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추적] 유치원 입학대란 요지경 실태

"대입보다 치열" 가족 총동원 007 눈치작전

[일요시사=사회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운 아이 유치원 보내기. 그야말로 전쟁터나 다름없다. 만삭일 때부터 국·공립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줄을 잇는 산모들, 맞벌이 딸 대신에 새벽부터 꽁꽁 언 발을 싸매고 표 추첨을 기다리는 할머니 등 유치원 입학에 시름을 앓고 있다. 아이들 교육의 시발점인 유치원 입학 대란을 살펴봤다.

“일을 그만둬야 하나 걱정이에요.”

유치원 추첨을 기다리던 한 맞벌이 학부모 이모씨가 한숨을 쉬며 털어놓았던 말이다. 유치원 추첨에서 아쉽게 떨어져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까지 그만둬야할 상황에 놓였기 때문. 이씨는 말단 공무원 남편과 결혼해 맞벌이를 하며 어렵게 가정을 꾸려나갔다. 돈 모으기 전까지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2년 만에 예쁜 딸을 갖게 됐고, 현재 그 아이가 유치원에 가게 될 나이에 접어들었다.

유치원 교육 필수에
입학추첨 대란 일어

아이가 어릴 때는 친정엄마가 종종 봐주거나 전업주부인 여동생이 봐주곤 했지만 지금의 상황은 달라졌다. 조기교육이 중요하다고 매스컴에서 하도 떠들어대는 통에 유치원 교육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코스가 돼버렸고,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유치원 입학에 온 힘을 쏟는다.

이씨는 “지금 추첨이 안 되면 당장이라도 일을 그만 둬야 하는 판이다. 나 같은 맞벌이 주부들은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정부가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도 않고 무책임한 법안만 내놓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라고 전했다.


5살 된 손자를 유치원에 입학시키기 위해 추첨을 기다리던 한 할머니는 “유치원에 보내는 것을 뭐 이렇게 어렵게 해놓았냐”며 “이렇게 해서 애들이 어떻게 공부하겠나. 돈 없으면 애들 유치원도 제대로 못 보내는 나라에서 서민들은 어떻게 살겠나”라고 한탄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사립유치원의 횡포로 정부보조금은 유명무실이 될 만큼 원비는 50% 이상 올라 양육비에도 큰 타격이 예상되고 있다. 내년부터 정부가 지원해주는 29만원 보육비 덕 좀 볼까 생각했던 99%의 서민들은 김칫국만 마신 된 꼴이 됐다.

140만명 중 40%만 입학 가능…추첨에 ‘발 동동’
당첨 불확실성 대비 중복지원…대리출석 촌극도

실제로 한 유치원은 올해 57만원이던 유치원비를 내년부터는 73만원으로 책정했다. 즉 70% 가량 원비를 올린 것. 무상 보육비를 받아도 학부모 부담은 크게 줄지 않는다. 이에 막무가내로 원비를 올린 유치원 측은 물가 탓으로 돌리고 있다. 모 유치원 원장은 “올해 같은 경우에는 원비 상승폭이 꽤 큰 편이거든요. 워낙 물가가 많이 올랐고, 인건비도 많이 나가고 저희도 힘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많은 맞벌이 부부들은 국·공립 유치원 입학은 엄두도 내지 못 하고 일반 사립유치원에라도 보낼 수 있을까 전전긍긍 하고 있다. 하지만 사립유치원의 교육비가 소위 대학 등록금 수준에 육박해 아이를 둔 부모들의 걱정은 날로 더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우여곡절 끝에 유치원 입학 추첨에 성공해 유치원에 보내기는 했지만 넘어야 할 또 다른 관문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많은 학부모들은 5세 미만으로 확대된 정부의 무상보육지원정책으로 유아 교육비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전국 대부분의 유치원들이 벌써부터 월 교육비를 5∼10% 가량 인상키로 결정했기 때문.

예로 경기도의 모 사립유치원은 지난해 42만5000원이던 월 교육비와 18만원이던 방과 후 교육비를 각각 5% 인상하기로 했으며, 또 다른 유치원도 35만원의 교육비 10% 인상을 고려중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부 유치원은 월 교육비 대신 입학비와 기타 경비를 인상하거나 타 유치원의 동향을 살피는 등 눈치작전을 펼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따라 학부모들은 ‘유치원 입학 대란’이라 불릴 정도로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자녀를 유치원에 보내도 또다시 학비를 걱정해야 할 판에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다.


유치원 입학 전쟁
서민들만의 고충 아냐

교육과학기술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전국 17개 시·도 만 3세의 월 교육비는 국·공립 7만1810원, 사립 42만8793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이어 만 4세는 국·공립 10만2728원, 사립 44만3252원 정도가 들고 만 5세 이상은 국·공립 8만8637원, 사립은 44만395원이 소요된다.

대선을 앞두고 정부가 무상보육지원 확대정책을 내놓으며 내년부터 아이 1명 당 22만원 씩 보육비를 지원해주겠다고 선언했지만, 지원비만큼 원비를 함께 올리는 악덕 유치원들이 잇따라 증가하고 있어 사실상 무상보육정책은 실효성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처지가 됐다. 이에 학부모들은 당초 안고 있던 부담이 더 가중돼 긴 한숨만 내쉬고 있다.

하지만 유치원 입학경쟁은 비단 서민들만 겪는 고충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은 돈이 있어도 유치원에 못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내년 유치원에 입학할 만 4∼5세 어린이는 약 140만 명 정도인 것으로 추산됐지만 그 중 전국의 유치원 수용 인원은 61만명 남짓이다. 즉 유치원 총 입학원생 중 40% 정도만 유치원에 갈 수 있게 된 셈이다.

2013년 입학을 위해 실시된 서울의 모 유치원 원생 추첨에는 140명이 정원이다. 추첨과정은 참담했다. 입학 추첨에 지원한 학부모는 정원의 두 배 이상을 웃도는 350여 명이 몰렸기 때문. 이중 14명을 선발하는 ‘만 3세 기본교육과정’ 일반전형에 지원한 학부모는 총 118명으로 경쟁률이 9대 1에 육박했다. 결국 학부모들은 정부 지원금을 받고도 원비를 올린 유치원에 아이를 맡기거나 상대적으로 원비가 훨씬 비싼 영어 유치원이나 놀이학교를 찾아야 했다.

일례로 서울 강남의 모 놀이학교는 매달 150만원을 웃도는 월비를 챙기고 있다. 이 놀이학교의 교육비는 약 70여만원. 여기에 재료비 21만원과 방과 후 활동비, 식대 등을 포함하면 사립 유치원 못지않게 비싼 금액이다. 물론 놀이학교 측은 정부 지원금은 받고 있지만 학부모 측에 무상보육비로 지급될 금액은 교육비에 포함될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많은 학부모들은 정부 보조금이라도 더 챙기기 위해 일반 국·공립이나 사립유치원을 선호하고 있다.

사립유치원 추첨에 지원했다가 한 번에 당첨된 분당의 30대 주부 최모씨는 “원서를 여러 군데 넣어볼까 생각했는데 다행히 1곳에 넣은 곳에 입학하게 됐다. 당첨이 되자 여기저기서 ‘좋겠다’, ‘정말 잘 됐네’ 등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며 “발표 때까지 초조한 심정으로 기다렸는데 운이 따른 것 같다. 또래 이웃들은 대부분 추첨에서 떨어져 결국 비싼 영어 유치원에 보내게 됐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출산율 늘리기와
무상보육의 아이러니 

그렇다면 왜 이렇게 유치원 입학이 어려워진 것일까. 전문가들은 가장 큰 원인이 무상보육정책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올해 1년 동안 만 0∼2세와 5세에 대한 무상보육이 처음으로 실시됐는데, 내년부터 만 3∼4세까지 무상보육이 확대되면서 유치원 지원자 수가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 국민 모두가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려 하니 시설이 모자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특히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일부 사립유치원은 경쟁률이 11대 1에 달하면서 추첨 경쟁에 몰리고 있다. 예비 유치원생을 둔 일부 학부모들은 1, 2순위 유치원에서의 당첨 불확실성에 대비해 과거 대입시절에 쓰던 동일한 수법으로 4∼5군데씩 원서를 집어넣는가 하면 추첨일이 중복될 경우 가족들을 동원해 대리추첨을 하는 등 촌극도 벌이고 있다.

서울 관악구에서 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있는 학부모 오모씨는 “유치원비 인상으로 정부 무상보육은 말짱 도루묵이 될 텐데 내년에 시행될 지원 확대가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다. 정부가 기본적으로 원비를 규제하지 않는다면 결국 악덕 유치원만 배불리는 꼴이나 다름없지 않은가”라고 비판했다.

사립 원비 70만원으로 올려 정부 보조비 소용없어
원측, 물가·인건비 이유로 70%↑…횡포 속수무책

결국 아쉬운 쪽은 학부모다. 무상보육제도가 실시됨에 따라 각종 언론에서는 ‘서민을 위한 정책이다’라며 정부를 서민경제의 축이라고 칭송했다. 반면 실제 시행되고 있는 정책의 효과는 미미할 뿐 아니라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오고 있다. 정부에서 어린이집과 유치원비에 대한 정확한 규제를 마련하지 않으니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교육기관들은 정부 지원금 받고도 월 교육비와 입학비 등을 대거 올리며 배짱영업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것. 결국 출산율을 높이자는 정부의 바람과 내년에 시행될 보육정책은 모순정책으로 변질된 셈이다. 


유치원 추첨에 7차례나 떨어진 주부 한모씨는 “주위에서 ‘얼마나 좋은 유치원에 보내려고 그렇게 애를 쓰세요?’라고 묻더라고요. 제 속이 타들어가는 심정도 모르면서. 7번이나 떨어지니 포기 할만도 한데 다들 (유치원에)보내니까 제 아이만 안 보내면 이상하잖아요. 괜히 자격지심도 생기는 것 같고…”라며 씁쓸해했다.

또 다른 주부 윤모씨는 “아이는 많이 낳으라고 큰 소리 치면서 정작 아이를 키울 학부모를 위해 기본적인 문제도 해결하지 않으니 정부 정책도 믿을 수가 없고 책임감도 없어 보인다”며 “이런 악순환이 지속되면 돈이 무서워서 도대체 누가 아이를 낳으려 하겠나”라고 지탄했다.

보여주기 정책보다
실용적인 정책 우선

최근 유치원 입학을 두고 주위에서는 ‘로또’ 혹은 ‘바늘에 실 꿰기’라고 비유한다. 그만큼 당첨확률이 낮다는 의미다. 국·공립 유치원을 아무리 늘려도 아이들 수에 비하면 현저히 부족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정부 지원금 받고도 원비를 올리는 일부 유치원의 배짱 영업, 무상보육비를 부담하고도 이런 현실을 통제 못 하는 정부로 인해 학부모만 유치원 추첨에 떨어져서 한 번 울고, 비싼 유치원비에 두 번 우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할 것이다.

김지선 기자 jisun86@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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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진법사·노상원 연결고리 추적

건진법사·노상원 연결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윤석열정부는 여러 비선 실세가 있었다. ‘V0’ 김건희씨의 최측근인 건진법사 전성배씨, 군 인사를 좌지우지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이들에게는 ‘무속’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김씨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위기일 때마다 조언을 아끼지 않기도 했다. 건진법사 전성배씨와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등이 서로 일면식이 있는지는 확인된 바 없다. 명씨와 전씨는 김건희씨 및 윤석열 전 대통령과 직접 만나거나 통화했다. 노 전 사령관만이 김씨와 윤 전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알았는지가 드러나지 않았다. 김건희 일가를 잘 아는 이들은 위의 인물들이 각자의 존재를 인지해 왔다고 한다. 윤석열정부 초기부터 이른바 ‘비선 경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출범하자 기웃기웃 윤 전 대통령은 국민의힘 예비후보 시절부터 논란을 달았다. 지난 2021년 TV 토론회 당시 그의 손바닥에서 ‘王’ 자가 세 차례 포착됐다. 이는 김씨의 무속 의혹과 겹치면서 지지율 폭락을 가져왔다. 전씨는 2022년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 선거대책본부 산하 네트워크본부에서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같은 해 1월 윤 전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에 있는 사무실을 방문했는데 전씨가 윤 전 대통령의 등에 손을 올리고 사무실을 소개하는 모습도 영상에 담겼다. 전씨가 ‘고문’으로 네트워크본부의 실질적인 지휘를 담당했다는 의혹과 함께 ‘무속인’이 캠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선거대책본부는 “(전씨는) 고문으로 임명된 바 없다”고 해명한 뒤 네트워크본부를 해산했다.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 전씨의 영향력은 위축되지 않았다. 최근 검찰 수사에선 전씨가 2022년 지방선거 당시 최소 3명의 공천 청탁을 했고, 비슷한 시기 통일교 전 고위간부 윤영호씨가 전씨에게 김씨에게 줄 선물용 목걸이를 전달한 정황 등이 확인됐다. 전씨는 당시 ‘윤핵관’으로 꼽혔던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과 선거 운동에 관해 논의하기도 했다. 이른바 ‘건진법사 게이트’를 수사한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부장검사 박건욱)가 확보한 문자 메시지를 보면 2021년 12월 윤 의원은 전씨에게 ‘권성동 의원과 제가 빠지는 게 (윤석열) 후보에게 도움이 될까’라고 묻는다. 전씨는 ‘후보는 끝까지 같이 하길 원하는데 빠진다고 하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검찰 조사에서 전씨는 “사람들이 제가 힘 있는 줄 안다”며 이런 의혹들을 부인했다. ‘무속인 논란’ 이후 기자 등을 피해 숨어 지냈다고도 했다. 전·노 윤석열 캠프 외곽 그룹서 활동 “정권 초기부터 셌다” 일면식 있었나 검찰 조사에서 한 진술과 달리 전씨의 영향력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윤 전 대통령 당선 후 더 커졌다. 검찰은 2022년 6월 치러진 지방선거를 전후해 전씨가 받은 경북 영주시장·경북도의원 등의 공천에 영향력을 발휘해 달라는 취지의 문자들을 확보했다. 또 전씨가 경북 봉화군수·경남 합천군수·경기 성남시장 후보 등과 관련해 윤 의원에게 청탁을 시도한 정황도 파악했다. 청탁을 한 사람 중 일부는 실제로 당선됐다. 전씨는 검찰에 “공천 부탁이 아니라 추천”이라고 답했다. 김건희 특검팀은 최근 전씨 휴대폰을 포렌식하며 ‘건희2’로 저장된 인물과의 대화 내역 일체를 확보해 분석 중이다. 전씨는 윤석열 전 대통령 취임 직전인 2022년 4월19일 ‘건희2’로 저장된 번호로 8명의 이름과 근무 희망 부서를 적은 명단을 보냈다. 8명은 대부분 윤 전 대통령 대선캠프 내 ‘네트워크 본부’에서 일했다. 전씨는 “사모님께 말씀드렸다. 꼭 해주시라고 당부했다”는 취지의 문자를 이어 보냈다. 그러자 ‘건희2’로 저장된 인물은 다음 날 전씨에게 “이력서를 보내달라”고 답했다. 김씨 측은 전씨가 ‘건희2’로 저장한 번호의 실제 사용자는 김씨의 ‘문고리 3인방’으로 꼽히는 정지원 전 대통령실 행정관이다. 특검팀은 지난달 25일과 31일 두 차례 정 전 행정관을 불러 조사했다. 특검팀은 정 전 행정관을 상대로 전씨와 연락을 주고받은 이유가 무엇인지, 전씨가 보낸 메시지를 김씨에게 전달했는지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특검팀은 전씨가 윤 전 대통령 및 김씨와의 친분을 내세워 다수의 공직 희망자로부터 인사 청탁과 공천 청탁을 받고 거액의 금품을 수수했다고 보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윤석열 캠프 출신이다. 그는 윤석열 캠프서 국방·안보 정책 자문을 담당하는 특보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노 전 사령관은 주로 출근하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제의로 캠프에 몸담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의 역할이 국방·안보 정책 자문을 뛰어넘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겨레>가 지난 5월 단독으로 보도했던 노 전 사령관 기사를 보면 그는 2020년~2021년 사이 ‘식목일행사계획’ ‘YP(윤 전 대통령 추정)작전계획’ ‘YR(와이알)계획’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작성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특수단)이 압수한 노씨의 유에스비(USB)에 있던 문건으로,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가 주된 내용이다. 공천 청탁 금품 수수? 식목일행사계획 파일에는 ‘분노와 정의’라는 제목 아래 ▲(검찰총장) 퇴임 시 행동 ▲퇴임 후 동력 유지 방안(예) ▲퇴임 이후 정치 참여 방안(2~3개월 야인 생활 후) ▲대선 카드 준비 등의 내용이 담겼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퇴임 시기에 대해 “자의로 퇴임 시 지금의 몸값을 최대한 유지하여 내년 4월 서울시장 선거 직전이 유리, 기자회견은 ‘더 이상 직무 수행이 불가능하여 퇴임합니다’라고 간명하게 함”이라고 적었다. 2021년 4월 치러졌던 서울시장 보궐선거 전에 윤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뜻인데, 윤 전 대통령은 실제로 서울시장 선거 한 달여 전인 3월4일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났다. 퇴임 이후 행보와 관련해서 노 전 사령관은 문건에서 “국민과 소통하면서 자연스럽게 현 시국 상황에 대한 우려와 인식을 공유하여 지도자급으로서의 이미지를 노출”시키고 “재래시장, 청계천, 남대문, 지하철 등에서 몰래카메라의 형식으로 소박하고 인간적인 냄새를 국민이 느낄 수 있도록 깜짝 행보”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았다. 또 “현 정치체제와 일정 기간 거리 두기를 하다가 내년 9월을 목표로 국민의힘에서 모셔가는 형식으로 영입” “AN(안철수 추정) 등 여타의 후보군을 모두 참여시켜서 경선을 하고 여타의 후보군이 꼼짝없이 경선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되게 사전에 정리 작업”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실제로 윤 전 대통령은 검찰총장 사퇴 4개월 뒤인 2021년 7월 영입 제안을 받고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YP작전계획’ 문건에는 ‘정의로운 법조인’이라는 ‘Y의 현재의 모습’을 바탕으로 “연예인, 중도좌파도 끌어들이는 과감한 인물 영입”을 통해 “후원 지지 그룹 구성”을 하는 방안이 담겼다. 이어 “친박, 비박을 포용하는 탕평책”을 사용하고 “좌파 중량급을 영입”해서 “당권 장악”을 한 뒤 “대선 성공”을 하는 단계를 순서도 형식으로 그렸다. 막강한 영향력 아울러 “좌파 정권이 추진한 경제정책을 좌파 적폐 척결 차원에서 폐지”하고 “한미일 안보 축을 기본으로 하고 한일관계를 적폐 청산과 국민적 인기 영합 차원에서만 다룰 것이 아니고 미래지향적인 전략적 관점”에서 다룬다는 정책적 내용이 적시됐다. ‘YR계획’에는 “국립묘지 참배,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박정희 등 전직 대통령 두루 참배” 등 내용이 적혔다. 실제 윤 전 대통령은 2021년 10월26일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박정희·김대중·이승만·김영삼 전 대통령 순서로 묘소에 참배했다. 이어 같은 해 11월11일에는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찾았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11일 경찰 조사에서 “(2022년)윤 전 대통령이 대선캠프를 구성했을 때, 김 전 장관이 제게 일을 도와달라 부탁했는데 성 관련 범죄 경력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며 “(그 대신에) 대선 토론 때 안보 관련 분야 질문 및 답변 내용에 대해 초안을 잡아주면, (상대 후보의) 역공 대비 등을 세밀히 검토해서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김 전 장관이) ‘대통령 지지도를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냐’고 묻길래 ‘검사 출신이라 말이 친화적이지 않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줘라’고 했다”며 “(시장에 가서) 생선 같은 것도 만지면서 친근하게 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광주 5·18(행사)에 참석해라. 그들도 같은 국민”이라며 “일단 내려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라 건의해라. 이왕 대통령이 됐으면 전라도도 품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실제 윤 전 대통령은 지난 2023년 7월엔 부산엑스포 유치 홍보를 위해 부산을 찾은 뒤 자갈치시장서 붕장어를 맨손으로 만졌다. 또 2022년 5월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광주를 찾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노 전 사령관은 “나중에 티브이(TV)를 보니까 제 말대로 다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정책·현안 모두 비선 실세 말대로 실현 김·노 라인 물적 증거 없어 수사 필요 전씨와 노 전 사령관의 공통점은 하나 더 있다. 의외로 ‘일본’과 무속이다. 김건희 특검팀 관계자 4~5명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건진법사 전씨의 법당으로 들이닥쳤을 당시 ‘일본 신상’의 존재가 처음 드러났다. 전씨의 법당은 지하 1층~지상 2층 건물 면적만 279㎡(약 84.4평)에 이르는 단독 주택 2층에 있다. 2층(90.18㎡)엔 거실과 큰방, 작은방, 화장실이 있고, 1층(134.02㎡)은 일반 가정집 형태 생활공간으로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 2층 법당으로 올라가는 내부 계단이 설치돼 있다. 2층 거실과 큰방에 각각 부처상과 일본 신화에 나오는 아마테라스상을 모신 불당과 신당이 한 개씩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씨가 일본 천황가의 조상신이자 신도(神道)의 주신으로 일컫는 아마테라스를 모신 건 한국 전통 무속이 일제 시대 신사 참배 등 일본 신도의 영향을 받은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작은방은 테이블과 방석이 깔려 있는 응접실 형태의 손님 대기실인데, 전씨는 이 방에서 공천 헌금 의혹이 제기된 2018년 자유한국당 영천시장 예비후보와 사업가 이모씨, 축구선수 이천수 등을 만났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일본어를 매우 잘한다. 육사 졸업 후 일본에서 수년간 거주한 까닭이다. 노 전 사령관이 일본 동북대 석사 위탁교육을 받는 동안 그의 딸들은 현지 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전해진다. 노 전 사령관과 같이 근무했던 한 군 관계자는 “노 전 사령관이 일본에 오래 거주하지는 않았다. 일본 역사에도 관심이 많았던 터라 신사에도 자주 갔었다”고 전했다. 주변 인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2019년부터 경기도 안산 본오동 ‘아기보살’ 점집에 얹혀살았다. 등기부 등본에는 이 점집의 소유주가 아기보살 윤모씨로 돼 있다. 왜 하필 일본? 윤씨와 노 전 사령관을 잘 안다는 한 지인은 언론 인터뷰에서 “아기보살 점집에 가보면 노씨가 트레이닝복이나 잠옷 차림으로 있기도 했다. 점 보러 오는 손님이 많은 집이라 노씨가 손님들 줄도 세우고 그랬다. 1년쯤 지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노씨가 실은 자기가 장성 출신이라고 그러기에 ‘웃기지 마라, 나도 군대 ‘장’ 출신’이라고 대꾸해 줬다, 병장. 그런데 몸집도 탄탄하고 해서 장군 출신이 무슨 사연이 있어 이런 데 사는구나 짐작했다. 노씨는 후배 군인들을 데려와 점을 보게 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