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막말 종결자' 김경재 국민대통합위 수석부위원장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1.07 16:25:54
  • 댓글 0개

입만 열면 망언 내뱉는 '여의도 뻐꾸기'

[일요시사=경제1팀] 막말이 도를 넘었다. 협박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일 '편 가르기'에 앞장서고 있는 김경재 국민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 얘기다. '국민대통합'이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다. 언론, 전 대통령 후보, 전 대통령 등 타깃도 다양하다. 김 부위원장의 '막말 퍼레이드'를 짚어봤다.

"노무현 싸가지"…"좌파언론"…"오금이 저려온다"

김경재 국민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의 대선기간 막말의 시발점은 지난해 11월12일 박근혜 당선인이 호남 방문에 나섰을 때 광주역 광장에서 진행된 찬조연설이다. 이날 김 부위원장은 "광주의 사람들이 문재인이나 안아무개나 표를 찍는다는 건, 이건 민주에 대한 역적이요, 정의에 대한 배반이라고 생각하는데 여러분 제 말씀에 동의하십니까?"라고 말했다. 이틀 뒤 김 부위원장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해 검찰에 고발됐다.

"문·안 뽑으면
민주 역적"

12월5일 전남 여수 유세에서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이날 전남 여수시 서교동 서시장에서 열린 당시 박근혜 후보 지원 유세에서 "노아무개라는 사람이 국정을 농단하고 호남을 차별해 자기를 90% 찍어준 우리에게 '그 사람들이 뭐 나 좋아서 찍었겠습니까? 이회창 미워서 찍었지'라고 싸가지 없는 발언을 했다"고 비난했다. 또 "그런 식으로 호남 사람들에게 한을 맺히게 하고 우리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고 발언했다.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에 대해서는 "김대중 선생에게 90%를 찍은 것은 이해하지만 민주 무슨 당의 문아무개를 80∼90% 지지하는 것은 호남의 수치요, 불명예"라며 "노무현 비서실장이 유일한 경력인 문아무개한테 나라의 5년을 맡기는 게 말이 되느냐"는 말도 했다. 이어 "세상을 불행하게 저버린 사람에 대한 직간접적 책임이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어떻게 자식들에게 정직하게 살라고 가르칠 수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논란이 커지자 김 부위원장은 같은 날 순천 지원유세에서 "'싸가지'란 표현은 지나쳤다"고 사과하면서도 "이제와서 문아무개라는 X이 호남에 와서 또 표를 달라고 한다"고 문 전 후보를 비판했다.

박 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이 된 후에도 김 부위원장의 '막말'은 멈출 줄 몰랐다. 12월21일 PBC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서종빈 입니다>에 출연한 김 부위원장은 "만약 (박근혜 당선인이) 당선하지 않았으면 한광옥 의원과 이민을 떠날 생각을 했다. 개인적으로 천만 다행"이라고 말했다.

12월27일 MBN과의 전화인터뷰에서는 "대선 기간 동안 상대방에게 날선 비판을 하신 적이 있고 (김 부위원장이) 48% 지지자를 통합해야 하는데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는 질문에 대해 "그것은 MBN의 접근방법이다, MBN을 포함한 야권 언론매체들이, 좌파매체들이 막말이라고 보도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국민대통합 거슬러 연일 편 가르기 발언 도마
해수부 이전 주장 영호남 지역감정 조장 지적

이에 사회자가 "저희 방송은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부위원장께서 오해하신 것"이라고 말하자 김 부위원장은 "MBN이 야권지지 방송이라는 걸 천하가 다 알고 있다"고 발언했다.

'옥의 티' 인사 논란이 일고 있는 박 당선인의 윤창중 대변인 기용에 대해서는 "(문재인 전 후보를 찍은) 48%를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박 당선인을 찍은) 51%를 대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변했다.

다음 날 새누리당 당사에 인사차 방문한 자리에서 전날 자신의 발언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도 "48%도 중요하지만 51.6%, 우리를 지지해준 사람들에게 우리 정권을 탄생하게 한 보람과 긍지를 가지게 하는 게 중요하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거기(51.6%)를 기반으로 해서 나머지 48%에 대한 배려를 해야지, 그건 다 무시하고 48%에 대해서만 열심히 한다면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 우리를 지지한 사람들에게 보람을 안겨주지 못하는 것 아니냐"며 "일의 선후가 있는데, 우선 51.6% 유권자를 전제한 후에 48%를 (배려)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는 해양수산부 전남 유치와 전남도청 이전 방안 등을 공론화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김 부위원장은 "나름대로 문서를 준비하고 있다. 인수위원회에 제출해 공론에 부치려고 한다"며 "해양수산부 부활이 부산으로 가는 것으로 돼 있는데 목포로 가져갔으면 어떨까 한다"고 말했다.

했는데 안 했다고?
아니 땐 굴뚝엔…

사회자의 "박 당선인이 부산에서 그 공약을 발표했는데 전남으로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 않나"라는 질문에는 "호남 총리를 뽑는 것보다 구체적으로 피부에 닿는 정책으로 호남 민심을 어루만지는 게 낫지 않나"고 답변했다. 박 당선인의 공약인 해양수산부가 부활하면 부산 대신 전남으로 옮기고 그 장소로 전남도청 등을 활용하고 도청은 다시 광주 인근으로 이전한다는 말이다. 김 부위원장은 전남도청 이전 새 후보지로 나주와 화순 등을 구체적으로 거론하기도 했다.

이날 방송에서 김 부위원장은 그간 불거졌던 막말 논란에 대한 개인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김 부위원장은 노 전 대통령을 겨냥한 '싸가지' 발언에 대해 "돌아가신 국가원수에 대해 적절한 표현을 사용하지 못한 데 대해선 양해를 구했지만, 그 자체 사고방식엔 전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광주 사람들이 문재인, 안철수 전 후보를 뽑는 것은 민주 역적이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서는 "역적이라는 발언은 보도가 잘못된 것"이라며 "민주반역이라고 얘기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김 부위원장의 역적 발언에 대한 주장은 <일요시사> 자체 확인 결과 거짓말로 드러났다. 광주 유세 현장 녹음파일을 확인한 결과 김 부위원장은 분명 '역적' 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김 부위원장의 이 같은 막말에 민주당은 엄중한 경고를 하고 나섰다. 12월29일 김영근 민주당 부대변인은 김 위원장의 '좌파 언론' 발언에 대해 "김경재 인수위 부위원장의 이런 발언은 대선 기간에 협조하지 않은 언론에 대한 경고이자 협박에 가까운 수준이다"고 밝혔다.

해수부 호남 이전
"편 가르기" 망언

김 부대변인은 "민주당은 차기 정부 출범을 앞두고 국민의 의사와 극단적으로 반하는 일이 아니면 언급을 자제해왔다"며 "그렇더라도 김 부위원장의 발언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워낙 몰상식한 발언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김 부위원장의 말은 들은 언론인들은 '오금이 절여온다'고 말한다. 차기 정부의 언론정책이 이런 형태로 나타날까 두렵다고 얘기한다"며 "김 부위원장의 발언이 차기 정부의 언론정책 기조가 아니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꼬집었다.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위원을 지낸 이상돈 교수도 김 부위원장에 대해 실망감을 드러냈다. 12월3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이 교수는 "김 전 의원(김 부위원장)은 오랫동안 야당 생활을 하신 분이 아닌가"라며 "그 야당이라는 것이 언론의 도움 없이 성장할 수 있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그런 부분에서 과연 언론의 자유를 보는 시각이 과거 야당을 오래하셨던 분이 그것밖에 안 되는가 좀 실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극우 성향의 전원책 변호사도 김 부위원장의 해양수산부 호남 이전 주장에 대해 "공연한 분란만 일으킨 게 아니냐"고 힐난했다. 전 변호사는 12월31일 PBC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서종빈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물론 아이디어 차원이라는 것을 이해하겠는데, 그런 분란을 일으켜서 또 다른 지역감정이 자꾸 생길 것이거든요? 만약에 호남으로 가게 되면 부산사람들이 가만히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언론·전 대선후보·전 대통령 등 타깃
한다고 한 해명도 뻔히 보이는 거짓말

그는 "그것은 부산사람들이 아주 옛날부터 숙원 같은, 그런 사업이랄까 그런 희망사항"이라며 "왜 그런 분란이 일어날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그게 참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김 부위원장은 호남 출신의 유력 정치인으로 이번 대선 과정에서 박 당선인 지지를 선언하기 전까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 인사로 꼽혀왔다.

전남 여수 출신의 김 부위원장은 순천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지난 1971년 당시 김대중 신민당 대선 후보의 선전기획위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72년 박 당선인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체제 시작으로 미국으로 건너갔고, 이후 여권 취소로 15년 간 미국에 머물렀다.

김 부위원장은 미국 현지에서 <독립신문>을 창간하는 등 민주화 운동에 나섰고 '박사월'이라는 필명으로 <김형욱 회고록>을 집필하기도 했다.

1987년 6·29선언 직후 귀국한 후엔 'DJ맨'으로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에 전념했고 전남 순천에서 15, 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00년 6월 김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간의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7개월여 앞둔 1999년 11월에는 김 전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현역 국회의원으로는 최초로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
탄핵 주도세력

2002년 제16대 대선 당시에는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홍보본부장으로 선거를 도왔지만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2003년 노 전 대통령과 유시민 전 장관이 주도한 민주당 분당 과정에서 민주당에 남아 '노무현 대통령 비난 노선'으로 갈아탔고 2004년 총선을 앞두고 탄핵을 주도했다. 이후 옛 열린우리당 및 현 민주당 주류 인사들과는 거리를 둬왔다.

다변으로 화려한 말솜씨가 강점이지만 말실수도 잦은 편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지역감정 조장' '해수부 전남 이전' '대선 후보 비방' '전 대통령 비방' 외에도 2004년 "동원산업이 당시 노무현 후보 쪽에 불법 대선 자금 50억원을 전달했다"는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 현역 의원 최초로 구속·수감된 일이 대표적이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김경재 부위원장은?>

▲1942 전남 순천 출생
▲서울대 정치학과 졸
▲김대중 신민당 대통령후보 선전기획위원
▲평화민주당 총재 보좌역
▲15·16대 국회의원
▲새정치국민회의 원내부총무·총재 비서실장
▲민주당 중앙위원·최고위원
▲새누리당 100% 대한민국 국민대통합위 기획조정 특보

 

<민주 '밀실 4인방'교체 촉구>

"수첩·밀봉 스타일 버려라"

김경재 부위원장은 윤창중 인수위 수석대변인, 윤상규·하지원 청년특별위원과 함께 '밀봉 4인방'이라고 불린다.

박기춘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30일 원내대표단 회의에서 "보복과 분열의 나팔수인 윤 수석대변인, 돈봉투를 받은 하 청년특별위원, 하청업자에게 하도급 대금도 제때 안주면서 이자를 떼어먹은 사람, 대선 때 호남민을 역적으로 매도하고 대선 후 언론을 협박했던 김 부위원장에 대한 인사가 온당한가"라고 비판했다.

그는 "소통은 사라지고 봉투만 남았다는 말도 있다. 수첩스타일, 밀봉스타일을 버리라는 것"이라며 "박 당선인은 진정한 국민통합과 법치, 경제민주화를 바란다면 밀봉 4인방을 즉시 교체해달라"고 촉구했다. 이어 "새누리당도 이들에 대한 철회를 요청해야 한다"며 "향후 당정청 관계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