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상식적인 명구절을 상기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은다.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가 아닌 ‘젠틀 코리아(Gentle Korea)’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항공기 ‘진상손님’제재 강화

승무원 괴롭히면 업무방해

최근 대기업 임원의 항공기 승무원 폭행사건이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은 가운데 승무원의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률 조항이 마련된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지난 23일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항공안전 및 보안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됐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항공기내 폭행·협박·위계행위나 출입문·탈출구·기기 조작, 항공기 점거·농성행위는 징역형 등 엄중 처벌토록 하고 있다. 아울러 승객의 안전유지 협조의무를 다룬 조항에도 ▲폭언·고성방가 등 소란행위 ▲흡연 ▲음주나 약물복용 후 위해행위 ▲타인에 성적(性的) 수치심을 일으키는 행위 ▲전자기기 사용 ▲조종실 출입기도 행위 등도 금지행위로 정하고 있다. 개정안은 여기에 ‘승무원 업무방해’ 행위도 기내 금지행위로 추가하는 내용이 골자다.

해당 법안은 올해 초 발의됐던 것으로 이번 ‘승무원 폭행’ 사건과 맞물려 이목을 끌고 있다. 입법화할 경우 직접적으로 안전을 위협하는 폭행이나 협박까지는 아니어도 지속적이고 공격적으로 불만을 제기하는 행위, 악의를 갖고 행하는 업무 방해 행위 등도 제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조 의원은 “항공기 내에서 승객이 난동을 부리며 승무원 업무를 방해하더라도 이를 제재할 수단이 없어 기내 안전을 위한 승무원 업무수행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승무원 업무 방해 행위에 대한 제재를 신설해 항공안전을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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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