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파도남' 채동욱 신임 검찰총장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4.12 15:5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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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눈높이서 깨끗한 칼 휘두른다"

[일요시사=사회팀]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이자 국민들로부터 가장 부패한 조직으로 불리는 검찰이 쇄신의 계기를 마련했다. 바로 채동욱 신임 검찰총장이 취임한 것. 낙하산 총장이 아닌 검찰 내부로부터 추천된 인사기 때문에 채 총장이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한 채 검찰 개혁을 완수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파도 파도 미담만 나왔다"는 채 총장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121일간의 공백 끝에 '채동욱 시대'가 열렸다. 박근혜정부는 첫 검찰총장으로 채동욱 신임 총장을 선택했다. '독이 든 성배'란 우려 속에 채 총장은 지난 4일 취임 일성으로 "오욕의 시대에 반드시 종지부를 찍겠다"고 역설했다.

검 내부평가 '굿'
"신망 두터운 리더"

채 총장은 지난 2월 사상 처음으로 구성된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 김진태 전 대검 차장, 소병철 대구고검장과 함께 검찰총장 후보자로 추천받았다. 검찰이 직접 후보자를 낸 건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 검찰 내부의 기대도 높았다. 과거 대통령이 낙점하던 총장과는 그 출발부터 달랐다는 얘기다.

세 후보자가 경합하는 형세 속에 채 총장의 인선을 처음부터 예상했던 이는 많지 않다. 가장 먼저 주목받은 건 김 전 차장. 그는 7인회 핵심 멤버인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과의 인연으로 가장 유력한 총장 후보로 거론됐다.

더불어 김 전 장관이 추천한 것으로 알려진 정홍원 국무총리, 황교안 법무부장관 등이 연이어 인선되면서 총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던 김 전 차장 체제가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많았다.


하지만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소속 관계자는 김 전 차장의 취임 가능성을 낮게 내다봤다. 친불교 성향의 김 전 차장과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황 장관의 코드가 맞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다수 언론에서는 소 고검장도 유력한 총장 후보로 예측했다. 새 정부 인사의 지역 안배 차원에서 호남 출신인 소 고검장이 총장에 오를 것이란 추측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 검찰 소식통은 "그건 검찰 조직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소 고검장은 15기로 만약 소 고검장이 총장이 된다면 선배 기수인 14기 검사는 모조리 사퇴해야 하는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검찰 조직에 큰 공백이 생길 것"이라고 반박했었다.

결국 이들 외에 남은 한 명의 후보자는 채 총장이었다. 채 총장은 다른 후보자들보다 검찰 내부 평가가 좋은 것으로 유명했다. 당시 채 총장에 대한 인물평을 부탁하자 한 관계자는 "검란사태 당시 지휘부 중 가장 먼저 전면에 나서 한 전 총장을 끌어내릴 정도로 신망이 두텁고 상황 판단에 능한 지휘자"라고 소개했다.

황 장관과의 사이도 김 전 차장보다 덜 껄끄러웠다. 김 전 차장은 황 장관보다 기수는 낮지만 나이는 많았던 것에 반해 채 총장은 기수도 낮고 나이도 어렸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검찰 관행도 깨지 않으면서 황 장관과의 궁합도 고려한 최선의 선택은 채 총장이었다. 채 총장은 탁월한 업무조정과 친화력 있는 리더십으로 능력 면에서도 합격점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진태·소병철 제치고 박근혜정부 첫 총장
오랜만에 착한 청문회 "파도 파도 미담만"


채 총장을 선택한 청와대의 전략은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채 총장은 '파도남'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무난히 검증을 통과했다.

'파도남'은 박범계 민주통합당 의원이 "청문회 보좌진들에게 (채 총장에 대해) 봐주지 말고 한 번 파보라고 했더니 파면 팔수록 미담만 나온다"고 말한 데서 연유한 것이다.

그간 고위공직 후보자들에게서 보였던 각종 부패 의혹이 채 총장에게서는 발견되지 않았던 것. 법사위 소속 여야 의원들은 대체로 채 총장에 대해 후한 평가를 내렸다.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박지원 민주통합당 의원은 "채 후보자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인사에 어울리지 않는 그런 도덕성을 갖고 있다"면서 "인사청문회가 아니고 칭찬회 같아서 어색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갑윤 새누리당 의원도 "오늘처럼 여야를 막론하고 후보자의 업무 능력을 위주로 청문회를 했던 것은 별로 본 적이 없는 것 같다"며 "채 후보자는 그동안 자기 관리를 충분히 잘 해왔다"고 호평했다.

또 정 의원은 "채 후보자의 재산신고 사항을 보니 권력기관의 고위공직자답지 않게 부인의 재산이 거의 없다"며 그의 도덕성을 추켜세웠다.

채 총장은 검찰 내에서도 '깨끗한 검사'로 통했다. 특수부 검사로 대기업 사건을 주로 담당했으면서도 정치적·금전적 거래를 하지 않았다는 것. 한 관계자는 "채 총장이 현대자동차 비자금 파문 때 중수부 수사기획관을 했는데 그때 생긴 별명이 '재계의 저승사자'였다"며 "만약 그때 떡값을 받았다면 이번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었겠느냐"고 설명했다.

이처럼 검찰 안팎의 칭찬 속에 채 총장에 대한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됐다. 그리고 지난 4일 채 총장은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별관 4층에서 취임식을 열고 "외부의 압력과 유혹도 검찰총장인 제가 방파제가 되어 모두 막아내겠다"며 검찰 내부의 쇄신을 주문했다. 검찰 개혁의 기치를 내건 '채동욱호(號)'가 닻을 내건 것이다.

훈훈한 청문회
미담만 전해져

채 총장은 서울 출신이지만 검찰 내에서는 범호남권으로 분류된다. 세종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으며 1982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1988년 서울지검 검사로 법조계에 첫 발을 들였다.

1995년에는 독일연방법무부에 파견돼 통일법을 연구했으며, 부산지검 동부지청과 서울지검 의정부지청에서 형사부장, 대검찰청 마약과장, 서울지검 특수2부장, 대검 수사기획관, 부산고검 차장, 전주지검장, 법무부 법무실장, 대전고검장, 대검 차장, 서울고검장 등을 역임했다. 대검 중수과장·중수부장을 지내지 않아 ‘정통’특수통은 아니지만 서울지검 특수2부장과 대검 수사기획관을 지내면서 그 능력을 인정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래서인지 채 총장은 현직 중 '특수통의 최고 좌장'으로 불린다. 또 조직 관리에서는 '덕장(德將)', 업무에는 '맹장(猛將)'으로 불릴 만큼 선후배 간 신망이 두텁고 업무적으로는 굉장히 치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풍부한 수사경험과 탁월한 상황 판단력은 채 총장의 강점으로 꼽힌다. 특히 채 총장은 굵직한 정·재계 사건을 도맡아 왔는데 대기업 관련 수사에서도 일정 부분 성과를 내는 등 법과 원칙에 충실했다는 인물평이 대부분이다.

채 총장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건 수사에 참여한데 이어 서울지검 특수2부장 시절 '굿모닝시티' 분양 비리,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변칙 증여 사건, 김운용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의 공금유용 사건 등을 이끌었다.

채 총장은 굿모닝시티 분양 비리에선 정계 거물인 정대철 민주당 전 대표를 구속하는 뚝심을 보였다. 삼성 에버랜드 CB 사건에서는 공소시효 만료 하루 전 당시 허태학 사장 등을 기소해 검찰의 위신을 세웠다.

또 2006년 대검 수사기획관 때에는 현대자동차 비자금 의혹과 론스타 외환은행 헐값매입 의혹을 지휘했고, 2010년 대전고검장 시절에는 '스폰서 검사 사건' 진상조사단장을 맡았다. 당시 조은석 대검찰청 대변인은 채 총장을 진상조사단장으로 인선한 이유에 대해 "조직 내 신망과 언론의 신뢰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채 총장의 검찰 내 입지를 잘 드러내 주는 대목이다.

'스폰서 검사 사건'과 관련 일각에서는 "제 식구를 감싼다"는 비난이 있었다. 하지만 채 총장은 외부 여론에 맞서 묵묵히 수사를 끌고 나갔다. 이 사건으로 채 총장에 대한 검찰 내 신뢰가 높아졌음은 말할 나위 없다.

지난해 말 사상 초유의 검란(檢亂) 사태 당시 대검 차장으로 있으면서 검찰 간부들과 함께 한상대 전 검찰총장을 끌어내린 것도 이 같은 조직 내 신뢰에 기반을 둔다는 평이다.


이 때문에 채 총장은 외부적으로는 검찰 개혁의 성과를 내야하고, 내부적으로는 조직을 추슬러 사분오열된 검찰을 하나로 모아야 하는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 내·외부를 모두 만족시켜야 하는 막중한 과제가 채 총장에게 주어진 것.

특수통 좌장
검란서 두각

그러나 채 총장은 급진적인 개혁보다는 조직 안정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기 보단 검찰 내부의 쇄신을 통해 개혁을 이루겠다는 것. 특히 채 총장이 중수부 폐지와 상설특검제 도입에 미온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채 총장을 바라보는 우려 섞인 시선이 많은 게 사실이다. 이번 인사청문회를 통해 채 총장은 기존 입장을 일부 수정했으나 큰 틀에서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청문회 당일 서영교 민주통합당 의원은 "대검 중수부 폐지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자 여야 모두의 공약"이라면서 "채 후보자는 중수부 폐지, 상설특검제 도입, 감찰 강화 등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답변 했는데 이게 어떤 의미인가"라고 채 총장을 추궁했다.

그러자 채 총장은 "중수부 폐지는 반대한 적이 없다"고 입장을 밝히는 한편 "중수부 폐지에 따른 부패 수사의 공백이 우려된다. 보완책이 신속하게 선행돼야 한다"고 답변했다. 이는 중수부는 폐지하되 중수부와 비슷한 기능을 갖고 있는 부서를 다시 만들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또 상설특검제 도입과 관련해 "상설특검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해 정확한 입장을 말할 수 없다"고 운을 뗀 뒤 "새로운 수사기구가 만들어진다면 법리적 문제도 없어야 하고 부작용도 최소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원론을 밝혔다.

그러면서 채 총장은 "어떤 특검이든 수사권 충돌과 갈등이 있으면 안 된다. 검찰 총장에 취임하면 갈등이 없도록 조화롭게 이끌어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해 특검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채 총장이 밝힌 개혁 방안은 대체로 검찰 내부 감찰 강화였다. 그는 "감찰기구를 확대 개편하고, 거기서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비난이 있기 때문에 외부 인사를 대폭 영입, 외부 수사관들이 수사할 수 있는 체제를 강구하겠다”며 “감사 과정에서의 심사를 강화해 부적격으로 판단될 시 가차 없이 퇴출시키겠다”고 말했다.

이어 채 총장은 "검사나 수사관이 비리, 불법이익을 취득할 경우, 이를 박탈하는 징계부과금 제도도 적극 도입하겠다"며 "변호사 개업 제한과 관련해서는 법무부와 협의해서 방안을 찾겠다. 비리나 추문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답변했다.

개혁과 조직안정 양립 가능할까
중수부 폐지와 상설특검제 도입?

청문회장을 떠난 채 총장은 취임식에서도 앞선 입장을 반복했다.

채 총장은 중수부 폐지에 대해 "국민이 지지하는 방향으로 특별수사체제를 재편하되 부패수사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면밀하게 설계도를 그려야 한다"며 거듭 소신을 밝혔다.

그러면서 "권력형 부정부패, 시장질서를 왜곡하는 기업범죄와 자본시장 교란사범, 국가경쟁력을 침해하는 기술유출범죄 등 검찰만이 할 수 있는 분야에 수사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자리에서 채 총장은 "일반 특수사건은 서울중앙지검 등 일선 특수부에서 처리하고 중·대형 사건은 규모와 특성에 따라 맞춤형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야 한다"고 검찰 운영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또 정치적 편향성 및 공정성 시비 우려가 큰 사건의 경우 "(특별검사가 아닌) 특임검사 제도를 확대 운영해야 한다"고 하는 등 정치권의 검찰 개입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이는 검찰의 독립성을 유지하겠다는 시그널로 해석됐다. 앞으로 채 총장은 정치권과 일정 정도 거리를 둔 채 검찰 쇄신을 해나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위기의 검찰?
그래도 우린…

지난해 성추문 검사, 벤츠 여검사 등 잇단 비리·비위로 검찰이 전방위적 개혁 압박을 받은데 이어 사상 초유의 검란으로 한 전 총장이 후배들에게 쫓기듯 퇴임한 사태에 이르기까지 검찰을 바라보는 국민의 눈은 아직 싸늘하다.

이를 의식한 듯 채 총장은 "깨끗하지 못한 칼이 정의의 도구가 될 수 없듯 청렴하지 못한 자는 국민이 납득하는 정의로운 결정을 내릴 수 없다"며 국민 눈높이에 맞는 검사의 '처신'을 당부하고 나섰다. 

채 총장 본인도 외부 여론에 민감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권위주의 시절, 검찰의 잘못된 기소와 처분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총장 취임 이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할지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며 "잘못된 과거에 대한 반성은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 당연히 필요하다"고 답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이지만 여론은 두렵다는 방증이다.

한 법조계 인사는 "국민이 원하는 검찰 개혁을 하기 위해서라도 우선은 검찰 조직을 추스르는 게 먼저"라며 "채 총장에게 시간을 갖고 기다려주자"는 의사를 전달했다. 이 인사의 말처럼 채 총장이 검찰 내부로부터의 변화를 이끌어 국민이 원하는 검찰 개혁을 이뤄낼지 온 국민의 이목이 신임 총장에게 집중되고 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채동욱은 누구?

   

▲1959년 서울 출생
▲세종고·서울대 졸업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 합격 (연수원 14기)
▲1995년 독일연방법무부 파견(통일법 연구)
▲2003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부장검사
▲2004년 대전지검 서산지청 지청장
▲2005년 국가청렴위원회 및 부패방지위원회 파견
▲2006년 부산고검 차장검사
▲2006년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2009년 대전고검 검사장
▲2011년 대검찰청 차장검사
▲2012년 서울고검 검사장
▲2013년 제39대 검찰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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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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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