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표 고무신 신화’의 주인공인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이 88세를 일기로 지난달 29일 오후 별세했다. 양 전 회장은 그동안 노환에 의한 폐렴 증상으로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1921년 부산에서 태어난 양 전 회장은 1947년 부산에서 부친 양태진씨와 함께 국제고무공업사를 설립했다. ‘왕자표 고무신’ 등 신발이 주력이던 이 회사는 한국전쟁 중에 군수품 납품으로 급성장했다.
이를 시작으로 국제화학, 진양화학 등을 통해 1960~70년대 신발 수출로 기업을 크게 성장시켰다. 이후 국제상사, 연합철강공업, 동서증권 등 20여 개 기업을 거느린 국제그룹을 이끌며 1980년대 재계 랭킹 7위의 반석에 올려놓은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양 전 회장은 그러나 전두환 전 대통령의 5공화국 시절인 1985년, 주력계열사였던 국제종합건설과 동서증권은 극동건설그룹에, 나머지 계열사와 국제그룹 사옥은 한일그룹에 각각 매각, 해체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해체 당시 국제그룹의 해체에는 그룹 내부의 부실외에도 ‘전 전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등 5공 정권과의 불화가 결정적이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정권이 교체된 후 양 전 회장은 그룹 해체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1993년 7월 헌법소원을 내 ‘국제그룹의 해체 결정이 헌법에 보장된 자유시장경제 원칙을 침해한 것’이라는 판결을 이끌어 냈지만, 끝내 그룹 재건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유족은 장남 양희원 ICC 대표와 사위 권영수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 이현엽 충남대 교수, 왕정홍 감사원 행정지원실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