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 900호 특집> 미리 가본 지령 1000호 시대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4.11 09:5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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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영∼' 2년 뒤 대한민국은 살맛 날까?

[일요시사=경제1팀] 창간 17년 만에 지령 900호를 맞은 <일요시사>가 오는 2015년이면 지령 1000호를 내게 된다. 박근혜 정부가 막 출범한 지금과 2년 뒤 1000호 시대 대한민국의 모습은 어떻게 변할까. 타임머신을 타고 미리 살짝 들여다봤다.

첫 번째 도착지는 2015년 봄 서울, 원룸에서 홀로 생활하는 싱글 여성 김민주씨의 저녁 퇴근길이다. 김씨는 오늘 그 어느 때보다 기분이 좋다. 계약직으로 구청에서 업무보조 형태의 사무보조를 하다 정규직(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날이기 때문이다. 아직 비정규직으로 남아 있는 동료들도 올해 안에 정규직으로 모두 전환될 예정이다.

스마트폰 생활화
모든 음식점 금연

집 근처에 도착하니 스마트폰에 택배 알림 문자가 도착한다. 원룸촌 인근에 설치된 무인택배보관함에서 택배 물품을 수령한다. 택배기사를 가장한 강도를 더 이상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쉬는 날도, 쉬는 시간도 없다. 연중무휴, 24시간 운영되기 때문에 혼자 사는 김씨가 이용하기에 편리하다.

어두운 골목길도 더 이상 무섭지 않다. 여성들의 안전 귀가를 돕는 '안전 스카우트' 서비스 덕분이다. 집에 들어간 김씨는 가장 먼저 '외출'로 설정되어 있는 방범서비스의 보안 등급을 변경한다. 월 99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가입한 '싱글여성 홈 방범서비스'는 남자친구보다 더 든든하다.

무선감지센서가 외부침입자를 감지해 경보음을 울리고 보안업체에 긴급 연락까지 해준다. 김씨만 아는 장소에는 긴급 비상벨까지 설치되어 있다.


김씨는 얼마 전 저렴하게 구입한 3D TV를 켠다. 콘텐츠 걱정은 없다. 3D TV가 집집마다 설치되어 영화는 물론 드라마도 3D로 본다.

보고 싶었던 공포 영화를 검색한다. 눈앞에 귀신이 나타나 흉기를 휘두른다. 3D 기능을 끄는 것을 깜빡했다. 공포물에는 성인 영화처럼 등급을 매겨 심장이 약한 사람들은 법적으로 보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김씨는 TV화면 앞에 손바닥을 대고 책장을 넘기는 시늉을 한다. 다른 채널로 변한다. 전화벨이 울리고 김씨는 이번에는 손바닥을 아래로 내린다. TV 볼륨이 줄어든다.

해외에 있는 부모님의 전화다. 영상 통화로 전환하니 부모님의 얼굴이 전화기 액정에 나타난다. 해외 통화료 걱정은 없다. TV, 컴퓨터, 집 전화가 모두 인터넷 환경을 이용하기 때문에 월 5만원 내외의 비용으로 이용이 가능하다. 집안 곳곳 지저분하게 늘어져 있던 인터넷선도 사라졌다. 모든 전자 제품들이 전원선을 제외하고는 선이 없다. 무선 통신 덕분이다.

다음 날 아침, 김씨는 자동차 매장으로 향한다. 이제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와 전기차 가격이 일반 자동차 가격 대와 비슷해졌다. 여기에 보조금은 덤이다.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차를 사면 추가로 부담금을 내야 하지만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은 차는 보조금을 받아 싸게 살 수 있다. 돈도 절약하고 환경도 보호하고 일석이조인 셈이다.

공공기관 비정규직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
스마트TV 집집마다…각종 콘텐츠 3D 제작
프로야구 10구단 체제·경기도 단독리그도

김씨는 전기차 구입도 고려 중이다. 시내 주요도로와 고속도로 휴게소에 전기차 충전소가 자리를 잡아 장거리 운전에 따른 부담도 크게 줄었다. 무선 충전도 가능하다. 플러그 또는 케이블이 없는 상태에서 차량 바닥에 별도의 충전장치가 설치됐다.

1회 충천으로 300km 이상, 최고속도 200km/h로 주행할 수 있으며 차량 내부에 위치한 리튬-이온배터리는 감속하거나 내리막길 주행 시 발생하는 에너지를 회수해 배터리를 실시간으로 재충전한다.


매연 없는 친환경 수소연료전지차도 양산에 들어갔다. 가볍고 수소저장용량이 높은 시스템이 개발됐고 전국 수소 충전소도 100곳으로 늘었다.

내비게이션은 더 이상 필요가 없다. 스마트폰 혹은 태블릿 PC만 장착하면 내비게이션 기능은 물론 오디오, 전화 통화 등 다양한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충전도 걱정 없다. 차량 안 햇살이 들어오는 곳에 두기만 하면 바로 충전이 되기 때문이다.

저녁에는 친구들과 정규직 전환 기념 축하파티가 있다. 태블릿 PC를 통해 파티장소를 물색한다. 김씨와 김씨의 친구들 모두 비흡연자이지만 금연식당을 따로 검색할 필요는 없다. 모든 식당에서 재떨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2012년 12월 면적 150m² 이상의 음식점에서의 금연이 의무화된 이래 지난 2014년 금연 음식점 면적 기준이 100m² 이상으로 확대됐고 올해부터는 전국 68만여개의 모든 음식점·제과점에서 흡연이 금지됐다.

가스 배출량 따라
보조금 부과·지급

식당마다 재떨이가 놓여있는 소규모 흡연실이 마련됐지만 밀폐공간인데다 환풍기 등 환기시설을 잘 갖춰 담배연기가 밖으로 새어나오지는 않는다.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음식점에서 흡연하다가 적발시 흡연자는 10만원 이하, 업주는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이 내려진다.

다음 행선지는 수원야구장이다. 이민호씨는 요즘 야구 보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프로야구가 10구단 체제로 막을 올렸기 때문이다. 구단만 많아진 게 아니다. 시스템도 대폭 바뀌었다. 경기수가 늘어 야구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루 4경기가 5경기로 늘어났다. 지하철로 이동이 가능한 수도권 4개 구장(잠실·목동·문학·수원)에서 한꺼번에 경기가 열린다.

11구단, 12구단 창단 논의도 한창이다. 12구단 체제가 되면 양대 리그로의 체제 변환이 가능하다. 대구와 광주, 수원에 신축된 경기장 덕에 시즌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관중 수는 10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꿈의 1000만 관중시대가 올해 안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유니버시아드와
프레지던트컵

경기도에는 독립리그가 출범했다. 도 내 시 군 중에서 인구 40만명 이상의 6개 지역(파주시·시흥시 등)을 연고지로 6개 팀이 만들어졌다. 야구장은 관중 수용인원 2000~3000명 정도의 볼파크 형태로 소규모로 지어졌다.

프로구단에서 지명을 받지 못해 생계와 진로의 고민에 빠져있던 아마추어 선수들 200여명이 경기도 독립리그를 통해 새로운 길을 찾았다. 은퇴한 레전드 선수들도 독립리그에서 또 다른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몇 달 뒤 6월에는 캐나다에서 2015년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 월드컵이 열린다.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이 본선에 진출, 한국 여자 축구 암흑기를 벗어나 좋은 활약이 기대된다. 아쉽게도 세계 최강 전력 북한 여자축구대표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2011년 금지약물 복용으로 월드컵 출전자격을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볼거리는 많다. 국내에서는 광주광역시에서 하계유니버시아드가 열린다. 7월1일부터 7월12일까지 12일 동안 170여 개국, 2만여명의 선수들이 참가해 총 21개 종목에서 경합을 벌일 예정이다. 대한민국에서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와 2003년 하계 유니버시아드에 이어서 세 번째로 개최되는 대회다. 벌써부터 선수촌에는 손연재, 박태환 등 선수들이 모여 메달 획득을 향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하계유니버시아드가 끝난 뒤에는 전 세계 상위권 골퍼들이 한국에 모이는 프레지던트컵이 열린다. 현직 대통령이 대회장으로 주관하는 프레지던트컵은 라이더컵을 본따 만든 대회로 미국대 다국적 선수 대항전으로 열리는 대회다. 프레지던트컵이 미국,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캐나다가 아닌 나라에서 열리는 것은 올해 대회가 처음이다.

수업이 한창인 학교 교실도 들여다봤다. 종이교과서가 놓여 있어야할 학생들의 책상에 디지털교과서가 대신 자리하고 있다.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은 교실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온라인을 통해 박물관을 체험한다.

더 이상 밤길 무섭지 않은 여성들
전작권 환수 문제로 국민갈등 예상

질병 또는 천재지변으로 인해 등교하지 못한 학생들은 원격 화상 시스템을 통해 수업을 듣는다. 전국 모든 초·중·고등학교에 무선 인터넷 환경과 보안 시스템이 구축됐고 교과부에는 스마트교육추진위원회가, 한국교육학술정보원에 미래교육연구센터가 설립됐다.

일부 중학교에서는 자율학기제가 시행 중이다. 중학교 과정 중 한 학기를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제도인데 조사·발표·토론·실습·프로젝트 수행 등 학생 참여 중심의 수업과 다양한 문화·예술·체육·진로 프로그램을 운영해 자신의 적성과 소질을 찾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학생들의 시험부담 완화를 위해 중학교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과목도 기존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5과목에서 국어, 영어, 수학 3과목으로 축소됐고 초등학교 학업성취도 평가는 폐지됐다.

교내 폭력도 많이 줄었다. 대부분의 학교에 얼굴까지 식별 가능한 고화질 방범용 CCTV가 설치됐고 2013년 51%에 불과한 경비실은 86%까지 늘어났다. 

암진단부터 수술까지 '1주일 시대'도 열렸다. 차세대 '양성자 치료기'가 가동되어 세계 최고 수준의 암치료 인프라를 갖췄다. 치료 효과를 보기 어려웠던 안구암 및 뇌, 척수 척색종 등을 앓고 있는 환자들과 그의 가족들이 안도의 한숨의 내쉬고 있다. 암 수술 후의 재건, 감염 예방 및 치료, 재활, 완화 치료, 통증 관리 등과 함께 장기 생존자를 위한 특수클리닉을 시행하는 통합치유센터도 운영 중이다.

꿈의 암 치료기
양성자 기기 가동

시청 앞 광장에서는 12월1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촛불시위가 한창이다. 주한미군이 갖고 있는 전작권은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7년 2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2012년 4월17일부로 한국군이 환수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명박정권이 들어선 후 2010년 6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2015년 12월1일로 이양시점을 연기했다. 한국군의 독자적인 전쟁수행 능력 부족과 함께 안보환경 변화가 이유였다.

각종 SNS에서는 국민들이 전작권 환수에 대해 "미군에 계속 의지 불가"의 찬성 의견과 "환수 여건 미흡"의 반대의견으로 나눠져 치열한 설전을 벌이고 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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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