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부르는' 저주의 마창대교 스토리

화려한 조명 속 난간에 떠도는 영혼들

[일요시사=사회팀] 지난 2008년 7월부터 개통된 경남 창원시의 마창대교. 이 웅장하고 화려한 다리는 경남의 명물이자 시민들의 교통체증을 절감하는 교통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남해안의 연결고리인 마창대교에는 불명예스러운 수식어가 꼬리처럼 따라붙고 있는데, 바로 ‘자살대교’다. 준공식을 마친 해부터 현재까지 해마다 마창대교에서 자살 혹은 자살소동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 자살을 부르는 저주의 마창대교. 과연 언제쯤 이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지난 1997년 마산과 진해를 연결하는 우회도로 설계를 마친 후, 2004년 4월부터 2008년 6월까지 약 50개월 동안의 기나긴 공사기간과 민간자본 1840여억원의 투자로 완공된 마창대교. 이는 남해안을 가르는 대표적 다리이자, 국내 최대의 고도를 자랑한다. 뿐만 아니라 지역 시민들의 교통편의를 제공하고 연 400여억원의 물류비를 절감케 하는 장점도 지니고 있다. 4계절 화려한 조명연출 또한 이 다리의 볼거리다.

자살대교
오명 왜?

이처럼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겸비한 마창대교에도 결정적인 흠이 있었는데 마창대교를 지칭하는 또 다른 이름, 이른바 ‘자살대교’다. 마창대교는 개통된 해 한 20대 청년이 연인과의 이별을 비관해 투신자살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매년 5명 남짓의 시민들이 자살 혹은 자살소동을 벌이는 등 자살사건이 연중행사처럼 잇따르고 있어 ‘자살 명소’라는 웃지 못 할 오명에 시달리기도 했다.

자살대교라는 오명의 시초는 개통 한 달 만에 발생한 20대 청년의 자살사건이었다. 2008년 8월15일 오후 1시50분께 이 남성은 마창대교 중간지점에서 64m 아래 바다로 투신자살했다. 그는 여자친구의 아버지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 살인혐의로 경찰의 수배를 받아오던 용의자였다.

남성은 전날 오전 8시35분쯤 진해시의 한 주택에서 여자친구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데 앙심을 품고 미리 준비해간 흉기로 여자친구와 그의 아버지, 어머니 등 3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아버지를 살해하고 2명에게는 중상을 입힌 뒤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달아났다. 이튿날 그는 창원시 대원동에서 영업용 택시를 타고 도주하다 죄책감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택시기사에게 “차를 세우지 않으면 차문을 열고 뛰어 내리겠다”고 위협했다. 택시는 마침 마산부근에서 창원방향 마창대교를 지나던 차였다. 겁에 질린 택시기사는 곧바로 차를 세웠고, 차에서 내린 남성은 중앙분리대를 넘어 맞은 편 다리 난간으로 달려가 1분가량 망설이다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후 기사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해경이 남성을 구조했지만 이미 숨진 뒤였다.

20대 살인용의자 개통된 해 죄의식 안고 투신자살
아내와 사별한 남편 아들 밀치고 자신도 뛰어내려


비록 첫 투신자살을 시도한 사람이 형사처벌 대신 자살로 죗값을 치르려 했던 용의자이긴 했지만 개통 한 달만의 자살사건은 마산시와 창원시의 입장으로선 결코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이후 다음달에는 한 30대 남성이 렌터카를 교각에 세워놓고 투신했으며 다음해엔 5명, 그 다음해엔 7명이 투신자살해 2년새 16명이 자살시도, 1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불명예스러운 전례를 갖고 있다.

2010년 8월18일 새벽 3시22분께 마창대교에서 60대 남성 최모씨가 70m 아래 바다에 투신한 것을 마창대교 관리공단 직원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공단 직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해경은 대교 주변에 경비정을 투입해 수색작업을 벌였으며 이들은 최씨가 투신한 지 약 30분 후 그를 인양했지만 이내 숨졌다.
신고를 한 관리공단 관계자는 “이날 새벽 교량 갓길에 스타렉스 승합차가 세워져 있었지만 운전자가 보이지 않아 투신자살한 것으로 판단돼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경찰조사결과 최씨는 투신 2시간 전에 아내와 심한 말다툼을 벌였고 집을 나간 뒤, 홧김에 바다에 몸을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생활고 비관해
부자동반자살도

역시 같은 해 다음 달인 9월12일 40대 아버지가 생활고를 비관해 초등학교 4학년 아들과 마창대교에서 투신했다는 소식이 보도돼 당시 전국은 침통한 분위기로 물들었다. 이 사건은 마창대교에서 발생한 투신자살사건 중 가장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사건으로 남아 국민 뇌리 속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사건당일 오전 9시48분경 창원시 진해구에 사는 40대 남성과 그의 아들이 마창대교 한 가운데 난간에서 바다로 뛰어내렸다. CCTV 확인 결과 남성은 교각에 자신의 승용차를 세워 놓고 아들을 먼저 뛰어 내리게 하고 아버지도 곧바로 투신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CCTV에 녹화된 장면을 보면 아들은 뛰어 내리지 않으려고 한 손으로 다리 난간을 잡으며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다가 뒤에서 밀치는 아버지의 힘에 의해 바다 속으로 떨어진 것으로 보였으며, 아들을 밀친 아버지도 곧 뛰어 내려 계획된 자살임이 드러났다.


사건을 조사한 경찰은 남성이 생활고를 비관해 투신자살한 것으로 추측했다. 경찰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남성은 유서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하나 남기지 않았으며 그 누구에게 전화 한 통도 하지 않았다. 

처지 비관 30대 취객 속옷 입고 자살 소동
개통후 2년 동안 14명 스스로 목숨 내던져

지난해 위암으로 아내를 잃고, 어머니 명의로 된 진해의 한 아파트에서 아들과 함께 살아온 그는 대리운전을 하며 한 달 급여 70만원으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대리운전을 하기 전에 그는 개인 사업을 했지만, 위암을 앓고 있던 아내 병원비로 인해 점점 가세가 기울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내가 사망한 뒤 국민연금관리공단으로부터 받아온 유족연금 22만원을 합쳐도 한 달 수입은 100만원도 채 되지 않았고, 자치단체 등으로부터 ‘한부모가정 양육비’로 지급되는 5만원과 아들의 학교 급식비 감면혜택을 받았으나 생계유지엔 턱없이 부족했다. 

생활고를 이유로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부자동반자살사건’은 당시 각박한 사회풍토와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렸던 서민의 고충이 가장 잘 반영된 대표적 사건이었다.



전국이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빠져나오기도 전, 약 열흘 후에 마창대교에서 자살소동이 벌어졌다. 밤 10시40분쯤 만취한 30대 남성 조모씨가 대교 위에서 속옷만 입고 바람막이 난간 위에 올라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가까이 오면 뛰어 내리겠다”며 2시간가량 소동을 벌였다. 조씨는 처와 이혼문제로 자주 다투는 등 가정불화 때문에 술을 마신 뒤, 이 같은 소동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조씨의 자살소동이 쉽게 무마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의 친누나와 직장동료 등을 불러 설득작업을 벌여 2시간 만에 조씨를 구조했다. 조씨의 경우 다행히 소동에서 마무리 됐지만 앞서 발생한 부자동반자살의 연장전이 아니냐는 주위의 우려가 깊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마창대교에서 발생한 투신자살사건에는 묘한 공통분모가 존재했는데 그것은 바로 8,9월에 투신자살이 잦았다는 점이다. 소동으로 일단락된 후에도 마창대교의 8월의 저주는 어김없이 계속됐다.

처지비관
자살소동 잇따라

2011년 8월23일 오전 9시14분께 50대 민모씨가 마창대교에서 70m 아래 바다로 투신해 숨졌다. 택시를 몰던 민씨는 갑자기 차를 교각에 세웠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바다 속에 몸을 던졌다. 이를 목격한 마창대교 관제탑 관계자는 “이날 오전 주탑 2교각 5번 사이 사량교에 택시가 세워진 후 운전자가 대교 아래로 뛰어내려 순찰팀에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대교 순찰팀이 현장에 도착했을 당시 이미 투신한 뒤였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민씨가 개인택시기사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으며 유서 및 통화기록 등 정황자료가 충분치 않아 정확한 자살 경위는 밝혀진 바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듬해 8월에도 자살소동이 일었다. 4일 오전 3시쯤 마창대교 난간에서 한 30대 회사원이 투신자살소동을 벌였다. 이 남성은 평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왔고 “견디기 너무 힘들다”며 1시간 반가량 다리 난간에 걸터앉은 위험한 자세로 소동을 벌이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과 119 구조대의 지속된 설득 끝에 난간에서 내려왔다. 

새 정부가 출범한 올해 2월에는 마산합포구 영월동 모 사찰 소속의 한 70대 스님이 자살 릴레이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 스님은 19일 0시48분경 1톤 트럭으로 마창대교 중간지점으로 이동 후, 차량을 세워 놓고 투신자살한 것으로 확인됐다. 스님은 트럭을 몰다 차량을 노견에 주차해 놓고 다리 밑으로 투신했다. 경찰은 스님이 평소 사찰 운영 관계로 신변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사찰 및 유족들을 상대로 사망 경위를 조사에 나섰다.

자살 방관하는
마창대교?

그렇다면 마창대교에서 자살이 잇따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마창대교의 최대 단점으로 타 대교와 상대적으로 낮은 난간높이를 꼽았다. 실제로 마창대교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외형과는 달리 안전시설은 터무니 없이 허술하다. 마창대교는 난간 높이가 어른의 허리 높이밖에 되지 않아 자살과 같은 안전사고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또한 보행자 거리가 따로 마련되지 않아 차량을 정차하는 경우도 빈번할 뿐 아니라 보행자가 다리 위를 다녀도 이를 막는 직원이 딱히 없는 데다, 다리에 설치된 CCTV는 8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부산 광안대교의 경우 41대나 되는 CCTV가 다리에 설치돼 보행자가 접근하면 곧바로 경광등이 켜지고 안내방송이 나온다. 차를 교각에 정차할 경우에도 곧바로 순찰팀이 출동하는 등 보행자와 차량 정차를 원천 차단하는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어 자살예방에 탁월한 효과를 보여준다.

개통 후 매년 자살사건이 잇따르고 있지만 현재까지 뚜렷한 해결방안이 구축되지 않아 항간에서는 “도 관계자들이 주민들의 자살을 방관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실상 마창대교의 허리까지 오는 다리 난간을 1m가량 더 높이면, 순찰팀이 출동할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고 심리적인 압박을 통해 충동적인 자살을 막을 수 있지만, 말만 나왔을 뿐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한편 자살대교 오명을 떠안았던 지난 2010년 한 경남도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서울시내 한강다리에서는 연간 수십명이 투신하는데도 쉬쉬하는데, 언론이 유독 마창대교와 관련 자살 사건만 크게 다루는지 모르겠다”며 억울함을 드러내면서도 “마창대교가 자살대교로 불리지 않도록 언론과 도민이 적극 협조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당부했다.

연간 100억 가까이 되는 도민 혈세로 운영되는 마창대교는 향후 30년간 1조원에 달하는 혈세가 부과될 전망이라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다. 마창대교가 경남의 명물이자 랜드마크로 거듭날 것이라는 도의 바람과는 달리 ‘돈 먹는 자살대교’로 전락되고 있어 씁쓸함을 남긴다.


김지선 기자 jisun8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호남엔 목포대교

벌써 8번째 투신자살

지난해 6월 말 개통된 목포대교 역시 마창대교 못지않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목포대교는 개통한 지 불과 70일도 채 안 돼 전남도민 6명이 잇따라 투신자살했다. 목포대교에서 투신자살 사건이 잇따르자 당국이 순찰을 강화하고 감시장비를 설치하는 등 방지대책 마련에 나섰다.

목포대교에서는 지난해 7월4일 곽모(34·목포시), 15일 최모(40·광주시), 8월3일 김모(34·무안군), 14일 정모(33·광주시), 30일 채모(36·목포시), 9월6일 신모(30·목포시)씨 등 6명이 투신자살했다.

올해 2월에는 한 10대 소녀가 목포대교에서 신변 비관으로 몸을 던져 주위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강모양은 2월22일 오후 3시께 목포시 죽교동 목포대교 중간 지점에서 바다로 뛰어내렸다. 이를 순찰중이던 해경 경비정이 발견했지만 강양은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 강양의 자살로 목포대교에서는 개통 1년도 채 되지 않아 8번째 희생자가 나오며 마창대교에 이어 포스트 자살대교로 불리고 있다.

목포시는 자살방지를 위해 투신 사건이 집중되는 매일 오후 9시부터 오전 2시까지 해병전우회, 자율방범대 등 5개 민간단체가 2인 1조로 차량 순찰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교량 관리기관인 익산지방국토관리청도 17억원을 들여 보행자 접근을 실시간 감시하는 첨단 CCTV와 센서를 교량 양 끝 2곳과 중앙 4곳 등 총 6곳에 설치했다.

또 목포대교에서 CCTV가 읽은 상황을 목포대교 유지관리사무소와 목포경찰서·목포해양경찰서·목포시 상황실이 공유하며, 상황 발생 때는 기관 간 핫라인을 통해 공동으로 대응한다. 목포대교에 투신 의심자가 나타날 경우 자동 경보음에 이어 경고 메시지를 보낸 뒤 경찰과 해경 등이 동시에 신속하게 출동해 투신을 저지한다.

구자명 익산지방국토관리청장은 “CCTV 설치로 목포대교에 대한 24시간 체계적 감시가 가능해져 투신 예방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한편 목포대교는 죽교동 북항과 고하도(신외항)를 연결하는 3.1km의 해상교량으로 지난해 6월29일 개통돼 이동시간이 크게 단축되는 등 도민들을 위한 교통편의를 제공하고 있어 서남권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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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비화폰’ 통화 내역 추적

‘김건희 비화폰’ 통화 내역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영부인은 통신상 기밀을 요하는 위치에 있지 않다. 그저 ‘대통령의 아내’다. 비화폰이 필요하지도 않고 쓸 일도 없다. 김건희씨는 그 어떤 영부인과는 달랐다. 윤석열정부 초부터 비화폰을 사용하면서 정치권을 포함해 이곳저곳에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비화폰은 통화 녹음이 불가능하고 내용도 암호화된다. 정부와 대통령실 경호처·안보 담당 고위 관계자, 군·정보기관에 근무 중인 이들이 주로 사용한다. 민간인에게는 지급되지 않는다. 김건희씨는 윤석열정부 초기부터 비화폰을 사용했다. 지금까지 지켜졌던 관행을 파괴하고 비화폰을 사용하면서 수사기관·정치권 등에 개입한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수사 개입 정황 확인 채상병 사건 외압 의혹을 수사하는 이명현 순직해병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씨가 사용했던 비화폰 통신 기록 확보에 나섰다. 정민영 특검보는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동 특검사무실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지난주 대통령실과 국방부 군 관계자 비화폰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정 특검보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임성근 전 사단장 등 주요 당사자 21명의 비화폰 통신 기록을 국군지휘통신사령부 및 대통령경호처로부터 제출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수사 외압이 의심되는 기간 비화폰 통신 기록을 분석하며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정 특검보는 김씨도 비화폰을 사용했느냐는 질문에 “사용한 것으로 파악했다”며 “본인에게 지급된 것”이라고 전했다. 특검팀은 지난 2023년 7∼8월 소위 ‘VIP 격노’ 이후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채 상병 사망 사건 관련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자에서 제외된 배경에 윤 전 대통령 부부를 정점으로 한 수사 외압과 구명 로비가 있었다는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특검팀은 이미 윤 전 대통령과 임성근 전 사단장 등 주요 인물의 자택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진행해 휴대전화 등을 확보했다. 이들이 당시 보안성이 높은 비화폰을 사용해 연락했던 정황을 포착하고 통신 기록 확보에 추가로 나선 것이다. 정민영 특검보는 “일반 휴대전화로 연락을 주고받은 기록들은 어느 정도 확인됐는데 중간중간 비화폰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며 “누구와 어떤 시기에 수발신이 이뤄졌는지를 조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채상병 특검, 윤·김 통신 기록 확보 조태용·김태용 등 “VIP 격노 사실” 앞서 특검팀은 대통령경호처에 비화폰 통신 기록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했고, 경호처 측은 임의제출 형식으로 관련 자료를 특검에 제출하고 있다. 특검팀은 이르면 이번 주 안에 비화폰 기록을 모두 넘겨받아 분석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채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발단이 됐던 2023년 7월31일 VIP 격노 회의 전후 기간 이들의 비화폰 통신 기록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방침이다. 특검팀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서 김씨 계좌를 관리했던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가 임 전 사단장 구명을 위해 “내가 VIP(윤 전 대통령)한테 얘기하겠다”고 지인에게 말한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로부터 넘겨받아 구명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은 비화폰 기록을 토대로 김씨가 이 전 대표와 어떤 통화 내용을 주고받았는지 등을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김씨의 비화폰 사용에 의문을 제기한다. 윤석열정부 이전엔 대통령 부인이 비화폰을 상시로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경호처 출신 한 정치권 관계자는 “영부인이 비화폰을 쓰는 게 불법은 아니지만 여러 입김이 작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기에 관행적으로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에게 비화폰을 지급한 이유에 대해 경호처는 “비화폰은 국가정보원의 ‘국가정보보안 기본 지침’ 등을 근거로 한 대통령경호처의 내부 규정에 따라 관리되고 있다”며 “김씨에 대해서는 관련 내부 규정에 따라 제공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김씨에게 지급된 비화폰은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 등은 사용할 수 없고 송수신 통화와 문자메시지 발송만 가능하다. 그의 비화폰 기록이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씨의 비화폰 기록에 대해 윤 전 대통령 부부의 공천 개입 의혹 등을 수사 중인 김건희 특검(특별검사 민중기)도 압수수색에 나설 수 있어서다. 지난해 7월 김씨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디올백 수수 사건으로 검찰 출장 조사를 받기 전 김주현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과 30분 넘게 비화폰으로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전부 맞다” 줄줄이 실토 또,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 의혹이 불거졌던 지난해 10월 김 전 수석이 당시 심우정 전 검찰총장과 비화폰으로 2차례 통화하기도 했는데, 이와 관련한 김씨의 비화폰 기록이 추가로 확인되면 파장이 커질 수 있다. 특검팀은 최근 조 전 원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17시간가량 조사했다. 조 전 원장은 2023년 7월31일 오전 11시쯤 대통령 주재 국가안보실 회의에서 윤 전 대통령이 해병대수사단 수사 결과 보고를 받을 당시 배석한 것으로 알려진 7명 중 한 명이다. 윤 전 대통령은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육군 중장·현 국방대학교 총장)에게 수사 결과를 보고받고 격노해 대통령실 내선전화(02-800-7070)로 이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조 전 원장은 특검 조사에서 윤 전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 이충면 전 외교비서관, 왕윤종 전 경제안보비서관, 김계환 전 해병대사령관에 이어 다섯 번째로 윤 전 대통령의 격노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당시 국가안보실 회의 참석자로만 보면 4번째다. 정 특검보는 “해병대수사단이 이첩한 수사 기록의 회수와 관련해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에게 확인할 내용이 많다”고 말했다. 이 전 비서관은 해병대수사단이 경북경찰청으로 순직 사건 기록을 이첩한 당일 임 전 비서관, 유재은 전 국방부 법무관리관 등과 연락하며 수사 기록 회수 과정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특검팀은 이 전 비서관 등 대통령비서실 공직기강비서관실 관계자들이 대통령실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경북경찰청 사이에 다리를 놓아 이첩 기록 회수 과정에 관여한 정황을 파악했다. 특검팀은 지난달 16일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파견 근무하던 박모 총경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며 이 전 비서관이 기록 반환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의 진술을 확보했다. 박 총경은 대통령실과 국수본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23년 8월2일 이모 전 국수본 강력범죄수사과장에게 전화해 유 전 관리관의 연락처를 전달하고 경북청이 연결할 수 있도록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과장도 특검에 출석해 박 총경이 이 전 비서관 이름을 언급하며 기록 반환을 검토하라고 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 전 비서관은 해병대수사단이 기록을 이첩한 직후 2023년 8월2일 오후 1시21분 이 전 비서관과 통화하고 뒤이어 오후 1시42분 유 전 관리관에게 전화했다. 누구와 통화했나 유 전 관리관은 지난해 6월 국회에서 임 전 비서관으로부터 경북청에서 전화를 걸어올 것이란 말을 들었고, 경북청 관계자와 통화하며 수사 기록 회수를 상의했다고 설명했다. 유 전 관리관은 노모 당시 경북청 수사부장과의 통화에 대해 “경북청에서 ‘아직 사건을 접수하지 않았다. 회수해 갈 것인가’라고 물었고, 판단하기론 ‘항명에 따른 무단 이첩이라 회수하겠다’고 했다”는 말을 주고받았다고 밝혔다. 유 전 관리관과 경북청의 통화 이후 해병대수사단에서 이첩한 수사 기록은 같은 날 오후 7시 20분쯤 국방부검찰단에서 회수했다. 임 전 사단장을 포함해 8명으로 혐의자가 적시된 해병대 수사 기록은 국방부 조사본부의 재검토를 거쳐 2명으로 축소돼 경북청에 다시 보내졌다. 특검팀은 수사의 초점을 점차 국방부검찰단의 수사 기록 회수와 국방부조사본부의 수사 기록 재검토 과정 확인으로 옮기고 있다. 정 특검보는 “기록 회수와 재검토 등과 관련해 국방부 관계자들을 계속 조사하고 있다”면서 “수사 초반에 비해 기록 회수나 (조사본부) 재조사 부분에 대해 중점적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검팀은 김진락 전 국방부조사본부 수사단장(육군 대령)의 2023년 8월 수사 기록 재검토 과정에서 자필로 작성한 20여쪽 분량의 수첩을 확보해 국방부의 외압 정황을 확인하고 있다. 지난해 아닌 2023년 초부터 사용 “문제 생기거나 위기 때마다 애용” 국방부조사본부는 2023년 8월9일 이 전 장관의 지시를 받아 해병대수사단 수사 기록 재검토에 들어갔고 닷새 후 임 전 사단장 등 6명을 혐의자로 판단한 중간보고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국방부조사본부는 총 6차례에 걸친 보고서 수정을 거쳐 대대장 2명만 혐의자로 적시한 재검토 결과를 경북청에 재이첩했다. 김씨와 비화폰으로 통화한 인물들은 모두 사건 핵심 관계자들이다. 복수의 대통령실 출신 인사들은 에 김씨가 윤 전 대통령이나 자신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마다 비화폰으로 김 전 수석과 조 전 원장 등과 통화했다고 주장했다. 김씨에게 비화폰을 제공한 인물은 윤석열정부 초대 경호처장이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다. 김 전 장관은 윤석열정부가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김씨에게 비화폰을 제공했다고 한다. 김씨가 비화폰을 많이 사용하던 시기는 2023년 초부터다. 특검팀도 2023년 3월부터 김씨가 비화폰을 사용하기 시작한 정황을 포착했다. 일각에서는 김씨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지난해 9월부터 비화폰으로 통화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사 안팎에서는 노 전 사령관과 김씨가 비화폰으로 통화하기 직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는 관측이 나온다. 내연남 역할은? 한 정보사 관계자는 “김씨의 어머니인 최은순씨의 내연남 의혹을 받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노상원을 후원하던 사람이라는 풍문은 많이 알려진 얘기”라며 “노상원과 내연남이 서로 아는 사이라는 건 사실이지만 내연남이 노상원에게 돈을 퍼줬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내연남이 노상원과 비화폰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모른다. 적어도 무속과 고민 상담 등은 아닐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