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 진실규명' 이상한 줄다리기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1.21 12: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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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뚱맞은 고백 "나 테러범 맞다니까?"

[일요시사=정치팀] 지난 15일 밤 전 국민은 지상파 방송인 MBC를 통해 70여분간이나 황당한 진상규명을 지켜봐야만 했다. 주변에선 아니라는데 무려 115명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범이 떳떳하게 방송에 나와 "내가 진짜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또 "내가 맞다는데 왜 쓸데없는 문제제기를 하느냐? 문제제기를 하는 행위 자체가 좌파고, 그건 북한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라며 시청자들을 꾸짖기까지 했다.

문화방송 MBC는 지난 15일 밤 갑작스레 예정돼 있던 <100분토론>의 방영을 취소하고 <특별대담 마유미의 삶, 김현희의 고백>을 긴급 방송했다. 이날 방송은 '007작전'을 방불케 했다. 사건 사고 등의 긴급뉴스가 아닌 한 개인과의 대담을 이렇듯 급하게 편성하고 방송하는 경우는 유례가 없었던 일이다. 녹화도 불과 방송 7시간 전 급하게 이뤄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녹화 후 편집시간까지 따져보면 거의 생방송에 가까운 스케줄이었다.

007 기습 방송

지금은 잊혀진 이름이지만 김현희는 지난 1987년 11월29일 발생했던 KAL기 폭파사건의 주범이다. 김현희는 사건 당시 '하치야 마유미'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김현희는 일본 여권을 발급받아 바그다드 발, 서울 착 KAL 858기에 탑승해 폭탄을 설치했다. 비행기는 버마 인근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공중 폭발해 승무원과 탑승객 115명 전원이 사망했다.

폭파 후 자신의 신분이 들통 나자 김현희는 자살용 앰플을 깨물었다. 공범인 김승일(하치야 신이치)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으나 김현희는 응급처치 후 한국으로 압송됐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는 '일본인으로 위장한 북한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가 북한의 지령에 따라 88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저지른 범행'이라고 밝혔다. 김현희는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1990년 노태우 정권 시절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사건 이후 김현희는 자신을 경호했던 안기부 직원과 결혼해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두 아이의 엄마로 살고 있다.

사건 발생 후 25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KAL기 폭파사건은 그 후로도 수많은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일부에선 87년 대선 당시 여론의 조작을 위한 전두환 정권과 민정당, 안기부에 의한 자작극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실제로 당시 노태우 민정당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김영삼 후보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었으나, 사건 직후 지지율이 급상승하면서 단숨에 압도적인 1위로 올라섰고 결국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날 방송에서 김현희와 진행자 신동호 아나운서는 사건 당시의 정황과 이후 수사과정을 되짚는 한편, 인간 김현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곁들였다. 무엇보다 지난 2003년 MBC <PD수첩>의 방송으로 시작됐던 '가짜 김현희' 소동을 되짚으며 그녀가 KAL기 폭파의 진범이 맞다고 거듭 입증하는 데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다.

김현희는 "제가 가짜면 대한민국은 테러국이 되는 것이고 북한은 억울한 누명을 쓴 것이 된다"고 말했다. 또 "2003년 좌파정권이 하자는 대로 했다면 먼 훗날 저는 역사의 심판을 받았을 것"이라며 "정권이 바뀌면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로 견뎌왔다"고 했다. 자신이 저지른 테러를 입증하는 것이 대한민국이 자신을 살려준 이유이자 자신이 살아있는 이유라는 주장이었다.

김현희 특별대담, "테러범 미화" 논란 가열
MBC노조 "김재철 구하려 정치쇼 벌인 것"

한편 이날 방송은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 큰 후폭풍을 몰고 오고 있다. 방문진은 MBC 사장 임명권을 가진 기구다. 방문진이 MBC 경영에 대한 관리감독권은 몰라도 프로그램 편성에 개입하는 것은 명백한 월권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MBC는 이 같은 방송을 긴급편성 한 것일까? 일단 MBC 측은 지난 2003년 11월18일 방송된 <PD수첩-16년간의 의혹, KAL기 폭파범 김현희의 진실> 편이 편파적으로 방송돼 이에 따른 후속조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방송 관계자들은 "당시 MBC 보도에 문제가 있었다면 김현희는 언론중재위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소송의 절차를 밟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당시에는 아무런 문제제기도 하지 않다가 10년이 지난 지금 MBC 스스로 선정적인 자료화면을 곁들여가며, 1시간 동안이나 반론의 기회를 주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10년 전 자사 방송을 자사 방송을 통해 무려 70여 분에 걸쳐 신랄하게 비판하는 광경은 전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진행을 맡은 신동호 아나운서는 당시 <PD수첩> 보도에 대해 "저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MBC노동조합(위원장 정영하)은 방송 다음 날인 지난 16일 성명을 내고 이번 방송은 '김재철 MBC 사장의 생존을 위한 정치적 도구'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MBC노조 관계자는 성명을 통해 "무엇보다 김재철 경영진이 왜 지금 이 시점에 (방문진의) 요구를 방송으로 반영했는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침 인수위 활동과 2월 주총을 앞두고 김재철 거취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던 시점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번 특별대담 방송을 통해 MBC노조와 맞닿아 있는 <PD수첩>을 공격함으로써 국민들에게 MBC노조가 좌파노조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이로써 김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MBC노조를 궁지로 몰아넣기 위한 한편의 '정치쇼'였다는 주장이다.

또 한편에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MBC가 최근 인수위 운영과정에서의 여러 가지 논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박 당선인을 돕기 위해 이번 편성을 강행한 것이란 주장도 있다. 현재 전문가들은 그 실체를 정확히 파악할 순 없지만 MBC의 이번 깜짝방송이 "여론의 환기를 통해 무언가를 덮기 위한 공작"이라는 것엔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덮으려는 진실은?

일각에선 최근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MBC가 단순히 시청률을 높여 수익창출을 하기 위해 이번 특집대담을 편성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수익창출을 하려면 광고가 붙어야 하는 건데 그렇다면 미리 편성사실을 알려야 하는 것 아닌가? 아무리 시청률이 잘 나와도 이런 깜짝편성으론 수익을 얻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한 정치 전문가는 "과연 115명을 죽인 테러범을 마치 유명인사를 모시듯 방송에 출연시켜 범인이 자신이 범인임을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격분하는 장면을 방영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정치적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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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