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 ⑧전윤수의 성원건설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4.12 10:2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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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명 피눈물나게 한 '양아치 회장님'

[일요시사=경제1팀]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산다.'
잘 나가던 기업이 망했다는 소식은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런데 망한 재벌이 '깡통'을 찼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IMF 이후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줄줄이 공중분해 됐지만 해당 기업에서 중책을 맡았던 경영진과 그 가족들은 멀쩡히 잘 살고 있다. 미리 '주머니'를 채워놔서일까.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망한 기업' 수뇌부들의 현주소를 조명해봤다.


 

아파트 브랜드 '상떼빌'로 유명한 성원건설은 1977년 용산구 이태원에서 설립된 태우종합개발(주)을 모회사로 한다. 설립 1년 뒤 사명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하고 본격적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굵직한 사업 수행
유력 건설사가 왜?

79년 주택건설사업 면허를 얻고 81년 환경오염방지시설업 및 철강재 설치 공사업을 추가했다. 같은 해 4월에는 포장공사업을 추가했으며 87년 군납업 등록을 했다.

90년 주택건설지정업자로 지정되고 해외건설업 면허를 얻으면서 전북 전주로 본사를 옮긴 성원건설은 91년 한국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했다. 96년 한국품질인증센터 ISO(국제표준화기구) 9001 인증과 영국 로이드 ISO 9001 인증을 획득하고, 시설물 유지·보수 및 관리운영업, 임대주택 건설 및 임대업, 종합감리업, 종합건설기술용역업, 사회간접자본 시설투자 및 운영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했다.

국내에 아파트 브랜드가 처음 도입된 90년 대 말 '상떼빌'이라는 자체 아파트 사업을 중심으로 국가산업발전의 동맥인 군장산업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 지하철 6호선을 비롯 전수화산체육관 제2경기장, 전주권광역쓰레기 매립공사 등 정부 발주의 굵직한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어음 418억원을 막지 못해 부도에 이르렀지만 수천억원의 부채탕감 등 화의절차를 거쳐 2003년 회생에 성공했다. 이듬해에는 광주도시철도 1호선(TK-1공구) 공사의 공로로 은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2006년에는 두바이 지사를 2007년에는 바레인 지사를 설치했으며 2008년 토양정화업, 신재생에너지 관련 사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하고 아부다비 지사를 설치했다.

곧 돌아온다던 전윤수 회장 2년째 행방 묘연
미국서 골프치고 유람…수백억 재산은닉 의혹

하지만 2008년 재차 찾아온 금융위기 때부터 자금사정이 급속히 나빠졌다. 주택사업과 해외사업 부진이 원인이었다. 수도권 내 미분양 아파트 물량이 많았고, 공사가 중단된 사업장들도 줄을 이었다. 전국 곳곳에서는 분양 계약자들과 분쟁을 빚기도 했으며 리비아, 바레인, 아랍에미리트연합 등 해외사업이 제대로 힘을 받지 못하면서 유동성 문제는 더 심화됐다.

2010년 2월 말까지 성원건설의 금융권 채무는 총 1조3000억원, 직원들의 체불임금도 200억원에 달했다.

결국 2009년 말 어음 25억원을 막지 못해 대주단 협약에 가입했고 2010년 1월부터 채권단 실사를 거쳐 법정관리를 신청, 2011년 4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후 수차례에 걸쳐 매각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실패, 현재까지도 정상화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2010년 700명이던 직원은 지난 3일 기준 자회사인 성원산업개발 직원을 모두 합쳐도 45명에 불과하다.

성원건설은 3년을 넘게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성원건설 채권단은 지난해 SM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지만 지난 3월13일 인수가 부결됐다. 채권단과 SM그룹의 인수 가격차이가 이유였다. 업계 관계자는 "SM그룹은 230억원 정도로 성원건설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반면, 채권단은 500억∼600억원 수준으로 요구했다"며 "SM그룹이 중도에 인수를 포기했다"고 밝혔다.


회장 방만경영
회사 위기 자초

이에 따라 성원건설 채권단은 다른 인수 후보자와의 수의계약을 추진하거나 인수자가 없을 경우 파산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성원건설 최대 채권자는 영업정지된 솔로몬, 한국 등의 저축은행으로 현재 파산관리를 맡고 있는 예금보험공사가 업무를 대행하고 있다.

재계는 전윤수 회장의 방만경영이 성원건설의 위기를 자초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실제 전 회장은 스캔들과 논란을 몰고 다녔다.

2004년 대검찰청 공적자금비리 합동단속반은 공적자금 투입 기업 등에 대해 약 3년간 수사를 벌였다. 당시 전 회장은 그룹 계열사 분식회계와 사기대출 등의 혐의로 기소돼 2007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사회봉사 200시간을 선고받았다. 검찰이 밝힌 전 회장의 여러 혐의 중 한 대목은 전 국민을 경악케 했다.

검찰에 따르면 전 회장은 99년 회사 부도가 난 당일 계열사 소유 부동산을 매각한 대금 14억3000만원을 빼돌려 회사 고문 법무사 명의로 서울 성북동에 대지 530평을 매입해 시가 35억원 규모의 호화주택을 지었다. 또 일부는 자녀 유학비용으로 사용, 전 회장은 나중에 전 재산이 압류된 상황에서도 1남3년 모두 해외 유학을 마치게 했다.

전 회장은 앞서 99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차남 홍업씨에게 화의인가 청탁과 함께 13억원을 건넨 불법로비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으며 2008년에는 두바이 재개발사업과 관련 공시 전 계열사를 통해 자사 주식을 매수한 내부자 거래 의혹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특히 전 회장은 자신은 회장, 부인 조애숙씨는 부회장, 처남은 부회장, 사위는 사장, 장녀 정원씨는 자금본부장, 차녀 순원씨는 기획조정실장, 형은 성원건설계열 골프장 사장을 시키는 등 자신의 가족 전체를 성원건설 임원으로 임명하는 등 그야말로 구멍가게식 족벌체제로 성원을 운영했다.

지난해 1월에는 2008년 성원건설 주가가 크게 올랐을 당시 약 26억원 어치의 자사 주식을 부인과 딸 등 가족과 지인 명의로 처분해 차익을 올리고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았다는 혐의가 추가되기도 했다.

외손자 보호자로
미국 체류하는 듯

하지만 전 회장이 법정에 섰다는 소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정확한 소재파악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 회장은 해외 도피 중이다. 성원건설은 임휘문 성원산업개발 대표가 법정관리인을 맡고 있다. 2011년 3월 전 회장은 임직원 499명에게 지급될 임금 200억∼300여억원을 체불하고 거액의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던 중 '신병치료'라는 명목으로 외국으로 출국했다. 당시 전 회장 측은 "지병 치료차 개인 일정으로 출국했다"며 "귀국 일정은 잡혀있지 않지만 조만간 귀국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기업 자산으로 묶여있던 골프장을 매각해 마련한 700억원의 자금을 가지고 홀연 사라진 것에 대한 충분한 이유는 되지 못했다. 전 회장은 아직까지도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2011년 9월 방송된 MBC <PD수첩>에 따르면 전 회장은 미국으로 도피, 호화생활을 하고 있다. 전 회장은 미국 뉴저지주 허드슨강이 보이는 부촌의 한 고급 아파트에서 방 3개짜리 집을 임대해 사용했다. 딸의 명의로 고급 승용차 BMW를 구매하기도 했다. 2011년 6월 한 달간 사용한 직불카드 사용 금액은 1만5000달러(한화 1760만원)에 달할 정도였다.

전 회장은 미국 생활 도중 불법 체류 혐의로 현지에서 검거됐던 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미 블로거 안치용씨에 따르면 전 회장은 골프장을 자주 찾았으며 나이아가라 폭포 등에도 유람을 다녔다고 한다. 현지 이민 사기브로커에게 합법적 체류신분(영주권)을 조건으로 수억원대의 돈을 뜯겼다는 풍문도 있다.

그렇다면 불법체류자 신분인 전 회장이 어떻게 미국에 계속 거주할 수 있는 것일까. 이와 관련 성원건설 노조 관계자는 "전 회장의 외손자가 미국 시민권자"라며 "전 회장이 보호자 신분으로 미국에 계속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전 회장의 나머지 가족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일요시사>는 2010년 성원건설이 퇴출 위기에 몰렸을 때 전 회장의 고급 빌라 보유에 대한 의혹을 단독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일요시사> 는 전 회장 일가가 전 회장의 부인 조애숙씨와 외아들 동엽군이 각각 7대 3지분 비율로 공동 소유하고 있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 고급빌라에 거주하는 것으로 확인했다.

가족들 한자리씩…무너진 족벌경영 
직원들 월급 200억 떼먹고 도피생활

성원건설 노조에 따르면 현재 해당 빌라는 전 회장의 친척 쪽으로 가등기 되어 있는 상태로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동엽군의 보유주식은 259억원으로 구본준 LG상사 부회장 딸 연제양(272억원)에 이어 2위에 올라있다.

장녀 정원씨는 지난해 1월 회사 대출금을 횡령하고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징역 1년6월과 추징금 2억4300만원 등 실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성원건설의 자금사정이 매우 악화된 상태에서 자금유치에 수반된 부정한 청탁과 관련해 거액의 돈을 받은 점 등으로 미뤄 피고인의 범죄가 회사 자금 사정 악화에 일부 원인을 제공했고, 이 건설사 운영자 자녀라는 특수관계의 지위를 이용해 범행을 저질러 죄질이 불량하다"고 밝혔다.

성원건설의 자금을 관리하는 업체에 감사로 근무하던 정원씨는 PF자금 조달 알선·자문업체 직원 손모씨로부터 청탁을 받고 지난 2008년 3월부터 5월까지 3차례에 걸쳐 성원건설 자금 조달 관련 용역을 수주해 준 대가로 모두 2억6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또 청탁 업체의 용역수수료를 부풀려 그 차액인 3억8000만원을 빼돌려 개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잇따른 총수 구속에
가슴 졸이는 전윤수

성원건설 노조에 따르면 전 회장은 지난해 말 불구속 수사를 요청하면서 귀국 의사를 전했다. 하지만 최근 그룹 총수들이 잇따라 구속되는 등 전 회장이 귀국 후 겪게 될 엄청난 후폭풍이 무서워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수사만 있는 것도 아니다. 전 회장의 경영실패로 피해를 본 채권자 1600여명과 주주 1만3000여명이 눈에 불을 키고 전 회장의 귀국 혹은 체포를 기다리고 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성원건설은?>

▲1977년 태우종합개발 설립
▲1978년 성원건설로 사명 변경
▲1987년 전윤수 회장 취임
▲1990년 서해안고속도로 착공
▲1994년 지하철 6호선 착공
▲1999년 1차 부도
▲2003년 화의절차 후 회생 성공
▲2006∼2008년 두바이·바레인·아부다비 지사 설치
▲2009년 대주단 협약 가입
▲2010년 법정관리 신청
▲2011년 법정관리 시작
▲2013년 SM그룹, 성원건설 인수 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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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