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검증대 오른 정홍원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2.22 20:3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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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고 고른 GH 회심의 카드 '먹힐까'

[일요시사=사회팀] 든든한 선발투수라고 믿었던 '김용준'이 몸도 풀기 전에 마운드서 내려오자 박근혜 당선자는 깊은 고심에 빠졌다. 새 국무총리 후보자로 누가 지명될 것인지 모두의 촉각이 곤두섰던 상황. 결국 박 당선자는 또 다시 '법조인' 카드를 꺼냈다. 바로 정홍원 후보자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장고 끝에 고른 '회심의 카드'가 먹힐까.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 요청안이 지난 12일 국회에 제출됐다.

박 당선자는 인사청문 요청 사유서에서 "정홍원 후보자는 확고한 국가관을 갖고 법과 원칙을 수호해 온 인물이며 법률구조활동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 헌신해 온 점에서 새 정부가 지향하는 '국민행복시대'를 구현할 적임자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험난한 가시밭길
인사청문회 예정

정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오는 20∼21일께로 예정된 가운데 검증의 예리한 칼날은 벌써부터 정 후보자의 주변을 찌르고 있다.

정 후보자와 육군본부에서 만나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지인은 언론에 밝힌 기고문에서 "정 후보자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사범학교를 거쳐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는 등 과거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또 "주경야독으로 야간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소위 명문대 인사들 틈에서 성실한 노력으로 성공을 일궈냈다"고 정 후보자를 소개했다. 박 당선자가 밝힌 새 정부를 이끌어갈 기준인 '보통 사람'에 부합하는 인물이란 것이다.  

그러나 정 후보자는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보통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보통 후보자'에 가깝다. 청문회를 앞두고 위장전입과 아들 병역면제 의혹 등이 줄줄이 터지면서 순탄치 않은 청문회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최근 김용준 전 후보자가 검증의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후보직을 자진사퇴한 데 이어 얼마 전에는 '흡사마'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스스로 멍에를 벗었다. 고르고 고른 카드들이 검증만 하면 온갖 특혜, 위법, 부정 의혹 등이 불거지니 이번 총리 후보자 지명에는 인수위가 더욱 더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무조건 청문회는 일단 통과해야 한다는 막중한 '미션'이 정 후보자에게 주어진 것.

'주경야독' 야간대 졸업하고 사법시험 합격
장영자 등 대형사건 해결한 ‘특별수사통’

정 후보자는 지난해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 공직후보자추천위원장으로 활약하며 정계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공천 당시 당 내부에서는 온갖 잡음들이 터져 나지만 결국 새누리당은 의회 과반을 차지했다. '역사는 결과가 말한다'는 말처럼 정 후보자는 새누리당 총선 승리의 공신 중 한 명으로 등극했다.

경남 하동 출신인 정 후보자는 사범학교 출신 검사라는 다소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1963년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인왕국민학교(현 인왕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했다. 이듬해에는 성균관대 법정대학에 야간대학 과정으로 입학했다. 그 뒤 정 후보자는 낮에는 교사, 밤에는 대학생으로 생활했다. 1965년 군 입대 전까지 인왕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정 후보자는 1967년 만기전역 뒤에도 2년 넘게 교직생활을 계속했다. 

대학을 다니며 법조인의 꿈을 키운 정 후보자는 교사를 그만두고 사법시험 준비에 매진한다. 그리고 1972년 늦깎이로 사법시험 14회에 합격한다. 검사생활 30년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서울지검 영등포지청 검사를 시작으로 정 후보자는 대전지검 차장검사, 부산지검 울산지청 지청장, 광주고검 차장검사 등을 거쳤다. 그리고 1999년 대검찰청에서 감찰부장 자리에 올랐다. 이후 광주지검 검사장, 부산지검 검사장, 법무연수원 원장 등을 역임하며 요직들은 두루 거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검사 시절 맡았던 유명 사건으로는 '큰손' 장영자 사기사건, '대도' 조세형 탈주사건, 워커힐 카지노 외화 밀반출 사건 등이 있다. 주로 굵직한 사건들을 손봤기 때문에 '특별수사통'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지난 1991년 대검찰청 중수부 3과장 시절에는 국내 최초로 컴퓨터 해커를 적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서울지검 남부지청장 시절에는 이른바 '민원인 후견인' 제도를 도입했다. 대검 감찰부장 재직 시 내린 '검찰 낮술 금지령'은 유명하다.

그는 대체적으로 깐깐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참여정부 때 정 후보자와 함께 일한 검찰 관계자는 정 후보자에 대해 "강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실제 삼성 비자금사건이 터졌을 당시 정 후보자는 특검 후보로 거론되는 등 주위의 신망도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냈는데 이때 도입한 매니페스토 선거운동은 현재까지 그 의의가 이어져 오고 있다. 지난 2004년 법무연수원장을 끝으로 검찰에서 용퇴한 정 후보자는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맡아 법률 취약계층 보호에도 힘써온 것으로 알려졌다.

교편접고 사시
검사생활 30년

정 후보자가 정치권 전면에 등장한 건 2012년이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개혁을 부르짖은 새누리당은 정 후보자를 공직후보자추천위원장으로 선임했다. 당시 정 후보자는 공천 심사를 통해 문제가 됐던 현역 의원들을 줄줄이 낙마시켰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의원들이 반발해 탈당하는 등 진통을 겪었지만 결국 새누리당은 총선에서 승리하며 대선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박 당선자 입장에서는 정 후보자에게 큰 빚을 진 셈이다.

총선 직후 대선을 준비했던 당 내부에서는 정 후보자가 언젠가 다시 정계로 복귀할 것이라는 관측이이 나돌았다. 대선 캠프 합류설도 있었다. 하지만 정 후보자는 공천위원장 임기가 끝난 후 곧바로 정치권을 떠났다. 또한 정치적 언행도 자제하는 등 처신을 깔끔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를 계기로 박 당선자의 신뢰가 깊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비록 정 후보자가 대선 캠프에 합류하지는 않았지만 박근혜 정부에서 무언가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소문들은 끊이지 않았다. 함께 일했던 사람을 선호하는 박 당선자의 인선 스타일과도 부합했다. 결국 '믿을맨'이었던 김 후보자가 자진 사퇴하자 박 당선자는 고심 끝에 정 후보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정 후보자는 총리직 제안을 받자 동시에 인사 청문회를 준비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정 후보자는 "국회 청문회에서 신상털기 식의 검증이 없지는 않다"며 우회적으로 인사청문위원들과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펼쳤다. 박 당선자도 정 후보자는 '보통 사람'이라며 '정 총리' 인선을 위한 지원사격에 나섰다. 

인수위는 김 후보자의 중도하차 이후 정 후보자에 대한 사전검증작업에 충실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재산증식 의혹, 위장전입, 아들 병역문제 등이 검증 과제로 급부상했다.

먼저 재산증식 부분. 정 후보자가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에 있던 지난 2011년, 정부에 신고한 재산은 19억8180여만원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10년 17억1499만원이던 재산신고액은 다음해 1억7200여만원 증가했다.


문제는 예금이었다. 항목별로 본 재산신고액에서 정 후보자 부부는 예금 자산이 가장 많았는데 2010년 6억9477만원을 예치했던 정 후보자 부부는 2011년 8억8619만원을 맡겨둔 것으로 조사됐다. 예금 2억여원이 1년새 증가한 것.



뿐만 아니다. 1995년 정 후보자가 공개한 재산 내역을 보면 저축 예금은 5725만원이다. 이 금액은 2004년 5월, 그가 검찰을 떠날 때까지 큰 변동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정 후보자가 변호사를 시작한 뒤 공직으로 돌아오면서 공개한 예금은 3억100여만원. 넉 달 새 2억여 가량 증가한 것이다.

총 재산으로 보면 정 후보자가 첫 번째 재산을 공개한 1995년, 4억9352만원이었던 재산신고액은 2011년까지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와 관련 정 후보자는 "변호사 보수로 월 평균 3000만원 정도를 받았는데 업계 상황을 고려하면 과하지 않다"고 해명을 내놨다. 그러나 이를 두고 주변에서는 전관예우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청문회의 주요 쟁점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 후보자의 부인인 최옥자씨가 상속받은 김해 진영읍 설창리 일대의 임야는 2010년 기준 증여됐는데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증여세 탈루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채권자와 낙찰자 모두 최씨의 친인척이었기 때문. 이 땅은 지난 2003년 채무로 인해 강제 경매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정 후보자는 "사실상 상속을 포기했던 땅"이라며 "처가 가족들에게 모든 처분을 맡겨놓았던 상태"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김해의 땅 문제가 쟁점화 될 가능성은 아직 남아있다. 정 후보자가 김해시 삼정동 일대 대지(466.30㎡)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산액 1억9071만원으로 신고 됐던 이 땅은 정부가 지정한 투기우려지역으로 분류됐다가 1992년 조치가 해제된 땅이다. 이 땅을 1995년 매입한 정 후보자는 "퇴임 후 살게 될 전원주택을 짓기 위해서 땅을 구입했다"고 배경을 밝혔다.


그러나 <경향신문>에 따르면 이 일대는 '활천2지구 토지구획 정리사업 계획'에 따라 구획 정리가 끝난 땅, 다시 말해 개발이 추진되고 있던 땅이었다. '전원주택'의 용도와는 맞지 않는다는 설명. 즉 부동산 투기를 목적으로 이 땅을 구입하지 않았겠느냐는 의혹이다. 실제 이 땅의 시세는 4억원에 이른다는 지역 부동산 업자의 설명도 있었다. 그러나 정 후보자는 "개발정보를 사전에 알고 취득한 것이 아니다"라는 해명을 내놓고 있어 향후 공방이 예상된다.

재산증식 의문
화끈 검증 예고

정 후보자 본인이 재빨리 인정한 부분도 있다. 바로 '위장전입'이다. 정 후보자는 부산지검에 근무하던 1988년 주택청약을 위해 주소지를 서울에 남겨뒀다. 고위공직자 필수 검증 코스인 '위장전입'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

정 후보자가 수도권 주택 청약을 유지하기 위해 위장전입한 곳은 바로 서울 구로구 독산동의 한 연립주택. 정 후보자 누나가 살고 있는 곳이다. 정 후보자는 당시 서울지역 청약저축으로 국민주택 청약 1순위였으나 근무지인 부산으로 거주지를 옮길 경우 1순위 자격을 상실할 수 있었다. 이에 위장전입을 선택해 본인만 서울로 거주지를 유지한 뒤 부인과 아들을 부산으로 내려 보낸 것.

이에 대해 정 후보자 측 국무총리실 인사청문회 준비단은 "(위장전입은) 정 후보자가 무주택자로서 주택청약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위장전입의 목적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실제 거주하지 않으면서 고의로 주민등록지를 옮긴 행위는 그간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에서 늘 심각한 도덕성 결함과 결부됐던 만큼 이번 인사청문회에서도 이 위장전입 부분이 조금 더 쟁점화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외아들 정우준 검사의 병역문제도 검증 과제로 남아 있다. 정 검사는 서울대 출신의 사법시험 48회 합격자로 현재 창원지검 통영지청에 근무 중이다. 정 검사는 통영 초등생 살해사건의 담당 검사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군대는 다녀오지 않았다.

정 검사는 1997년 4월15일 신체등위 1급으로 현역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대학원 재학을 이유로 2001년까지 입영을 연기했다. 그리고 2001년 11월 8일 수핵탈출증(디스크)으로 제2국민역(5급)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위장전입·병역·불법투기 의혹
'전관예우' 재산증식 과정도 의문

이에 대해 정 후보자 측은 "정 검사가 석사 과정을 밟을 때 각종 장비를 다루는 실험에 참여했다가 허리에 디스크가 발생했다"면서 "당시 여름 휴가철을 기점으로 통증이 본격화돼 강남의 한 척추전문병원에서 MRI 촬영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으나 후유증을 고려해 1년 넘게 물리치료 등을 받았고, 2001년 10월30일 강남성모병원에서 진단서를 발급받았다"고 해명했다.

당시 정 검사가 국방부에 제출한 강남성모병원 진단서에는 "요통 및 우하지(오른쪽 다리) 통증에 따른 운동 제한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이 적혀있다.

그러나 정 검사가 병역 면제 판정을 받은 후 2006년 사법고시에 합격하기까지 장시간에 걸쳐 책상에 앉아 고시 공부를 했다는 정황은 추가 해명을 필요로 하고 있다. 특히 정 검사의 고시 준비생 시절 디스크 치료를 병행한 것에 대한 의료기록 또한 공개해야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 후보자 측이 공개한 자료에는 사법고시 합격 전후인 2005년 이후의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 검사가 병역 면제 판정을 받은 후 2006년 사법고시에 합격하기까지 장시간에 걸쳐 책상에 앉아 고시준비를 했다는 설명은 추가 해명을 필요로 하고 있다. 특히 정 검사의 고시 준비생 시절 디스크 치료를 병행한 것에 대한 의료기록 또한 공개해야한다는 의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 후보자 측이 공개한 자료에는 사법고시 합격 전후인 2005년 이후의 자료는 없기 때문이다.

꿈많은 위장전입
아들 군면제 도마

'털면 결국 다 나오게 돼있다'는 말처럼 정 후보자와 관련된 검증 의혹은 계속 진행 중이다. 지난 15일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와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정 후보자는 2000년 초 자신의 가족 명의로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 주식 468주를 사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정 후보자는 하이닉스반도체의 사외이사를 지냈는데 그 전신인 현대전자 주식을 매수한 시점이 마침 '현대전자 주가조작'이 불거졌을 때라는 설명이다. 즉 내부 정보를 알고 미리 주식투자를 해 시세 차익을 노리지 않았겠느냐는 의혹인 것. 정 후보자 일가가 활발하게 주식을 파고 산 시점은 정 검사의 디스크 발병 시점과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정홍원 후보자는?

▲1972년 제14회 사법시험 합격
▲1995년 대전지방검찰청 차장검사
▲1996년 부산지방검찰청 울산지청 지청장
▲1999년 광주고등검찰청 차장검사
▲2000년 대검찰청 감찰부장
▲2002년 광주지방검찰청 검사장
▲2003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2004년 법무연수원 원장
▲2004년 법무법인로고스 대표변호사
▲2004∼2006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2008∼2011년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
▲2012년 새누리당 공직후보자추천위원장
▲전 하이닉스반도체 사외이사
▲현 법무법인로고스 상임고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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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미영 팀장’ 동반 탈옥 비쿠탄 마약왕 풀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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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김미영 팀장’으로 불린 보이스피싱 총책 박모씨와 함께 필리핀 구치소서 탈옥한 조직원들의 실체가 드러났다.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서 처음 만난 이들은 보이스피싱과 마약 유통을 결합한 신종 범죄조직을 꾸렸다. ‘비쿠탄 마약왕’으로 알려진 송모씨는 2022년 수원서 필로폰을 소지한 채 붙잡힌 김모씨의 상선이라는 정황이 드러났다. 지난 8일 본지가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를 최초 보도한 이후, 외교부 측은 루카스 베르사민 필리핀 대통령비서실장에게 “탈옥한 이들에 대한 조속한 검거와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해달라”는 공적 서한을 전달했다. 현재 박씨에 대한 검거 작전은 필리핀 이민청 도피사범추적팀과 필리핀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 경찰 부서)가 협력하고 있다. 새벽 탈출 어디로 갔나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약 2년 전 비쿠탄 교도소에 수감된 이들은 지난해 11월 필리핀 나가시(市) 카마린스 수르 주 구치소로 이감됐다. 3명 모두 불법 고용과 인신매매 혐의 등으로 기소되면서다. 복수의 제보자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1일에서 2일 새벽 사이 미리 준비한 오토바이와 차량을 이용해 탈옥했다. 필리핀 교정 당국은 지난 2일, 인원 점검 때 박씨 일당이 탈옥한 것을 뒤늦게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교도소에 CCTV가 설치돼있지 않아 탈옥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일부 훼손된 철조망을 찾아냈다고 한국 정부에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카마린스 수르 구치소에 대해 현지 제보자는 “담장이 낮고, 보초도 허술해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기에 탈옥이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라며 “그들은 비쿠탄 교도소보다 허술하다는 점을 노리고 변호사를 통해 가짜 범죄를 만들어 이감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탈옥한 일당이 도피하는 동안에도 보이스피싱과 마약 유통을 결합한 신종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씨는 2012년부터 필리핀 현지에 콜센터를 차린 보이스피싱 1세대다. ‘김미영 팀장’이라고 소개하며 전화나 문자메시지로 금융기관을 사칭해 개인정보를 빼냈다. 박씨가 보이스피싱으로 가로챈 금액만 4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08년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서 근무하다가 수뢰 혐의로 해임된 경찰 출신으로 드러나면서 더욱 충격을 안겼다. 경찰 근무 당시 접했던 범죄 수법을 토대로 ‘김미영 팀장’ 사기 수법을 고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10년간 보이스피싱 조직을 운영해 온 박씨는 2021년 10월6일 마닐라 인근서 붙잡혔다. 당시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박씨가 마닐라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이들에 맞서 중무장했다. 붙잡힌 박씨는 “필리핀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국내 송환을 피하고 상대적으로 보안이 취약한 필리핀 교도소에 수감되기 위한 노림수였다. 비쿠탄 교도소 출신 제보자는 <일요시사>와 통화서 “(박씨는)비쿠탄 내에서 식사를 판매하는 아저씨로 통했다”며 “박씨가 송씨, 신씨와 어울리면서부터 교도소 내에 마트를 인수해 장사할 정도로 돈을 많이 벌었다”고 증언했다. 보이스피싱과 결합한 마약 유통 대포폰으로 텔레그램 마약방 개설 비쿠탄 교도소는 식사가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죄수들이 직접 돈을 벌거나 영치금을 통해 생계를 이어간다. 죄수들은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조직을 꾸려 보이스피싱, 대포폰, 마약 유통 사업을 할 수밖에 없다. 최근 박씨와 함께 탈옥한 송씨, 신씨가 비쿠탄 교도소 내에서 동업을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박씨와 함께 탈옥한 송씨와 신씨에 대한 새로운 증언들도 쏟아졌다. 제보자에 따르면, 신씨는 타인 명의로 개통한 유심칩을 판매하는 역할을 맡았다. 신씨는 불법 유심칩 1개당 한국 돈 약 25만원을 받고 팔았다. 신씨에게 산 대포 유심칩으로 신분을 철저히 숨길 수 있게 된 송씨는 텔레그램으로 마약 전달책을 모집하고 유통하는 이른바 ‘마약방’을 개설했다. 평소 신씨가 재테크 사기, 주식 및 코인 리딩방 등을 운영해오면서 모은 수천명의 회원들은 송씨가 운영하는 마약방으로 초대됐다고 한다. 송씨는 채팅방서 ‘두목’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했다. 또 박씨는 신씨의 도움을 받아 수억원가량을 비트코인으로 환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비쿠탄 교도소 출신 제보자는 “마약과 거리가 멀었던 박씨가 송씨와 안면을 트면서 보이스피싱보다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을 함께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송씨가 필리핀 파사이 등에 있는 마약 공급책을 통해 한 달에 5kg 정도의 필로폰 유통을 지시했다”며 “송씨는 비쿠탄서 만난 중국 마피아로부터 싸게 구입한 필로폰 등을 드라퍼(전달책)에게 전달해 한국으로 수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송씨가 드라퍼에게 준 배달료는 한화 약 1000만원가량으로 전해진다. “한국 싫어” 가짜 범죄 다수의 전달책이 송씨의 필로폰 배달을 시도한 정황은 곳곳서 드러났다. 송씨가 고용한 운반책은 2022년 1월25일, 수원의 한 모텔서 필로폰을 소지하다가 붙잡힌 김모씨였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당시 수원중부경찰서는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30대 남성 김씨를 긴급체포했다. 김씨는 이날 오전 8시7분께 장안구 영화동의 한 모텔서 필로폰을 소지했다. 앞서 ‘한 남성이 모텔서 마약을 소지하고 있다’는 신고를 접수받은 경찰은 현장으로 출동했다. 경찰은 모텔 안에서 필로폰이 포장된 비닐백 30개를 발견하고 이를 압수 조치했다. 또 김씨를 상대로 진행한 마약 간이 검사서 양성반응을 확인했다. 경찰조사에서 김씨는 투약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텔레그램으로 필로폰 거래를 지시한 ‘orjinal8282’가 상선이라는 사실을 숨기려고 거짓으로 진술했다. 경찰에 따르면, orjinal8282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자가 김씨에게 “수원으로 가서 모텔을 잡고 기다려라”며 “사탕(엑스터시) 50, 어름(필로폰) 50 좀 있다가 드랍해서 갖고 있어”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송씨와 비쿠탄 교도소서 함께 지냈던 제보자는 “orjinal8282는 송씨의 아이디”라며 “김씨가 붙잡혔다는 소식을 들었던 마약방 회원들은 송씨가 김씨의 고용주(상선)이었다고 적었다”며 텔레그램 채팅방 사진을 전했다. 송씨가 넘긴 마약을 유통하려고 한 사람은 또 있었다. 지난해 1월23일, 충남 서산서 아내를 살해하고 저수지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필리핀으로 도주한 강주천이다. 그는 한국 경찰의 공조 요청으로 필리핀서 검거됐으나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강주천은 지난해 6월 비쿠탄 수용소서 탈옥했다가 8일 만에 체포됐다. 탈옥 후 체포 당시 1kg의 필로폰을 소지하고 있었다. 강주천은 도피 자금을 벌기 위해 송씨의 지시를 받아 필로폰 배달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밥 먹듯… 탈옥 시도 비쿠탄 관계자들은 이른바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이 큰돈을 벌자, 박씨와 송씨 일당도 마약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봤다. 지난해 중순 박왕열은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서 “이젠 나보다 송씨가 마약왕에 가깝다”며 “한국으로 보내는 양이 내가 보낸 것보다 많다”고 말했다. 앞서 박왕열은 2016년 10월 필리핀 한 사탕수수밭서 한국인 3명을 총으로 쏴 살해한 사건의 범인이다. 이 사건은 드라마 <카지노>를 통해 유명해졌다. 그는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에 구금됐다가 2017년 3월 탈옥해 두 달 만에 잡혔다. 2019년 10월에는 재판을 받고 구치소로 돌아가던 중 재차 도주해 2020년 10월 다시 검거됐다. 박왕열은 이 기간에 마약왕 전세계로 거듭났다. 국내 마약 유통·판매 총책이었던 ‘바티칸 킹덤’ 이모씨에게 수억 원대의 마약을 공급했다. 이는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 등에게 팔렸다. 박왕열의 옥중 마약 유통 의혹은 이미 경찰 수사를 통해 사실로 드러났다. 지난 4월12일, 경남경찰청 광역수사대는 A씨 등 3명을 국내 중간 판매책에게 마약류를 판매한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유통책 중 한 명은 2022년 12월 NBP서 박왕열을 만나 국내로 밀반입해 보관 중인 마약류를 판매키로 공모하고, 지난해 1월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이용해 특정한 장소에 마약을 놓고 사라지는 이른바 ‘던지기 수법’으로 엑스터시 100정, 필로폰 10g을 국내 중간 판매책들에게 600만원(도매가)을 받고 공급했다. 그동안 경찰은 박씨 일당 등 한국인 범죄자의 강제송환을 추진했으나 지지부진한 상태다. 박씨 일당은 필리핀서 죄를 짓고 형을 받으면 국내 송환이 지연된다는 점을 노렸기 때문이다. 경찰은 현재 박씨에게 적용된 혐의 중 인신매매는 허위로 만들어낸 범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수원 모텔서 잡힌 전달책 상선” 박왕열 “이젠 송씨가 마약왕” 박씨가 쓴 꼼수는 이미 필리핀 도피 사범들 사이에 만연하다. 현재 필리핀 도피 사범은 5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 송환을 거부하는 범죄자들은 필리핀 현지 변호사를 통해 ‘가짜 범죄’를 만든다. 비용은 한국 돈으로 많게는 3000만원서 적게는 100만원 정도가 든다. 제보자에 따르면 “가짜 케이스를 만드는 건 흔한 일”이라며 “강간, 사기, 폭행 정도의 가짜 범죄를 만들어 재판에 출석하면서 국내 송환을 계속 미루는 것”이라고 전했다. 박씨가 국내로 송환될 경우, 최소 징역 15년서 25년 이상 집행될 수 있다. 지난해 6월 재판부는 2012년 3월부터 2016년 6월까지 중국과 필리핀서 보이스피싱 총책으로 활동하며 피해자 435명에게 26억여원을 가로챈 B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송씨의 경우, 마약을 수출입·제조·매매하거나 매매를 알선 또는 그럴 목적으로 소지·소유한 것에 대한 처벌이 가해진다. 해당 혐의가 인정되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며, 영리 목적 또는 상습적이라는 사실이 입증될 경우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까지 내려질 수 있다. 필리핀 당국과 한국 정부도 탈옥범들을 추적 중인 가운데, 현지 법 적용을 고려하면 다시 붙잡히더라도 국내 송환이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필리핀서 저지른 다른 범죄의 조사와 재판이 끝나지 않아 한국으로 송환되려면 최소 6년이 걸린다. 특히, 탈옥 행위로 현지 법을 중대하게 위반한 만큼 현지서 징역형을 선고받을 가능성도 크다. 송씨와 박씨에 관한 국내 송환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볼 수 있다. 필리핀서 장기간 수용 생활을 하는 한국인을 국내로 이송하면 좋으나, 현재 수용자 이송 조약은 체결돼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법무부는 “송환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인물의 이송 요청을 지속하고 있다”며 “필리핀 이민국과 논의를 이어가는 중”이라고 밝혔다. 법무부의 이 같은 입장은 예전과 다르지 않다. 시간이 가는 동안 이송 조약조차 체결하지 못한 점은 한국 정부의 소극 행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법무부가 보이스피싱 혐의가 아닌 마약 유통 혐의로 송환을 적극적으로 요청한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필리핀 정부가 ‘재량’을 근거로 거절할 가능성도 있으나 법무부는 이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머나먼 국내 송환 이상화 주필리핀대사는 지난 14일 오전과 오후에 각각 필리핀 외교부 차관과 법무부 차관을 만나 박씨에 대한 조속한 검거와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요구했다. 한편, 박씨 일당 외에 인질강도 혐의로 수배돼있던 한 남성도 최근 현지 교도소를 빠져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필리핀 현지 경찰이 쫓고 있는 한국 국적의 수배범만 박씨 일당을 포함해 6명 이상인 것으로 파악됐다. 수배범들은 대부분 사기 혐의로 수배가 걸려 있었다. 이 중에는 10건 이상 수배가 걸린 수배범들도 있었다. 그만큼 교정시설 보안이 취약하다는 뜻이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