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특집] '한국경제 초비상' 10대그룹 총수 '2013로드맵'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1.04 16:5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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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터널 지나니…혹독한 가시밭 험로

[일요시사=경제1팀]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국내 10대 그룹 총수들도 하나쯤은 걱정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MB정부가 저물어가고 새 정부가 뜨는 이 시점에는 더욱 그러하다. 게다가 올해 경기는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불투명해 총수들의 미간은 펴질 줄 모른다. 10대 그룹 총수들, 어떤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을까. 10대 그룹 총수의 어제와 내일을 비교해 봤다.


집안 문제로 뒤숭숭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2012년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취임한지 25주년이 된 해다. 이 회장 취임 이후 삼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국가 경제에 큰 몫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지난해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는 최대 호황을 누렸다. 삼성전자 영업이익 70%(15조원)이 휴대폰 사업을 통해 이뤄졌다. 장남 이재용 부회장으로 이어지는 후계구도도 더욱 공고해졌다.

고민도 있다. 맏형인 이맹희씨와의 상속분쟁과 CJ그룹과의 갈등이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이자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부친인 이맹희씨는 지난해 2월 동생인 이 회장과 삼성에버랜드를 상대로 삼성생명·전자 주직을 돌려달라는 상속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이 회장의 누나인 이숙희씨, 조카 며느리, 그의 자식들까지 가세한 삼성가 소송은 상속 소송으로는 단군 이래 최대 규모로 불거졌다. 소송금액만 4조원 규모다.

형제간의 감정대립은 선대회장의 추모식까지 파행으로 이어졌다. CJ측은 삼성이 정문 출입 요구를 계속 거부했다고 비난했고 삼성 측은 참배를 못하게 길을 막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결국 추모식은 반쪽으로 치러졌다.

재계를 대표하는 기업이 삼성이라는 점도 이 회장을 난처하게 하는 부분 중 하나다. 경제민주화 열풍에 삼성이 그 주요 타깃이 되고 있는 것. 압도적인 1등이라는 점에서 담합 문제, 일감 몰아주기, 무노조 원칙에 대한 비판과 질타의 수위도 높다.

2013년 당장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사업 편중성이다. 무선사업부의 선전에 힘입어 승승장구 하고 있지만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다른 사업부와의 시너지 창출도 중요하다.


글로벌 침체 초비상 정몽구 현대차 회장

현대자동차그룹은 2012년 글로벌 700만대 판매를 돌파했고, 브라질 공장을 완공해 남미 시장 공략의 교두보로 삼는 등 충분한 성장을 이뤘다. 현대·기아차의 11월까지 세게 시장 누적 점유율은 3.4%, 2.7%로 지난해 대비 각각 0.5%p 올라 올해 6%대 달성이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걱정거리였던 지난해 10월 '미국 과장연비 사태'는 직접 미국 출장에 오른 정몽구 회장의 발 빠른 대처로 무사히 진화됐다.

문제는 내수시장이다. 하반기 들어 세제혜택 등이 맞물려 회복세를 보였지만 전반적으로는 하락세였다. 한-미 FTA와 한-EU FTA, 개별소비세 인하로 수입차의 가격이 낮아진 것이 이유다. 2013년 내수시장 판매목표는 아직 확정하지는 않았으나 현대차는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기아차는 목표를 하향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은 내수 시장을 다지는 데 전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소비심리 위축에 따른 내수시장 침체가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더 이상 수입차들에게 시장을 내주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재판 결과 기다리는 최태원 SK 회장

최태원 회장은 지난해 12월 말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직을 내려놓고 김창근 부회장에게 의장직을 물려줬다.수펙스추구협의회는 1998년 선경경영협의회라는 이름이 바뀐 것으로 대기업의 사장단 회의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최 회장은 SK주식회사·SK이노베이션·SK하이닉스의 대표이사 회장직을 계속 유지하게 된다. 최 회장은 1년에 3분의 1정도는 해외에서 머물면서 해외사업에 매진할 예정이다. 수펙스 의장직을 내려놓은 것도 이와 맥락을 함께한다.

다만 오는 1월31일 선고공판이 예정되어 있어 결과에 따라 최 회장의 행보는 달라질 수 있다. 최 회장은 2008년 선물에 투자하기 위해 SK계열사 자금 497억원을 빼돌리고 2005년부터 5년여 간 그룹 임원들에게 지급하는 상여금을 부풀리는 방법으로 약 139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재판을 받고 1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최 회장의 동생 최재원 수석부회장도 최 회장과 공모해 자금을 횡령하는 등 총 1943억원의 횡령·배임 혐의로 징역 5년이 구형됐다.

스마트폰에 사활 건 구본무 LG 회장

피처폰 시절 휴대폰 명가로 불렸던 LG전자는 스마트폰 시대에 들어서 부진을 거듭했다. 지난 2010년을 전후로 대규모 적자가 발생하는 등 경영이 급격히 악화됐다. 구본무 회장은 조직 내부의 체질개선에서 해답을 찾았다. 지난해에만 6차례 임원들에게 체질개선을 주문했다.

LG그룹은 스마트폰 사업 정상화에 회사의 역량을 집중, 2011년 9월 '구본무폰'이라고 불리느 '옵티머스G'를 출시했다. '회장님폰'은 출시와 동시에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예전 '휴대폰 명가'의 명성을 되찾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다.

따라서 LG그룹의 새해 경영화두는 '시장선도'와 '실천'이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구 회장은 최근 열린 임원세미나에서 "시장 선도를 향한 실행이 더욱 강조되고 한층 강화되어야 할 것"이라며 "철저한 실행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단지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룹 교통정리 골치 신동빈 롯데 회장

MB정권서 승승장구하던 롯데그룹은 사면초가에 빠졌다. '잠실 제2롯데월드 건축 허가' '맥주사업 진출' '유통 확대' 등 특혜에 가까운 수혜를 받으며 고속성장 해온 롯데는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중소상인들의 조준 대상이 되고 있다. 정권 말 '역풍'을 맞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신동빈 회장이 꺼내들 2013년 경영전략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단 롯데그룹은 그룹 재정비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2002년 이후 크고 작은 M&A만 30개에 육박할 정도로 롯데그룹은 그간 다양한 분야의 사업에 진출했다. 덩치가 커진 만큼 교통정리는 필수라는 얘기다.

지난해 2월 '부'를 떼고 '회장'으로 경영 일선에 나선 신 회장은 나이가 많거나 오래 머무른 임원들을 용퇴시키고 젊은 피로 수혈했다. 지난해 대대적 인사를 벌인 만큼 올해에는 눈에 띄는 조직개편과 인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장기계획보다는 단기계획에 힘을 쏟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세계적 경제불황 예고…외실 보단 내실 다지기
"지금이 기회다" 과감한 투자 등 신사업 발굴도


오너경영 강화한 허창수 GS 회장

허창수 회장의 고민은 GS그룹이 내수와 에너지 사업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다. GS그룹은 매출 70% 정도를 GS칼텍스에 의지하고 있고 GS리테일과 GS홈쇼핑 등 대부분 내수 기반 산업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허 회장은 경기침체 속에서도 과감한 투자를 단행하는 등 신성장 동력 발굴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밝혀 주목을 받고 있다. 허 회장은 지난해 12월 열린 4분기 그룹 임원모임에서 "내년 사업계획에는 먼 미래를 보는 안목을 바탕으로 꼭 필요한 투자를 가려내고 과감하게 실행하는 '원대한 구상'을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총수 일가의 이동도 허 회장의 뜻을 뒷받침한다. 허 회장의 친동생인 허진수 GS칼텍스 부회장이 GS칼텍스 대표로 선임됐으며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은 GS칼텍스와 GS에너지 이사회 의장직을 맡아 신재생 에너지 등 신성장 사업에 집중하도록 했다.

KAI 아리송 행보 조양호 한진 회장

지난해 9월 대한항공은 인천국제공항급유시설 입찰에 실패했다. 급유시설 간부가 직원들에게 운영권이 한진 측에 내정됐다는 발언을 한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가능성은 불투명해졌고 한진과 MB정부의 유착 의혹이 제기되면서 강한 비난을 받았다. 결국 급유시설 운영권은 아시아나에 넘어갔다.


하지만 무엇보다 조양호 회장의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은 KAI 인수 불발이다. 지난해 12월17일 진행된 KAI매각을 위한 본입찰 결과 현대중공업만 본입찰서를 제출해 2차 KAI매각이 유찰됐다. 조 회장은 인수가격이 지나치게 높아졌다며 대한항공의 본입찰 불참 배경을 밝혔다. 수의계약으로 진행될 재입찰 참여 여부도 인수 가격 수준에 따라 불확실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나 "10년을 기다렸는데 조금 더 못기다리겠느냐"며 인수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조 회장의 2013 경영전략은 '새 시장 개척'이다. 대한항공은 적극적인 해외 시장 개척을 통해 글러벌 네트워크를 강화할 예정이며 한진은 동남아 신흥국가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중동, 아프리카, 남미 등으로도 진출을 확대할 방침이다.

창사이래 최대위기 김승연 한화 회장

한화그룹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신성장 동력인 태양광 사업이 글로벌 경기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경영공백까지 더해졌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다.

왕성한 활동을 벌이던 김승연 회장은 지난 8월 법정 구속이라는 큰 암초를 만났다. 10대 그룹 총수로는 처음이었다. 김 회장은 위장 계열사의 채무를 그룹 계열사가 대신 갚도록 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배임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 항소 중에 있다. 지난해 12월5일에는 김 회장의 보석 신청도 기각됐다.

지난해 5월 우리나라 해외건설 역사상 최대이자 해외 신도시 건설 노하우 수출 1호로 한화건설이 80억 달러에 수주한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프로젝트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사업단 인력, 협력업체 직원, 제3국인 등이 거주할 캠프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지만 앞으로 초대형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서는 한화그룹의 경영공백이 조기에 해결돼야 한다고 건설업계가 지적하고 있다. 100억 달러 규모로 추산되는 이라크 2, 3단계 프로젝트 수주활동에 힘을 실어줄 수 없기 때문이다.

M&A 후유증 겪는 박용만 두산 회장

두산그룹 주요계열사 두산인프라코어는 올해 실적전망을 매출 10조28억원, 영업이익 8510억원으로 잡았다가 매출 9조2000억원, 영업이익 6700억원으로 수정했지만 이마저도 달성이 쉽지 않다. 2012년 3분기까지 매출 6조3823억원, 영업이익 3626억원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49억원을 투입해 인수한 미국 밥캣이 2012년 들어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M&A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최근에는 두산캐피탈 매각도 실패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게 될 전망이다. 두산그룹은 공정거래법상 일반 지주회사가 금융회사를 소유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조항으로 2012년 내 두산캐피탈을 매각해야만 했다. 

10대 그룹 중 가장 큰 폭으로 시가총액이 떨어지는 굴욕도 맛봐야 했다. 지난 12월2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두산그룹 시총은 2011년 15조1000억원에서 지난해 말 11조4000억원으로 24.10% 하락했다.

박 회장은 이럴 때 일수록 인재경영과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2013년 경영스타일도 소통이 중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은 대기업 경영자로는 드물게 총 14만9000여명의 팔로워가 뒤따르는 트위터 스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두산그룹 TV광고를 통해 강조하고 있는 '사람이 미래다'라는 문구 역시 박 회장이 직접 쓴 글이다. 그는 "사람이 자산인 기업은 업종이 바뀌어도 경영상황이 변해도 살아남는다"며 "두산그룹이 대표기업"이라고 강조했다.

재무구조 개선 진땀 강덕수 STX 회장

STX그룹은 유럽발 금융위기 이후 장기불황 국면에 접어들면서 어려움을 겪어왔다.

강덕수 회장은 최근 STX팬오션을 매각키로 했다. STX팬오션은 STX그룹 성장의 발판이 된 주요 계열사 중 하나다. 그런데도 STX팬오션을 매각키로 한 것은 그만큼 STX의 위기가 뚜렷해졌다는 뜻이다. 이에 앞서 STX그룹은 유럽의 조선 자회사인 STX OSV를 이탈리아 조선업체에 매각을 확정했다.

강 회장은 STX팬오션 외에도 중국에 있는 조선계열사 STX다롄 자본 유치, STX메탈과 STX중공업의 합병, 해외 자원개발 지분 매각 등 추가적인 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업계는 STX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재무구조 작업이 모두 마무리된다면 부채감소와 더불어 2조원 이상의 현금이 확보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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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