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현대판 청백리' 김능환 전 중앙선관위원장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3.11 15: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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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명예 버리고 떠난 아름다운 뒷모습

[일요시사=경제1팀] 동네 편의점에서 만난 아저씨가 대법관이라면? 쉽게 볼 수 없는 상황이 실제로 일어났다. 얼마 전 퇴임한 김능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아내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퇴임 시 공언했던 대로 소시민의 삶으로 돌아간 것. 이런 신선한 행보에 정치권과 누리꾼들은 일제히 찬사를 보내고 있다.




대법관을 지낸 김능환 제17대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의 퇴임 후 일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 퇴임 첫날인 지난 6일 부인이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일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김 전 위원장은 이날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서울 상도동 한 아파트 상가 1층에 위치한 편의점 계산대에서 손님들의 물건 값을 계산했다. 짙은 청색의 등산 점퍼와 펑퍼짐한 갈색 바지, 연보라색 목도리 등 영락없이 '동네 편의점 아저씨'를 연상케 했다.

'공짜 사탕'건네고
물건값 깎아주기도

김 전 위원장은 할머니와 함께 껌을 사러 온 꼬마에게 '공짜 사탕'을 건네고 막걸리를 계산하는 노인에게는 돈을 깎아주기도 했다. 취재차 편의점을 방문한 기자들이 구입한 음료수를 자신의 신용카드로 계산하기도 했다. 편의점을 방문한 손님들은 김 전 위원장을 편하게 대했다. 손님이 없을 땐 도올 김용옥 선생의 책을 읽는다.

김 전 위원장이 편의점 일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4월 부인이 편의점을 차린 뒤 그는 주말에 시간을 내 편의점 업무를 틈틈이 배워왔다.

부인 김문경씨도 김 전 위원장과 함께 물건을 진열하고 창고 정리를 했다. 김 전 위원장이 지난해 7월 대법관을 퇴임하자 김씨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남편의 퇴직금으로 편의점과 채소 가게를 냈다. 채소가게는 편의점 바로 옆에 붙어 있는데, 겨울이라 채소 가게는 운영하지 않고 있다. 채소가게 이름은 김 전 위원장의 아이디어로 부인의 영문이름 이니셜을 따 'K·M·K 야채 가게'로 지었다. 채소가게는 이달 말 쯤 다시 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 5일 과천 중앙선관위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여러분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오늘 이 자리에 제가 서 있다"며 "그동안 선관위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거나 발전한 게 있다면 그것은 모두 여러분이 노력한 결과일 것"이라고 말했다. 선관위의 공을 직원들에게 돌린 것이다.

또한 그는 선관위를 떠나면서까지 앞으로의 선관위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김 전 위원장은 선관위에 ▲선거관리와 관련하여 조사권을 보다 더 엄정하게 행사할 것 ▲모든 선거절차에 유권자의 참여를 확대하여 투명하고 공정한 선거관리가 이뤄지도록 할 것 ▲정치관계법률과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할 것 ▲유권자의 선거제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투표참여율을 높이기 위한 민주시민교육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 등을 당부했다.

퇴임 첫날부터 평범한 소시민 일상 화제
부인 편의점서 일…영락없는 동네 아저씨

앞으로 거취에 대해서는 "당분간 공직은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며 "아내의 가게를 도우며 소시민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통합당은 김 전 위원장이 부인이 운영하는 한 편의점에서 일을 시작한 것에 대해 신선한 충격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허영일 부대변인은 "김 전 위원장의 모습에서 참다운 공직자의 모습을 본다"고 밝혔다. 허 부대변인은 "박근혜 정부의 많은 장관 후보자들이 '전관예우'로 국민들의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신선한 충격"이라며 "함량 미달의 장관 후보자들 속에서 군계일학 같은 김 전 위원장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하다"고 말했다.

1951년 충북 진천에서 태어난 김 전 위원장은 경기고,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시험 17회에 합격, 육군 법무관을 시작으로 법조계에 입문했다. 1980년 전주지법 판사와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 서울가정법원, 서울지방법원 부장 판사를 거쳤다. 2006년에는 법관 최고 영예인 대법관으로 임명, 2011년 2월부터는 중앙선거관리위원장으로 재직했다.

취임 이후 지난해 19대 총선과 18대 대선 등 가장 중요한 선거를 무난하게 치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지난 대선 정국에서는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서운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중립 입장을 유지해 주목을 받았다.


"가장 뛰어난 법관"
노 전 대통령 극찬

지난해 4월 19대 총선에서는 친박계 현기환 전 의원에게 공천헌금 3억원을 전달한 혐의로 새누리당 비례대표 현영희 의원을 지난해 8월 검찰에 고발했으며 9월에는 총선에서 불법 정치자금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홍사덕 전 의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대선을 불과 6일 앞둔 12월13일에는 당시 박근혜 후보의 불법 선거운동 사무실로 의심되는 서울 여의도 오피스텔을 급습하기도 했다.

김 전 위원장은 대선이 끝난 지난 1월 사의를 표했으나 후임 선관위원장이 정해질 때까지 자리를 지켜달라는 요구를 받아들였다.

김 전 위원장은 '청백리'로 유명하다. 위원장 재직시절 김 전 위원장은 곧잘 '선비'에 비유되곤 했다. 항상 "아래 직원과 똑같이 하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위원장실에 난방이 켜져 있으면 "직원들은 추위에 고생하는데 나만 특별대우 하지 말라"며 난방을 끄게 했고 직원들과 함께하는 식사자리에서는 "내가 다 뜻이 있다"며 개인 카드로 결제했다.

매달 직위보전비로 받은 400여만원은 모아 직원들 격려금에 쓰곤 했다. 명절이나 큰 선거를 치른 뒤 회식비로 쓰게 하거나 어버이날,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같은 날에 격려금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사법시험 동기인 김 전 위원장은 2006년 대법관 청문회 때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동네에 책방 하나 내고 이웃 사람들에게 무료 법률상담을 해주면서 살고 싶다"고 밝혔었다. 노 전 대통령은 김 전 위원장은 '가장 뛰어난 법관'이라고 극찬한바 있다.

"고위직 출신이 이럴 수가…"
정치권·누리꾼 일제히 찬사

2011년 10월 재·보선 때는 선관위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 후 선관위 직원이 직무유기죄로 기소되자 김 전 위원장이 변호사 선임비용 800만원을 사비로 지원한 사실이 뒤늦게 전해지기도 했다. 당시 그는 "직무유기죄로 기소됐는데 국가 예산으로 변호사 선임 비용을 대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못하게 해 직원들 사이에서 "너무 가혹하다"는 얘기가 돌았지만 알고보니 김 전 위장이 몰래 변호사비를 지원했던 것이다. 총무부서를 통해 돈을 전달하면서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전 위원장의 재산은 지난해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때 대법관 중 꼴찌에서 두 번째였다. 꼴찌는 이번에 신임 중앙선관위원장으로 임명된 이인복 대법관(4억9760만원)이다. 김 전 위원장의 재산은 9억5617만원으로 송파구의 30평형대 아파트 한 채와 전세권 하나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것이 없다. 퇴임식에서는 자신의 쏘나타 승용차를 직접 몰고 선관위 청사를 떠나기도 했다. 임직원들에게는 "세금을 들여 공로패를 만들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선관위 관계자에 따르면 김 전 위원장은 선관위 직원들이 공로패를 만들어 전달하려 하자 "선관위 예산에서 비용을 대는 것 아니냐"며 "국민 세금으로 왜 그런 일을 하느냐"며 만들지 못하게 했다.

김 전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초대 총리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김 전 위원장은 "대법관 출신이 행정부의 다른 공직을 맡는 게 적절치 않다"며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선관위 공보실을 통해 "중앙선관위는 헌법기관 중의 하나로 모든 공직선거를 관리하는 자리이자 현직 대통령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는지에 대해 늘 감시해야 하는 자리"라며 "어떻게 그런 자리에 있던 사람이 대통령의 지휘를 받아 행정부를 관할하는 총리의 자리에 앉을 수 있겠느냐"고 밝혔다.

후배 법관들이 꼽은
'법조계의 모범인'


김 전 위원장은 대법원 선임·수석 재판연구관 등을 두루 거치며 민·형사, 조세, 행정 등에 대해 전문적 법률지식을 갖췄고 함께 근무한 후배법관들이 본받고 싶은 '법관의 모범'으로 꼽는다.

1982년 고교 교사 9명이 좌경의식화 교육을 했다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기소된 '오송회' 사건에서 6명에게 선교유예, 3명에게 징역 1∼4년의 낮은 형량을 선고하는 등 국가보안법 적용에 관대한 시각을 보였다.

또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의 주역 김현장씨가 "보호관찰처분 연장을 취소해 달라"며 법무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재범 위험성이 없다"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2001년 국가가 노태우 전 대통령 동생 재우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는 "재우씨가 형에게서 받은 돈으로 구입한 아파트 등을 국가에 내놓겠다고 검찰에 약속하고도 나중에 시효가 지났다며 거부한 것은 신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120억원을 국가에 헌납하라"고 판결하기도 했다.

같은 해 반국가단체 구성 등 혐의로 기소된 이른바 '영남위원회' 사건과 관련해 8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재직할 때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낸 특별사면 정치인들에 대한 사면심의자료 공개청구소송 파기환송심에서 대통령의 사면권이 정치적으로 남용되지 않도록 국민의 비판 대상이 돼야 한다며 정보공개판결을 내렸다.


연구실적 부진을 이유로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했던 서울대 미대 조교수 김민수씨가 낸 교수 재임용 거부처분 취소소송 파기환송심에서는 "연구실적 심사는 주관이 반영돼 결론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다. 실적 2편이 동시에 기준을 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인사위 의결에 따라 재임용하지 않은 학교 측 처분은 현저히 타당성을 잃었다"며 "2편이 기준을 통과할 때까지 실적을 제출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김씨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2005년에는 미국에서 태어나 이중 국적을 갖게 된 손모씨가 '병역의무가 생겼다고 해서 국적 포기를 제한한 것은 부당하다'며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낸 항소심에서 "이중국적 병역 의무자가 만 18세가 되기 전에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아 병역 의무를 지게 됐다면 병역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국적을 포기할 수 없다"며 이중 국적 병역 의무자의 국적포기 제한조치는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공직 생각 없다"했는데
정부·정계 러브콜 잇따를 듯

울산지법원장 재직 시절에는 법원 내 연구모임인 '민사집행법연구회' 회장을 지내며 법관과 법원직원들의 대표적 실무지침서인 <법원실무제요 강제집행편>과 <주석 민사소송법> <민사집행법> 등을 공동 집필했다.

병역문제에서도 깨끗하다. 김 전 위원장 본인은 법무관으로 만기전역했고 2남 가운데 큰아들도 공군 사병으로 전역했다.

33년간의 공직생활을 뒤로하고 소박한 삶을 선택한 김 전 위원장의 모습을 접한 국민들은 "퇴임 후 행보가 아름답다" "퇴임공직자의 모범이 될 만하다"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등 찬사를 보내고 있다.

자연스레 행정안전부에서 추진 중인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를 공개하는 방안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행안부는 또 그간 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 대상에서 제외했던 변호사·회계사 등 자격증을 소지한 공직자들도 심사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하고 관련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이는 최근 박근혜 정부의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청문회 과정에서 전관예우 관행이 논란이 되는 등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자 이를 줄이기 위해 마련된 조치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4급 이상 국가·지방직 공무원은 퇴직 후 2년 동안은 퇴직 전 5년간 몸담았던 부서의 업무와 관련이 있는 민간기업에 취업할 경우,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행안부가 마련한 개정안은 심사결과를 공개하고 같은 퇴직공직자라도 변호사나 공인회계사, 세무사 등 자격증을 가졌을 경우에는 심사 대상이 아닌 현행 예외 조항을 없애자는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의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은 현재 전순옥 민주통합당 의원 등 11명 등이 발의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상정돼 있다. 행안부는 유정복 신임장관이 임명되는 즉시 태스크포스를 꾸려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대형 로펌 거부
"당당한 퇴임길"

김 전 위원장은 지금이라도 본인이 원하기만 하면 1억대의 월급을 받을 수 있는 대형 로펌이나 컨설팅 회사로 갈 수 있다. 하지만 고위 법관이든 관료든 공직을 떠나기가 무섭게 돈과 명예를 찾아가는 요즘, 김 전 위원장 만큼은 지금의 소박한 삶처럼 조금은 다른 길을 가주기를 바랄 뿐이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김능환은?>

▲충북 진천 출생
▲경기고-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제17회 사법시험 합격
▲전주지방법원 판사
▲서울고등법원 판사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울산지방법원 법원장
▲대법원 대법관
▲제17대 중앙선거관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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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