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 박근혜정부 '금융사단' 로드맵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4.22 14:5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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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무는 4대 천왕 시대… MB맨 가고 GH맨 온다

[일요시사=경제1팀] 금융 '4대 천왕'시대가 막을 내렸다. 정부의 금융권 '새판짜기'에 속도가 붙고 있다. 그동안 '떠날 사람'에 관심이 집중됐다면 이제는 '올 사람'이 초미의 관심사다. '서강학파'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출신 인사들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MB맨'이 가니 'GH맨'이 오는 꼴이다.


정부로부터 사퇴압박을 받아온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지난 14일 결국 사임을 선택했다. 이 회장은 이날 "회장 취임 이후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차례에 걸쳐 우리금융 완전 민영화를 최초로 시도했으나 무산된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금융 산업 발전을 위해 민영화가 조기에 이뤄지기를 기원한다"며 사의를 밝혔다.

사퇴압박 이팔성
씁쓸한 퇴장

이에 앞서 강만수 KDB산은금융지주 회장은 지난 4일 물러났으며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지난해 2월 임기를 마치고 물러났다. '금융 4대 천왕'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어윤대 KB금융지주회장도 7월12일이 임기 만료일이다. 이에 따라 'MB맨'으로 불리던 '김승유·강만수·어윤대·이팔성' 등 금융 4대 천왕 시대가 비로소 막을 내리게 됐다.

4대 천왕 가운데 강 전 회장을 제외한 3명은 모두 이명박 전 대통령과 고려대 동문이다.

가장 먼저 일선에서 물러난 김 전 회장은 이 전 대통령과 고려대 경영대학 61학번 동기로 이 전 대통령의 금융정책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지난 2월에는 미소금융재단 이사장직마저 내려놓으면서 김 전 회장은 하나금융이 설립한 자립형 사립고인 하나고등학교 이사장직만 맡게 됐다. 업계에서는 김 전 회장이 새 정부 출범을 앞둔 상황에서 '낙하산 인사'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피하기 위해 미리 이사장직에서 내려온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강 전 회장은 이 전 대통령과 동문은 아니지만 MB정부 최고 실세로 평가받아 왔다. 지난 정부에서 경제 정책과 관련해 가장 많은 화제와 비판, 그리고 주목을 받았으며 특히 2007년 이 전 대통령이 대선을 준비할 때 참모로서 이 전 대통령의 경제정책인 이른바 'MB노믹스'를 입안했다. 2008년 이 전 대통령의 전폭적 지지를 배경으로 기획재정부 장관 자리를 맡았으며 2011년 초에는 산은금융 회장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이 전 대통령의 고려대 후배이자 서울시 인맥으로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시절에는 서울시향 대표를 맡았다. 2007년 대선캠프에서 경제특보까지 지낸 이 회장은 2008년 6월 우리금융 회장직에 올랐다. 지난해 연임에 성공하며 줄곧 호실적을 달성해 왔지만 지주의 굵직한 사안이었던 우리금융 민영화에서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에는 줄곧 사퇴 압박을 받아왔다.

마지막으로 이 전 대통령과 고려대 동문으로 고려대 총장과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 등을 거친 어 회장은 남은 임기를 채우고 연임에는 도전하지 않기로 금융당국과 잠정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정부 금융실세들의 퇴진이 사실상 마무리 수순으로 접어든 모습이다.

이에 따라 관전 포인트는 '누가 내려오느냐'에서 이제 그 자리에 '누가 앉느냐'로 옮겨지고 있다.

먼저 청와대는 강 전 회장의 자리에 중앙대 교수 출신인 홍기택 회장을 임명했다. 서강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홍 회장은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경제 1분과 인수위원을 맡았을 정도로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으로 평가받는다. 박 대통령의 싱크탱크격인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새정부 줄사퇴 금융권 새판짜기 본격화
서강학파·인수위 출신 인사들 하마평

금융위는 홍 회장 임명에 대해 "(홍 회장은) 국제금융, 거시경제 분야의 학계 전문가이며 금융회사 사외이사 및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등 다양한 경력과 능력을 보유했다"며 "정책금융체계 개편과 창조금융을 통한 실물 경제의 활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현행법규상 산업은행장 및 산은금융 회장은 금융위원회장의 임명제청과 대통령의 임명으로 진행된다. 산업은행법 부칙 5조에 따르면 산은금융 대표이사(회장)는 금융위원회 위원장의 제청에 따라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 있다. 대표이사를 제외한 그 밖의 임원은 대표이사의 제청에 따라 금융위원회가 임명한다.

다른 금융그룹 및 공기업은 회장추천위원회(이하 회추위)의 방식을 거치는 게 일반적이다. 금융그룹 회장의 경우 취임 2∼3개월 전 회추위가 열리고 복수의 후보군을 검증하게 된다. 헤드헌팅 회사로부터 인력 데이터베이스를 제공 받고 회장 후보들을 공개모집한다. 사외이사 및 이사회 멤버와 각계 인사들로 구성된 회추위는 최소 수십명에서 수백명의 인력에 대해 일일이 자질을 검증하고 수차례 인터뷰를 진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산업은행은 이같은 절차 없이 금융위원회가 단독으로 제청한 뒤 대통령이 임명하는 절차를 따른다. 회장 후보에 대한 자질을 검증할 만한 기회조차 없는 셈이다.

홍 회장은 강 전 회장이 자리에서 물러난 지 불과 5일 만에 회장에 임명됐다. 특히 그는 한국국제경제학회 사무국장,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NH농협금융지주 사외이사 겸 이사회의장을 맡아본 적은 있지만 금융업무나 조직을 이끌어본 경험은 거의 없다. 서강대 출신 인사들이 주목을 받는 이유다.

그간 서강대 출신 인사들은 청와대와 정부 인선에서 '성시경(성균관대·고시·경기고)'라는 유행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수혜를 입지 못했다. 국무총리와 청와대·비서실장은 성균관대 출신이 요직을 차지하면서 단번에 주목을 받았지만 서강대 출신들 사이에서는 '죽 쒀서 남한테 준 꼴'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나 최근 금융권 주요직에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들은 서강대 출신이 다수다. 우리금융 회장직 하마평에 오르는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이 회장은 후임자가 결정되는 대로 회장직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우리금융은 내부적으로 후임 인선 절차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금융 이사회는 의장인 이 회장과 7명의 사외이사로 구성돼 있다. 이사회는 조만간 회추위를 열고 회장 후보자 추천 및 선정 작업에 나설 계획이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회추위 운영은 이사회의 독립적인 권한으로 향후 세부적인 선임절차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 회장은 이사회 의장으로써 후임 회장이 선임될 때까지는 그 직을 유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윤대 임기 보장
연임여부 불투명

우리금융은 정부가 지분 57%를 가지고 있어 회장 선출시 정부 입김이 강하게 작용해 왔다. 이번에도 역시 정부는 후보군 별로 의혹이 있는 부분에 대해 구체적인 해명까지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먼저 우리금융 내부 출신으로는 이종휘 신용회복위원회 위원장과 이순우 현 행장 등의 이름이 차기 회장 후보군에 오르내린다.

경북사대부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온 이 위원장은 한일은행 출신으로 우리은행 수석부행장과 은행장을 지내 우리금융 내부 사정을 잘 안다. 또한 신용회복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어 국민행복기금 등 박 대통령의 금융 관련 국정철학도 가장 잘 추진할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현 행장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대내외에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평이다. 특히 자율성을 갖고 업무를 추진하는 화경을 만들어주는 리더십의 소유자이자 만년 꼴찌였던 우리은행 여자 농구단을 우승팀으로 바꿔놓을 정도로 추진력이 있다.

그러나 유력한 후보들은 따로 있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과 민유성 티스톤 회장, 이덕훈 키스톤 프라이빗에쿼티 대표가 그들이다.

김 원장은 박 대통령의 경제분야 공약 설계를 진두지휘하며 박 대통령의 경제 구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는 국가미래연구원을 이끌고 있으며 박 대통령의 서강대 동문이자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를 지낸 대표적인 '서강학파'다.

박 대통령의 또 다른 서강대 동문이자 서강바른금융인포럼 회원인 민 회장은 우리금융 부회장과 산업은행장을 역임했다.


이 대표 역시 서강대 수학과를 나왔으며 한빛은행장을 거쳐 2004년에는 우리은행장을 맡은 바 있다. 서강바른포럼 주축 멤버로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지지 금융인(1365명) 선언'을 이끌어냈다.

우리금융은 이사회 운영위원회가 선임하는 사외이사 3명과 주주대표 1명, 외부 전문가 3명 등 모두 7명으로 회추위를 구성해 후보접수 및 심사를 거쳐 내달 중 최종후보를 추천, 오는 6월10일 주주총회를 통해 차기 회장을 선임한다.

후임 인선 착수
정부 입김 작용?

지난달 ISS 보고서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KB금융은 어 회장이 물러난 후 지배구조에 대한 개편작업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KB금융은 26일께 이사회를 열고 회추위 가동에 들어간다. 사외이사 9명 전원이 회추위에 포함되지만 경영진은 제외된다. 따라서 금융당국의 인사 개입 입김은 다른 지주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금융당국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경우 사외 이사들과의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와 별도로 정부는 이미 KB금융 회장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들에 대한 인사 검증 자료를 수집해 놨다. 한 인사는 "정부에서 최근 신상 명세와 경력 등을 포함한 기초 자료를 요구해서 넘겨 줬다"고 말했다.


차기 금융지주 회장 누가 오르내리나
이팔성 후임에 김광두·민유성·이덕훈
KB금융지주·미소금융재단 인사도 관심

어 회장 후임 후보로는 산은금융 회장 하마평에 올랐던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과 임종룔 전 국무총리실장,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또 우리금융 회장 후보에 오른 민 회장과 이동걸 전 신한금융투자 부회장, 서강대 67학번으로 금융계 서강대 인맥의 중심으로 알려진 이덕훈 키스톤 대표 등이 후보군에 오르내린다. 특히 이 대표는 산은금융 회장 인선 때도 유력한 후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 검증까지 통과한 상태에서 최종 낙점만 기다리고 있었으나 막판에 '친박계' 금융권 실세인 홍 회장에게 밀렸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김 전 회장이 물러나면서 한 달 넘게 공석 상태인 미소금융재단 이사장 자리에서는 금융원로 3명이 경합을 벌이고 있다. 어 회장 후임 후보로 거론되는 이 대표와 류시열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 대행, 윤병철 한국 파이낸셜 플래너 협회장이 그들이다.

산은·우리·KB
이덕훈 '주목'

류 전 회장 대행은 1961년 한국은행에 입행해 부총재까지 지내다 이후 제일은행 은행장과 은행연합회 회장 등을 지냈다. 신한 사태가 있었던 지난 2010년 11월부터 4개월 간 신한금융 회장 대행직을 수행했다.

윤 협회장은 1960년 농협은행에 입행해 한국개발금융 부사장과 한국투자금융 대표이사 사장 및 회장, 하나은행장과 회장을 지냈다. 이 세 후보는 모두 금융계에서는 덕망 있는 원로로 꼽히는 인물이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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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