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GH 그림자' 허태열 비서실장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2.26 15: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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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 상자 들고 청와대 입성…물음표 운명

[일요시사=사회팀] 허태열 전 의원이 비서실장으로 내정되자 정치권에서는 친정체제 구축이라는 우려 섞인 반응이 새어나왔다. 한편에서는 허 비서실장의 과거 행적을 비추어 권부 핵심 기구 수장으로는 부적합하다는 지적이 일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가장 존경한다는 허 비서실장. 그의 꿈은 2대에 걸쳐 '박통' 일가를 보필하는 것이다.



"국민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이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박근혜의 복심'으로 불리며 비서실 수장 자리를 꿰찬 그는 인선 직후부터 수많은 구설에 올랐다.
 
전방위 사퇴압박
출발부터 삐그덕

급기야 지난 20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통해 해명자료까지 발표했다. "저로 인해 국민들께 많은 심려를 끼쳐드린 점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사과만으로 끝나선 안 된다"는 각계의 강도 높은 비난 여론은 쉬이 잦아들지 않았다.

먼저 허 비서실장은 박사학위 논문 표절 혐의를 받고 있다. 허 비서실장은 지난 1999년 건국대 행정대학원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정책결정 참여자 간 네트워크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해 그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해당 논문은 연세대 행정학과 이종구 교수의 논문을 그대로 베낀 것이었다.

허 비서실장의 박사논문은 이 교수가 1996년 <한국행정학보>에 실은 '지방정책에 대한 이론모형의 개발과 실증적 적용'을 표절한 것이다.


허 비서실장 명의로 된 13쪽 분량의 원문 중 6쪽이 토씨하나 안 틀리고 이 교수의 논문과 일치했다. 통상 논문 표절 논란은 타 연구자의 연구 방법을 모방하거나 결과를 인용하는 등의 행위가 있을 때 불거진다. 때론 논문 안에서 단어와 문장이 비슷한 배열 구조를 가질 때도 표절 의혹은 제기된다.

그러나 허 비서실장의 논문은 ‘표절 수준을 넘어서 복사’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허 비서실장은 이 교수의 논문 2∼7쪽을 그대로 복사해 차용했다. 두 논문을 비교한 한 전문가는 “그간 많은 표절 사례를 봤지만 이처럼 똑같이 베낀 건 처음”이라며 이번 논란에 대해 우려의 뜻을 나타냈다.

'박 복심' 대표적 친박계 "친정체제 구축 완성"
정치권서 우려…각종 의혹 등 과거 행적 불거져

그러나 허 비서실장은 오히려 대담했다. 그는 해명자료에서 "논문작성 과정에 있었던 시간적 제약 등으로 세밀한 준비가 부족했다"면서 "저는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가 아니다. 제 나이가 올해로 68세인데 너그럽게 이해해 달라"고 주장했다.

허 비서실장이 논문을 작성한 시기는 1999년으로 알려져 있다. 허 비서실장은 박사 과정에 있던 1995년부터 충북도지사를 지냈고, 1999년 무렵에는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을 지냈다. 현실적으로 박사학위를 따기 위한 논문 작성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허 비서실장의 논문을 둘러싸고 '대필의혹'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그의 보좌진 중 한 명이 허 비서실장의 지시로 논문을 대필했다는 의혹이다.

관련 당사자들은 입을 다물고 있지만 허 비서실장은 "논문을 작성할 당시 이 교수를 만나 자문을 받았고, 원저자가 알고 있어 표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박사논문 표절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과거 논문 표절로 새누리당을 자진 탈당한 문대성 의원의 사례를 비춰봤을 때 '이중 잣대'라는 세간의 따가운 눈총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문 의원은 자신이 2008년 국민대에서 발표한 박사학위 논문이 2007년 김백수 박사의 논문을 표절한 정황이 드러나자 당선 후 9일을 버티다가 탈당했다. 사하갑을 지역구로 했던 친박계 현기환 전 의원은 문 의원이 잠적하자 그의 위치를 수소문해 자진 탈당을 설득하는 등 강한 압박을 행사했다. 그 결과 문 의원은 결국 새누리당 당적을 포기했다. 

하지만 이번 친박계의 대응은 달랐다. 사퇴 압박은커녕 허 비서실장 지키기에 급급한 형국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당 관계자는 "모두가 친박계를 두려워해 납작 엎드려 있다"며 "(사퇴에 대해) 말하고 싶어도 서로가 눈치 보느라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어 "부산·대구와 척을 지면 박근혜 대통령과의 교섭채널을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라며 "괜히 앞장섰다가 어찌될지 모른다"고 몸을 사렸다.

박근혜 인사는
아무도 못말려

박근혜 정부의 인사코드 중 하나인 부산. 허 비서실장의 정치적 고향도 부산이다. 경남에서 태어나 부산고등학교를 나온 그는 지난 16대 총선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이기고 부산 북·강서을에서 당선된 바 있다.

당시 선거 과정에서 있었던 지역감정 유도 발언은 특히 유명한데 허 비서실장은 공동 유세현장에서 "민주당은 전라도 사람이 키우고 전라도 사람이 사랑하고, 우리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부산시민이 키우고 부산시민이 사랑했다"는 말로 포문을 열었다.

이어 "중앙정부에서 부산사람을 찾을 수 없어 눈에 띄면 천연기념물이라고 부른다"며 "여러분 자녀들은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수완이 좋아도 (앞으로) 다 틀렸다. 앞으로 우리 아들·딸들이 남(호남인)의 눈치나 살피며 종살이하지 않을 것이라 누가 자신할 수 있겠냐"고 지역감정을 자극했다. 이처럼 지역감정을 바탕으로 철저히 노 전 대통령을 공략한 허 비서실장은 53.2%의 득표율로 금배지를 다는데 성공했다.

허 비서실장은 노 전 대통령이 지난 16대 대선에 출마했을 때도 "민주당은 노 후보 하나만 경상도고 나머지는 다 전라도다"라고 발언하는 등 지역감정 부추기기에 앞장섰다. 그러나 많은 부산시민은 허 비서실장을 지지했다. 허 비서실장은 부산에서 내리 3선에 성공했다.

이렇듯 능력을 인정받은 허 비서실장은 2008년 7월 열린 한나라당 제10차 전당대회에서 정몽준 의원 등과 함께 최고위원으로 선출됐다.

당시 이를 두고 많은 전문가들은 허 비서실장의 실질적인 당내 영향력보다는 친박계 출신이라는 이점이 작용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친박계 인사라는 꼬리표가 허 비서실장에게는 득이 된 셈.

박근혜 대통령과 허 비서실장의 공생은 2006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이 당 대표를 맡았던 때 허 비서실장은 시장과 도지사를 두루 경험한 행정 능력을 인정받아 당 사무총장에 선임됐다. 그리고 2008년, 당 최고위원으로 당선된 허 비서실장은 일약 친박계 실세로 급부상했다. 친이 세력에 맞서 친박 진영을 지키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는 것.


나아가 허 비서실장은 박 대통령의 두 차례 대선 도전을 곁에서 지키며, 깊은 신뢰를 구축했다.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 박 대통령도 지난 19대 총선을 앞두고서는 허 비서실장이 불출마를 선언하자 이를 나서서 만류하는 등 남다른 신임을 드러냈다.

허 비서실장은 지난 1974년부터 11년 동안 청와대에서 일했다. 당시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을 보좌했던 그는 육영수 여사 서거 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맡았던 박 대통령과 몇 차례 만남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남다른 인연 탓에 박 대통령은 허 비서실장에게 믿음을 보이고 있다. 이에 화답하듯 허 비서실장도 내정 발표 직후 "비서실장은 귀는 있지만 입은 없다"고 말해 '믿음을 지키겠다'는 사인을 보냈다. 입을 무겁게 하겠다는 것.

부친에 이어
2대째 충성

그러나 허 비서실장의 과거를 들추면 신중치 못한 발언들이 눈에 띈다. 가장 유명한 건 이른바 "섹스 프리" 발언이다.

허 비서실장은 지난 2010년 정희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이 주최한 한 경제정책 포럼에 참석해 "섹스 프리(Sex free)하고 카지노 프리(Casino free)한 금기 없는 특수지역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관광사업 육성을 위한 성매매 및 도박 규제 완화를 전제한 것으로 전체 맥락과 상관없이 '섹스 프리'라는 말은 큰 논란을 일으켰다. 국회의원으로서의 품위와 배치되는 어휘였기 때문.

비난이 잇따르자 허 비서실장은 "국민정서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외국의 유명 관광지인 라스베이거스 같은 자유로운 관광특구를 만들자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허 비서실장의 막말 논란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다.

허 비서실장은 1년 전인 2009년 한나라당 부산시당 국정보고대회에서 "좌파는 빨갱이"란 말로 논란이 됐다.

허 비서실장은 "요즘 좌파라고 하지만 빨갱이들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의 달콤한 추억을 잊지 못한다"며 "좌파는 80%의 섭섭한 사람들을 이용해 끊임없이 세력을 만들고 이명박 대통령을 흔들고 있는데 그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는 게 민주당"이란 연설을 했다. 그가 정치를 시작하며 늘 반복했던 '색깔론'의 연장선상에 있는 발언이었다.

이외에도 허 비서실장은 2008년 광복절에 일본으로 골프 여행을 떠났다가 구설에 올랐다. 국회 원구성 협상을 앞두고 돌연 일본 오사카로 출국한 것.

며칠 후 "일본에서 골프를 쳤다"는 사실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허 비서실장은 친일파란 오명을 뒤집어썼다. 이에 대해 허 비서실장은 "구마노라는 세계문화유산을 보러갔다"고 해명했으나 이를 글자 그대로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허 비서실장의 과거 발언은 이처럼 그다지 믿음직한 인상을 주진 못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그의 도덕성에 있다는 것이 몇몇 관계자의 증언이다. 소위 말하는 고위 공직자 비리 '그랜드슬램' 요건을 모두 충족시키고 있다는 것. 허 비서실장은 병역면제, 부동산투기, 공천헌금 의혹을 모두 받고 있다.

"과거에는 이중 한 가지만 있어도 도덕성에 치명적인 흠결이 갔는데 최근에는 이런 일이 워낙 비일비재하다보니 이에 대해서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다"고 한 인사청문위원은 귀띔했다. 허 비서실장이 불거진 의혹들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비서실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의혹 검증 작업이 녹록치 않다는 게 한 국회 관계자의 증언이다. 이를 모를 일 없는 허 비서실장도 "이번 비만 피하면…."이란 마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우선 허 비서실장은 신체장애로 병역면제를 받았다. 1976년 폐결핵으로 인한 왼손 검지·중지·약지 등 손가락 마비(수지강직)가 그 면제 사유였다. 하지만 허 비서실장은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이 생활하고 있다.

알려진 것과 달리 왼손의 이상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병무청은 지난  2004년 수지강직 증세가 병역면제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판단하고 이를 면제사유에서 제외했다. 이에 대해 허 비서실장은 "폐결핵 합병증으로 손가락 마비가 왔었는데 지금은 치료를 통해 호전됐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복사 수준 논문 표절…"섹스프리" 막말 구설수
부동산투기·병역·공천헌금 등 의혹 그랜드슬램
색깔론 신봉자…노무현 이긴 지역감정 '살아있네'

허 비서실장은 부동산투기 의혹도 함께 받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3억5000여만원 상당의 배우자 명의 땅이 매입 당시보다 시가가 몇 배 이상 뛰었기 때문이다.

허 비서실장의 부인은 1997년 8월 이 논을 샀는데 영농계약서를 허위로 작성했다는 전력이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당시 농지법은 농업인이 아닌 사람의 농지 소유를 금지하고 있었다. 이에 허 비서실장의 부인은 '농사경력 1년, 선진 영농 매진'이라는 영농 계획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실제로 땅을 산 뒤 농사를 짓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자연스레 땅투기 의혹이 불거지는 상황.

이에 대해 허 비서실장은 "처음에는 아내가 직접 농사를 짓다가 소작을 맡겼고, 국회의원이 된 뒤에는 한국농어촌공사에 토지 운영을 위탁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난 2005년 KBS와의 인터뷰에서 허 비서실장은 이 같은 의혹이 불거지자 "여자가 팔 걷어붙이고 농사짓는 것 봤냐"면서 "겸사겸사 농사짓고 땅값이 오르면 좋은 거 아니냐"고 말했다. 사실상 혐의를 시인한 셈.

아울러 허 비서실장의 동생 허모씨는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공천 대가로 지인으로부터 5억원을 받아 챙겨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을 고발한 선관위는 허씨의 형인 허 비서실장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의뢰를 요청했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허 비서실장은 "동생과는 몇 년간 의절하다시피 살았다"면서 "총선을 앞두고 동생과 만난 건 사실이지만 감이 안 좋아 심하게 야단치고 나왔다"고 진술했다. 허 비서실장은 공천헌금 수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부인은 땅투기
동생은 헌금수수

청와대 비서실은 정부 관료 인선에 직접 관여할 수 있는 요충지로 인사청탁과 헌금이 가장 많이 오가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공천헌금 수수 무혐의 처분을 받은 허 비서실장이 앞으로 얼마나 깨끗한 비서실을 운영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허태열 비서실장은?

▲경남 출생
▲부산고등학교 졸업
▲성균관대 법대 졸업
▲건국대 행정학박사
▲제8회 행정고시 합격
▲의정부시장
▲부천시장
▲충북 도지사
▲16·17·18대 국회의원(부산 북·강서을)
▲한나라당 사무총장 및 최고위원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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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