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서방파 대굴욕 전말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2.18 14:2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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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두목님 개망신…김태촌 뜨니 '동네북'

[일요시사=사회팀] 서울 청담동 유명 고깃집 사장이 서울 도심 한 가운데서 납치됐다. 고깃집 사장의 정체는 유명 조폭이었다. 연예계는 물론 정·재계에도 발을 뻗친 이 거물을 누가 납치한 것일까. 그리고 그들의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



80년대 전국구 주먹시대를 열었던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씨가 지난달 5일 세상을 떠났다. 김씨를 기억하는 이들은 서울 아산병원에 마련된 김씨의 빈소로 시시각각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범서방파 조직원 나모(48)씨도 있었다. 나씨는 김씨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인물로 유족들과 함께 김씨의 장례식을 도맡아 옛 보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킨 심복 중의 심복이다.

김태촌 사후
최측근 납치

서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나씨는 범서방파와 경쟁 관계에 있는 국제PJ파 조직원 조모(54)씨 등에게 납치·폭행을 당했다. 나씨의 납치 사건은 지난 3일 벌어졌다. 범서방파 조직원으로 전해진 익명의 제보자 A씨에 따르면 이날 가해자 조씨는 평소 친분이 있던 나씨에게 전화를 걸어 "할 말이 있으니 잠깐 만나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와 나씨는 과거 금전거래를 하는 등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두 사람은 서울 강남구 청담사거리 인근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청담사거리에는 나씨가 운영하는 유명 고깃집이 있었다. 특별한 의심 없이 조씨를 만나러 간 나씨는 이날 오후 9시께 차를 몰고 나타난 조씨를 만났다. 서로 인사를 나눈 뒤 조씨는 나씨에게 "나와 이야기 좀 하자"며 나씨의 승차를 권했고, 차에 탄 나씨는 조씨에게 납치당했다.

조씨의 차량은 경기도 용인 기흥 방면으로 향했다. 이동 과정에서 조씨는 조폭 5명과 함께 나씨를 폭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함께 있던 조폭 5명이 국제PJ파 소속인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나씨를 납치한 차량은 서울을 떠난 지 약 5시간 만인 다음 날 오전 1시50분께 기흥 휴게소에 도착했다. 나씨는 그곳에서 조씨 등에게 "소변이 마려우니 내려달라"고 말한 뒤 차량 밖으로 급히 빠져나왔다. 휴게실 식당에 숨은 나씨는 곧장 경찰에 납치·폭행사실을 신고했고, 신고 사실을 눈치 챈 조씨 일당은 즉각 사건 현장에서 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3대 패밀리 주축 악명 높은 전국구 조직
사실상 1인자 국제PJ파에 납치·폭행

사건 관련 진술에서 A씨는 "조씨가 나씨에게 '곧 큰 도박판이 열리니 2억원을 준비하라'고 전했다"면서 "국제PJ파는 오래 전부터 범서방파와 경쟁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기회를 엿보다가 이번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씨는 경찰 조사에서 개인적 채무 관계로 일어난 말다툼이 커진 사건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 간의 세력 다툼을 말한 A씨와 개인 원한을 말한 나씨의 진술이 상호 엇갈리는 상황. 현재 경찰은 금전 관계로 인한 납치 가능성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끊임없이 조폭 간 세력 다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나씨와 조씨 모두 오래 전부터 거대 조직의 실력자로 지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초 A씨는 이번 사건을 전하며 "나씨가 최근 범서방파 새 두목으로 추대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편에선 "나씨가 새 두목으로 추대돼 조직을 이끌어왔다는 소문은 와전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나씨와 고인인 김씨가 워낙 친밀했다 보니 "나씨가 조직을 다시 추스르지 않겠느냐"는 소문이 확대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씨 주변을 수년간 취재해 온 한 기자는 "나씨가 범서방파에서 행동대장을 맡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복수 언론에 이미 확인된 내용으로 나씨는 김씨가 전성기를 맞았던 1980년대부터 활동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1986년 7월 인천에서 벌어진 뉴송도호텔 사건에 개입한 김씨는 나씨에게 사주해 뉴송도호텔 H모 사장을 습격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 뉴송도호텔 사건은 서울고검 P모 부장검사의 이권개입 파문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검사와 조폭간의 검은 커넥션이 드러났고, 이는 국민적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P검사는 결국 옷을 벗었고 폭행을 사주한 김씨는 수감됐다. 특히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김씨는 수감 이후 많은 수하를 잃었는데 약해진 범서방파의 위세에도 불구하고 나씨는 계속 김씨 곁을 지켰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가 수감과 출소를 반복하던 90년대. 범서방파 출신 조직원들은 차례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들 대부분은 연예매니지먼트, 외식 사업 등에서 성공을 거뒀다. 사업가로 변신해 큰 성공을 거둔 나씨 역시 고깃집 사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항간에서는 김씨가 출소 후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자 몇몇 후배들이 김씨에게 예우 차원에서 돈봉투를 건넸다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김씨 주변에서는 "김씨가 잘 모르는 돈을 받았다가 또다시 사정기관의 표적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 것 같다"는 증언도 들렸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김씨는 돈봉투를 거의 받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김씨 곁을 꾸준히 지킨 나씨는 김씨 투병 중에도 남몰래 수천만원의 치료비를 수차례 건넸던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의심이 많았던 김씨지만 그런 김씨도 나씨에게만큼은 마음을 터놨던 것으로 보였다.

은퇴한 실력자
최대조직 보스

김씨가 대외적으로는 손을 씻고 신앙 활동에 전념한 사이 나씨는 사업을 더욱 확장시켰다. 특히 나씨가 1999년부터 운영했던 고깃집은 명사들의 단골집으로 더욱 유명세를 치렀다. 2000년대 초반 연예인들이 즐겨 찾는 고깃집으로 수차례 전파를 탔던 P고깃집은 분점을 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 집의 단골 명사로 알려진 배우는 한류스타 B씨, 남자 배우 S씨, P씨, K씨, L씨, 여자배우 L씨, S씨, C씨, H씨 등이며, 가수 L씨와 J씨, 개그맨 L씨와 Y씨도 이 고깃집에 자주 나타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깃집 사장인 나씨의 휴대폰에는 4000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의 전화번호가 저장돼 있다. 주로 연예계 종사자들이 많은데 웬만한 방송 드라마 종영 파티도 이 고깃집에서 열릴 정도로 연예계와 나씨의 친분은 두텁다.

특히 가수 K씨는 나씨의 고깃집 운영이 어려워지자 수천만원을 자발적으로 후원하는 등 나씨와 각별한 우정을 과시해 눈길을 끌었었다. 한때는 의형제라고 불릴 정도로 붙어 다니며, K씨 측근들과 자주 술자리를 갖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2004년 나씨는 수입 소고기를 한우로 둔갑시켜 팔다가 경찰에 탈세 혐의로 체포됐는데 이때 탄원서를 제출한 것도 바로 K씨다. K씨 외에도 L씨와 Y씨 등이 "나씨는 예술을 이해할 줄 아는 분"이라며 법원의 선처를 호소했다. 나씨는 수입 갈빗살과 안창살을 한우로 속여 팔아 모두 42억여원의 부당이득을 챙기고, 10억여원에 이르는 세금을 포탈한 혐의를 받았다.

나씨는 지난 2007년 H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에도 연루됐다. 당시 행동책이었던 범서방파 출신 오모씨가 그룹 측 관계자와 나씨가 운영하는 고깃집에서 만났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물론 나씨가 직접 폭행에 관여한 건 아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나씨의 마당발 인맥은 다시 한 번 주목받게 됐다. 나씨가 지금도 조폭계 거물로 분류되는 건 이 같은 넓은 인맥에 기인한다는 것이 사정기관의 중론이다.

이와 관련 한 경찰 관계자는 "나씨가 과거 '3대 패밀리'로 불렸던 범서방파 출신인 건 사실이나 실질적인 역할은 없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나씨가) 아마도 사업이 잘 풀리면서 오래전 현역을 은퇴한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실제 경찰은 현재 범서방파 조직원을 11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50대에 가깝거나 이미 50대를 넘긴 원로급으로 일선에서 조직 활동을 벌이기에는 다소 나이가 많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나씨의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것 때문에 주변에서는 늘 나씨를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나씨가 한우를 공급받았던 호남 일대의 축산 농장도 조폭들의 은신처로 의심받았을 정도다.

특히 과거 범서방파와 사이가 좋지 못했던 조폭들은 돈벌이가 여의치 않을 때면 과거 조직원들을 찾아가 '반강제적인 도움'을 요청했는데 주로 성공한 사업가들이 그 타깃이 됐다. 그리고 이들 사업가 중 일부는 현역들의 꾀임에 넘어가 다시 조폭 사업에 발을 들이는데 나씨가 지금도 이들 조폭의 이권다툼에 개입됐는지 여부는 현재로선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은퇴 했다니까
돈만 내놓으쇼

이런 나씨를 납치한 국제PJ파는 호남을 근거로 한 광주지역 최대폭력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국제PJ파는 1986년 무렵, 광주 충정로에 있는 국제당구장과 PJ음악감상실을 주 집결지로 애용했는데 이를 수사하던 당국은 이들을 묶어 국제PJ파로 분류했다. 그러면서 국제PJ파라는 이름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국제PJ파의 탄생 배경과 관련 한편에서는 범서방파 일원이었던 김모씨가 서열 문제로 조직을 나와 국제PJ파를 만들었다는 설이 들린다. 하지만 호남을 근거로 한 조직이 워낙 많은 탓에 이들의 계보가 서로 얽히고설킨 관계라는 설이 더 유력하다.

현재 범서방파와 국제PJ파 전쟁설이 도는 이유는 양 조직 모두 호남 출신 조폭이라는 공통점을 가졌기 때문이다. 일찍이 전국구 반열에 올라선 범서방파와 달리 국제PJ파는 호남에 남아 세를 키웠다. 이는 양 조직 간의 격차를 불러왔다. 범서방파 김씨가 정·관계를 주무르며 사업의 스케일을 불린 것과 달리 국제PJ파의 조씨 등은 독자 사업에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는 것. 실제 조직원 규모에서는 두 조직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굴리는 돈다발'이 다르다 보니 양 조직 간 격차가 벌어졌다는 설명이다.


김씨 수감 후 범서방파는 대부분 서울에 자리 잡고 안정적인 소득원을 찾았다. 하지만 국제PJ파는 1990년대부터 광주지검의 집중 수사를 받으며 사실상 와해 수순을 밟았다.

개인적인 원한? 조직 세력다툼?
"조만간 피 튀는 전쟁 일어난다"
범서방파 vs 국제PJ파 혈전 임박

재계와의 커넥션을 담당했던 현모씨, 여모씨 등이 구속됐고 이번 납치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된 조씨도 수감됐다. 국제PJ파가 이제 막 전국구로 올라설 무렵이었다.

그러다보니 국제PJ파는 늘 범서방파에 대해 '매스컴이 만들어 낸 조폭'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세력도 약하고 깜냥도 안 되는 조직이 한 마디로 너무 과대 포장됐다'는 푸념이었다.

국제PJ파는 호남에 남아 다른 조직과 '전쟁'도 하고 조직 보존을 위해 여러 활로를 개척하는 등 나름 조직범죄를 벌여왔다. 하지만 범서방파는 알려진 것에 비해 조직 활동도 전무하고, 그 흔한 업소 관리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다는 주장이다.

실제 2000년대 중반까지 조직원이 12명으로 축소된 범서방파와 달리 국제PJ파는 58명을 유지하며 그 명맥을 이어왔다. 그러나 조씨 등 수뇌부는 이미 너무 많이 사정기관에 노출된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서울에 기반이 있는 조직들은 손을 씻고도 먹고 살 수 있었지만 지방 조직들은 돈을 벌기 위해 서울에 자리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국제PJ파가 하우스 도박 등을 서울 인근에서 벌여온 것은 바로 본격적인 서울 진출의 신호로 해석됐다. 지방에서 안 되는 장사를 하느니 위험부담이 좀 있더라도 서울에서 돈 되는 장사를 하겠다는 속셈이다.

지난 2011년 나씨가 모친상을 당하자 김씨는 빈소로 조화를 보냈다. 국제PJ파도 조화와 함께 빈소에 방문했다. "내가 친하거나 존경하진 않아도 지킬 땐 지키는 게 건달들의 룰"이라고 한 전직 조폭은 얘기했다. 이렇듯 김씨 생전까지만 해도 양 조직 간 전쟁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김씨가 그들 세계에서 분명한 '선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가능성이 다르다고 한 관계자는 얘기한다. 이 관계자는 거듭 "조만간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 경찰 관계자는 "서울 한복판에서 조직 대 조직 간의 전쟁은 힘들지 않겠냐"고 예상했다. 조직으로 움직이면 형량도 배가 되는데 그것도 현행범으로 체포될만한 일을 누가 하겠냐는 것이다.

전쟁보다
조직보존

이렇듯 이번 사건을 둘러싼 여러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조씨 등은 현재 나씨 납치·폭행 외에도 공갈 등의 혐의로 경찰 수배를 받고 있다. 그들은 현재 비닐하우스 등에서 속칭 '산도박'을 벌이고 있을 수도 있고, 오피스텔 등을 빌려 '하우스 도박'을 펼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하나 분명한 건 최근 국제PJ파 자금줄이 여의치 않다는 사실적 정황이다. 이 같은 전제 하에 '조직 대 조직'의 전쟁은 힘들어도 '조직 대 개인'의 린치는 앞으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전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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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에너지 정책은 범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발언으로 이재명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이 윤곽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어른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대통령실은 “국회 기후위기특위에서 활동하는 등 미래 환경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3선 국회의원”이라고 소개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성환 의원을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22대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위원장 한정애, 민주당) 위원으로 활동하며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대선공약 대통령실은 그가 “‘기후 위기는 모두의 생존 위기’라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잘 이해하고 그동안의 입법 경험을 바탕으로 환경문제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 김 후보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이번 김 후보자의 지명으로 이재명정부의 환경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김 후보자는 지난 2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나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모든 에너지 체계를 바꾸고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체계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그는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기료가 오른다’는 우려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균등화발전비용(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가장 싼 전원은 이미 풍력과 태양광”이라며 “다만 아직 한국에선 여러 기회 비용, 시간 비용, 금융 비용이 쌓여 상대적으로 비쌀 뿐이다. 실제 요금이 오를 일은 없다. 오히려 그런 식의 접근이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원전에 대해서는 “각 나라 특성에 따라 원전을 쓰는 나라가 있는데 한국도 탈원전을 바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주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를 쓰고 원전을 보조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이 (이재명정부의) 탈탄소 정책 기조”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으로 신설 예정인 기후에너지부 장관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기후에너지부는 분리돼있는 기후와 에너지 관련 부처 업무를 통합한 조직이다. 그는 “기후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지 빠른 시일 내로 큰 방향을 잡겠다”며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조직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필요”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에너지 ‘전환’을 예고하면서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떠오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내세운 바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태양광 사업이 크게 대두돼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문정부는 출범하면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기 위해 설비를 확충하기로 했다. 태양광, 풍력발전소 등이다. 당시 내용대로면 총 110조원에 이르는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는 국가 예산과 공기업, 민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정부 임기 내내 전국 단위로 태양광 사업을 위한 지원금이 뿌려졌다. 당시 문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탈원전 로드맵을 동시에 진행했다. 일부 원전이 영구적으로 정지됐고 짓고 있던 원전 공사가 중단됐다. 단계적 원전 감축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온 잡음이다. 특히 태양광 사업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은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문정부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국가 주력 사업이었던 만큼 정권이 바뀐 이후 새 정부의 표적이 된 상황에서 실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천문학적 예산 투입 윤석열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을 진행했다. 윤정부 국무조정실은 일부 표본만 조사했는데도 불구하고 2000억원이 넘는 돈이 불법으로 사용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은 전국 12개 지자체와 한국전력, 한국에너지공단을 대상으로 ‘전력산업 기반기금 사업’ 운영 실태에 대한 합동 점검을 벌인 결과 총 2267건(2616억원)의 위법·부당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금은 산업자원통상부(이하 산업부)가 전기 요금의 3.7%를 징수해 조성한 돈으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지원과 보급에 주로 사용됐다. 5년간 투입된 금액은 12조원에 이른다. 1차 조사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서 부적절한 대출과 보조금 부당 집행, 회계 부실 등이 적발됐다. 태양광 사업의 경우 점검 대상의 17%인 1129건에서 1847억원의 위법 대출 등이 확인됐다. 2차 점검에서는 적발 금액이 2배로 늘었다. 국무조정실은 2019~2021년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쓰인 금융지원사업(1조1325억원) 내역과 2017~2021년 보조금 지원 규모가 컸던 25개 지자체의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금융지원 사업에서 4898억원,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보조금 사업에서 574억원, 전력 분야 연구개발 지원사업에서 266억원, 기타 전력기금 사업에서 86억원의 부정 집행 사례가 나타났다. 당시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지원금 대부분은 태양광 사업에 쓰였다”며 “가장 규모가 컸던 부정 금융지원 사업 사례 중 99%는 태양광 사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태양광 업자들은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불법 대출을 받았고 가짜 세금계산서로 공사비를 부풀려 지원금을 타냈다. 감사원 조사로 검찰 수사까지 대출을 받은 뒤 세금계산서를 취소, 축소하는 등 탈루가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가짜로 버섯 재배 시설이나 곤충 사육 시설, 축사 등 농림축산업 시설을 만들어 놓고 신재생 시설을 짓겠다고 대출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농지에 신재생 시설을 지을 때는 용도변경 등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지 않고 생산한 전력을 팔 때 받을 수 있는 보조금 한도도 커진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한 마을회는 마을 창고를 짓겠다며 전력기금에서 돈을 받아 부지를 사들였지만 실제 창고는 짓지 않았고 부지는 마을회장이 6촌에게 되팔았다. 지방자치단체의 문제도 드러났다. 한 군은 타낸 보조금을 다 쓰지 못하고 약 24억원이 남자 이를 다른 계좌로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한 시는 보조금을 빼돌려 관용차를 사기도 했다. 감사원 조사도 이뤄졌다. 감사원은 2023년 11월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목표와 이행, 인프라 구축, 관리 등 3개 분야로 나눠 추진 과정과 집행 전반을 들여다봤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7년 신재생 발전 목표를 상향하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검토했지만 막상 후속 조치 이행에는 소홀했다. 감사원은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내려온 목표에 따라 무리한 계획이라도 수립해야 했다는 이유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도 면밀한 검토 없이 강행되고 짧은 기간 내 일관성 없이 변경됨으로써 정책 혼선과 신뢰성 저하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서 전반적 점검 8000억 넘는 예산 줄줄 샜다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만큼 정부 부처가 이를 맞추기 위해 과도하게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문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야기될 수 있는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감췄다는 지적도 나왔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부는 문정부의 국정 과제대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릴 경우 2030년까지 전기요금을 40% 가까이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시 청와대의 압박에 12년 동안 10.9%만 오를 것이라고 국민 부담을 축소했다. 태양광 사업의 여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새만금 태양광 발전사업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1월 군산시청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군산시 태양광 발전사업 수주 과정에서 뒷돈이 오간 정황이 포착됐고 이를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당시 군산시장은 군산시가 1000억원 규모의 태양광 사업을 추진할 때 자신의 고교 동문이 대표로 있는 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업체가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금융사가 제시한 연대보증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계약 체결을 지시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앞서 검찰은 새만금 태양광 사업을 주도한 회사 대표를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태양광 발전사업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에게 로비를 해주겠다며 뒷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진술로 비리 의혹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핵심 수사 대상에 올랐던 건설사 대표가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도 일어났다. 관련 시장은 반응 오는 중 이 대통령이 기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김 후보자가 재생에너지를 언급하면서 관련 시장이 다시 들썩이는 모양새다. 실제 태양광 관련 주가가 오르는 등 주식시장에는 벌써부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윤정부는 문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통째로 부정하다시피 했다. 반대로 문정부의 정책을 다시 끄집어낸 이정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