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버티는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 속셈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2.12 13:2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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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도 까도 꼿꼿…맷집 센 '양파남'

[일요시사=사회팀] '청문회 스타(?)'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게는 최근 '흡사마'라는 애칭이 붙었다.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여기저기서 돈을 빨아댄다"는 나름(?)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 이 후보자는 이번 헌법재판소장 청문회를 통해 일약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부패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청문회 이후 한동안 잠적했던 이 후보자가 최근 언론을 통해 귀환했다. 인터뷰도 했다. 그 자리에서 이 후보자는 "자진 사퇴는 없을 것"이란 입장을 드러냈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말 그대로 엘리트 출신이다. 적어도 드러난 경력으로는 실패를 모르는 삶을 살았다. 대구에서 태어난 이 후보자는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대를 거치며 이듬해 사법고시를 통과했다. 그리고 1978년부터 판사 업무를 시작했다. 2006년 9월에는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추천으로 헌법재판소(이하 헌재) 재판관에 선출됐다. 법조인으로서는 성공적인 커리어를 밟은 셈이다.

판사로 탄탄대로
06년 헌재 입성

그러나 이 후보자는 헌재 재직 시절 사회적 쟁점이 됐던 판결에서 친정부 성향을 드러냈다. 예를 들어 'BBK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이명박 특검법' 헌법소원에서 7명의 재판관은 '참고인 동행명령'을 제외한 나머지 법률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이 후보자는 당시 김희옥 재판관(현 동국대학교 총장)과 함께 위헌 의견을 냈다.

또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와 관련된 '야간옥외집회금지'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에서 합헌 의견을 제시했다. '야간옥외집회금지'는 헌재에서 헌법불합치로 판정됐다.

이에 대해 판사 출신 정치인인 서기호 진보정의당 의원은 "헌법재판관 시절 소수의견이 굉장히 많았다"며 "구체적으로는 친일·친여·친재벌 성향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2013년 1월 정부는 대한민국 헌재를 이끌어갈 수장으로 이 후보자를 낙점했다. 표면상으로는 현 정부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추천한 형태였다.

그러나 후보자 선정과 동시에 온갖 의혹들이 터져 나왔다. 언론에 보도된 의혹만 31건에 달했다.

가장 먼저 불거진 건 위장전입이었다. 복수 매체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지난 1992년 경기 분당에 있는 아파트를 분양받으면서 양도소득세 부과를 피하기 위해 1995년 6월부터 10월까지 4개월간 가족들과 세대분리를 했다. 그리고 이 후보자 본인만 위장전입했다.

청문회 과정서 불거진 각종 의혹들 해명 미흡
자진사퇴 예상 뒤엎고 "절대 물러나지 않는다"

이 같은 의혹이 제기되자 이 후보자는 "투기목적이 없었다"면서 "자녀교육을 위해서였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검증의 칼날은 이전보다 더 매섭게 이 후보자의 폐부를 파고들었다.

이른바 '친일 판사' 논란이 그것이다. 이 후보자는 친일파 재산을 국가로 환수하는 법안에 대해 일부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 후보자 입장에서는 당시 재판부가 5대 4로 팽팽하게 의견이 갈린 점, 중립 성향으로 분류되는 이강국 전 헌재소장도 위헌 판결을 내린 점 등을 반박할 수 있었겠지만 '친일 판결'을 내렸다는 딱지는 쉽게 벗겨지지 않았다.

더불어 이른바 '위안부 배상청구권' 판결에서도 이 후보자는 외교통상부가 위안부 배상 문제를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을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헌재가 행정부 소속인 외교통상부 고유 업무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간섭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판결문은 그럴 듯 했지만 결과론적으로 이 후보자는 '친일 판사'란 낙인을 벗지 못했다.

위장전입 시인
친일판사 낙인

이밖에도 후보자 청문회를 준비하면서 드러난 편법과 부정은 이 후보자에게 '생계형 권력주의자'란 오명을 안겼다. 이 후보자는 군 복무 중 석사학위를 취득하는가 하면 헌재 재임 시절 근무시간 중 마음대로 해외여행을 다녔다. 2011년에는 부인과 함께 근무시간 중 싱가포르로 출국했는데 헌재 측에 휴가나 출장을 미리 신고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또 이 후보자는 지난 2009년 11월 독일과 체코에 11일간 체류하면서 항공비 412만원을 포함해 829만원을 출장비 명목으로 신청했다. 이때 지급된 항공비는 이코노미좌석을 비즈니스좌석으로 교체하는데 쓰였다. 더 좋은 좌석을 이용하기 위해 출장비를 추가로 요청한 것. 반대로 일등석 항공권을 발급받은 뒤 그보다 값이 싼 비즈니스 항공권으로 변경해 차액을 챙겼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가족에 대한 애착이 큰 이 후보자는 공무상 출장 중 부인과 함께 불법으로 해외경비를 지출했다는 의혹에 휩싸였으며, 셋째 딸의 유학비용 중 3만6000달러를 불법 송금해 외환거래법을 위반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의 장남에게는 증여세 탈루 의혹이 지워졌다.

이게 끝이 아니다. 자동차 홀짝제를 피할 수 있도록 "관용차를 더 달라"고 요청하는가 하면 법원 송년회 때 "삼성의 협찬을 받아와라"란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헌재 재판관으로 재임하면서 재산은 6억원이 늘었는데 재산 증식 과정에서 특정업무경비를 사적으로 유용한 정황도 드러났다. 이 후보자와 함께 헌재에서 일했던 한 경리과 직원은 "특정업무경비를 개인 계좌로 입금한 것은 부적절했다"고도 증언했다.

'표결반대' 새누리당 슬그머니 입장 선회
민주당 "가치도 없어…알아서 그만둬라"

불법 정치자금 후원에 집 근처서 업무 추진비 수백만원을 부당 사용한 전력 등 이 후보자에게 붙은 혐의는 날이 갈수록 더해졌다. 심지어 청문회 전부터 이 후보자 선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권으로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국회 인사청문회 당일인 지난달 21일 이 후보자는 전 국민적인 관심 속에 청문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소 뻣뻣한 자세를 취했던 이 후보자는 의원들의 쏟아지는 추궁에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회피하는 태도를 보였다. 질의 중인 최재천 민주통합당 의원의 마이크가 꺼지자 이 후보자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기도 했다. 시종일관 진정성 없는 답변에 의혹은 말끔히 해소되지 못했고 이는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이 후보자에게 '이돈흡'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때쯤이다. "재판관으로서 사회 정의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돈만 밝힌다"는 네티즌들의 비아냥거림이 이어졌다. 이 후보자를 헌재소장에 임명하기 위해서는 국회 청문보고서가 채택돼야 했지만 야당 측 의원들은 이를 거부했다. 위장전입, 공금횡령, 정치적 편향성 등 청문회서 드러난 혐의만으로도 헌재소장 자격이 없다고 판단 내렸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무리한 정치공세'라고 이 후보자를 옹호하던 여당 측 일부 의원들도 등을 돌렸다. 강제로 보고서를 채택했을 경우 돌아올 민심의 역풍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 후보자가 대승적 차원에서 자진 사퇴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처럼 모두가 등을 돌릴 때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그의 손을 잡았다.

자진사퇴 해야
인신공세 중단

박 당선자는 지난달 30일 새누리당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관련 "인재를 뽑아 써야 하는데 인사청문회가 자꾸 신상 털기 식으로 간다면 과연 누가 나서겠냐"고 일갈했다. 이 후보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발언이었다. 이 무렵 이 후보자는 외부와의 접촉을 끊은 채 청문회 이후 긴 잠행에 들어간 상태였다. 잠적을 앞두고 이 후보자는 몇몇 언론을 통해 "청문회서 드러난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란 입장만 계속 반복했을 뿐이다.

사실상 부적격자로 판명난 이 후보자였지만 박 당선자의 입김은 무서웠다. 지난 4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와 이정현 최고위원 등 지도부는 이 후보자 선임에 대한 국회 표결을 우회적으로 촉구했다. '이동흡 후보자 구하기'가 급물살을 탄 것이다.

이에 화답하듯 이 후보자는 청문회 15일 만에 잠행에서 돌아와 KBS 등과 지난 5일 인터뷰를 가졌다. 기자들의 전화를 일절 받지 않던 이 후보자는 이날 본인이 언론 인터뷰를 자청했다. 이 자리에서 이 후보자는 "지금 이런 상황에서 사퇴할 경우 (인사청문회에서) 제기된 의혹을 인정하는 것이란 오해를 살 수 있다"며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자진 사퇴설을 일축했다. 표결 전까지는 어떻게든 끝까지 버티겠다는 것이다.

이 후보자는 오히려 "현재 인사청문회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며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 후보자는 검증 과정에서 자신이 아닌 '괴물 이동흡'이 만들어졌다는 주장을 내놨다. 또 그는 자신의 인사청문회를 빗대 "죽어서 염라대왕 앞에 가면 이런 식으로 할까 겁난다”면서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부분을 다 변명해야 하는 게 힘들었다”고 말했다. 청문회 때보다는 자세를 낮춘 모습이었다.

다음 날인 6일 박 당선자는 새누리당 연석회의에서 '인사청문회'와 '표결처리'를 언급하며 사실상의 이 후보자 지원군을 자처했다.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이 무산된 만큼 표결을 통해서라도 이 후보자에 대한 거취를 결론 내려야 한다는 뜻이다.

밀어붙이면 박근혜도 정치적 타격 불가피
"얼굴에 철판 깔았다"

며칠 전 서병수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기자들에게 "(이 후보자) 본인이 스스로 결단을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과는 상반된 주장이었다. 결국 여당 내의 반대파가 얼마나 응집력을 발휘할지가 표결을 가르는 주요 변수로 부상했다.

최근까지의 반응은 다소 부정적이다. 대다수의 친박계 의원들은 표결 쪽으로 가닥을 잡은 가운데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만약 본회의에서 이 후보자 임명 동의가 부결된다면 당은 엄청난 정치적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대로 야당 측은 표결도 자신 있다는 분위기다. 만에 하나 강창희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강행할 경우에도 여론은 선임 반대 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에 결국 새누리당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민주통합당은 우선 '돌아온 탕아' 이 후보자에 대한 공세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민주통합당 대변인실은 지나 5일 공식 브리핑을 통해 "이 후보자는 전혀 반성하지 않고 책임지지도 않고 있다"며 "더 이상의 공분을 불러일으키지 말고 지금이라도 즉시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기부천사 돈흡
참여연대 고발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이 후보자는 또 한 번의 말실수로 구설수에 올랐다. "재임 중 받았던 특정업무경비를 전액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인터뷰 내용이었다.

현재 횡령 의혹이 있는 3억원이라는 돈을 도로 토해내겠다는 것이었는데 이에 대해 한 법조계 인사는 "회사 공금을 내 마음대로 쓰고 다시 돌려놓겠다는 꼴"이라며 "한 마디로 '깜냥'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일침을 놨다. 

한편 참여연대는 지난 6일 특정업무경비를 개인 용도로 유용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 후보자를 검찰에 고발했다. 현행법상 업무상 임무에 위배해 횡령(배임)죄를 범할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이동흡은?>

▲1968년 경북고등학교 졸업
▲1972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1973년 제15회 사법시험 합격
▲1977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민사법 석사 
▲1978년 부산지방법원 판사 임용
▲1998년 대전고등법원 부장판사
▲2000년 수원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 직무대우
▲2000년 서울고등법원 민사4부 부장판사
▲2003년 서울고등법원 특별6부 부장판사
▲2005년 서울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
▲2005년 서울가정법원 법원장
▲2005년 수원지방법원 법원장
▲2006년 헌법재판소 재판관
▲2013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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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