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진단> '방패막이' 금융권 사외이사 대해부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3.11 1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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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찬성" 일당 500만원짜리 좀비 용병들

[일요시사=경제1팀] 거액의 연봉을 받는다. 그런데 책임은 없다. 하는 일이라고는 1년에 12번 정도 열리는 이사회에 참석하는 게 전부다. 임기가 끝날 때쯤에는 알아서 연장해 준다. 모두 사외이사 얘기다. 특히 금융지주사 사외이사는 연임을 못하면 '바보'라는 얘기까지 있다.



KB, 신한, 우리, 하나 등 4대 금융지주사의 사외이사는 모두 34명. 이들 중 28명이 올해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자연스럽게 연임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 사외이사
대부분 재선임

KB금융지주의 사외이사는 9명 중 5년간 사외이사직을 맡아 유임할 수 없는 함상문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를 제외한 8명의 사외이사가 재선임됐다. 이경재·배재욱·김영진·이종천·고승의·이영남·조재목 이사가 이에 속한다 조 이사는 올 들어 5년의 임기를 채우게 돼 내년이면 임기를 꽉 채운다. 함 교수의 자리에는 김용과 한국증권금융 고문이 신규 선임됐다.

신한금융지주는 사외이사 10명 중 9명이 임기 만료를 앞둔 가운데 8명을 재선임했다. 지난 2011년 선임된 유재근 이사가 일본 내 사업 때문에 사외이사 활동이 어려워 사임 의사를 밝힘에 따라 고부인 산세이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재선임된 사외이사에는 권태은·김기영·김석원·남궁훈·윤계섭·이정일·히라카와 하루키·필립 아기니에 이사가 있다.

우리금융지주의 경우 총 7명의 사외이사 중 올해 6명의 임기가 만료되는 가운데 4명이 연임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희택·방민준 이사는 5년 임기가 끝나 이 자리에 박영수 법무법인 산호 대표변호사와 채희율 경기대 경제학과 교수가 신규 선임될 예정이다.


이용만·이두희·이헌·박존지환 이사는 재선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나금융지주 역시 마찬가지다. 올해 8명의 사외이사 가운데 5명이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5년 임기를 모두 채운 유병택·김경섭·이구택 이사만 바뀌고 나머지 2명은 연임될 것으로 보인다.

4대 금융사 '외인부대' 대부분 유임
"연임 못하면 바보" 95%이상 자리보전

물러나는 사외이사 자리는 정광선 하나대투증권 사외이사, 오찬석 LG하우시스 사외이사, 박문규 전 에이제이 대표이사가 맡을 예정이며 허노중·최경규 이사는 재선임 될 예정이다.

4대 금융지주회사의 주주총회는 모두 이달 내로 예정되어 있다. KB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가 22일, 하나금융지주가 26일 또는 27일, 신한금융지주는 28일 2012회계연도 재무제표 및 이익배당 승인,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 선임 등을 위한 정기주주총회를 개최한다. '안 봐도 비디오'다. 주주총회는 사외이사들의 연임잔치가 펼쳐질 공산이 크다.

임기가 만료된 이사 28명 중 5년 임기를 다 채워 교체가 불가피한 6명을 제외한 22명이 연임을 한다면 95%가 넘는 인사가 자리를 지킨 셈이 된다.

2010년에 만들어진 '은행 등 사외이사 모범규준'에 따르면 은행이나 금융지주사는 매년 20% 안팎의 사외이사를 새로 선임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강제'는 아닌 것이다. 금융지주 관계자는 "예전에는 정치권과 정부에서 지침과 함께 신규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차기 금융수장이 정해지지 않은 데다 박근혜 대통령 측에서도 이와 관련된 지침이 나오지 않아 교체 폭이 좁다"며 "금융지주사 사외이사 인사는 기존 틀을 유지하면서 임기가 만료된 사람만 교체하려는 분위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사외이사를 새로 뽑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외(사추위)에서 사외이사의 힘은 막강하다. 사추위 절반 이상이 사외이사로 구성되어 있다. 현직 사외이사가 현직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모범규준에 있는 사외이사 임기연장 제도도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권 때 선임된 사외이사들이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뒤에서 금융지주를 장악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력 살펴보니
정·관계 인사

지난 2011년 3월 우리은행 사외이사에서 우리금융지주 사외이사로 자리를 옮긴 이용만 이사의 경우 고려대 금융 인맥의 대부로 알려져 있다. 이 이사는 지난 17대 대선 당시 이명박 캠프 조직인 선진국민연대에서 활동했으며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직접 모셔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 외에도 고려대-소망교회 인맥으로 꼽히는 이두희 이사(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와 야당 의원들이 제기한 '미디어법에 대한 권한쟁의심판청구'에서 정부 측 변호사로 나서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을 이끌어 낸 바 있는 이헌 이사(시민과함께하는변호사들 공동대표)도 자리를 지켰다.

신한금융지주에서 재선임된 윤계섭 이사(서울대 명예교수)도 MB 측 인사다. 윤 이사는 2006년 한 칼럼을 통해 "서울시는 기업 경영 기법을 도입해 재정 지출 규모를 혁신적으로 줄였다"며 "서울시는 재정 운영의 전범을 제시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KB금융지주에서는 MB 측 인사인 조재목 이사(선진국민정책연구원 사무총장)가 재선임됐다. 2009년 처음 선임된 조 이사는 선임 당시 금융권 경력이 전무해 전문성이 없는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와 관련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지주 사외이사로 재선임 된 사람들이 박근혜 정권 초기 어수선한 상황을 틈타 연임을 노리고 있다"면서 "이번 인사가 예정대로 끝날 경우 향후 금융지주사 회장에 따라 갈등의 골이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감시커녕 꼭두각시 전락
총 97건 중 반대 '제로'

모범규준에 따르면 사외이사의 최초 임기는 2년 이내이며 1년씩 연장이 가능하고 최장 5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5년이라는 긴 유통기한이 있는 '철밥통'을 끌어안고 '그들만의 잔치'를 반복하는 셈이다.

철밥통이 유통기한만 긴 것은 아니다. 밥통에서 지어지는 '밥' 즉, 연봉도 어마어마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통해 4대 금융지주사 사외이사의 평균연봉을 분석한 결과 1인당 평균 5000만원 내외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거마비까지 합하면 최대 1억원에 달한다는 게 업계 측의 설명이다. 1년에 12번 내외의 이사회가 열리는 점을 감안하면 사외이사의 하루 일당이 500만원에 이른다는 얘기다. 지난해 근로자 월평균임금은 299만5000원이다.


사외이사 연봉은 KB금융지주가 7650만원(2011년 기준)으로 가장 많았고 하나금융지주가 5790만원(2012년 기준), 신한금융지주가 5300만원(2012년 기준), 우리금융지주가 3300만원(2012년 기준)으로 그 뒤를 이었다.

감시 업무보다
충실한 '거수기'

거액의 연봉 뿐만아니라 사외이사는 임원에 준하는 대접을 받는다. 해외 연수나 세미나, 출장비 지원 등 부가수입이 짭짤하다. 과거에는 유상증자 때 소액주주들이 포기해 생기는 실권주를 사외이사에게 배정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거액의 연봉을 받으면서도 사외이사는 본연의 '감시' 업무보다 '거수기'역할에 충실했다. 이사회 출석률이 50% 미만인 사외이사도 부지기수며 사외이사로서의 역할보다는 이력서 채우기용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4대 금융지주는 지난 9개월간(2012년 1∼9월) 40번의 이사회에서 97개의 안건을 처리했다.

KB금융지주는 10번의 이사회에서 20개 안건을 표결에 부쳤다. 일부 사외이사들이 불참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을 뿐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12번의 이사회에서 27개 안건을 처리한 우리금융지주와 8번의 이사회에서 30개의 안건을 처리한 하나금융지주도 반대표는 없었다. 10번의 이사회에서 20개의 안건을 처리한 KB금융지주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만의 거액 연봉 잔치'
KB 7650만원 하나 5790만원 
신한 5300만원 우리 3300만원

경영진에 찬성표만 던지고 있는 사외이사들. 이들이 하는 일은 대체 뭘까.

사외이사는 경영진과 관련 없는 외부 인사를 이사회에 참가시켜 대주주의 독단 경영과 전횡을 사전에 차단하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1998년 사외이사를 처음 도입, 의무화하고 있다. 초창기만 해도 주로 학계, 시민단체 등의 인사가 사외이사로 선임됐지만 이런 현상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사외이사진을 정관계 고위급 인사들로 구성하는 게 관행이 돼 버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업계에서는 사외이사들의 가장 큰 역할을 '방패막이'라고 분석한다. 4대 금융지주사에 재선임 혹은 신규선임으로 추천된 인사들 면면만 봐도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전직 관료나 현직 로펌 고문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이러한 사외이사들의 면면에 대해 금융권 관계자들은 '전문성'을 그 이유로 든다. 금융회사의 특성상 업무이해도가 높아야 하기 때문에 정관계에서 전문지식과 경험을 쌓은 인물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론 '보험용' 내지는 '로비용'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KB금융지주 사외이사에 재선임된 배재욱 변호사는 대통령민정수석실 사정비서관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과장·공보담당관 경력이 있으며 고승의 교수는 공정거래위원회 경쟁정책 자문위원을, 신규선임된 김영과 고문은 재정경제부 경제협력국장과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 원장을 역임했다.

금융 전문성 결여
독립성도 확보해야

우리금융지주의 경우 재선임된 이용만 현 이사회 의장이 재무부장관, 은행감독원장으로 재직했고 이헌 대표는 홍익법무법인과 법무법인 바른에서 변호사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신규선임된 박영수 변호사는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부장을 역임했다.

신한금융지주는 재선임된 반장식 원장이 기획예산처 차관·재정운용실장을 역임했고 김경림 고문은 현직 법무법인 지평지성 상임고문이다. 하나금융지주도 행정안전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던 최경규 교수를 재선임했다.

이와 관련 업계 관계자는 "사외이사 제도는 기업을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이제는 기업의 로비 활동을 위한 창고로만 쓰이고 있다"며 "사외이사를 선임할 때 소액주주 과반 찬성을 선임요건으로 한다든지, 기존 사추위와 별도로 소액주주 대표들로 구성되는 사추위를 두는 등 독립성 확보 방안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달 각 기업 정기주주총회에서 선임되는 사외이사는 약 150명이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검찰·국세청·공정위 수장들 영입

대기업들이 전직 검찰, 국세청 고위 인사를 잇달아 사외이사로 영입한다. '경제검찰'로 위상이 높아진 공정위 고위관료 출신 또한 대기업 사외이사로 영입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오는 15일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송광수 전 검찰총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송 전 총장은 사법고시 13회 출신으로 서울지방검찰청 부장검사와 법무부 법무실장을 역임했다.

삼성전기는 이승재 전 해양경찰청장을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이 전 청장은 사법고시 24회 출신으로 서울 서초경찰서 서장을 역임했다.

GS는 22일 주총을 통해 이귀남 전 법무부 장관을 사외이사로 선임할 계획이다. 이 전 장관은 대통령비서실 민정비서관실 사정비서관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현대제철은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냈던 정호열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며 신세계는 손인옥 전 공정위 부위원장을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SK텔레콤은 오대식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을 신규 사외이사 후보에 올렸다. 오 전 청장은 행정고시 21회로 공직에 입문해 국세청 정책홍보관리관·조사국 국장, 서울지방국세청장을 역임한 대표적 국세청 관료다.

현대모비스는 박찬욱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을 사외이사로 재선임할 예정이며 현대건설은 이승재 전 중부지방국세청장을 재선임 명단에 올렸다. 롯데케미칼은 대구지방국세청장을 지낸 서현수 세무법인 우경 회장을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으로 선임했다. CJ제일제당도 서울지방국세청장을 지낸 김갑순 회게법인 딜로이트코리아 부회장을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으로 신규 선임했다.

KT는 송도균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을 추천했다. 송 고문은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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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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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