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수재 공무원의 이중생활 내막

나랏돈 받고 간첩질 ‘스파이 남매’

[일요시사=사회팀] 서울시 공무원과 그의 가족이 국내에 거주하며 탈북자 정보를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 넘기는 등 간첩행위를 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대담한 간첩행위는 시 뿐만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이처럼 최근 북한에서 다양한 계층을 공작원으로 입국, 임무수행에 가족까지 동원시키고 있어 탈북자 심사 강화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화교 출신’탈북자 남매가 서울에 거주하면서 간첩행위를 하고 정부로부터 새터민 주거 지원금 및 정착금 등 2500여 만원을 부당 수령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특히 남매 중 오빠인 유모(33)씨는 서울시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더 큰 충격을 줬다. 이에 국민은 한국정부의 허술한 외국인 심사체제에 대해 불신을 나타내며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고양이에 생선 맡겨

중국 국적을 가진 화교인 유씨는 북한에서 3년 과정의 의학전문학교를 졸업, 의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보조의사와 가까운 준의사로 근무하며 화교출신을 교묘히 이용해 대북송금 브로커로 활동해오다 자연스럽게 중국으로 넘어갔다. 그는 중국에서 화교 신분을 철저히 숨기고 탈북자로 위장해 지난 2004년 국내에 입국한 뒤 2007∼2011년, 4년 동안 서울 소재 명문대를 졸업했다. 북한에서도 의사 자격증을 취득할 만큼 두뇌가 명석했던 유씨가 서울 명문대에 입학·졸업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쉬운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는 졸업 후 곧바로 서울시 특별전형에 2년 계약직으로 채용돼 2011년 6월, 서울시에서 탈북자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계약직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유씨는 국내 입국 후 가족상봉을 위해 북한에 5차례 밀입북 했는데, 2006년 5월 즈음 어머니 장례식을 치르러 북한에 들어갔다 남한 입국 사실이 들통 나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 강제 포섭됐고, 처벌대신 남한 내 탈북자 정보를 수집해오라는 지령을 받아 국내에 잠입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는 약 200여명의 탈북자 신상정보를 3차례에 걸쳐 북에 남아있는 가족에게 전달했다. 그가 전자메일을 통해 북한에 남아 있는 여동생에게 탈북자 정보를 전송하면 여동생이 중국에서 메일을 수신한 뒤 북한 보위부에 전달하는 방식을 사용해 보위부는 비교적 은밀하고 손쉽게 탈북자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유씨의 여동생도 지난해 10월 탈북자로 위장해 입국했다가 당국의 합동신문 과정에서 탈북자 정보를 북에 넘긴 정황이 드러나게 됐고, 이를 입수한 국정원이 여동생에 대한 내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이때부터 유씨에 대한 내사를 벌여왔고, 결국 유씨 여동생의 허술한 위장으로 인해 유씨의 범행이 모두 드러나게 됐다.

한편 유씨가 2011년 2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북에 전달한 탈북자 명단 중 대부분은 탈북자 관련 모임에서 활동하면서 얻은 것이지만 나머지 1/4 가량은 공무원으로 재직했을 때 수집했는데, 이처럼 유씨가 짧은 재직기간에도 당당하게 신상정보를 유출할 수 있었던 원인은 탈북자 정착지원 업무를 도맡은데 있었다. 특히 유씨가 매주 탈북자 가정을 찾아가 정기적으로 면담하거나 탈북자 전화상담 업무를 담당하면서 탈북자들의 생활, 개인정보 등 신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한 것으로 밝혀졌다. 즉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셈이다.

유씨의 범행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국가보안법 외에 신분을 속이고 부정 발급받은 여권을 이용해 12차례에 걸쳐 중국, 독일, 태국 등을 출입국 해왔고, 정부 및 지자체로부터 북한이탈주민으로 인정받아 대학 학자금은 물론 주거지원금, 정착금 등 총 2565만원을 부정 수령한 혐의도 받았다. 이는 그간 정부가 순수한 새터민이 아닌 간첩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해오고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서울시 탈북자 부서 근무…정보 북에 넘겨
주거지원금·정착금 2500만원 부정수령도

검찰은 유씨에게 국가보안법상 간첩죄, 특수잠입 및 탈출죄, 회합·통신죄, 북한이탈주민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위반 뿐 아니라 여권법 위반, 여권불실기재 및 행사죄 등도 함께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검찰과 국정원은 유씨가 북한으로부터 지시를 받았는지 여부와 계획적으로 서울시 공무원시험에 지원했는지 여부, 넘어간 탈북자 정보 등을 조사했지만 유씨는 자신이 화교인 점과 1차례 밀입북한 것 외에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유씨의 간첩행위에 대한 첩보를 입수해 북한 보위부의 지시를 받고 자신이 관리 중이던 명단과 한국정착상황, 생활환경 등 정보를 넘긴 혐의로 지난달 13일 구속했다. 유씨의 여동생 또한 간첩행위에 동조한 혐의 등으로 국정원 내사가 끝나는 대로 사법처리 될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사건을 수사하며 탈북자를 위장한 북한의 공작원 침투방식이 진화하고 있는 데 주목하고 있다. 북한이 과거 고도의 훈련을 받은 정예 공작원을 탈북자로 위장해 침투시키는 방식을 탈피하고, 유씨 사례와 같이 다양한 신분과 계층에서 공작원을 뽑아 한국에 보내 의심을 덜 받게 하면서 은밀히 정보를 입수한다는 것. 또한 남아있는 가족까지 공작활동에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새로운 공작활동 중 하나로 인식된다. 이에 대해 검찰은 유씨가 북에 넘긴 정보가 국내 거주 탈북자들을 포섭하는데 이용될 위험이 높다고 보고, 당국의 철저한 대책마련을 주문했다.

검찰 관계자는 “북한이 정예 공작원 침투라는 전통적인 방식을 벗어나 다양한 계층을 공작원으로 입국시키고 임무 수행에 가족까지 동원하는 점이 확인됐다”며 “탈북자 심사 및 관리 강화가 절실히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어 “유관기관과 공조해 탈북자 심사 및 관리를 더욱 강화하고 간첩 및 위장탈북자에 대해 엄중 처벌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밀입북 때 지령 받아

30대 젊은 청년간첩이 정부 지원금을 받고 대학을 마친 뒤, 서울시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6년 동안 뻔뻔하게 국가 정보를 유출하고 있었음에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이처럼 국내에서 일반인의 탈을 쓴 간첩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이 사건은 국가안보수준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는지 잘 알려주는 대표적 사례로서, 하루속히 탈북자 심사 체제를 개선하고 간첩행위에 대한 처벌이 더 강화돼야함이 요구된다.

‘방심하는 순간 위기를 맞게 된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할 때다.


김지선 기자 jisun86@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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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