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테마3> 부패의 덫에 걸린 사람들

‘쏠쏠한 돈맛’에 맛들이다 패가망신!

잊을 만하면 터지는 부정부패 사건으로 인해 ‘부패공화국’이란 오명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나랏돈을 받는 공직자들의 비리와 부정행각은 심각한 수준이다. 뒷돈을 받느라 민생 치안은 뒷전인 경찰에서부터 어려운 서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돈으로 자신의 배를 불린 공무원들까지 국민들에게 연일 실망감을 안겨주는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 이처럼 공직비리가 잇따르자 일부 지자체는 공무원 비리 고발자에게 주는 포상금을 2배나 늘이는 등 비리척결을 위한 노력을 하기도 한다.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든 부정부패의 덫을 추적해봤다.

직위와 권한 이용한 공직자들의 부정부패 빈번하게 일어나
복지 보조금, 재난관리기금 등 허술히 관리되는 돈에 욕심
빈틈 많은 관리체계 악용해 어려운 이들에게 돌아가야 할 돈으로 배 불려
민생 치안 책임져야 할 경찰들의 비리도 점점 악랄해져 성매매 알선까지

부정과 부패, 비리와 편법이 난무하는 세태 속에서 뒷돈을 주고받는 은밀한 모습은 일상화된 지 오래다. 뇌물을 받고 불법을 눈 감아 주거나 자신의 직책과 권한을 이용해 부정한 돈을 넘보는 일은 지금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태풍피해자 돈 부풀려
자기 통장으로 쏙쏙

이 가운데 최근 연일 뉴스화면을 장식하는 것은 나랏돈을 녹으로 받는 공직자들의 비리와 부정부패다. 오로지 돈을 위해 직업의 윤리도, 소명도 벗어 던진 일부 공직자들의 행태는 보는 이들을 한숨 쉬게 만들고 있다.
최근에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돌아가야 할 돈을 눈먼 돈으로 치부하고 몰래 횡령하는 공무원들이 잇달아 적발되어 적지 않은 파장을 낳았다. 지난 1일에는 태풍 피해자들에게 지원되어야 할 재난관리기금을 횡령한 공무원과 건설업자가 무더기로 검거됐다.

제주지방경찰청은 공사비를 부풀리는 방법 등으로 재난관리기금을 횡령하고 건설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현 제주도청 공무원 이모(54)씨와 현모(47)씨에 대해 구속영창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또 서귀포시청 재난관리 담당 국장을 비롯한 공무원 9명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와 현씨는 서귀포시청에 근무할 당시인 지난해 2월, 시청 재난관리 담당 국장과 공모해 관내 마을 이장으로부터 마을운영자금을 조성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마을에 있는 하천을 정비한 것처럼 공문서를 꾸며 5000여 만원을 지원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의 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씨 등은 지난해 12월 특정 건설업체에 특혜를 줄 것을 약속하고 뇌물까지 받았다. 이들은 11곳의 하천퇴적물 제거사업을 발주해 7개 건설업체에 장비 임대료를 부풀려 지급하는 방식으로 재난관리기금 8748만원을 지출해 이 건설업체로부터 150만원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또 다른 공무원 2명은 제주시 용담2동에 근무할 당시인 지난해 10월, 재해복구물자 구입비를 과도하게 지급한 뒤 되돌려받거나 자원봉사자 급식비 명목으로 허위지출하는 등의 수업을 써 946만원의 부정한 돈을 받아 유흥비 등에 쓴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다. 또 다른 제주시 공무원 3명은 재해복구물자 구입비나 공사인력 인건비를 과다지급한 뒤 일부를 되돌려 받는 방식으로 500여 만원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모두 2007년 여름 일어난 태풍 ‘나리’로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돌아갈 재난관리기금을 이용해 자신들의 배를 불린 것이다. 이미 지난해 11월에도 재난관리기금 8900만원을 횡령한 공무원이 무더기로 적발되어 충격을 준 뒤 같은 죄목으로 또 다른 공무원들이 무더기로 덜미를 잡힌 것.
이로써 태풍 ‘나리’ 재난관리기금 횡령액은 모두 3억4591만원으로 늘어났고 공무원 16명과 건설업자 12명 등 28명이 검거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연출됐다.

지난 2월엔 수십억원에 달하는 장애인 복지보조금을 횡령한 혐의로 서울 양천구청 소속 공무원이 덜미를 잡혔다. 이 공무원은 무려 3년 동안 장애인 수당 26억원을 횡령해 호화생활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허술한 보조금 관리의 수혜자가 된 이 공무원은 양천구청 8급 직원이었던 안모(38)씨. 안씨는 장애인 수당을 과다 신청하는 방법으로 수십억원의 돈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안씨가 장애 수당을 횡령하기 시작한 것은 2005년 5월부터다. 안씨는 장애인에게 1인당 3만원에서 20만원까지 지급되는 장애인 수당이 장애 급수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이용해 돈을 횡령했다. 낮은 급수의 장애인을 높은 급수로 올려 더 많은 돈을 신청하는 수법을 사용한 것. 이 방법으로 그는 매달 평균 9000여 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안씨는 이를 위해 자신과 부인, 장모, 어머니 등의 계좌를 빌렸다. 이 계좌에 횡령한 금액을 나눠서 입금한 것. 안씨가 횡령한 돈은 모두 26억 4400만원. 이 중 16억원은 통장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안씨는 서울 강서구에 33평형 아파트를 장만하고 벤츠승용차까지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로또 2등에 당첨됐다”고 거짓말까지 하며 호화생활을 즐기기도 했다.
이 같은 안씨의 행각은 결국 지난 2월15일 양천구의 자체 감사결과 적발됐다. 결국 안씨는 물론 상급자인 양천구 사회복지과장과 장애인복지팀장 7명도 함께 직위해제됐다.

허술한 보조금 체계
거액의 횡령 도와줘

안씨가 이처럼 오랫동안 거액을 횡령할 수 있었던 것은 허술한 복지보조금 지급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각 자치구에 지원하는 복지보조금은 담당자만이 확인 가능한 인터넷뱅킹을 통해 대상자에게 지급되는데 이 시스템이 횡령을 쉽게 한다는 것.
관리시스템 역시 안씨를 도왔다. 안씨의 상급자는 안씨가 서울시에 요청할 복지보조금에 결재를 할 때 총액만 확인하고 세부내역은 확인하지 않는 허술한 관리를 해 마음 놓고 보조금을 부풀릴 수 있도록 도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것은 복지보조금을 처리할 공무원의 수가 적다는 데 있다. 많은 기관에 복지 보조금 전달을 맡은 공무원은 1~2명의 적은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안씨도 혼자 장애인 1300여 명의 몫을 처리해 왔다. 이처럼 적은 인원이 일을 맡다 보니 담당 부서 업무가 과중되어 철저한 관리와 감독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

사실 공금을 횡령하는 공무원은 심심찮게 적발되어 왔다. 지난해 12월에는 부산 서구청의 8급 공무원이 기초생활수급자 생계비 1억여 원을 횡령해 구속되기도 했다. 이 직원이 썼던 수법 역시 안씨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수급자의 소득이 줄어든 것처럼 조작해 시에서 보조금을 더 타낸 뒤 차액을 자신의 가족 계좌로 빼돌린 것.
이처럼 복지보조금 등 공금을 횡령하는 공무원들이 늘자 정부는 사회복지 전달 체계의 대대적 개편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직자들의 부정과 비리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민중의 지팡이를 자처하는 경찰이다. 최근에는 경찰들이 한 짓이라기엔 그 정도가 심각한 비리가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 나오고 있어 공권력의 신뢰도까지 손상을 입고 있는 지경이다.

성매매업소에게 뒷돈을 받고 단속을 무마해주는 것을 넘어 성매매를 알선한 경찰까지 등장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경남지방경찰청은 지난달 31일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업주 A(41·전직 경찰관)씨와 동업자인 B(42·여)씨 등 2명을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 등은 지난해 5월부터 지난 1월까지 양산에서 무등록 유료 직업소개소(속칭 보도방)를 운영하면서 C(17)양 등 청소년 7명을 울산, 양산 일원 유흥업소에 600여 차례 소개해 주고 소개비 명목으로 이들이 받은 접대비 일부를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비리 공무원은 퇴출
강력한 제도 마련해

A씨 등은 또 같은 기간 이들 청소년에게 업소 손님을 상대로 200차례 성매매를 알선한 혐의도 받고 있다. A씨는 이 같은 비리가 알려지자지난해 11월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도를 넘어선 경찰들의 부패에 경찰청은 삼진아웃제까지 도입하며 비리근절을 다짐하기도 했다. 경찰청은 지난달 30일 경찰 비리근절 대책의 일환으로 부적격 경찰관에 대해 재교육을 실시하고 개선이 되지 않으면 영구 퇴출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일정 기준에 미달하는 경찰관은 경찰종합학교에서 4주간의 재교육을 받는다. 재교육을 받은 직원은 다른 부서로 배치돼 연 2회 부적격자 심사를 받는 등 집중적인 관리 대상이 되고 이후에도 다시 부적격 판정을 받아 개선이 되지 않으면 ‘직권면직 제도’를 통해 퇴출된다.
또 자질이 부족한 부적격자의 유입을 사전에 막기 위해 채용 과정에서 면접을 비중 있게 다루고 경찰학교 졸업사정위원회를 운영해 정밀 인성 검토를 벌이기로 했다.

경찰은 또 비리 내사 전담팀을 운용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경찰청과 지방청에 사정인력 56명을 충원해 경찰관 비위 첩보 수집 활동을 펼친다. 이와 동시에 유흥업소 밀집 지역과 경찰관련 비위사건이 빈번한 곳을 위험 관서로 지정해 예방활동을 벌인다.
또 적극적으로 비리 근절에 동참한 직원에 대해서는 성과급이 지급되며 직원들 사이에 연대책임제가 확대된다. 업주와의 유착 고리를 맺고 있는 직원이 자진신고 기간 안에 신고를 하면 면책 받을 수 있는 제도도 시행된다.

전체 공무원들의 비리를 막기 위한 ‘계급 강등제’도 시행된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1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국가공무원법’개정안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금품 및 향응수수, 공금유용ㆍ횡령 등 주요 비위행위에 대해 징계를 내릴 수 있는 징계시효가 현행 3년에서 5년으로 늘어난다. 중징계인 해임과 정직 사이에 강등제도가 신설돼 1계급 강등과 함께 정직 3개월의 처분을 내릴 수 있게 된다.

특히 금품 및 공금 비리로 강등처분을 받은 경우 다시 종전 직급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24개월의 승진제한 기간이 적용되므로 최소 2년은 기다려야 한다.
금품비리에 대한 징계수위도 1단계 상향조정된다. ‘징계의결 요구기준’을 제정ㆍ시행해 기관장의 온정적인 징계도 방지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징계를 받은 공무원이 법원이나 소청심사위원회가 절차상의 하자 등을 이유로 징계처분 무효ㆍ취소 결정을 내리더라도 반드시 재징계 의결을 요구하도록 했다.

이처럼 비리 공무원을 척결하기 위한 정부의 각종 대책에도 시민들의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뿌리 깊이 박힌 부패의 늪에서 빠져나오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한 시민은 “공직자들의 부정부패 고리를 확실히 끊을 수 있는 보다 단호한 조치가 나오기 전엔 이름뿐인 정책에 그칠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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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