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2인자' 날개 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12.10 14:3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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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이건희…드디어 '이재용 시대'

[일요시사=경제1팀] '이재용 시대'가 개막했다. 연말 인사 중 가장 큰 관심을 받았던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부회장으로 전격 승진했다. 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바람으로 이 부회장의 승진이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단행된 인사여서 그의 등장이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부회장은 앞으로 휴대폰, TV, 카메라 등 삼성전자 주력 사업을 직접 총괄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다음달로 예정된 삼성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한다. 4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글로벌기업인 삼성전자의 2인자로 올라선 것. 입사 21년 차인 이 부회장은 앞서 지난 2009년 부사장, 2010년 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한 바 있다.

업계 예상 뒤엎은
이건희 회장 결정

당초 삼성과 재계는 이 부회장의 승진에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18대 대선을 앞두고 재벌개혁 바람이 불고 있는 상황에서 무리한 인사로 굳이 여론의 주목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 부회장 스스로도 이 회장에게 "더 배우겠다"며 부회장직을 고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오히려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차녀인 이서현 제일모직·제일기획 부사장의 진급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우세했다.

하지만 이 회장의 선택은 달랐다. 삼성은 모든 예상을 뒤엎고 '아들'의 승진만을 발표했다. 삼성전자가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올리는 등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현 시점에 이 부회장이 등장하는 게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부회장은 이번 인사명단에선 빠졌다. ‘오너 일가’에 대한 외부 시선이 곱지 않을 것이라는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그룹은 글로벌 경영 감각과 네트워크를 갖춘 경영자로서 경쟁사와의 경쟁과 협력관계 조정, 고객사와의 유대관계 강화 등을 통해 스마트폰·TV·반도체·디스플레이 사업이 세계 1위를 공고히 하는 데 이 부회장이 큰 기여를 했다고 설명했다.


삼성그룹 측은 "이 부회장은 글로벌 경쟁사들이 심각한 경영난을 겪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최전선에서 삼성전자의 경영 전반을 지원, 창립 이래 최대 경영성과를 올리는 데 기여했다"며 "이 부회장은 앞으로 삼성전자의 사업 전반을 현장에서 더욱 강하게 지원할 것"이라고 승진 배경을 밝히기도 했다.

입사 21년 만에 부회장 승진 "경영수업 끝?"
글로벌 경영 감각 등 세계 1위 굳히기 기여

이 부회장은 앞으로 이 회장을 보좌해 내년부터는 삼성 그룹 전반에 걸쳐 경영보폭을 넓힐 것으로 관측된다. 일각에서는 최지성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 미래전략실장으로 옮겨간 후 공석으로 남아있는 DMC(완제품) 부문도 이 부회장이 총괄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부회장의 핵심 참모로 알려진 이상훈 미래전략실 전략1팀장(사장)이 DMC 부문 경영지원실장으로 옮겨가게 된 것이 이를 뒷받침 한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말부터 해외 CEO와 잦은 회동을 가지면서 삼성을 대표하는 경영자로서의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10월 고 스티브 잡스 애플 공동창업자 추모식 참석을 시작으로 인텔·GM·도요타·지멘스·폭스바겐 CEO를 잇따라 만나면서 자동차 부품, 2차 전지 사업 등 새로운 사업에 대한 협력을 논했다.

지난 6월에는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해 시진핑 총서기·리커창 부총리와 면담을 가졌으며 왕치산 부총리와도 만났다. 세계 최대 부호인 멕시코 통신 재벌 카를로스 슬림 텔맥스텔레콤 회장과도 회동을 가진 바 있다. 8월에는 영국 제4이동통신사인 허치슨과 3세대통신(3G)과 롱텀에볼루션(LTE) 장비 계약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10월에는 광통신장비와 태양광패널을 제조하는 미국 태양광기업 엠코어의 루벤 리터드 회장을 만나 사업현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1년에 100일 이상의 해외출장을 소화해 왔던 것으로 알려진다.

새로운 비전 수립
기여할 것으로 예상


이 부회장은 대외 활동 외에도 새로운 비전 수립을 위해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3년은 이 회장이 1993년 신경영 선언을 한 지 만 20년이 되는 해인만큼 삼성그룹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밑그림을 그리는데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당장은 애플과의 특허소송을 어떻게 매듭짓느냐가 현안이다. 이 부회장이 경영전반을 관리할 것이라고 삼성이 밝힌 만큼 애플과의 소송 결과가 그의 입지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삼성이 선정한 미래 먹거리 사업인 ▲태양전지 ▲자동차전지 ▲발광다이오드(LED) ▲바이오 제약의 구체적인 성과도 이끌어 내야한다. 글로벌 경기침체 장기화로 태양광 사업이나 전기자동차 시장의 개화 시기가 계속 미뤄지면서 이들 사업 분야의 매출은 미미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바이오 제약이나 의료기기 분야 역시 선두 업체와 기술 격차가 느껴진다. 2010년 5월 이 회장이 미래 먹거리 사업 비전을 내놓은 뒤 지금까지의 성적표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경제민주화 등 삼성을 둘러싼 논란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삼성은 국내 대표 기업인 만큼 이제 대기업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을 털어버리는 데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업을 발전시키려면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삼성이 돼야 한다.

1968년 6월23일 서울에서 태어난 이 부회장은 서울 경기초교, 서울 청운중, 서울 경복고를 졸업하고 87학번으로 서울대 동양사학과(인문학)에 입학했다. 전공으로 인문학을 택한 배경에는 고 이병철 선대회장과 이 회장의 '경영을 알기 전에 사람을 먼저 공부하라'는 뜻이 반영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마디로 풀이되는
'이재용 스타일'

이 부회장의 학창시절은 여느 학생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버스를 자주 이용하는 등 재벌자제 티를 내지 않았으며 매사에 성실하고 리더십이 강해 당시 정·재계 인사들의 자제가 많이 다니는 것으로 유명했던 경복고에서 반장으로 활동했다.

1992년 서울대를 졸업한 이 부회장은 일본 게이오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고 1995년 '일본 제조업의 산업공동화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으로 석사과정을 마쳤다. 미국보다 일본을 먼저 선택한 것에도 이 회장의 "미국을 먼저 보고나서 일본을 나중에 보면 일본문화의 섬세함과 일본인의 인내성을 알기 힘들다"는 뜻에 따른 것이다. 이후 2001년에는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1년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보로 입사하면서 이 부회장은 본격적인 경영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1년에 100일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는 생활을 시작했다. 이런 공격적 행보로 2002년에는 낸드플래시 메모리가 세계 1위에 오르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는 이후 2003년에는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로 승진하면서 진정한 임원의 길로 들어섰다. 2007년에는 최고고객 총괄책임자(CCO) 전무로 승진했다. CCO는 삼성전자의 거래처나 최종 소비자 등 모든 고객 접점에서 업무를 총괄하는 자리였다.

그러던 중 2008년 '삼성 특검'이 불거졌고, 삼성은 이 회장의 경영퇴진이라는 중대 위기에 몰렸다. 이 부회장은 '백의종군'하겠다는 입장 표명과 함께 보직을 내려놓고 해외순환 근무에 나섰다.

당시 애플·IBM·AT&T·소니·닌텐도 등 전자·통신업계 CEO들과 친분을 쌓아가며 삼성의 브랜드 이미지 제고와 실적 향상에 기여했다. 이외에도 엘 고어 전 미 부통령, 콜린 파월 전 미 국무장관 등 미국 정계의 중요 인사들과도 모임을 통한 만남을 해왔다.

2009년 부사장 승진 이후부터는 삼성전자의 핵심 현안에 깊숙이 관여하는 등 본격적 경영에 참여했다. 휴대폰·반도체·LCD·가전 등 주요 사업부 경영을 지원하면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삼성전자 사업 확대에 나서기도 했다. 2010년에는 삼성전자 사장으로 선임돼 경영전면에 나서게 됐다.


점점 넓어지는 경영보폭 
풀어야 할 과제도 산적

이 부회장의 경영스타일은 한마디로 풀이된다. 바로 '모범생'이다. 학창시절 이 회장에게 "너무 공부에만 매달리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다는 일화는 이 같은 면을 잘 보여준다.

이 부회장은 6시에 기상하고 업무 시간은 보통 오전 7시에서 저녁 10시경까지 이어진다. 저녁 11시 전후에 퇴근하는 일이 잦고 토요일, 일요일까지 근무하는 날도 다반사다.

일본과 미국에서의 유학생활로 겸손을 몸에 익혔고, 미국식 합리주의에도 익숙하다. 대외행사에서는 웃어른들에게 항상 깍듯하게 인사를 하는 겸손한 모습을 보이며, 출근할 때는 출입 사원증을 찍고 출근할 정도로 원칙을 지키려고 한다.

이 회장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튀지 않으려고 하며, 각종 회의에서 자신의 뜻과 다른 의견이 있더라도 일단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난 뒤 의사를 전달한다. 상명하달보다는 적극적인 질문과 토론으로 공감을 이끌어내는 하의상달식이다.

이 부회장을 평가 절하하는 목소리도 있다. 경영능력에 대한 의심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의 승진이 이 회장의 장남에게 힘을 실어주는 성격으로 보고 있다. 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지는 후계 체제 강화라는 설명이다.


사장 7명 승진 등 세대교체…측근들 전진 배치
그룹 "이건희 회장 건재…경영권 승계와 무관"

이와 관련 경제개혁연대(이하 경개연)은 '이재용 사장의 부회장 승진보다 경영능력 검증이 먼저다'라는 논평을 통해 "이 사장의 부회장 승진이 시기상조가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개연은 "삼성특검 수사의 핵심이었던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인수 등을 통해 승계를 위한 지분 확보 작업은 끝났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의 경영능력은 여전히 미지수다"고 지적했다.

경개연은 또 "삼성그룹은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기업이자 글로벌기업으로서 경영승계를 추진하고자 한다면 시장에서 납득할 만한 수준의 검증이 전제되어야 함은 당연하다"며 "만일 제대로 된 경영능력 검증 없이 이재용 체제로 경영승계가 이뤄진다면, 결코 존경받는 CEO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10년이 넘게 지난 'e삼성'의 실패도 이 부회장의 '족쇄'다. 세계적으로 '정보기술(IT) 열풍'이 불어 닥친 1990년대 말께 이 부회장은 자본금 100억원으로 e삼성을 설립했다. 그러나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이 사업은 2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본데 더해, 그 부실을 계열사들에게 넘겼다는 혐의로 법정공방까지 벌였다.

삼성그룹은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경영권 승계와는 무관하는 것.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이 매주 2회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그룹 경영 현안을 챙기는 등 경영활동이 여전하다"며 "경영권 승계 가속화라고 이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회장도 부회장으로 승진한 뒤 9년 뒤에야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한편 삼성은 이 부회장 외에도 16명에 대한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이 부회장 다음으로 주목을 받았던 박근희 삼성생명 대표이사 사장은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박 부회장은 삼성생명이 시장지배력을 확대해 제2 도약을 이끌었다는 평가다.

박원규 삼성코닝정밀소재 부사장과 박대영 삼성중공업 부사장은 대표이사 사장으로 내부 승진했다. 윤용암 삼성생명 부사장은 삼성자산운용 대표이사 사장으로, 이돈주 삼성전자 부사장은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담당 사장으로 각각 승진했고 홍원표 삼성전자 부사장은 미디어솔루션센터장 사장으로 승진했다.

임대기 삼성미래전략실 부사장은 제일기획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대표이사 사장으로 한 단계 승진했다. 이인용 미래전략실 부사장도 커뮤니케이션팀장(사장)으로 승진했다.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기존 DS부문장과 함께 종합기술원장을 겸하지만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 부회장은 맡지 않게 됐다. 이 자리에는 김기남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장이 앉는다. 조수인 삼성디스플레이 OLED 사업부장은 삼성전자 의료기기사업부 사장으로 자리를 바꾼다.

성과주의 인사원칙
경험·참신성 조화

윤주화 삼성전자 DMC부문 경영지원실장은 제일모직 패션부문장 대표이사 사장으로 이동한다. 김종중 삼성전자 DS부문 경영지원실장은 미래전략실 전략1팀장으로 이동한다.

노인식 삼성중공업 사장과 박준형 삼성자산운용 사장은 각각 삼성경제연구소 금융산업담당과 인적자원개발담당 사장으로 옮긴다.

삼성은 이번 연말 사장단 인사에 대해 성과주의 인사원칙에 경험과 참신성의 조화를 가미한 인사라고 설명했다. 삼성은 각 계열사별로 이사회를 열어 이번 사장단 인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약력]

▲1968년 서울 출생
▲1981년 서울 경기초등학교 졸
▲1984년 서울 청운중학교 졸
▲1987년 서울 경복고등학교 졸
▲1992년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졸
▲1995년 일본 게이오대학원 석사과정 졸
▲2001년 미국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2001년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보
▲2003년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
▲2007년 삼성전자 최고고객총괄책임자(CCO) 전무
▲2009년 삼성전자 최고운영책임자(COO) 부사장
▲2010년 삼성전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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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