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불명예 퇴진한 한상대 전 검찰총장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11.30 19: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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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수 부리려다…제 꾀에 넘어간 총장님

[일요시사=사회팀] 한상대 전 검찰총장의 사퇴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이번 사태를 두고 '검란' '내홍' '사상 초유'라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검사동일체 원칙'을 내세우는 검찰 조직 내에서 검찰총장과 대검 중수부장의 정면충돌이라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중수부 폐지'를 내건 개혁안에 반기를 들었던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에 대해 한 전 총장이 보복성 감찰을 지시하자 전국의 검사들이 들고 일어났다. 결국 일선 검사들이 자신의 수장을 내쫓아 버린 꼴이 됐다.

지난 29일 한상대 전 검찰총장(53·연수원 13기)과 최재경 대검중수부장(50·17기)은 볼썽사나운 싸움을 벌였다. 이날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8층 검찰총장실 앞은 이른 아침부터 긴장감이 맴돌았다.

대검 소속 직원 10여 명은 총장실 앞에 대기하며 상황을 예의주시했고 일부 검찰 간부들은 총장실과 차장검사실 등을 분주히 오갔다. 이날 오전 9시께 채동욱 대검 차장검사(53·14기)를 필두로 최 중수부장을 제외한 대검 부장검사 전원이 총장실을 찾았다.

이들 참모진은 최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 착수 소식이 발표된 28일 오후 전국 각 검찰청에서 검찰총장사퇴요구가 빗발쳐 나오자 한 총장에게 용퇴를 건의하기 위해 온 것. 이들은 '검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일선 검찰청에 집단행동을 자제해 줄 것을 당부해야 했다.

검찰총장 vs 중수부장
중수부 폐지 놓고 갈등

뒤이어 9시40분께 대검 소속 기획관과 단장 및 과장 등 부장검사급 중간간부들이 총장실에 도착했다. 이들은 "명예롭게 퇴진해 달라"며 용퇴를 건의했다. 그러자 한 전 총장은 "그런 얘기할 거면 너희들도 같이 사퇴하라”고 고성을 질렀다. 무너져가는 막장 검찰의 단면을 보여주는 웃지 못 할 한 장면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 전 총장은 사퇴할 의사가 없음을 내비쳤다. 그러자 서울중앙지검 소속 형사부장들을 주축으로 대표단을 꾸려 한 전 총장을 방문할 움직임이 일었다. 검사들의 의견이 '총장 퇴진 불가피' 쪽으로 모이면서 이날 정오까지 총장이 사퇴하지 않으면 검란이 일어날 조짐도 나타났다. 사태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자 한 전 총장은 버티지 못하고 결국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한 전 총장은 다음날인 30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 15층 회의실에서 사퇴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약 2분간 짧은 사퇴의 변을 남기고 물러났다.

한 전 총장은 "저는 오늘 검찰총장 직에서 사퇴합니다. 먼저 최근 검찰에서 부장검사 억대 뇌물 사건과 피의자를 상대로 성행위를 한 차마 말씀드리기조차 부끄러운 사건으로 국민 여러분께 크나큰 충격과 실망 드린 것에 대하여 검찰총장으로서 고개 숙여 사죄를 드립니다"라고 말하며 단상에서 나와 허리를 숙였다.

이어 "저는 이제 검찰을 떠납니다. 떠나는 사람은 말이 없습니다. 검찰 개혁을 포함한 모든 현안을 후임자에게 맡기고 표표히 여러분과 작별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라며 사퇴의 변을 마무리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 전 총장의 사퇴 기자회견과 관련한 보고를 받고 곧바로 사표를 수리했다. 한 전 총장은 애초 이날 오후 2시 검찰개혁안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대통령의 신임을 묻는' 조건부 사표를 제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전날 밤 서울서부지검 평검사들이 회의를 열고 한 전 총장에게 개혁안 발표 중단을 촉구하는 등 검찰 내부의 반발이 거세지자 개혁안 발표를 취소하고 사퇴표명만 했다.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글을 쓴 뒤 기자에게 속마음을 드러낸 문자를 보내 물의를 일으킨 서울남부지검 소속 윤대해 검사에 대한 논란도 검찰개혁안을 발표하는데 있어 부담으로 작용됐다. 이로써 검찰의 자체 개혁은 일단 무산됐다.


중수부 폐지 두고 내홍…중수부장과 정면충돌
"제발 나가주세요" 검찰 초유 집단항명 사태

검찰총장과 중수부장이 정면충돌한 사상 초유의 사태의 주요 배경은 무엇일까.

바로 '검찰 개혁안'을 둘러싼 의견충돌에 있었다. 최 중수부장은 한 전 총장이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반면 한 전 총장은 중수부 폐지를 비롯한 검찰개혁을 통해 MB정권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연명해보려 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 전 총장은 궁지에 몰려 있었다. 서울고검 부장검사의 뇌물 수수, 동부지검 전모 검사의 성추문 사건, 여론 조작 논란을 부른 서울남부지검 윤대해 검사의 문자까지 대형사건이 연달아 터지자 한 전 총장에 대한 사퇴요구가 빗발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 전 총장이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봐주기 위해 법정 최저형인 4년으로 내리도록 개입한 사실이 드러난 것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한 전 총장은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꼼수'를 생각해냈다. 코너에 몰리자 위기 돌파 수단으로 '중수부 폐지 카드'를 포함한 검찰개혁안을 꺼내 든 것이다. 또 한 전 총장은 의견충돌을 빚어온 최 중수부장에 대해 그가 보낸 문자메시지를 트집 잡아 감찰까지 지시했다. 현직 대검 중수부장이 감찰을 받는다는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결과론적으로 이 판단은 '무리수'가 되어 오히려 총장 생명을 단축시킨 꼴이 됐다.

대검이 한 전 총장의 지시를 받고 최 중수부장 감찰에 들어간 표면적 이유는 최 중수부장이 김광준 검사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였다. 김 검사가 서울중앙지검 3차장 등 공보업무를 맡았던 최 중수부장에게 향후 언론대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묻자 최 중수부장이 문자로 조언했는데 이것이 검사의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중수부장 향해
보복성 감찰조사

한 전 총장은 지난달 28일 오후 이 문제를 보고받자마자 감찰 조사를 지시했다. 또 이준호 감찰본부장에게 긴급 브리핑을 열도록 해 이 사실을 언론에 공개토록 했다. 통상 감찰조사는 결과가 나온 뒤에 언론에 공개하는 것을 생각하면 매우 이례적인 조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총장이 제 뜻과 다른 최 중수부장을 솎아내기 위해 무리하게 감찰을 동원한 정황이 드러났다. 한 전 총장은 김수창 특임검사팀의 "최 중수부장이 보낸 문자메시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듣고도 직권으로 감찰본부에 감찰을 지시한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겉으론 김 특임검사가 최 중수부장의 감찰을 의뢰한 것처럼 비춰지게 하면서 정작 한 전 총장 자신은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 모양새를 띠도록 하는 꼼수까지 부렸다.

한 전 총장이 본인의 임기를 연명하기 위해 중수부 폐지 카드를 꺼내고 최 중수부장까지 찍어 내리려 하자 일선 검사들까지 나서 한 전 총장에 대해 격앙된 반응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검찰 내부에서 두터운 신망을 받고 있던 최 중수부장은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검찰의 잇따른 추문 이후 총장 진퇴 문제 등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한 전 총장과 의견 충돌이 있었고 그것이 감찰 조사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며 "문제 될 행동을 일체 한 바 없으므로 이번 감찰조사를 승복할 수 없고 향후 부당한 조처에는 굴복하지 않고 적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히며 한 전 총장을 정면으로 겨눴다.


다만 한 전 총장이 사퇴하기로 결정하자 최 중수부장 역시 지난달 30일 대검찰청에 출근하면서 기자들에게 "감찰 문제가 종결되면 공직자로서 책임을 지겠다"고 말해 사퇴 의사를 내비쳤다.

중수부 폐지 문제는 처음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검찰이 정치적으로 논란이 있는 수사를 벌일 때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정권 차원의 하명 수사, 표적 수사를 일삼는 중수부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검찰은 그때마다 검찰총장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중수부 폐지를 필사적으로 반대해왔다. 검찰은 중수부가 폐지되면 수사권이 약화로 이어지는 만큼 절대 물러설 수 없는 마지노선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검찰 수장이 직접 중수부 폐지를 언급하고 나서니 한 전 총장은 검찰 내부에서 '공공의 적'이 돼버린 것. 그런 한 전 총장이 최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조사 지시까지 내리자 전국 일선 검사들까지 들고일어나 사퇴까지 이른 것이다.

MB정권 승승장구
레임덕 맞자 찬밥

한 전 총장은 1959년 1월28일 서울에서 태어나 보성고등학교와 고려대 법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1981년 제23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1983년 서울지검 남부지청 검사로 임용된 후 법무부 법무실장·검찰국장, 서울고검 검사장, 서울중앙지검 검사장 등을 역임하며 '독립기념관 부실시공 화재사건' '부산 항운노조 비리사건' 등을 수사했다.


1989년 법무부 국제법무심의관실을 시작으로 주미대사관 법무협력관, 법무연수원 기획과장, 법무부 국제법무과장, 법무심의관을 거쳤다. 특수와 공안 분야 경험이 다소 적은 편이지만, 검찰 최고 요직으로 꼽히는 '빅4' 중 법무부 검찰국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치면서 '대기만성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병풍 의혹'을 제기한 김대업씨를 무고와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 기소한 것이 참여정부 당시 걸림돌로 작용해 한동안 내리막길을 걸었다. 2003년 인사에서 대전고검 검사로 발령받은 뒤 참여정부동안 지방을 전전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그는 다시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고려대 출신으로 검찰 내 고대 인맥의 좌장격인 한 총장은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고검장, 서울중앙지검장 등의 요직을 두루 거친 뒤 대망의 검찰총장 자리까지 꿰찼다.

물론 그가 검찰총장이 되는 과정은 순탄치 못했다. 지난해 7월 검찰총장으로 내정될 당시 한 총장에 대해 스폰서, 군 면제, 논문표절, 위장전입, 다운계약서 등 온갖 의혹이 제기됐다. 이런저런 비리가 고구마 줄기 캐듯 계속 나오자 검찰 내부에서도 눈살을 찌푸리며 그의 임명을 반대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은 한 전 총장 임명을 밀어붙였고 당시 다수의석을 한나라당도 이에 동조해 지난해 8월 검찰총장으로 취임했다.

MB정부 들어 승승장구 "퇴임대비용 인사"
BBK·내곡동…의혹 모두 잠재운 '소방수'

당시 검찰과 정가에서는 '퇴임대비용 인사'라는 평가가 압도적이었다. 정권 말 레임덕이 오면 측근 및 친인척 비리가 줄줄이 터질 것을 예견하고 대비한 카드라는 것.

실제로 한 전 총장은 이 대통령과 보통 사이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이 대통령과 한 전 총장은 고려대 동문이다. 또 한 전 총장의 장인 박정기 전 한국전력 사장은 이 대통령 형 이상득 전 의원과 같은 TK 출신이자 육사 14기 동기로 절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 총장이 각종 의혹의 당사자임에도 MB정권의 마지막 검찰총장으로 임명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특수 관계 덕분이라는 게 당시 검찰 안팎의 중론이었다.

취임 후 한 전 총장은 'MB 지키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 전 의원 연루 의혹이 제기된 이국철 SLS회장 사건 등을 수사하면서도 정작 몸통으로 지목된 이 전 의원에 대해선 서면조사만 했다. 또 이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의혹 건에 대한 봐주기 식 수사를 주도했다.

한 전 총장의 MB 지키기는 서울중앙지검장 시절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2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귀국하자 당시 한상대 검사장은 수사를 맡았다. 그리고 수사 착수 2개월 만에 한 전 청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한 전 청장이 갖는 무게감에 비하면 김이 빠지는 수사였다. 그림 로비를 통한 인사 청탁 혐의, 미국 체류 기간에 국내 주정 업체 3, 4곳으로부터 자문료 명목으로 수천만 원을 받은 혐의 등이 전부였다.

한 전 청장을 둘러싼 의혹의 핵심이었던 이 전 의원 등 여권 거물급 인사에 대한 연임 로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자살로 몰고 간 태광실업 표적 세무조사, 이 대통령 관련 도곡동 땅 실소유주 의혹 등은 사실상 수사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한 전 청장이 미국 체류 시절 대기업 3곳으로부터 수억 원의 자문료를 받아 챙긴 것도 '대가성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한 전 청장 수사는 철저히 개인 비리 차원, 그것도 최소한의 선에서 이뤄진 것이다.

비슷한 시기 김경준 씨의 누나 에리카 김씨가 미군 산하 오산 미군비행장을 통해 귀국해 역시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옵셔널벤처스(옛 BBK투자자문) 자금 319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는 에리카 김에 대해 검찰은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이명박·에리카 김의 빅딜설'이 나왔다. 에리카 김씨가 BBK 의혹의 잔재를 눈감아주는 대신 검찰이 그의 비위를 눈감아 줬다는 내용의 의혹이었다.

BBK 소방수
초특급 승진

이처럼 이 대통령의 'BBK 의혹'은 한 전 총장에 의해 잠재워졌다. '소방수' 역할을 충실히 해낸 것이다. 두 사건을 깔끔하게 처리한 공로를 인정받은 한 전 총장은 중앙지검 부임 5개월 만에 검찰총장으로 임명됐다. 그리고 그는 2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1년3개월 만에 검찰총장 자리를 물러났다.

검찰 내부에서의 한 전 총장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업무 전반을 잘 파악하고 후배들을 다룰 줄 알아 조직 장악 능력이 뛰어나다"고 말하는 이가 있는 한편 "총장 취임 이후 너무 독단적으로 조직을 운영해 대검과 일선 지검에서 선후배 갈등이 커졌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김민석 기자 <ideaed@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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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