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암투] 서초구청에 무슨 일이…

툭 하면 쌈질…바람 잘 날 없는 ‘부자구청’

 [일요시사=사회팀] 서초구청이 시끄럽다. 최근 청원경찰 사인을 놓고 허준혁 전 서울시의원(서초구)이 의혹을 제기하면서 박성중 전 구청장과 진익철 현 구청장 간 공천갈등도 다시금 수면 위에 떠오르고 있다. 진흙탕 싸움으로 번진 서초구 사태. 청원경찰 사인 뒤에 숨겨진 이면을 들춰봤다.


2013년 1월10일 오전 10시. 서초구청 청원경찰로 근무하고 있던 이모(47)씨가 주차장 내 번호판 교체장소에 쪼그려 앞에 앉아 있었다. 이를 발견한 구청 직원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이씨 쪽으로 다가갔다. 이씨는 호흡곤란 상태였고, 직원은 바로 구급차를 불러 인근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응급실로 호송했다. 이씨는 당시 급성심근경색 증상을 보여 즉시 시술을 받았지만 결국 오후 3시경에 급성심근경색에 따른 심장 쇼크사 및 폐부종으로 생을 마감했다.

온라인서 공방 열전
구청 측 변명 급급

지난달 10일 발생한 서초구청 청경 사망사건이다. 청경 이씨는 22년째 근무해온 우수 근속자였다. 그는 1월2일 시무식이 시행된 날 진익철 서초구청장이 탄 관용차를 지각 안내했다는 이유로 9일, 영하 11.7도, 체감온도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혹한의 날씨에 해당 구청으로부터 24시간 야외근무를 지시받았다. 이씨를 포함해 같이 근무를 하던 주차장 근무 직원 3명이 시무식을 마친 후 구청으로 돌아오던 진 구청장의 관용차가 들어옴에도 지각대응한 점, 혼잡했던 주차장 상황을 미처 살피지 못하고 초소에 들어가 잡담을 하며 민원차량 주차안내 등을 소홀히 한 점에 대한 비공식 징벌이었다.

당시 진 구청장과 동승했던 조이제 행정지원국장은 그들에게 근무상태 불량을 지적하며 옥외초소 문을 잠근 뒤 “주차장 혼잡 시 모두 초소에 들어가 있을 생각하지 말고 교대로 초소 앞에서 근무할 것을 명령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씨의 야외근무는 단 하루로 끝나지 않았다. 9일 이씨는 주간근무에 이어 오후 6시부터 이튿날 오전 9시까지 당직근무를 섰다. 즉 영하의 날씨에 24시간 동안 야외에서 근무한 셈이다.

이씨는 오전 9시까지 근무를 마치고 동료직원들과 아침식사를 한 뒤 9시30분경에 초소로 복귀했다. 이후 10시쯤 심장에 무리가 온 듯 청경 이씨는 초소 앞에서 가슴을 부여잡고 쪼그려 앉았고, 이를 지켜보던 동료 직원들이 동료 직원들이 병원으로 호송했지만 끝내 숨졌다. 물론 이씨의 사인이 동사가 아닌 급성심근경색이었고, 야외근무를 지시한 지 일주일이 지난 후 사망한 사건이라 구청 측에 책임을 운운하긴 어렵지만 구청장 관용차량 지각안내에 따른 과도한 문책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갈 문제임에 틀림없었다.


‘돌연사’청원경찰 사인 두고 구청장·의회 충돌
“혹한에 가혹근무로 죽었다”vs“평소 지병 때문”

이윽고 청경죽음이 구청에서 내린 징벌과 연관성이 짙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진 구청장에 대한 해임과 형사처벌(구속)하라는 누리꾼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서초구청은 진 구청장을 감싸는 반박기사를 내는데 급급했다. 진 구청장과 동승했던 조 행정지원국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문을 잠그라고 지시했다. 총무과에 열쇠를 맡기며 교대로 초소를 이용하게끔 근무교육을 시키라고만 했는데 실무팀에서는 3일 오후 1시를 훌쩍 넘어 초소문을 열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영하의 날씨에 청경들은 초소 안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야외근무를 섰으며 28시간 만에 난방기가 설치된 초소문이 열린 셈이 된다.

반면 서초구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청경을 24시간 야외근무 시켰다는 주장은 물론 진 구청장 관용차량의 주차안내가 늦었다는 이유로 부당징벌 했다는 건 사실무근이다. 최근 청경이 사망한 것은 맞지만 동사가 아닌 고지혈증과 당뇨를 오랜 기간 앓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청원경찰은 바깥 근무를 할 때, 1시간 근무 후 2시간 휴식을 원칙으로 하루에 총 세 시간의 근무를 선다. 동절기에 야외에서 근무하는 청경들을 위해 오리털 파카, 방한용품 등을 지급, 휴식시간에는 환풍기와 온돌판넬이 설치된 구청사 10층 청경 휴게실에서 쉴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현 구청장
공천갈등 연장전?

서초구청 측의 거듭된 해명에도 청원경찰 사인을 둘러싼 의혹은 끊이지 않고 있다. 포털 다음 아고라에는 현재 3000여 명에 달하는 누리꾼들이 ‘서초구청장 구속 청원’에 동참했는데,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이 사건과 관련된 검색어가 꽤 오랫동안 1∼2위를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곧바로 지워져 구청 측의 직접적인 개입의혹이 잇따랐다. 또 허준혁 전 시의원이 본인의 블로그에 “구청장님 관용차 주차가 늦었다고 사람을 얼려죽이다니…”라는 제목의 게시물로 청원경찰 사인에 진 구청장의 책임이 크다고 일갈한 바 있어 의혹은 더욱 커져만 갔다. 이에 서초구의회도 청경 돌연사 의혹을 낱낱이 밝히기 위해 김익태 진상 조사위원장을 포함한 구의원 8명으로 구성된 ‘서초구 청원경찰 조사특위원회’가 지난달 29일 열리기도 했다.

특위 주재자인 김 의원은 “구청의 해명대로 이씨가 1시간만 근무하고 2시간은 휴게실에서 쉬었다면 8층에 있는 휴게실에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게 맞다. 그러나 지난 28일 CCTV를 확인한 결과 엘리베이터 CCTV 자료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며 “초소 문을 잠근 당일인 2일 영상이 남아있지 않다. 의도적으로 이를 훼손한 게 아니냐”고 구청의 자료은폐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총무과 관계자는 “고의적으로 없앤 건 아니다. 관리회사에 문의하니 복구가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고 해명했다.

구청장 차량 안내 늦어서 징벌?
영하 16도 외부서 24시간 근무?

항간에선 이 사건을 두고 단순 청원경찰 돌연사로 치부하기보다 ‘전-현 구청장 간 공천후유증’이라는 의견으로 모아지고 있다. 특히 진 구청장 측이 “최근 발생한 청원경찰 돌연사를 빌미로 차기 서초구청장을 노리는 몇몇 인사가 짜고 현 구청장을 궁지에 빠뜨리기 위해 벌인 비겁한 언론 플레이”라며 공개적으로 반대세력을 비난하면서 공천갈등이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했다. 또한 서초구청 측이 개인 블로그에 현 구청장을 공개 디스한 허 전 시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하면서, 두 사람의 공천갈등이 정점을 찍은 것으로 추측된다. 

진 구청장 측은 “허 전 시의원은 진 구청장과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서초구청장 공천을 신청했던 인물”이라고 밝혔다. 공천 갈등이 사건의 배후라는 점을 은근히 내비친 것이다. 진 구청장은 허 전 시의원을 고소하기에 앞서 최근 박성중 전 서초구청장도 배임 및 횡령 혐의로 서초경찰서에 고발했다. 박 전 구청장이 재직 당시인 지난 2009년 5000만원을 횡령했다는 혐의다. 당시 진 구청장은 “2010년 취임 직후부터 관련 공무원 실명으로 투서가 수차례 들어와 박 전 구청장에 대한 법적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며 “부서원에 돌아갈 돈을 박 전 구청장이 착복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박 전 구청장은 “터무니없는 혐의다. 만약 1만원이라도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면 구청 앞에서 할복하겠다”고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또 “경찰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무고로 고소할 것”이라고 일침했다.

마권발매소
교회 인허가

사실 진 구청장과 박 전 구청장의 갈등은 진 구청장이 취임하면서부터 계속됐다. 그들의 악연은 공천이라는 굴레에서 먼저 시작됐다. 진 구청장과 박 전 구청장은 경남고 선후배 사이지만 행정고시 23회 동기다. 먼저 서초구청장을 지낸 박 전 구청장은 지난 2010년 재선에 나서려 했다. 박 전 구청장은 열정적인 청장으로 평판이 자자했지만 주민들과의 잦은 마찰로 진 구청장에게 밀려 공천을 받지 못했다. 당시 구청 주변에서는 행시 23기동기인 고승덕(당시 한나라당·서초을) 전 의원이 진 구청장을 밀어준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박 전 구청장은 2012년 총선에서 서초을 공천을 다시 한 번 노렸으나 고 전 의원이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을 터뜨리며 또 실패했다. 박 전 구청장 측은 분을 삼키지 못하고 “고 전 의원과 진 구청장이 조직적으로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서초구 의원들은 공천을 앞두고 서로를 물고 뜯는 진흙탕 싸움을 전통관례처럼 이어가고 있었다.
지난 2010년 박 전 구청장이 재선을 노릴 당시 공천의혹이 있었다. 박 전 구청장은 사랑의 교회 측에 신축부지 옆 참나리길 공공도로 지하 땅 1077.98㎡(약 326평), 즉 불법특혜를 내주면서 공천과 관련한 사전결탁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일었다. 사랑의 교회는 도로지하 점용허가에 대한 당위성 및 근거확보를 위해 서초구청과 기부채납 계약을 했고, 하루 만에 ‘도로지하에 대한 점용허가를 받은 후 건축허가를 신청하라’ 조건부 승인이 났다. 승인의 조건이 된 ‘도로지하에 대한 점용허가’가 15일 만에 났다는 점도 충분히 의심을 살 수 있을만한 사안이었다. 한편 사랑의 교회 신축공사에 들어갈 비용은 총 22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현직 구청장 해묵은 감정표출 지적
공천 의혹 등 진흙탕 싸움 수면 위로

다음해 2011년에는 진 구청장의 공천 의혹이었다. 그는 거액의 돈을 받고 마권장외발매소 허가를 내줬다는 의혹으로 큰 곤욕을 치렀다. 마권장외발행소 설립은 지난 2009년 마사회의 설립 계획이 발표된 이후, 서초구민의 강한 반대에 부딪쳐온 서초구 최대 지역현안 중 하나다. 결국 무혐의로 마무리됐지만 진 구청장 측은 의혹을 제기한 발원지를 박 전 구청장으로 보고 있다. 박 전 구청장 측은 “박 전 구청장이 박근혜 당선자 대선캠프에서 일했는데 혹시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에 들어갈까봐 이를 막기 위해 진 구청장 측이 말도 안 되는 혐의로 고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해 진 구청장의 지나친 MB사랑이 특혜의혹을 불러일으키는데 한몫 했다. 그는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시절 서울시 문화관광국장과 환경국장 등을 역임한 대표적인 MB맨이다. 그런 그가 내곡동 사저 인근에 테니스장 건립을 추진하면서 “평소 테니스를 즐기는 이대통령을 의식한 게 아니냐”라는 의혹이 불거졌다. 진 구청장은 서울시로부터 받은 특별교부금 15억원 중 4억6000만원을 내곡동 생활체육시설 건립에 사용한다고 밝히면서 사용도 위법성 논란에 휩싸였고, 이 땅은 서초구 소유로 이 대통령의 사저가 들어설 곳과는 1.5㎞, 이상득 의원이 소유하고 있는 땅과는 불과 1.7㎞ 가량 떨어져 있어 청와대와 사전논의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진 구청장은 내곡동 1-16번지 유휴지에 8370㎡ 규모의 테니스장 6면과 다목적구장(1000㎡), 주말농장 및 쉼터(1300㎡) 등을 갖춘 생활체육시설을 조성하기로 하고 10월12일 착공식을 했다.

구청장 공천비리
썩은내 진동

청원경찰 돌연사가 서초구 의원들 간 공천비리의 어두운 이면을 낱낱이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이 됐다. 민심을 뒤로한 채 밥그릇 싸움에만 전전긍긍하는 서초구 의원들의 추악한 속내가 만천하에 드러난 셈이다. 
최호정 서초구 시의원은 “강남?서초 지역은 새누리당 공천만 받으면 무조건 당선되는 지역으로 여기니 공천을 둘러싸고 각종 마타도어가 판친다”며 “다른 자치구에서는 주민들 이목이 부끄러워서라도 이렇게까지 못한다”고 혀를 찼다.


김지선 기자 jisun86@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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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