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특집] 2013년 뒤흔들 정치권 5대 핫이슈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1.03 17: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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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약과 몰락 갈림길 "첫끗발이 중요하다"

[일요시사=정치팀] 2012년은 그 어느 해보다도 다사다난한 해였다. 그만큼 2013년을 맞이하는 국민들의 기대감은 고조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사상 최초의 여성대통령 시대를 눈 앞에 두고 있다. 과연 박근혜 당선인은 국민들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할 수 있을까. <일요시사>가 선정한 2013년 정치권 5대 이슈를 통해 박근혜 정권의 성공여부를 가늠해 보자.

선거운동 기간 내내 '민생'을 외쳐온 박근혜 정부가 출범을 앞두고 있다. 국민들은 박 당선인의 장밋빛 공약으로 기대치가 한껏 높아졌지만 국내외 상황은 그리 만만치가 않다. 유럽 재정위기의 장기화와 미국 재정절벽 가시화 등 대외적인 불확실성이 여전한 가운데 경제 전문가들은 2013년 상반기에도 올해와 같은 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역시 새해에도 전반적인 경기 침체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전망이다.

게다가 더 심각한 문제는 경제 침체에 따라 세수입이 예상보다 대폭 줄어드는 상황도 피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현재도 정부는 세수펑크에 따른 '돈 부족' 현상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양극화와 빈곤의 확대, 중산층의 몰락, 가계부채의 폭발적 증가 등 박 당선인이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더미처럼 많지만 박 당선인이 선거기간 내세웠던 장밋빛 공약들을 실천하기엔 현실의 벽이 높기만 하다.

장밋빛 공약
현실의 벽

이처럼 다가올 2013년 국민들이 가장 관심을 가질 정치권 이슈는 바로 박근혜 정권 1년의 성적표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넘어서는 성군이 될 것인지, 독재자의 딸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할 것인지는 불과 1년 안에 판가름 날 것이다.

일단 전문가들은 박 당선인이 선거운동 기간 내세웠던 공약들을 모두 지키기엔 무리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박 당선인이 선거운동 기간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중심으로 쏟아낸 공약들만 무려 201개에 달한다. 그 공약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소요재원만 131조원에 이른다. 벌써부터 국회에선 새해 박 당선인의 공약 실천을 위한 6조원 예산을 놓고 실랑이가 한창이다.


보수 진영에선 박 당선인이 선거 기간 중 내세운 공약 중 우선 순위를 정하고 후유증이 예상되는 공약들은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실에 맞게 국민의 기대치를 낮추지 못하면 임기 내내 박 당선인의 발목을 잡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 5년 성공 여부, 출범 첫해가 가늠자
경기침체 첫 관문…세수펑크로 공약차질 불가피

일례로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대통령을 표방하며 처음부터 실현 가능성이 낮았던 747 공약을 끝까지 고집하다 임기 내내 거센 비판을 받고, 종국엔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꼬리표까지 달아야 했다.

한편으론 불도저식 약속 이행이 더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평소 원칙과 신뢰를 강조해왔던 박 당선인이었던 만큼 국가재정 건전성의 하락을 감수하고서라도 공약을 지키려 들것이란 예상이다. 실제로 박 당선인과 새누리당 측은 새해예산안 심사과정에서 국채를 발행해서라도 공약 실천을 위한 6조원 예산을 반영해야 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현재 국회에서 새누리당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박 당선인이 마음만 먹는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어찌됐든 그동안의 역대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박 당선인의 취임 1년 성적표도 국민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키기는 현실적으로 힘들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두 번째 이슈는 풀리지 않은 박근혜 당선인의 각종 의혹이다. 대선 승리와 함께 박 당선인의 각종 의혹 역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것 아니냐는 예측도 있으나 전문가들은 오히려 박 당선인이 대선에서 승리함으로서 진실공방이 더욱 가열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공약 말 바꾸기?
불도저식 공약이행?


지난 2007년 대선의 경우를 보더라도 선거 막판 불거졌던 이명박 대통령의 BBK 주가조작 의혹은 임기 시작과 함께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대통령은 이외에도 수많은 의혹에 시달리며 국정장악력에 큰 타격을 받았으며 국정지지도 역시 곤두박질 치고 말았다.

박 당선인 역시 선거기간 동안 이 대통령 못지 않은 각종 의혹에 시달렸다. 때문에 2013년에는 박 당선인의 각종 의혹들이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오르며 정치권을 뜨겁게 달굴 것이란 예상이다.

특히 2007년 대선 경선 때부터 불거져 나온 고 최태민 목사와의 유착의혹은 최근 최 목사의 딸들이 강남 일대에 수백억원대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나면서 그 의혹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박 당선인을 처음 만날 때까지만 해도 최 목사 일가는 이렇다 할 재산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외에도 민주통합당이 선거 과정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강탈된 4대 재산으로 규정하고 꾸준히 문제 제기를 해온 정수장학회, 육영재단, 영남재단, 한국문화재단을 둘러싼 의혹들도 여전히 남아있다. 또 박 당선인이 취임 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복권운동에 나설 경우 박 전 대통령 시절 벌어졌던 고 장준하 선생 암살 의혹 등과 같은 각종 의혹들도 중요한 정치이슈로 전면에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세 번째는 이명박 대통령의 운명이다. 역대 정권 교체기에는 늘 전직 대통령의 비리문제로 정국이 시끄러웠다. 박 당선인이 취임하는 2013년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정치 검찰이다 뭐다 하는데 정권이 바뀌고 나면 전 정권에 대한 비리 제보들이 줄을 잇는다. 제보가 있는데 수사를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가 아니냐"며 억울한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일각에선 박 당선인이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을 지켜보며 이 대통령이 가장 크게 기뻐했을 것이란 분석도 있지만 이는 지켜볼 일이다. 박 당선인이 취임 원년 여론의 거센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대통령을 지켜줄 이유는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위태로운 MB
검찰 칼 빼들까?

또 최근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받고 바짝 독이 오른 검찰이 자체적으로 전 정권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해 폐지논란을 겪고 있는 중수부 등의 필요성을 부각시키려 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네 번째는 대통합의 성공 여부다. 이번 대선을 통해 우리나라는 세대 간, 진영 간, 지역 간으로 완벽하게 양쪽으로 나뉘어졌다. 박 당선인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탕평의 실현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과연 대탕평의 실현이 실질적으로 가능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조선시대의 황금기로 꼽히는 영·정조 시대에도 제1의 국정철학은 '탕평'이었다.

특히 왕세제 시절 노론과 소론의 당쟁에 그야말로 '학을 뗀' 영조는 즉위하자마자 탕평을 제1의 국정철학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은 영·정조 시대의 탕평도 결과적으론 성공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형식적인 안배와 산술적인 균형 유지에만 신경을 쓰다보니 정작 필요한 인재를 등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게다가 탕평정책을 통해 등용된 정치세력이 제3, 제4의 당파를 만들어내면서 붕당정치의 폐해는 고스란히 남았다.

이 같은 역사를 되짚어볼 때 박 당선인의 대통합 역시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따라서 박 당선인의 내각 구성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 당선인의 첫 내각 구성은 대통합의 성공여부를 가늠할 척도가 될 것이다. 박 당선인이 취임 후 양쪽으로 나뉜 민심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다면 취임 첫 해는 의미없는 정쟁에 시달리다 끝맺을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야권의 재기 가능성이다. 대선 패배 이후 야권은 표류하고 있다. 2013년에는 민주통합당이 이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 기사회생해 5년 뒤 정권 교체 세력으로 다시 부상할 수 있을지가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를 전망이다.

현재 민주당 내에서도 "민주당은 끝났다"는 말이 나온다. '발전적 해체'가 공공연히 거론될 정도다. 게다가 이번 대선에서 중도층으로 평가되는 상당수 유권자가 박 당선인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당 내부에선 당의 우클릭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향후 당의 노선을 둘러싼 치열한 대립이 예상되는 이유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 이후 유지되어왔던 진보정당들과의 연대를 둘러싼 논쟁도 뜨겁다.

민주당의 운명은?
안철수에 쏠린 눈

이와 함께 현재 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안철수 전 대선 후보가 귀국했을 때는 야권의 재편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안 전 후보의 신당창당이나 민주당 입당 등의 선택에 따라 다양한 시나리오가 예상된다. 특히 2013년 4월경 치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재보궐 선거는 향후 야권 부활의 가능성을 가늠해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야권의 재기 여부에 따라 2013년 정국은 크게 요동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2013년 정치권도 평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상 첫 여성대통령의 탄생으로 우리나라가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을지 국민들의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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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