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추적] 유치원 입학대란 요지경 실태

"대입보다 치열" 가족 총동원 007 눈치작전

[일요시사=사회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운 아이 유치원 보내기. 그야말로 전쟁터나 다름없다. 만삭일 때부터 국·공립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줄을 잇는 산모들, 맞벌이 딸 대신에 새벽부터 꽁꽁 언 발을 싸매고 표 추첨을 기다리는 할머니 등 유치원 입학에 시름을 앓고 있다. 아이들 교육의 시발점인 유치원 입학 대란을 살펴봤다.

“일을 그만둬야 하나 걱정이에요.”

유치원 추첨을 기다리던 한 맞벌이 학부모 이모씨가 한숨을 쉬며 털어놓았던 말이다. 유치원 추첨에서 아쉽게 떨어져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까지 그만둬야할 상황에 놓였기 때문. 이씨는 말단 공무원 남편과 결혼해 맞벌이를 하며 어렵게 가정을 꾸려나갔다. 돈 모으기 전까지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2년 만에 예쁜 딸을 갖게 됐고, 현재 그 아이가 유치원에 가게 될 나이에 접어들었다.

유치원 교육 필수에
입학추첨 대란 일어

아이가 어릴 때는 친정엄마가 종종 봐주거나 전업주부인 여동생이 봐주곤 했지만 지금의 상황은 달라졌다. 조기교육이 중요하다고 매스컴에서 하도 떠들어대는 통에 유치원 교육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코스가 돼버렸고,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유치원 입학에 온 힘을 쏟는다.

이씨는 “지금 추첨이 안 되면 당장이라도 일을 그만 둬야 하는 판이다. 나 같은 맞벌이 주부들은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정부가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도 않고 무책임한 법안만 내놓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라고 전했다.


5살 된 손자를 유치원에 입학시키기 위해 추첨을 기다리던 한 할머니는 “유치원에 보내는 것을 뭐 이렇게 어렵게 해놓았냐”며 “이렇게 해서 애들이 어떻게 공부하겠나. 돈 없으면 애들 유치원도 제대로 못 보내는 나라에서 서민들은 어떻게 살겠나”라고 한탄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사립유치원의 횡포로 정부보조금은 유명무실이 될 만큼 원비는 50% 이상 올라 양육비에도 큰 타격이 예상되고 있다. 내년부터 정부가 지원해주는 29만원 보육비 덕 좀 볼까 생각했던 99%의 서민들은 김칫국만 마신 된 꼴이 됐다.

140만명 중 40%만 입학 가능…추첨에 ‘발 동동’
당첨 불확실성 대비 중복지원…대리출석 촌극도

실제로 한 유치원은 올해 57만원이던 유치원비를 내년부터는 73만원으로 책정했다. 즉 70% 가량 원비를 올린 것. 무상 보육비를 받아도 학부모 부담은 크게 줄지 않는다. 이에 막무가내로 원비를 올린 유치원 측은 물가 탓으로 돌리고 있다. 모 유치원 원장은 “올해 같은 경우에는 원비 상승폭이 꽤 큰 편이거든요. 워낙 물가가 많이 올랐고, 인건비도 많이 나가고 저희도 힘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많은 맞벌이 부부들은 국·공립 유치원 입학은 엄두도 내지 못 하고 일반 사립유치원에라도 보낼 수 있을까 전전긍긍 하고 있다. 하지만 사립유치원의 교육비가 소위 대학 등록금 수준에 육박해 아이를 둔 부모들의 걱정은 날로 더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우여곡절 끝에 유치원 입학 추첨에 성공해 유치원에 보내기는 했지만 넘어야 할 또 다른 관문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많은 학부모들은 5세 미만으로 확대된 정부의 무상보육지원정책으로 유아 교육비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전국 대부분의 유치원들이 벌써부터 월 교육비를 5∼10% 가량 인상키로 결정했기 때문.

예로 경기도의 모 사립유치원은 지난해 42만5000원이던 월 교육비와 18만원이던 방과 후 교육비를 각각 5% 인상하기로 했으며, 또 다른 유치원도 35만원의 교육비 10% 인상을 고려중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부 유치원은 월 교육비 대신 입학비와 기타 경비를 인상하거나 타 유치원의 동향을 살피는 등 눈치작전을 펼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따라 학부모들은 ‘유치원 입학 대란’이라 불릴 정도로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자녀를 유치원에 보내도 또다시 학비를 걱정해야 할 판에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다.


유치원 입학 전쟁
서민들만의 고충 아냐

교육과학기술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전국 17개 시·도 만 3세의 월 교육비는 국·공립 7만1810원, 사립 42만8793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이어 만 4세는 국·공립 10만2728원, 사립 44만3252원 정도가 들고 만 5세 이상은 국·공립 8만8637원, 사립은 44만395원이 소요된다.

대선을 앞두고 정부가 무상보육지원 확대정책을 내놓으며 내년부터 아이 1명 당 22만원 씩 보육비를 지원해주겠다고 선언했지만, 지원비만큼 원비를 함께 올리는 악덕 유치원들이 잇따라 증가하고 있어 사실상 무상보육정책은 실효성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처지가 됐다. 이에 학부모들은 당초 안고 있던 부담이 더 가중돼 긴 한숨만 내쉬고 있다.

하지만 유치원 입학경쟁은 비단 서민들만 겪는 고충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은 돈이 있어도 유치원에 못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내년 유치원에 입학할 만 4∼5세 어린이는 약 140만 명 정도인 것으로 추산됐지만 그 중 전국의 유치원 수용 인원은 61만명 남짓이다. 즉 유치원 총 입학원생 중 40% 정도만 유치원에 갈 수 있게 된 셈이다.

2013년 입학을 위해 실시된 서울의 모 유치원 원생 추첨에는 140명이 정원이다. 추첨과정은 참담했다. 입학 추첨에 지원한 학부모는 정원의 두 배 이상을 웃도는 350여 명이 몰렸기 때문. 이중 14명을 선발하는 ‘만 3세 기본교육과정’ 일반전형에 지원한 학부모는 총 118명으로 경쟁률이 9대 1에 육박했다. 결국 학부모들은 정부 지원금을 받고도 원비를 올린 유치원에 아이를 맡기거나 상대적으로 원비가 훨씬 비싼 영어 유치원이나 놀이학교를 찾아야 했다.

일례로 서울 강남의 모 놀이학교는 매달 150만원을 웃도는 월비를 챙기고 있다. 이 놀이학교의 교육비는 약 70여만원. 여기에 재료비 21만원과 방과 후 활동비, 식대 등을 포함하면 사립 유치원 못지않게 비싼 금액이다. 물론 놀이학교 측은 정부 지원금은 받고 있지만 학부모 측에 무상보육비로 지급될 금액은 교육비에 포함될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많은 학부모들은 정부 보조금이라도 더 챙기기 위해 일반 국·공립이나 사립유치원을 선호하고 있다.

사립유치원 추첨에 지원했다가 한 번에 당첨된 분당의 30대 주부 최모씨는 “원서를 여러 군데 넣어볼까 생각했는데 다행히 1곳에 넣은 곳에 입학하게 됐다. 당첨이 되자 여기저기서 ‘좋겠다’, ‘정말 잘 됐네’ 등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며 “발표 때까지 초조한 심정으로 기다렸는데 운이 따른 것 같다. 또래 이웃들은 대부분 추첨에서 떨어져 결국 비싼 영어 유치원에 보내게 됐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출산율 늘리기와
무상보육의 아이러니 

그렇다면 왜 이렇게 유치원 입학이 어려워진 것일까. 전문가들은 가장 큰 원인이 무상보육정책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올해 1년 동안 만 0∼2세와 5세에 대한 무상보육이 처음으로 실시됐는데, 내년부터 만 3∼4세까지 무상보육이 확대되면서 유치원 지원자 수가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 국민 모두가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려 하니 시설이 모자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특히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일부 사립유치원은 경쟁률이 11대 1에 달하면서 추첨 경쟁에 몰리고 있다. 예비 유치원생을 둔 일부 학부모들은 1, 2순위 유치원에서의 당첨 불확실성에 대비해 과거 대입시절에 쓰던 동일한 수법으로 4∼5군데씩 원서를 집어넣는가 하면 추첨일이 중복될 경우 가족들을 동원해 대리추첨을 하는 등 촌극도 벌이고 있다.

서울 관악구에서 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있는 학부모 오모씨는 “유치원비 인상으로 정부 무상보육은 말짱 도루묵이 될 텐데 내년에 시행될 지원 확대가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다. 정부가 기본적으로 원비를 규제하지 않는다면 결국 악덕 유치원만 배불리는 꼴이나 다름없지 않은가”라고 비판했다.

사립 원비 70만원으로 올려 정부 보조비 소용없어
원측, 물가·인건비 이유로 70%↑…횡포 속수무책

결국 아쉬운 쪽은 학부모다. 무상보육제도가 실시됨에 따라 각종 언론에서는 ‘서민을 위한 정책이다’라며 정부를 서민경제의 축이라고 칭송했다. 반면 실제 시행되고 있는 정책의 효과는 미미할 뿐 아니라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오고 있다. 정부에서 어린이집과 유치원비에 대한 정확한 규제를 마련하지 않으니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교육기관들은 정부 지원금 받고도 월 교육비와 입학비 등을 대거 올리며 배짱영업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것. 결국 출산율을 높이자는 정부의 바람과 내년에 시행될 보육정책은 모순정책으로 변질된 셈이다. 


유치원 추첨에 7차례나 떨어진 주부 한모씨는 “주위에서 ‘얼마나 좋은 유치원에 보내려고 그렇게 애를 쓰세요?’라고 묻더라고요. 제 속이 타들어가는 심정도 모르면서. 7번이나 떨어지니 포기 할만도 한데 다들 (유치원에)보내니까 제 아이만 안 보내면 이상하잖아요. 괜히 자격지심도 생기는 것 같고…”라며 씁쓸해했다.

또 다른 주부 윤모씨는 “아이는 많이 낳으라고 큰 소리 치면서 정작 아이를 키울 학부모를 위해 기본적인 문제도 해결하지 않으니 정부 정책도 믿을 수가 없고 책임감도 없어 보인다”며 “이런 악순환이 지속되면 돈이 무서워서 도대체 누가 아이를 낳으려 하겠나”라고 지탄했다.

보여주기 정책보다
실용적인 정책 우선

최근 유치원 입학을 두고 주위에서는 ‘로또’ 혹은 ‘바늘에 실 꿰기’라고 비유한다. 그만큼 당첨확률이 낮다는 의미다. 국·공립 유치원을 아무리 늘려도 아이들 수에 비하면 현저히 부족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정부 지원금 받고도 원비를 올리는 일부 유치원의 배짱 영업, 무상보육비를 부담하고도 이런 현실을 통제 못 하는 정부로 인해 학부모만 유치원 추첨에 떨어져서 한 번 울고, 비싼 유치원비에 두 번 우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할 것이다.

김지선 기자 jisun86@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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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