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원 추태 ‘천태만상’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4.29 15: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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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망신시키는 꼴불견 “한명씩 꼭 있다”

[일요시사=경제1팀] ‘샐러리맨의 꽃’이라 불리는 대기업 임원들의 추태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 기업 임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그 꼴불견의 천태만상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폭언과 폭행, 성폭행에 이르기까지 수법도 다양하다. 이들은 한 번의 실수로 그동안 공들여 쌓아온 개인의 명예가 여지없이 실추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다.



최근 포스코에너지 고위직 임원이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에게 폭행을 휘두른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당사자인 A씨는 지난 22일 포스코에너지로부터 보직해임 처분을 받았지만 사건의 파장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라면과 바꾼
임원 자리

항공업계에 따르면 A씨는 지난 15일 대한항공 인천발 미국 LA행 비행기 안에서 기내 비즈니스석 서비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여 승무원을 폭행했다. 

A씨는 기내식으로 제공된 밥과 라면이 다 익지 않았다며 수차례 다시 준비해 오라고 요구, 그래도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손에 들고 있던 잡지로 여 승무원의 머리를 가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한항공 사무장과 기장은 기내 폭행 사건을 비행기 착륙 전 LA공항 관계자와 수사기관에 신고해 미국 연방수사국(FBI) 요원이 출동했다. 미 FBI는 폭행 A씨에게 입국한 후 미 수사 당국 조사를 받을 것인지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갈지를 선택하라고 요구했고, 결국 임원 A씨는 바로 귀국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승객은 항공기 보안이나 운항을 저해하는 폭행·협박, 위계행위를 하면 안 된다. 또 기장은 기내 안전을 해치는 행위나 인명·재산에 위해를 주는 행위, 또는 항공기내 질서를 어지럽히거나 규율을 위반하는 행위를 한 승객을 상대로 체포 신청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A씨가 대기업 임원으로서 품위를 지키지 못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포스코에너지의 모기업인 포스코가 홈페이지에 공식 사과문을 게재했지만 네티즌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이 사건을 풍자한 ‘포스코 라면’, ‘기내식의 황제’ 등의 여러 가지 패러디들이 등장했다. 신라면 패러디에서는 승무원 얼굴을 때린 것을 두고 ‘매운 싸다구맛’이라고 비아냥거리며 ‘기내식의 황제가 적극 추천합니다’라는 말풍선과 함께 ‘개념 무첨가’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A씨는 23일자로 사직서를 제출, 회사에서도 이를 곧바로 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1983년 포스코에 공채 입사한 후 포스코터미널, 포스코켐텍 등을 거쳐 2년전 포스코에너지로 자리를 옮긴 뒤 지난 3월 인사에서 ‘샐러리맨의 별’이라고 불리는 상무로 승진까지 한 인사다. 포스코는 임원 승진 비율이 대기업 평균 1%보다 더 낮아 280명당 1명 정도의 임원이 나올 정도로 어렵다.

이러한 최상위의 자리에까지 오른 대기업 임원이 이번에 비행기 기내에서 보여준 추태는 우리사회 지도층의 추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크다는 지적이다.

사회특권층 추태
‘나라망신 일쑤’

사실 사회지도층들의 비행기내 난동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2007년 12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김해발 대한항공 1104편 항공기(서울행)에 탔다가 이륙준비를 위해 좌석 등받이를 세워달라는 승무원의 요구와 기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소란을 피웠다. 결국 비행기 출발이 1시간가량 지연됐고 박 전 회장은 2심에서 벌금 1000만원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2005년 9월에는 모 대기업 부장 B씨가 영국 런던으로 향하는 기내에서 난동을 부리다 경찰에 인계돼 처벌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B씨는 조리실에서 승객에게 물을 뿌리고 생수로 발을 씻는 것도 모자라 승무원을 발로 걸어 넘어뜨리고 성희롱 발언을 하는 등 추태를 일삼았다. 결국 B씨는 영국 경찰에 연행되는 망신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내 난동뿐 아니라 각종 범죄를 저지른 대기업 임원들도 있었다. 최근에는 현직 대기업 간부가 지적장애인을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그는 경찰서 유치장에서 철창에 머리를 찧는 ‘자해 소동’까지 벌여 응급실 신세를 지기도 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지난 11일 내연녀의 집에서 지적장애 3급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강간)로 STX중공업 차장 C씨를 구속하고 이를 방조한 혐의로 C씨의 내연녀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주말부부인 C씨는 지난 1월9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내연녀의 집에서 30대 지적장애(3급)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범행 당일 내연녀의 집을 찾은 C씨는 마침 방 안에 있던 지적장애 여성과 강제로 성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내 승무원 농락 ‘라면 상무’파문 일파만파
장애인 성폭행 임원…술집 여주인 성추행 간부
택시기사 ‘묻지마 폭행’10대 소녀 몰카 망신도

내연녀 와 피해자는 한동네에 살며 친분을 쌓은 사이로 전해졌다. 피해자의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내연녀가 C씨의 성폭행을 도운 정황을 포착, 내연녀도 불구속 입건했다.

C씨는 당초 범행 사실을 부인하다 피해자의 체내에서 자신의 DNA가 발견됐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가 나오자 혐의를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된 C씨는 수갑을 찬 채로 철창에 머리를 수차례 찧는 등 자해 소동을 벌인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터빈·엔진 등 동력기관 분야의 전문가로 알려진 C씨는 경찰 조사를 받은 약 3개월 동안에도 정상적으로 회사에 출근했지만 지난 2일 구속되자 회사측에 진단서를 제출하고 병가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대기업 임원인데
똑바로 대접 못해?”

지난 2012년 2월에는 CJ그룹의 한 임직원이 여성을 성추행 한 뒤 오히려 큰 소리를 치는 등 소동을 벌이다 덜미가 잡혔다. 서울 중구 중림동의 한 실내포장마차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고 계산하던 CJ그룹 부장 D씨는 가게 여 사장이 돈을 받는 순간 “주방에 바퀴벌레가 있다”고 소리쳐, 여사장의 고개가 돌아간 틈을 타 볼에 입을 맞췄다.

화가 난 여 사장은 D씨를 쫓아냈지만 곧 다시 돌아온 D씨는 여 사장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내가 CJ 임원인데 똑바로 대접 못하겠느냐”며 가게 안에서 행패를 부렸다.

이 상황을 알게 된 여 사장의 남동생이 곧장 가게로 달려와 D씨를 경찰에 신고했고 사건은 남대문 경찰서에 넘겨졌다. 경찰서에서도 D씨의 범행 일체를 부인하다 남동생이 당시 상황이 녹화된 CCTV를 보여주자 그제서야 “미안하다.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좋게 합의했으면 한다”며 추행 사실을 자백했다.


더욱이 D씨는 CJ식품계열의 주력 상품 출시에 앞장서면서 이목을 끈 인물로 알려져 대기업 임직원의 도덕성에 비판이 제기됐다.

앞서 지난해 1월에는 만취한 대기업 임원이 택시기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 용산경찰서에 따르면 두산그룹 전무 E씨는 술에 취해 인사불성 상태에서 택시기사를 폭행한 혐의(상해)를 받았다. 경찰에 따르면, 택시기사는 술에 취해 잠든 E씨를 깨워 “어디로 가시냐”고 물었고, E씨는 다짜고짜 택시기사의 턱을 구둣발로 차고, 주먹을 휘둘러 눈을 가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09년에는 ‘청정원’으로 유명한 대상그룹의 지주회사 대상홀딩스의 대표가 10대 청소년 성추행이라는 복병에 시달려 충격을 줬다.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따르면 대상홀딩스의 대표이사 F씨 등 일행 3명은 4월 22일 밤 10시께 서울 중구 서소문동 대한빌딩 앞에 앉아있던 10대 소녀의 치마 쪽을 쳐다보며 휴대전화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이에 소녀의 일행 중 남성 1명이 항의하면서 몸싸움을 벌이다 모두 경찰에 연행됐다. 이들의 성추행을 지켜보고 만류했던 공익근무요원도 F씨 일행에게 폭행을 당했다.

결국 일행 3명은 모두 폭행 혐의가 적용돼 입건됐고, 경찰은 F씨 일행에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을 벌인 소녀의 일행 남성에 대해서만 ‘정당한 행위’로 간주하고 검찰에 불기소 의견을 냈다.

하지만 소녀와 F씨가 합의에 성공함에 따라 성추행 기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강제추행 혐의는 피해자가 고소·고발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친고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휴대폰으로 소녀의 사진을 찍은 혐의를 받고 있는 맥쿼리 증권 부사장만 ‘성폭력범죄처벌법 위반 혐의’가 적용돼 불구속 입건됐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재계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기업 브랜드를 좌우하는 대기업 대표인사가 “10대 소녀를 성추행했다”는 전례 없는 사건이기 발생했기 때문이다. 당시 재계 한 관계자는 “자기 딸 같은 나이인 아이에게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별들 몸조심
주의보 발령

이처럼 과거부터 최근까지 대기업 임원들의 ‘도덕성 문제’가 도마에 오르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상당수 대기업들은 임원들에게 ‘몸조심 발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해당 임원의 명예실추는 물론 그 기업의 국내외 이미지까지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나아가 기업 총수의 리더십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경제민주화와 동반상생이 정·재계 화두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대기업 총수들은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 임원의 특권의식’에 대한 비난이 확산되면 ‘경제민주화가 지나치다’는 대기업의 항변이 먹혀들겠느냐는 우려도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치권과 정부 당국이 대기업의 세금 탈루와 부당 거래 등 폐단을 캐내려고 두 눈을 부릅뜬 상황에서 대기업 임원의 잘못된 처신이 불거지면 이롭지 않다는 것이 재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라며 “때문에 이번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 국내외 출장 또는 회식자리 등에서 말과 행동을 조심하자는 분위기가 일부 기업들에 조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후약방문처럼 무슨 일이 발생한 다음에야 시정하겠다는 등 야단법석을 떠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상식적인 명구절을 상기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은다.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가 아닌 ‘젠틀 코리아(Gentle Korea)’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항공기 ‘진상손님’제재 강화

승무원 괴롭히면 업무방해

최근 대기업 임원의 항공기 승무원 폭행사건이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은 가운데 승무원의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률 조항이 마련된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지난 23일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항공안전 및 보안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됐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항공기내 폭행·협박·위계행위나 출입문·탈출구·기기 조작, 항공기 점거·농성행위는 징역형 등 엄중 처벌토록 하고 있다. 아울러 승객의 안전유지 협조의무를 다룬 조항에도 ▲폭언·고성방가 등 소란행위 ▲흡연 ▲음주나 약물복용 후 위해행위 ▲타인에 성적(性的) 수치심을 일으키는 행위 ▲전자기기 사용 ▲조종실 출입기도 행위 등도 금지행위로 정하고 있다. 개정안은 여기에 ‘승무원 업무방해’ 행위도 기내 금지행위로 추가하는 내용이 골자다.

해당 법안은 올해 초 발의됐던 것으로 이번 ‘승무원 폭행’ 사건과 맞물려 이목을 끌고 있다. 입법화할 경우 직접적으로 안전을 위협하는 폭행이나 협박까지는 아니어도 지속적이고 공격적으로 불만을 제기하는 행위, 악의를 갖고 행하는 업무 방해 행위 등도 제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조 의원은 “항공기 내에서 승객이 난동을 부리며 승무원 업무를 방해하더라도 이를 제재할 수단이 없어 기내 안전을 위한 승무원 업무수행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승무원 업무 방해 행위에 대한 제재를 신설해 항공안전을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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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