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음악으로 말하는 '가왕' 조용필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4.26 18: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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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영원한 오빠…또 다른 전설이 시작됐다

[일요시사=사회팀]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가왕'이라 부르지만 정작 조용필은 '조용필'이라는 이름 석자로 기억되고 싶어 한다. 이름만으로 한국 가요계의 신화가 된 그는 10년 만에 새 앨범을 발표, 또 다른 전설을 준비하고 있다. 예순을 넘긴 이 노장의 심장은 아직도 음악을 향한 열정으로 쿵쾅댄다.



이미자부터 심수봉, 김광석, 브라운아이즈까지. 시대를 넘나드는 한국 대중가요의 쟁쟁한 이름 한복판에 그의 이름이 새겨졌다. '가왕' 조용필.

국내 현존하는
최고의 보컬

지난 2일 음악전문채널 Mnet은 교수와 문화전문기자, 음악평론가, 뮤지션 등으로 구성된 50명의 심사위원단과 함께 20대 보컬 아티스트를 선정했다.

선정된 명단에는 김건모·김현식·나훈아·송창식·양희은·이선희·인순이·임재범 등 이름만으로도 존재감이 남다른 가수들이 자리했다. 하지만 한국 대중가요사의 가장 높은 곳에는 그가 있었다. 바로 '가왕' 조용필이다.

음악 전문가들은 현존하는 국내 최고의 보컬로 조용필을 선택했다. 음악평론가 임진모는 "음악 관계자들은 물론 언론과 대중 모두 조용필을 90년에 달한 한국 대중가요 역사에서 최고의 가창력을 갖고 있는 뮤지션으로 꼽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임진모의 지적처럼 한국 대중가요 역사에서 1이라는 숫자는 조용필을 위해 남겨둬야 할 영구결번이 됐다. '최고의 가수'라는 수식어가 조용필에게 헌정됐기 때문이다. 평단은 대한민국 대중가요 역사를 조용필 이전과 이후로 나눈다.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조용필의 존재는 가히 절대적이다.

음악평론가 강헌은 조용필에 대해  "불우한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모든 지점에서 다시 쓴 단 한 명의 영웅"이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이 영웅이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오는 23일 조용필은 정규 19집 <헬로(HELLO)> 발매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2003년 '오버 더 레인보우' 이후 10년 만의 정규 앨범이다. '왕의 귀환'을 앞두고 음악계의 촉각이 곤두선 가운데 조용필은 지난 16일 온라인에 음원을 선공개했다. 공개된 음원은 <헬로>의 첫 곡 '바운스(Bounce)'였다.

'바운스' 공개에 앞서 조용필의 소속사 YPC프로덕션은 "19집 앨범의 파격과 혁신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곡이 바운스"라며 "전 세대가 함께 즐겨주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바운스'를 소개했다.

'바운스'는 새 앨범인 <헬로> 중 음악성과 대중성을 가장 훌륭히 매칭한 곡으로 공개 전부터 수많은 음악 애호가들의 기대를 모았다.

통통 튀는 피아노 반주를 시작으로 리듬을 받쳐주는 드럼과 어쿠스틱 기타가 조화를 이루는 이 곡은 예순이 넘은 노장이 부른 곡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트렌디했다. 30여개의 코러스 트랙과 일렉기타가 합류하는 후렴까지 듣고 난 전문가들은 저마다 엄지를 치켜세웠다. 남은 건 대중의 판단이었다.

'바운스'가 공개되자 각 음원사이트 실시간 차트가 요동쳤다. 전날까지 정상을 지켰던 국제가수 싸이의 '젠틀맨'은 2위로 밀려났다. 42개국 아이튠스에서 정상을 지키던 '젠틀맨'은 '왕의 귀환' 앞에 자리를 내줬다. 한국에서만큼은 조용필이 후배 싸이를 누르고 진정한 챔피언이 된 것이다.


'바운스'는 엠넷, 네이버뮤직, 다음뮤직, 벅스 등 주요 음원사이트에서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바운스'는 멜론 등 다수의 음원사이트에서도 5위권 내를 유지했다. 아이돌 가수가 차트를 장악한 현실에서 환갑을 넘긴 노장의 음악이 정상을 차지한 건 그야말로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선공개 바운스
감격의 릴레이

조용필의 차트 석권 이후 한 가요계 관계자는 "이제 우리도 부러워만 하고 있던 데이비드 보위나 에릭 클랩튼 같은 거장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됐다"고 감격스러워했다.

특히 조용필은 대중이 노래를 듣는 방식이 LP에서 TAPE로 CD에서 디지털음원으로 바뀌는 과정마다 1위에 오르는 전무후무한 업적을 세웠다. 한 음반유통사 관계자는 "현재 한국에서 네 종류의 앨범으로 음악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사람은 조용필 밖에 없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 거장의 복귀에 후배 가수들은 일제히 응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먼저 가수 윤종신은 "형님께서 오셨습니다"라는 말로 조용필의 귀환을 알렸고, 가수 주석은 "조용필 19집 신곡 대박이네요. 이건 형용하기 힘든 여러 가지가 응축된 느낌. 곡이 소리의 질감에서부터 짜임새까지 나무랄 데가 없는데다가 극도로 절제되고 정돈되면서도 화려함이 있는 목소리. 조 선생님은 월드 '스타'가 아닌 진정한 한국대표 월드 '클래스' 뮤지션입니다"라고 감상평을 남겼다.

새 음원 바운스 선공개 "파격 또 파격" 극찬
모든 음원사이트 1위 등극…열풍에 전국 들썩

아이돌 가수들의 칭찬 릴레이도 이어졌다. '빅뱅'의 태양은 "조용필 선배님, 미리듣기 음원이 이렇게 좋을 수가.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두근대"라고 감탄했고, '샤이니'의 종현은 “말이 필요 없지요. 들어보세요. 존경해요. 선생님"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또 작곡가 김형석은 "이런 아티스트가 든든하게 큰 형님으로 계셔주니 우린 얼마나 복 받은 뮤지션들인가. 명불허전입니다"라고 극찬했고, 영화평론가 허지웅은 "'바운스'를 들어보니 전반의 진행이나 후렴구 구성이 대중적이면서도 절제해야 할 때는 칼같이 세련됐다. 조용필의 나이가 올해로 예순 넷이다. 다른 수록곡들도 빨리 들어보고 싶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만화가 강풀도 "조용필님 신곡 반복해서 듣는데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지치지 않는 저런 창작자분이 존재한다는 것에도 감동할 판인데 예의가 필요 없을 정도로 음악이 너무 좋다"고 의견을 보탰다.

이외에도 가수 태연, 린, 타블로, 허각 등 후배 가수들과 작곡가 윤일상, 돈스파이크 등 음악계 관계자,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안철수까지 '바운스' 열풍에 가세했다.

음원사이트 운영자들은 아무리 '가왕'이지만 이 같은 폭발적인 반응은 예상치 못한 분위기다. 10년간의 긴 공백과 현재 음원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10대부터 20대까지의 젊은 소비자가 아이돌 음악에 길들여져 있는 특성을 감안할 때 '바운스' 열풍은 의외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조용필은 예상을 뒤엎고 화려하게 귀환했다. 1991년 자신의 대표곡인 '꿈'을 마지막으로 방송 은퇴를 선언한 그는 22년이 흐른 2013년에도 그 흔한 방송 출연 없이 정상을 꿰찬 것이다.


원조 'JYP'
화려한 부활

지난 2005년 평양 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기념비적인 공연. 7000여명의 북한 관객은 조용필의 '꿈'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감췄던 눈물을 쏟았다. 2008년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데뷔 40주년 콘서트 '더 히스토리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는 5만여명의 관객이 '조용필'을 연호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비록 대중에게 자주 노출된 건 아니었지만 그의 노래는 공간과 시대를 넘어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동안 조용필은 자신이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한센병 환자들에게 희망을 전하기 위해 전남 소록도에서 2년 연속 공연을 하는가 하면, 자신의 콘서트 수익금을 소아암 환자 500명을 위해 전액 기부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슈퍼스타의 명성에 걸맞은 행보였다. 그리고 2000년대 후반 오디션 프로그램의 강세와 함께 조용필의 잊혔던 명곡들은 다시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조용필이 작사하거나 작곡한 히트곡은 어림잡아 50곡. 한 가수가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히트곡을 조용필은 50곡이나 불렀다는 얘기다. '단발머리', '모나리자', '여행을 떠나요' 등은 지금도 수없이 리메이크 되고 있으며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못찾겠다 꾀꼬리' 등은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재조명 받으며 지금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조용필이 가수로서 걸어온 길은 늘 최초이자 최고였다. 1980년 한국 가수 최초로 미국 카네기홀 무대에 오른 그는 1986년 일본에 진출, <추억의 미아1>이라는 음반을 발매해 그해 골든디스크를 받았다. NHK의 간판 프로그램인 <홍백가합전>에 초청받은 한국인도 조용필이 처음이다. 일본에서 조용필이 기록한 음반 판매량은 모두 600만장에 달한다. 조용필에게 '한류의 원조'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조용필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프로 무대에 뛰어든 그는 애트킨스, 조용필과 그림자 등 밴드 생활을 하며 긴 무명의 시간을 보냈다.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스타덤에 오른 것도 잠시 조용필은 대마초 흡연 혐의로 1977년 모든 방송에서 출연을 금지 당한다.

그러나 조용필은 뼈를 깎는 노력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1979년 '창밖의 여자'를 히트시키며 정상에 오른 그는 '친구여' '허공' 등으로 연이은 성공 가도를 달렸다. 1980년대는 누가 뭐래도 조용필의 시대였다. '국민가수'라는 타이틀은 그를 위해 존재했다.


하지만 그는 정상에 안주하지 않았다. 조용필은 늘 새로운 음악적 실험을 통해 자신의 한계와 마주섰고, 급기야는 방송 은퇴를 선언하며 가수가 있어야 할 무대와 노래에 전념하기로 결심한다.

조용필은 록부터 발라드, 포크, 트로트, 창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르의 음악을 소화할 수 있는 전천후 뮤지션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본인은 늘 겸손했다. 아직 해보지 못한 음악이 많다는 것이었다. 조용필의 이 같은 자기 성찰과 혁신은 이번 19집인 <헬로>로까지 이어졌다. 조용필의 끊임없는 자기 쇄신이 이뤄낸 결과물이 ‘헬로’라는 것.

지난 2일 조용필의 소속사 YPC는 서울 서초구 YPC에서 '미디어 리스닝 파티'를 열었다. 이날 공개된 앨범 <헬로>는 "스스로 만족하는 법이 없다"는 조용필의 프로 의식이 그대로  묻어난 걸작이었다. 조용필은 '헬로'를 통해 "자신을 가두고 있던 틀에서 벗어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60대가 부른 노래라고는 믿기 힘든 곡들이 귓가를 울렸다다. 이번에 선공개된 '바운스'를 시작으로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가미된 '충전이 필요해', 앨범 티저영상에 사용된 '서툰 바람' 등이 리스너의 귀를 사로잡았다.

특히 래퍼 버벌진트가 피처링한 타이틀곡 '헬로'는 펑키한 기타 사운드를 배경으로 세련된 멜로디 라인을 뽐내 외국의 유명 팝 밴드인 '마룬5'의 곡들과도 비교됐다.

'가왕'의 면모를 뽐낸 발라드 '걷고 싶다', 시적인 가사가 인상적인 '어느 날 귀로에서' 등은 조용필의 올드팬들도 만족할만한 퀄리티를 자랑했다. 앨범 전곡을 들은 한 관계자는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은 느낌"이라며 <헬로>의 감동을 전했다. 첫사랑의 설렘, 사랑 고백, 이별 등이 뒤섞인 남자의 일생이 앨범 안에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것이었다.

<헬로>는 원래 3월 이전에 녹음은 물론 마스터링까지 끝낼 계획이었다. 하지만 완성된 앨범을 조용필이 반대했다. 대중에게 내놓기에는 다소 부족하단 것이었다. 결국 처음부터 다시 녹음하는 과정을 거쳐 지금의 <헬로>가 완성됐다. 

<헬로>는 2012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베스트 엔지니어’ 부문 후보에 오른 토니 마세라티가 믹싱을 맡았으며, 세계적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한 영국의 이언 쿠퍼가 마스터링을 맡아 그 완성도를 높였다. 세계적인 엔지니어들과 월드 클래스 뮤지션의 절묘한 조합이었다.

"그는 늘 최초이자 최고"
한계없는 전천후 뮤지션

조용필은 음악에 대한 욕심으로 가득하다. 그의 집에 있는 수많은 앨범들은 조용필의 음악적 깊이를 대변한다. 비틀즈나 마빈 게이 등은 말할 것도 없고, 핑크 플로이드, AC/DC, 폴리스, 스팅, 퀸 나아가 메탈리카까지 모든 장르를 망라한 음악적 탐구는 지금의 조용필을 있게 한 원동력 중의 하나다. 후배들과의 교류도 마찬가지.

오는 23일, 조용필이 직접 <헬로> 전곡을 공개하는 '프리미어 쇼 케이스'가 예정된 가운데 이 자리에는 자우림, 박정현, 국카스텐, 버벌진트, 팬텀, 이디오테잎 등 후배 가수들이 함께한다. 젊은 가수들의 홍보 방식인 '쇼 케이스'를 차용한 점도 놀랍지만 많은 후배 가수들이 출연을 자처했다는 것도 조용필의 위상을 가늠케 한다. 자연스레 <헬로>에 대한 기대치도 높아지는 상황이다.

현재까지의 조짐은 좋다. '바운스'로 화제를 모은 만큼 후속곡들도 세대를 넘나드는 관심을 받지 않겠냐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음원의 수준이 높은 만큼 수준 이하의 후크송을 쏟아내는 가요계에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해석도 있다.

한동윤 음악평론가는 "과거 명성만 갖고 안주해 온 가수들에게 큰 자극이 될 것"이라며 조용필의 신보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작곡가 신사동호랭이도 "환갑이 넘는 나이에 이런 스타일의 노래를 부르는 포용력이 충격적이었다"며 "결국 우리가 음악을 시작하도록 이끌어준 분이 '음악 시장은 결국 음악'이라는 걸 깨닫게 해줬다"고 말했다.

음악시장은
"결국 음악"

현재 조용필은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도 방송 출연을 거부하고 있다. 음악으로만 평가받고 싶다는 '가왕'의 고집일 것이다. 조용필은 오는 5월31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리는 콘서트 준비에 한창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조용필은 전국 투어 '헬로'를 이어간다. 현재 이 공연은 주요 공연 티켓 예매 순위에서 1∼2위를 다투고 있다.

"가수는 노래로 말한다." 이 평범한 진리를 조용필은 자신의 삶으로 증명하고 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조용필 히트곡>

  

▲1979년 <창밖의 여자/ 돌아와요 부산항에/ 단발머리/ 한오백년/ 돌아오지 않는 강/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정/ 대전블루스>
▲1980년 <축복(촛불)/ 잊기로 했네>
▲1981년 <강원도 아리랑/ 고추잠자리/ 님이여/ 미워 미워 미워/ 여와 남>
▲1982년 <못찾겠다 꾀꼬리/ 비련>
▲1983년 <산유화/ 친구여/ 한강/ 나는 너좋아>
▲1984년 <바람과 갈대/ 그대 눈물이 마를때/ 눈물의 파티/ 정의 마음>
▲1985년 <눈물로 보이는 그대/ 어제 오늘 그리고/ 미지의 세계/ 여행을 떠나요>
▲1985년 <허공/ 킬리만자로의 표범/ 바람이 전하는 말/ 그 겨울의 찻집>
▲1987년 <마도요/ 그대 발길 머무는곳에/ 진실한 사랑>
▲1988년 <서울 서울 서울/ 모나리자/ I love 수지/ 우주여행X>
▲1989년 <Q/ 꽃이 되고 싶어라/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
▲1990년 <추억 속의 재회/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1991년 <꿈/ 아이마미>
▲1992년 <슬픈 베아트리체/ 흔적의 의미>
▲1995년 <남겨진 자의 고독/ 끝없는 날개짓 하늘로>
▲1997년 <그리움의 불꽃/ 바람의 노래>
▲1998년 <친구의 아침/기다리는 아픔/영혼의 끝날까지/내 삶의 이유/작은 천국/처음느낀사랑이야>
▲2003년 <태양의 눈/오늘도/꿈의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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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