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GH 그림자' 허태열 비서실장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2.26 15: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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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 상자 들고 청와대 입성…물음표 운명

[일요시사=사회팀] 허태열 전 의원이 비서실장으로 내정되자 정치권에서는 친정체제 구축이라는 우려 섞인 반응이 새어나왔다. 한편에서는 허 비서실장의 과거 행적을 비추어 권부 핵심 기구 수장으로는 부적합하다는 지적이 일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가장 존경한다는 허 비서실장. 그의 꿈은 2대에 걸쳐 '박통' 일가를 보필하는 것이다.



"국민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이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박근혜의 복심'으로 불리며 비서실 수장 자리를 꿰찬 그는 인선 직후부터 수많은 구설에 올랐다.
 
전방위 사퇴압박
출발부터 삐그덕

급기야 지난 20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통해 해명자료까지 발표했다. "저로 인해 국민들께 많은 심려를 끼쳐드린 점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사과만으로 끝나선 안 된다"는 각계의 강도 높은 비난 여론은 쉬이 잦아들지 않았다.

먼저 허 비서실장은 박사학위 논문 표절 혐의를 받고 있다. 허 비서실장은 지난 1999년 건국대 행정대학원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정책결정 참여자 간 네트워크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해 그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해당 논문은 연세대 행정학과 이종구 교수의 논문을 그대로 베낀 것이었다.

허 비서실장의 박사논문은 이 교수가 1996년 <한국행정학보>에 실은 '지방정책에 대한 이론모형의 개발과 실증적 적용'을 표절한 것이다.


허 비서실장 명의로 된 13쪽 분량의 원문 중 6쪽이 토씨하나 안 틀리고 이 교수의 논문과 일치했다. 통상 논문 표절 논란은 타 연구자의 연구 방법을 모방하거나 결과를 인용하는 등의 행위가 있을 때 불거진다. 때론 논문 안에서 단어와 문장이 비슷한 배열 구조를 가질 때도 표절 의혹은 제기된다.

그러나 허 비서실장의 논문은 ‘표절 수준을 넘어서 복사’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허 비서실장은 이 교수의 논문 2∼7쪽을 그대로 복사해 차용했다. 두 논문을 비교한 한 전문가는 “그간 많은 표절 사례를 봤지만 이처럼 똑같이 베낀 건 처음”이라며 이번 논란에 대해 우려의 뜻을 나타냈다.

'박 복심' 대표적 친박계 "친정체제 구축 완성"
정치권서 우려…각종 의혹 등 과거 행적 불거져

그러나 허 비서실장은 오히려 대담했다. 그는 해명자료에서 "논문작성 과정에 있었던 시간적 제약 등으로 세밀한 준비가 부족했다"면서 "저는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가 아니다. 제 나이가 올해로 68세인데 너그럽게 이해해 달라"고 주장했다.

허 비서실장이 논문을 작성한 시기는 1999년으로 알려져 있다. 허 비서실장은 박사 과정에 있던 1995년부터 충북도지사를 지냈고, 1999년 무렵에는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을 지냈다. 현실적으로 박사학위를 따기 위한 논문 작성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허 비서실장의 논문을 둘러싸고 '대필의혹'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그의 보좌진 중 한 명이 허 비서실장의 지시로 논문을 대필했다는 의혹이다.

관련 당사자들은 입을 다물고 있지만 허 비서실장은 "논문을 작성할 당시 이 교수를 만나 자문을 받았고, 원저자가 알고 있어 표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박사논문 표절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과거 논문 표절로 새누리당을 자진 탈당한 문대성 의원의 사례를 비춰봤을 때 '이중 잣대'라는 세간의 따가운 눈총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문 의원은 자신이 2008년 국민대에서 발표한 박사학위 논문이 2007년 김백수 박사의 논문을 표절한 정황이 드러나자 당선 후 9일을 버티다가 탈당했다. 사하갑을 지역구로 했던 친박계 현기환 전 의원은 문 의원이 잠적하자 그의 위치를 수소문해 자진 탈당을 설득하는 등 강한 압박을 행사했다. 그 결과 문 의원은 결국 새누리당 당적을 포기했다. 

하지만 이번 친박계의 대응은 달랐다. 사퇴 압박은커녕 허 비서실장 지키기에 급급한 형국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당 관계자는 "모두가 친박계를 두려워해 납작 엎드려 있다"며 "(사퇴에 대해) 말하고 싶어도 서로가 눈치 보느라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어 "부산·대구와 척을 지면 박근혜 대통령과의 교섭채널을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라며 "괜히 앞장섰다가 어찌될지 모른다"고 몸을 사렸다.

박근혜 인사는
아무도 못말려

박근혜 정부의 인사코드 중 하나인 부산. 허 비서실장의 정치적 고향도 부산이다. 경남에서 태어나 부산고등학교를 나온 그는 지난 16대 총선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이기고 부산 북·강서을에서 당선된 바 있다.

당시 선거 과정에서 있었던 지역감정 유도 발언은 특히 유명한데 허 비서실장은 공동 유세현장에서 "민주당은 전라도 사람이 키우고 전라도 사람이 사랑하고, 우리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부산시민이 키우고 부산시민이 사랑했다"는 말로 포문을 열었다.

이어 "중앙정부에서 부산사람을 찾을 수 없어 눈에 띄면 천연기념물이라고 부른다"며 "여러분 자녀들은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수완이 좋아도 (앞으로) 다 틀렸다. 앞으로 우리 아들·딸들이 남(호남인)의 눈치나 살피며 종살이하지 않을 것이라 누가 자신할 수 있겠냐"고 지역감정을 자극했다. 이처럼 지역감정을 바탕으로 철저히 노 전 대통령을 공략한 허 비서실장은 53.2%의 득표율로 금배지를 다는데 성공했다.

허 비서실장은 노 전 대통령이 지난 16대 대선에 출마했을 때도 "민주당은 노 후보 하나만 경상도고 나머지는 다 전라도다"라고 발언하는 등 지역감정 부추기기에 앞장섰다. 그러나 많은 부산시민은 허 비서실장을 지지했다. 허 비서실장은 부산에서 내리 3선에 성공했다.

이렇듯 능력을 인정받은 허 비서실장은 2008년 7월 열린 한나라당 제10차 전당대회에서 정몽준 의원 등과 함께 최고위원으로 선출됐다.

당시 이를 두고 많은 전문가들은 허 비서실장의 실질적인 당내 영향력보다는 친박계 출신이라는 이점이 작용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친박계 인사라는 꼬리표가 허 비서실장에게는 득이 된 셈.

박근혜 대통령과 허 비서실장의 공생은 2006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이 당 대표를 맡았던 때 허 비서실장은 시장과 도지사를 두루 경험한 행정 능력을 인정받아 당 사무총장에 선임됐다. 그리고 2008년, 당 최고위원으로 당선된 허 비서실장은 일약 친박계 실세로 급부상했다. 친이 세력에 맞서 친박 진영을 지키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는 것.


나아가 허 비서실장은 박 대통령의 두 차례 대선 도전을 곁에서 지키며, 깊은 신뢰를 구축했다.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 박 대통령도 지난 19대 총선을 앞두고서는 허 비서실장이 불출마를 선언하자 이를 나서서 만류하는 등 남다른 신임을 드러냈다.

허 비서실장은 지난 1974년부터 11년 동안 청와대에서 일했다. 당시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을 보좌했던 그는 육영수 여사 서거 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맡았던 박 대통령과 몇 차례 만남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남다른 인연 탓에 박 대통령은 허 비서실장에게 믿음을 보이고 있다. 이에 화답하듯 허 비서실장도 내정 발표 직후 "비서실장은 귀는 있지만 입은 없다"고 말해 '믿음을 지키겠다'는 사인을 보냈다. 입을 무겁게 하겠다는 것.

부친에 이어
2대째 충성

그러나 허 비서실장의 과거를 들추면 신중치 못한 발언들이 눈에 띈다. 가장 유명한 건 이른바 "섹스 프리" 발언이다.

허 비서실장은 지난 2010년 정희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이 주최한 한 경제정책 포럼에 참석해 "섹스 프리(Sex free)하고 카지노 프리(Casino free)한 금기 없는 특수지역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관광사업 육성을 위한 성매매 및 도박 규제 완화를 전제한 것으로 전체 맥락과 상관없이 '섹스 프리'라는 말은 큰 논란을 일으켰다. 국회의원으로서의 품위와 배치되는 어휘였기 때문.

비난이 잇따르자 허 비서실장은 "국민정서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외국의 유명 관광지인 라스베이거스 같은 자유로운 관광특구를 만들자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허 비서실장의 막말 논란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다.

허 비서실장은 1년 전인 2009년 한나라당 부산시당 국정보고대회에서 "좌파는 빨갱이"란 말로 논란이 됐다.

허 비서실장은 "요즘 좌파라고 하지만 빨갱이들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의 달콤한 추억을 잊지 못한다"며 "좌파는 80%의 섭섭한 사람들을 이용해 끊임없이 세력을 만들고 이명박 대통령을 흔들고 있는데 그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는 게 민주당"이란 연설을 했다. 그가 정치를 시작하며 늘 반복했던 '색깔론'의 연장선상에 있는 발언이었다.

이외에도 허 비서실장은 2008년 광복절에 일본으로 골프 여행을 떠났다가 구설에 올랐다. 국회 원구성 협상을 앞두고 돌연 일본 오사카로 출국한 것.

며칠 후 "일본에서 골프를 쳤다"는 사실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허 비서실장은 친일파란 오명을 뒤집어썼다. 이에 대해 허 비서실장은 "구마노라는 세계문화유산을 보러갔다"고 해명했으나 이를 글자 그대로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허 비서실장의 과거 발언은 이처럼 그다지 믿음직한 인상을 주진 못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그의 도덕성에 있다는 것이 몇몇 관계자의 증언이다. 소위 말하는 고위 공직자 비리 '그랜드슬램' 요건을 모두 충족시키고 있다는 것. 허 비서실장은 병역면제, 부동산투기, 공천헌금 의혹을 모두 받고 있다.

"과거에는 이중 한 가지만 있어도 도덕성에 치명적인 흠결이 갔는데 최근에는 이런 일이 워낙 비일비재하다보니 이에 대해서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다"고 한 인사청문위원은 귀띔했다. 허 비서실장이 불거진 의혹들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비서실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의혹 검증 작업이 녹록치 않다는 게 한 국회 관계자의 증언이다. 이를 모를 일 없는 허 비서실장도 "이번 비만 피하면…."이란 마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우선 허 비서실장은 신체장애로 병역면제를 받았다. 1976년 폐결핵으로 인한 왼손 검지·중지·약지 등 손가락 마비(수지강직)가 그 면제 사유였다. 하지만 허 비서실장은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이 생활하고 있다.

알려진 것과 달리 왼손의 이상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병무청은 지난  2004년 수지강직 증세가 병역면제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판단하고 이를 면제사유에서 제외했다. 이에 대해 허 비서실장은 "폐결핵 합병증으로 손가락 마비가 왔었는데 지금은 치료를 통해 호전됐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복사 수준 논문 표절…"섹스프리" 막말 구설수
부동산투기·병역·공천헌금 등 의혹 그랜드슬램
색깔론 신봉자…노무현 이긴 지역감정 '살아있네'

허 비서실장은 부동산투기 의혹도 함께 받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3억5000여만원 상당의 배우자 명의 땅이 매입 당시보다 시가가 몇 배 이상 뛰었기 때문이다.

허 비서실장의 부인은 1997년 8월 이 논을 샀는데 영농계약서를 허위로 작성했다는 전력이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당시 농지법은 농업인이 아닌 사람의 농지 소유를 금지하고 있었다. 이에 허 비서실장의 부인은 '농사경력 1년, 선진 영농 매진'이라는 영농 계획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실제로 땅을 산 뒤 농사를 짓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자연스레 땅투기 의혹이 불거지는 상황.

이에 대해 허 비서실장은 "처음에는 아내가 직접 농사를 짓다가 소작을 맡겼고, 국회의원이 된 뒤에는 한국농어촌공사에 토지 운영을 위탁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난 2005년 KBS와의 인터뷰에서 허 비서실장은 이 같은 의혹이 불거지자 "여자가 팔 걷어붙이고 농사짓는 것 봤냐"면서 "겸사겸사 농사짓고 땅값이 오르면 좋은 거 아니냐"고 말했다. 사실상 혐의를 시인한 셈.

아울러 허 비서실장의 동생 허모씨는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공천 대가로 지인으로부터 5억원을 받아 챙겨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을 고발한 선관위는 허씨의 형인 허 비서실장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의뢰를 요청했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허 비서실장은 "동생과는 몇 년간 의절하다시피 살았다"면서 "총선을 앞두고 동생과 만난 건 사실이지만 감이 안 좋아 심하게 야단치고 나왔다"고 진술했다. 허 비서실장은 공천헌금 수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부인은 땅투기
동생은 헌금수수

청와대 비서실은 정부 관료 인선에 직접 관여할 수 있는 요충지로 인사청탁과 헌금이 가장 많이 오가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공천헌금 수수 무혐의 처분을 받은 허 비서실장이 앞으로 얼마나 깨끗한 비서실을 운영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허태열 비서실장은?

▲경남 출생
▲부산고등학교 졸업
▲성균관대 법대 졸업
▲건국대 행정학박사
▲제8회 행정고시 합격
▲의정부시장
▲부천시장
▲충북 도지사
▲16·17·18대 국회의원(부산 북·강서을)
▲한나라당 사무총장 및 최고위원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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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