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막힌 이야기> 장애인 등친 사기극 전말

친절한 동창생 알고보니…악랄한 사기꾼

[일요시사=사회팀] 한 남성이 모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억울한 심경의 글을 올렸다. 내용인 즉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자신의 형을 속여 수천만원가량을 갈취하고 빚더미에 올라앉게 한 30대 남성을 처벌하고, 피해액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 지능이 낮은 약점을 이용해 배우자를 소개시켜준다며 1인2역 연기를 하고 금품을 갈취한 인면수심 동창생의 만행을 낱낱이 공개한다.



“지능이 낮고 사람 말을 잘 믿는 순수한 우리 형이 사기사건에 휘말렸습니다. 도와주세요.”

지난 2012년 7월 IQ 70, 지적장애인 서모(30)씨가 전북의 모 농업고등학교 동창인 전모(30)씨를 만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서씨는 지능이 낮지만 외적으로 봤을 땐 정상인처럼 보일 정도로 일반인과 다를 게 없었다. 또한 공장에서 단순 업무를 오랫동안 해온 터라 반복되는 일처리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큰 어려움이 따르지는 않았다. 단지 습득능력에만 지장이 있을 뿐이었다.

메일로 1인2역

열심히 일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던 서씨는 지난해 7월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게 된다. 동창생 전씨는 아둔해 보이는 서씨에게 접근해 얼마 후 느닷없이 현금 10만원을 빌려달라고 요구했다. 워낙 사람을 좋아하고 잘 믿는 서씨라도 만나자마자 돈을 요구하는 전씨가 의심스러웠다. 쉽게 받을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서씨의 거리감 잇는 행동에 전씨는 전략을 바꿨다. 브로커를 통해 만난 중국인 아내와 한 번 이혼한 경력이 있는 서씨에게 여자를 소개시켜주겠다고 한 것. 서씨는 첫 번째 결혼실패에 따른 트라우마가 있었지만, 재혼은 꼭 성공해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는 동창생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전씨가 소개시켜준 여성과 얼굴과 목소리도 알지 못한 채 8개월 간 이메일만 주고받으며 교제했다. 여성은 서씨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음에도 두 번째 이메일부터 “자기야”라는 표현을 남발하며 노골적으로 서씨를 유혹했다. 순진하고 무지했던 서씨는 여성의 말이면 무조건 따랐고, 그녀가 꾸준히 요구한 돈을 8개월간 지속적으로 보냈다. 여성은 서씨에게 부모님 병원비 및 각종 수술비를 요구했고, 전씨 역시 너희 내외의 전세 신혼집과 가전제품 등을 대신 사주겠다며 돈을 편취했다.

공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지내는 서씨의 상황을 잘 알고 있던 전씨의 음흉한 모략이었다. 서씨는 이렇게 8개월간 월급을 포함, 사채와 약관대출을 받아 현금 3800여만원을 여성과 전씨에게 골고루 나눠보냈다. 동창생 전씨의 악행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전씨는 서씨에게 신용불량자인 자신의 처지를 앞세워 동정심을 유발시킨 뒤, “신용카드만 발급받을 수 있게 도와달라”며 명의를 요구했다. 배우자도 소개시켜주고 자신을 대신해 신혼집 등을 알아봐준 전씨에게 고마움을 느낀 서씨는 곧바로 명의를 넘겨줬다. 전씨는 명의를 양도받은 후 이때다 싶어 신용카드 2개를 발급받고, 휴대폰 1대와 중고차 1대를 구입했다. 모두 서씨 명의로 마련한 것이다.


전씨의 이 같은 만행은 서씨 집으로 날아온 고지서로 인해 낱낱이 밝혀졌다. 전씨는 여성의 어려운 상황을 빌미로 지능이 부족한 서씨를 직접 데리고 다니며 자동차 명의이전, 휴대폰 개통과 신용카드 발급 등을 시켰다. 또 대출받는 방법을 가르쳐 사채까지 끌어 모으게 했다. 이로써 서씨의 빚은 사채이자까지 더해 급기야 5100여만원 이상으로 부풀었고, 시골에서 농사만 지으시던 서씨 부모는 더 이상의 부채를 막기 위해 약관대출을 받아 어느 정도 막아놓았다.

배우자 소개 명목 8개월간 5천만원 갈취
명의 빌려 차·폰 구입…사채까지 끌어써

서씨의 피해는 비단 금전만이 아니었다. 전씨가 서씨에게 소개시켜준 여성은 바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은 가상인물이었던 것. 전씨는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서씨의 약점을 이용해 동창생과 여성, 1인2역을 연기했다. 여성이 가상의 인물로 밝혀진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우선 8개월간 얼굴도 모르는 상태에서 “부모님이 편찮으시다” “교통사고가 나서 수술을 해야 하니 돈 좀 보내달라” 등의 고전적인 수법으로 금전을 요구했다는 점과 전씨의 문자메시지 어투와 여성이 보낸 이메일 어투가 상당히 비슷했던 점이었다.

하루아침에 집안이 풍비박산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접한 서씨 동생은 연차 겸 휴가를 내고 4일 동안 고향집에 내려와 고소장을 비롯한 증거수집에 열을 올렸다. 동생은 여성이 가상인물임을 알아낸 뒤 그길로 전씨 집에 찾아가 추궁했다. 동생의 추궁에 전씨는 아무런 변명 없이 “죄송하다”는 말로 시인했다. 이어 “빌린 돈은 벌어서 꼭 갚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여관방 월세까지 밀리고 다방 레지들을 태우면서 하루살이처럼 생계를 이어가는 전씨의 상황에서 수천만원에 이르는 돈을 갚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코앞에 거액의 빚에 시달려야하는 서씨 집안 또한 전씨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동생은 조그만 가게를 하고 있는 전씨 계모를 찾아가 금전적 합의점을 찾고자 했다. 당장 전액은 못 받더라도 절반 이상은 돌려주길 바랐다. 전씨 부모가 서씨에게 머리 조아리며 사죄 할 줄 알았던 동생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전씨 계모는 “그 애 더 이상 자식도 아니다. 우린 아무 연관도 없는 사람들이니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당장 나가라”고 반발했다. 대책 없이 나 몰라라 하는 전씨 계모의 행동에 격분한 동생은 전씨를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하려 경찰서로 향했다. 그러나 처음 이 사건을 접한 경찰 측은 "일반 사기사건은 민사사건이니 법무사에 가라"며 돌려보내려 했다.

상실감에 빠진 동생은 형을 데리고 법무사를 찾았지만 별다른 대책을 강구하지 못했다. 법무사 측은 “정신과에 가서 형의 지능 상태를 확실히 체크한 뒤 지적장애판정이 입증되면 승소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현재 정신과에서 지능검사를 받은 서씨는 검사결과 지능이 낮게 나와 장애판정을 기다리는 중이고, 친척과 대동해 꾸준히 경찰조사를 받고 있다.

가족들 나몰라

동생은 “피의자가 신용불량자이고, 계모 또한 합의에 협조할 가능성이 낮아 합의점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형이 공식적으로 지적장애 판정을 받아야 피의자를 처벌할 수 있을 듯하다”며 “사기사건은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이 대다수인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강력범죄 외에 사기사건 처벌법도 더욱 강화돼 다시는 형과 같은 일을 당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심경을 전했다.



김지선 기자 <jisun86@ilyosisa.co.kr>


사기꾼 전씨는?

10년만에 재회한 지적장애 동창생을 상대로 사기를 친 피의자 전씨는 암울했던 유년시절을 보냈다.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친아버지와 계모 밑에서 자란 전씨는 제대로 된 사랑과 보호도 받지 못한 채 홀로 삶을 살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의 이번 사기사건은 물론 초범이었지만, 일전에 몇 가지 사기보험 전력이 있었다. 전씨가 이렇게 자신의 삶을 망가뜨릴 동안 그를 곁에서 제어해주는 사람은 단 1명도 없었다. 아버지는 재혼 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어릴 때부터 계모에게 지속적으로 구박을 받아온 전씨는 계모의 곁을 떠나 일찌감치 독립된 삶을 살았다.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일용직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가다 우연히 만난 서씨가 지적장애를 앓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본격적으로 사기계획을 세운 것으로 드러났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전씨는 결국 사회로부터 외면된 채 사회약자인 장애친구를 등친 파렴치한 사기범으로 전락됐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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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