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삼성 vs LG '40년 전쟁' 히스토리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1.21 12:56:34
  • 댓글 0개

큰물서 노는 두 공룡…안방선 아옹다옹

[일요시사=경제1팀] 싸웠고, 싸우고 있고, 싸울 것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벌이는 '별들의 전쟁'이 끝날 줄을 모른다. 두 업체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각 분야에서 치열한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두 회사의 창업주가 '죽마고우'라고 불렸을 정도로 한 때는 막역한 사이로 지냈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기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기업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을까.


"(1968년 봄 안양 골프장) 야외 테이블에서 아버지(이병철 회장)와 구(인회) 회장님, 내가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다가 아버지가 전자 산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냈다. '구 사장, 우리도 앞으로 전자 산업을 하려고 하네.' (중략) 구 회장이 벌컥 화를 내면서 '남으니까 하려고 하지'라고 느닷없이 쏘아붙였다. 즉, 이익이 보이니까 사돈이 하는 사업에 끼어들려고 하지 않느냐는 뜻이었다. (중략) 아버지는 구 회장이 화를 내자 아무런 말도 못하고 그저 민망해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일로 두 분 사이는 아주 멀어졌다."


삼성 전자산업 진출
멀어진 사돈 지간

이병철 전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의 회고록 중 일부다. 이병철 창업주와 구인회 LG그룹 창업주는 경남 진주의 지수초등학교에서 책상을 맞대고 공부하던 죽마고우였다. 또 동양방송(현 KBS2TV)도 공동으로 설립했고 이 창업주의 차녀 숙희씨와 구 창업주의 삼남 자학씨가 결혼해 사돈을 맺기도 했다.

하지만 1968년 삼성이 일본 산요와의 합작을 통해 삼성전자 설립을 준비하면서 양측은 급격히 틀어지게 됐다.

당시 국내 전자산업은 금성사(현 LG전자)가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958년 금성사를 세우고 창립 1년 만에 첫 국산 라디오 'A-501'을 만들어 박정희 정부의 도움(농촌 라디오 보내기 운동)을 통해 국내 가전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LG로서는 삼성의 도전이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1969년 삼성이 일본 산요와 합작투자 계약을 맺고 전자사업 인가 신청을 내자 LG전자는 이를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과당경쟁이 격화될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정부는 "생산물량 전부를 해외에 수출한다"는 조건으로 삼성의 전자산업 진출을 허가했다. '40년 전쟁'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전쟁 초기 이 둘이 처음 맞붙었던 품목은 TV였다. 1963년 LG전자는 TV 생산계획을 추진, 일본 히타치제작소에 기술연수팀을 파견했다. 3년 만에 최초 국산 TV인 진공관식 19인치 'VD-191'을 선보였다. 국내 소비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가격이 쌀 27가마에 해당할 정도로 사치품이었지만 공개추첨으로 물량을 배정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보다 7년 늦은 1973년 삼성전자는 독자적으로 진공관식 흑백 TV를 개발한 데 이어 1974년에는 트랜지스터식 흑백 TV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1975년 8월에는 '이코노TV'를 선보였다. 당시 TV는 전원을 킨 뒤 브라운관 예열 과정을 거쳐야 해 화면이 나오는데 20초 이상이 걸렸다. 그런데 이코노TV는 이를 5초 내로 단축했다. 전력 소비량을 획기적으로 낮췄고 삼성전자는 이를 통해 선발업체들을 제치고 국내 TV시장 1위로 올라섰다.

1980년 8월 컬러 TV 판매가 시작되면서 신규시장을 둘러싸고 혈전이 펼쳐졌다. 1974년부터 컬러 TV 개발에 나선 LG전자는 1977년 8월 19인치 컬러 TV를 생산하고 1979년 경북 구미에 컬러 브라운관 공장을 건설했다.

'누구 냉장고가 더 클까?' 초딩도 안하는 싸움
단순 비교광고 100억대 법정 소송으로 확대

삼성전자는 1981년 절전형 프리볼트 TV인 '이코노빅'을 내놓으면서 맞불 작전을 펼쳤다. 삼성전자의 절전형 TV는 당시 전력난에 시달리던 상황에 잘 맞아떨어지며 삼성전자는 국내 컬러 TV시장 1위에 오르게 된다.

TV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분야에서 삼성전자가 LG전자를 앞지르고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난 것은 반도체에 승부를 걸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LG전자는 반도체에 쓰라린 기억을 안고 있다.


1983년 삼성전자는 당시 미국과 일본만 보유하고 있던 64KD램 개발에 성공, 1984년 256KD램을 개발해 반도체를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토대로 1992년에는 D램 반도체 세계점유율 1위에 등극했다.

LG전자도 1979년 대한전선의 대한반도체를 사들여 금성반도체를 출범, 금성일렉트론으로 이름을 바꾼 뒤 1990년 1메가D램, 1991년 4메가D램을 잇따라 내놓으며 삼성전자와 비등한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1997년 말 IMF 당시 국내 재계에서는 김대중 정부의 빅딜정책으로 LG전자는 반도체 사업을 뺏기게 된다. 당시 구 회장은 금성일렉트론의 빅딜 대상 선정을 막기 위해 청와대에 LG전자의 반도체사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했지만 결국 반도체를 하지 못하자 "모든 것을 다 버렸다"며 통한의 눈물을 흘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가장 치열한 대립각을 세운 부분은 바로 휴대폰 단말 사업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 모토로라가 장악했던 국내 휴대폰 시장에 첫 도전장을 낸 건을 삼성전자였다. 1994년 "산악이 많은 국내지형에 맞는 휴대폰을 내놓겠다"며 '애니콜'이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선보인 것. 이에 질세라 LG전자 역시 "고층빌딩이 많은 도시지형에 맞는 휴대폰을 내 놓겠다"며 '화통'이라는 브랜드를 출시했다.

하지만 '화통'은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1997년 LG전자는 '귀족의 자손'이라는 의미의 '싸이언'을 브랜드로 내놓았고 애니콜과 양대산맥을 이뤘다. 당시 휴대폰 전쟁은 확실한 승자가 나오지는 않았다. 삼성전자는 세계적으로 1000만대 이상 팔린 ‘텐밀리언 셀러폰’을 3개(이건희폰, 벤츠폰, 블루블랙폰)를 보유하고 있고 LG전자는 초콜릿폰이 텐밀리언 셀러폰이다.


반도체로 삼성 웃고
반도체로 LG 울고

2000년대 들어서부터는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새로운 라이벌전이 시작됐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모두 글로벌 1위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고 있고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올레드(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분야도 두 업체가 전 세계 1·2위를 다투고 있다.

LG전자는 2001년 가장 얇은 7.8cm 40인치 PDP를, 2003년 11월에는 76인치 PDP 개발에 성공했다.

삼성전자는 2001년 8월 40인치, 2002년 10월 46인치, 12월 54인치를 개발했고 2003년 11월 57인치 TV용 HD급 TFT-LCD 개발에 성공했다.

양사의 슬림 경쟁은 발광다이오드(LED) TV가 출시되면서 더욱 치열해졌다. 삼성전자는 2009년 3월 LED TV 40·46·55인치 시리즈를 전 세계 동시 출시했다. 당시 삼성 LED TV 시장 점유율은 80%를 상회했다. LG전자는 자체 개발한 '컬러 디캔딩' 기술을 적용, 화질을 강조한 42·47·55인치 제품을 선보였다.

소송·맞소송·특허전
법정 대전 개막

지난 2011년에는 3D TV 기술을 둘러싸고 자사의 방식이 더 우수하다고 주장하면서 비방 광고에 이어 원색적인 욕설까지 오가는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양사의 싸움은 단순 라이벌 전에 불과했다. 하지만 작년부터 양사의 싸움은 점점 격렬해져 이젠 법정 대결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발단은 지난해 4월 삼성디스플레이가 OLED TV 관련 핵심기술을 빼돌린 혐의로 LG디스플레이를 경찰에 고발하면서다. 이후 두 회사는 치열한 진실공방을 벌이다 결국 법정으로 갔고 작년 9월 삼성디스플레이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OLED 기술유출 관련 기록 21종과 세부 기술 18종 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출한 것을 시작으로 총 5번의 소송을 주고 받았다.

이후 소송대상은 LCD기술로 확대됐고 지난해 말 LG디스플레이는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10.1'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완제품에 대한 판매금지신청은 특허공방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대응으로 꼽힌다.

LG디스플레이는 소장에서 "삼성이 갤럭시노트10.1에 채택한 PLS(Plane to Line Switching) LCD 기술은 IPS 기술의 아류에 불과하다"며 "특허침해에 대한 악의성과 침해 규모, 정도 등에 비춰 생산을 중단하지 않을 시 1일에 최소 10억원의 이행강제금을 지급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성 치고 나가면 LG 바로 따라 붙어
TV·냉장고·휴대폰 "한치 양보 없다"

이에 삼성전자 측은 "삼성이 보유한 PLS라는 고유의 기술을 LG디스플레이가 'AH-IPS'라는 이름으로 LG 중소형 LCD 패널에 임의적으로 적용했다"고 맞서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는 '누구 집 냉장고가 더 큰가'로 '초딩싸움'을 연상시키는 유치찬란한 촌극이 펼쳐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8월22일 '냉장고 용량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제목의 광고를 삼성전자 공식 블로그와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올렸다. 삼성전자의 지펠 857리터 냉장고와 LG전자의 디오스 870리터 냉장고의 실제 용량을 직접 비교하는 내용이었다. 냉장고를 눕힌 후 서랍 및 격벽을 제거하고 물을 부었더니 13리터 더 작은 삼성전자의 냉장고에 오히려 더 많은 물을 넣을 수 있었다는 것.

LG전자는 삼성전자에 '해당광고 즉각 중지, 사과 의사 표시 및 관련 책임자 문책'을 요구하는 공문을 내용증명으로 발송하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삼성전자는 이에 굴하지 않고 '냉장고 용량의 불편한 진실2'라는 광고를 추가 제시했다. 이번엔 900리터 냉장고 지펠 T9000과 910리터 냉장고 디오스 V9100이 타깃이었다. 물, 캔커피, 참치캔으로 용량을 측정했더니 삼성전자 냉장고에 물 8.3리터, 캔커피 68개, 참치캔 90개를 더 넣을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LG전자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광고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10월 법원은 LG전자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삼성전자에게 해당 동영상 게재를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법원은 LG전자의 손을 들어줬지만 LG전자의 삼성전자에 대한 대응은 이어졌다. 지난 14일 100억원대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한 것.

냉장고 용량은 늘리고
경쟁사 이미지는 깎고

LG전자는 소장에서 "삼성전자의 유튜브 광고로 기업 브랜드 가치가 최소 1% 이상 훼손됐고 허위광고에 대한 반박광고비로 5억1000만원이 드는 등 손해를 입었다"며 "이에 대한 위자료 100억원을 지급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간 대응을 자제하던 삼성도 이날 소송을 계기로 "LG전자가 소송 제기를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해 당사의 기업이미지를 심각히 훼손하고 있다"며 "시시비비를 명확히 가리기 위해 가처분 결정 불복 절차를 진행하고,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 적극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삼성-LG CES대전>

"2015년 내가 1등"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자존심 싸움은 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부문 사장과 조성진 LG전자 생활가전(HA)사업본부 사장의 전쟁으로 이어졌다.

윤 사장과 조 사장은 세계 최대 가전쇼인 'CES 2013'이 열리고 있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나란히 간담회를 갖고 올해의 시장 동향과 전략을 밝혔다.

조 사장은 "세탁기 1등 경험을 바탕으로 스마트 기술을 전면 확대해 2015년 생활가전 1위에 오르겠다" 밝혔다.

지난해 말 LG그룹 첫 고졸 출신 사장으로 승진한 조 사장은 35년간 세탁기 개발에 매진해 온 전문가다. 조 사장은 "고객의 요구를 끊임 없이 반영해 세계 1위에 올려놓은 세탁기 사업을 통해 1등 DNA를 새겼다"며 "이 과정에서의 경험을 냉장고, 오븐, 청소기 등으로 전파해 세계 1위 목표를 실현해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사장은 "마켓 크리에이터로서 앞으로도 한계를 뛰어넘는 제품과 서비스로 창조적 혁신을 주도해 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냉장고 세계 1등 목표도 무난하게 달성했다"며 "작년 말 홈데포와 제휴하면서 미국 4대 가전 유통업체 무대에 제품을 공급하는 등 프리미엄 가전의 시장지배력이 강화됐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가전 사업은 선진시장에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겠지만 신흥시장에서 성장해 전체 2% 내외로 성장할 것"이라며 "소비자 중심에서 혁신과 성능으로 편리성을 높인 놀랄 만한 제품을 계속 선보일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