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 청부살인’ 비정한 남편 풀스토리

완전범죄 노리다…들통난 ‘마누라 죽이기’

[일요시사=김지선 기자] 거듭된 사업실패로 아내의 사업체를 가로채려 청부살인을 의뢰한 매정한 남편이 경찰에 구속됐다. 남편은 비교적 사업수완이 좋았던 아내로부터 이혼을 요구 당하자 양육권과 재산 등이 빼앗길까 두려워 심부름센터에 아내 살인을 청부했다. 무능력한 남편과 부자 아내. 둘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40대 남성 정모씨는 지난 5월21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소재의 자신이 운영하는 유흥주점에서 심부름센터 사장 원모씨를 만나 현금 3000만원을 건네며 아내의 청부살인을 요청했다. 원씨는 정씨가 제안한 착수금 3000만원과 성공보수인 6000만원이 청부살인 대가로 한참 부족했던지 시간을 질질 끌며 총 9차례에 걸쳐 1억9000만원까지 심부름값을 올렸다. 원씨는 “범행을 준비하는데 돈이 예상보다 많이 들어갈 것 같다” 등의 이유로 정씨를 지속적으로 압박했다.

심부름센터 통해
살인 계획 세워

약속의 날 9월14일이 다가왔다. 원씨는 정씨를 이용해 정씨의 부인 박씨가 살해 장소로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도록 유도했다. 정씨는 아내를 불러 “친한 동생이 카센터를 운영하는데 수리를 싸게 해주니 한 번 만나보는 게 어떻겠냐”라고 꾀었다. 자신이 살해당할 것을 꿈에도 몰랐던 부인 박씨는 남편의 말만 믿고 자신이 운영하는 성동구 성수동 소재 렌터카 업체로 향했다.

오후 4시쯤 짙은 회색 빛깔 인피니티 차량이 박씨의 업체로 들어왔다. 박씨는 순전히 카센터 직원으로만 생각했던 원씨를 자신의 업체로 들인 뒤 원씨의 차량으로 다가갔다. 원씨는 자신의 차 뒷자석에 박씨를 태운 후 인근 오피스텔로 향했다. 원씨는 CCTV를 피하기 위해 오피스텔 지하 3층 주차장까지 내려가 차량을 세운 후 뒷자석으로 자리를 옮겨 계획대로 박씨를 목 졸라 살해했다.

이후 그는 박씨의 얼굴을 검정 비닐봉지로 덮어 테이프로 감았다. 원씨의 범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완전범죄를 위해 증거를 없애야 했다. 원씨는 살해 당일 8시경 연고가 있던 인적이 드문 경기도 양주시의 한 야산 계곡 근처를 삽으로 구덩이를 판 후 박씨의 사체를 유기하는 잔인함을 드러냈다.

거듭된 이혼요구에 양육권까지 뺏길까 우려
월수익 2억 아내 사업체 가로채려 살인 의뢰


남편 정씨는 원씨로부터 아내의 사망소식을 전해들은 후 완벽한 알리바이 설계에 치중했다. 정씨는 청부살인이 발생한 다음 날인 9월15일 오전 7시쯤 경찰서에 직접 걸음 해 아내를 단순가출로 신고했다. 너무도 태연한 모습으로 가출신고를 마친 정씨는 박씨가 단순 실종사건에 휘말려 아내에 대한 청부살인은 영원히 풀리지 않을 미제사건으로 남길 원했다. 정씨는 원씨와 사건 당일 대포폰으로 정보를 교환하며 아내 살인과 향후 대책을 어떻게 세울 것인지 세세하게 의논했다.

이후 정씨는 원씨에게 박씨의 휴대폰을 사용할 것을 요구했고, 경찰 추적에 의심될 만한 사항들을 철저히 차단시켰다. 이를테면 원씨는 박씨의 휴대폰 위치를 수차례 옮겨가며 전원을 껐다, 켰다 반복하면서 아내 박씨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위장했다. 정씨의 알리바이는 박씨 측근들에게까지 이어졌다.

정씨는 원씨를 시켜 피해자 박씨의 어머니와 친구, 실종신고를 받은 담당 경찰관의 휴대폰에 “잘 있어요, 전혀 그런 일 없어요” “개인적인 문제로 얘기 중이예요” “나중에 들어가서 말씀 드릴게요, 걱정마세요” 등의 문자를 보내도록 했다.

문자 알리바이에 성공한 원씨는 CCTV가 설치돼 있지 않은 장소들을 사전 조사해 경기 수원 및 강남 일대에서 여성들이 주로 방문·소비하는 네일샵, 숙녀복 판매점, 선글라스 가게, 커피숍 등을 전전하며 박씨의 법인카드 및 개인 신용카드로 약 270여만원을 결제했다. 이는 박씨의 가출에 힘을 실을 중점적인 알리바이였고 경찰 측 수사의 혼선을 유도한 사전에 계획된 정씨와의 모략이었다.

알리바이 만들어
수사 혼선 유도

그렇다면 왜 정씨는 심부름센터에 2억에 가까운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아내가 죽기를 원했던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돈과 양육권에 있었다.

지난 2004년 박씨와 결혼한 정씨는 근로기준법위반을 포함한 범죄 경력 13범의 전과자였다. 그럼에도 정씨는 박씨와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원했고 서울 광진구의 한 아파트에서 박씨와 슬하의 자식들과 함께 화목한 가정을 꾸려나갔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정씨 가족은 말 못할 고민에 빠지게 됐다. 정씨의 사업이 생각보다 순탄치 않았기 때문. 정씨는 결혼 뒤 렌터카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사업결과는 절망적이었다. 렌트카 사업이 생각보다 어려운 상황에 놓이자 그는 지난 2008년 사업을 정리할 요량으로 아내 박씨에게 업체를 위임했다. 이후 같은 해 정씨는 서울 강남 일대에 유흥주점 및 노래방 등 3개 업체를 개업해 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정씨는 또다시 사업난에 허덕이는 고배를 맛보았다. 반면 남편으로부터 렌터카 사업을 물려받은 아내 박씨는 의외의 사업수완과 출중한 미모를 한껏 내세워 다 죽어가던 렌터카 업체를 보란 듯이 살려 놨다. 최근엔 월수입 2억에 다다르는 매출을 올리는데 성공했다.

아내의 사업이 날이 갈수록 승승장구하자 위기감과 자괴감에 빠진 정씨는 매일 술독에 빠져 살았다. 남편의 무능함과 의욕상실에 진저리가 난 박씨는 정씨를 향해 잔소리를 늘어놨고 둘의 싸움은 하루를 멀다하고 계속됐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싸움은 가정불화로 이어졌고 박씨는 남편 정씨에게 이혼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박씨는 지난해부터 줄곧 남편에게 “위자료 6억원을 줄테니 자녀 양육권을 달라”며 강력하게 이혼을 요구했다.  

정씨는 아직 어린 자신의 자식들을 빼앗기는 게 두려웠다. 연이은 사업부진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던 그는 아내가 자신의 무능함에 마음이 떠났다고 생각해 사업을 되살리려 부단히 노력하기도 했다. 사업을 되살리면 아내가 이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 정씨는 당장 급한 불부터 끄자는 생각에 아내와의 이혼에 구두 합의한 후 위자료 총 6억원 중 4억원을 미리 당겨 받았다.

이후 주점사업에 올인 했다. 그는 거액을 쏟은 주점사업이 전보다 성행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업은 여전히 부진했고 더 이상 회복되기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됐다. 남은 위자료 2억원을 더 받으면 그는 자식은 물론 재산까지 모두 잃게 되는 것이었다. 아내의 이혼요구도 이전보다 거세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그는 결국 ‘위험한 결정’을 하게 된다. 정씨는 자신이 위임했던 아내의 사업체를 가로채고 아이들 양육권까지 자신의 몫으로 돌려놓으려 아내 살해를 사주했다. 정씨는 자신의 주점에서 일하는 종업원에게 “심부름업체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해 경기도 수원에 자리한 한 심부름업체 사장 원씨와 접촉했다.

원씨는 범죄경력 15범의 전과자로 타인의 불륜관계 뒷조사와 인적사항 등을 주로 진행하는 흥신소를 운영하던 사람이었다. 정씨와 원씨의 만남은 훗날 파국을 몰고 올 위험한 만남이었다.       

지속된 이혼요구에
위기감 느껴 범행

박씨에 대한 실종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신고 당일 오전 7시경 위치추적을 시작했다. 위치추적 결과 박씨는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니며 카드를 결제하고 있었다. 경찰은 여러 차례 박씨 측에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매번 부재중이었고, 박씨는 “사정이 있어 잠시 나와 있다”는 문자만 보낼 뿐 묵묵부답이었다.

박씨의 소재파악이 힘들었던 당시 경찰은 아이를 돌보고 있던 박씨의 모친을 만나 가출경위에 대해 물었다. 박씨 모친은 “내 딸이 가출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제발 찾아달라”고 부탁했고, 이에 경찰은 박씨 주변인 등을 찾아다니며 수사를 촉구하기 시작했다.

박씨 측근은 “박씨가 남편에게 1년 여 전부터 계속 이혼을 요구했던 것으로 안다”고 진술했다. 주변인들의 진술을 토대로 실종당일 박씨의 행적을 낱낱이 조사했다. 그 결과 실종 전 날인 9월14일 2시경 사무실 인근 차량전시장 개업식에 참가한 후 혼자 유유히 떠나는 박씨가 포착된 CCTV 영상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박씨의 이후 행적은 오리무중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박씨의 휴대전화 사용내역과 금융거래내역을 조사한 결과 별다른 특이사항 하나 발견되지 않았다. 완벽한 알리바이 탓에 하마터면 미제사건으로 남을 수 있었던 이 사건은 경찰의 끈질긴 탐문수사 끝에 범인을 잡을 수 있었다. 

차량서 살해하고 야산에 암매장
가출신고·부인 카드 쓰며 위장


9월23일과 24일 양일간 약 7개 업소에서 박씨 소유의 법인카드 및 개인카드에서 270여만원이 결제된 사실을 확인한 후 현장에서 CCTV를 분석한 결과 한 젊은 남성이 동일하게 나온 영상을 증거자료로 확보할 수 있었다. 이후 10월14일 강남구 논현동 소재의 한 스파의 종업원으로부터 “우리 업소 회원과 매우 흡사하다”는 추가 진술을 확보한 뒤 원씨의 신원파악에 나섰다.

원씨가 심부름업체인 S기획의 대표임을 확인한 경찰은 원씨의 전 여자친구와 접촉했다. 그녀는 원씨가 최근 돈을 펑펑 쓰고 다닌 점과 “잘못되면 자신에게 돌아오라”는 얘기를 건넨 점, 결별선언 이후 카카오톡을 통해 지속적으로 구애를 해온 점 등을 진술했다. 경찰은 진술 확보를 마친 후 당일 오후 8시40분께 경기도 수원시에서 원씨를 긴급체포했다. 원씨는 체포당한 후 “살인청부를 받았지만 살인을 하지 않고 돈만 빼앗았다. 피해자 박씨는 남양주시 화도읍 부근에 숨어있으라며 보내줬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18일 오후 5시쯤 경기도 양주에서 피해자 박씨의 사체가 발견되면서 원씨의 거짓은 탄로 나고 말았다. 모든 증거가 확실시 되자 빼도 박도 못하게 된 원씨와 정씨는 결국 모든 사실을 자백했고 경찰은 정씨를 살인교사 혐의로, 원씨를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각각 구속했다.

그릇된 과욕
재앙 불러와

성동경찰서 관계자는 “수사 중 남편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본 결과 남편 정씨는 일반적인 가출 및 실종사건과 달리 경찰에 크게 협조적이지 않았고, 부인을 찾고자 하는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며 “경제난과 이혼요구에 시달렸을 정씨를 계속 주시한 결과 수상한 점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 점을 미뤄 탐문조사에 성실히 임했다”고 전했다.

위기감에 휩싸여 아내살해를 청부하고 완전범죄를 꾸미려 실종신고까지 했던 매정한 남편 정씨. 아내만 죽으면 모든 게 자기 몫이 될 것이라는 그의 그릇된 과욕이 결국 한 가정을 무너뜨리는 재앙을 불러왔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