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 청부살인’ 비정한 남편 풀스토리

완전범죄 노리다…들통난 ‘마누라 죽이기’

[일요시사=김지선 기자] 거듭된 사업실패로 아내의 사업체를 가로채려 청부살인을 의뢰한 매정한 남편이 경찰에 구속됐다. 남편은 비교적 사업수완이 좋았던 아내로부터 이혼을 요구 당하자 양육권과 재산 등이 빼앗길까 두려워 심부름센터에 아내 살인을 청부했다. 무능력한 남편과 부자 아내. 둘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40대 남성 정모씨는 지난 5월21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소재의 자신이 운영하는 유흥주점에서 심부름센터 사장 원모씨를 만나 현금 3000만원을 건네며 아내의 청부살인을 요청했다. 원씨는 정씨가 제안한 착수금 3000만원과 성공보수인 6000만원이 청부살인 대가로 한참 부족했던지 시간을 질질 끌며 총 9차례에 걸쳐 1억9000만원까지 심부름값을 올렸다. 원씨는 “범행을 준비하는데 돈이 예상보다 많이 들어갈 것 같다” 등의 이유로 정씨를 지속적으로 압박했다.

심부름센터 통해
살인 계획 세워

약속의 날 9월14일이 다가왔다. 원씨는 정씨를 이용해 정씨의 부인 박씨가 살해 장소로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도록 유도했다. 정씨는 아내를 불러 “친한 동생이 카센터를 운영하는데 수리를 싸게 해주니 한 번 만나보는 게 어떻겠냐”라고 꾀었다. 자신이 살해당할 것을 꿈에도 몰랐던 부인 박씨는 남편의 말만 믿고 자신이 운영하는 성동구 성수동 소재 렌터카 업체로 향했다.

오후 4시쯤 짙은 회색 빛깔 인피니티 차량이 박씨의 업체로 들어왔다. 박씨는 순전히 카센터 직원으로만 생각했던 원씨를 자신의 업체로 들인 뒤 원씨의 차량으로 다가갔다. 원씨는 자신의 차 뒷자석에 박씨를 태운 후 인근 오피스텔로 향했다. 원씨는 CCTV를 피하기 위해 오피스텔 지하 3층 주차장까지 내려가 차량을 세운 후 뒷자석으로 자리를 옮겨 계획대로 박씨를 목 졸라 살해했다.

이후 그는 박씨의 얼굴을 검정 비닐봉지로 덮어 테이프로 감았다. 원씨의 범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완전범죄를 위해 증거를 없애야 했다. 원씨는 살해 당일 8시경 연고가 있던 인적이 드문 경기도 양주시의 한 야산 계곡 근처를 삽으로 구덩이를 판 후 박씨의 사체를 유기하는 잔인함을 드러냈다.

거듭된 이혼요구에 양육권까지 뺏길까 우려
월수익 2억 아내 사업체 가로채려 살인 의뢰


남편 정씨는 원씨로부터 아내의 사망소식을 전해들은 후 완벽한 알리바이 설계에 치중했다. 정씨는 청부살인이 발생한 다음 날인 9월15일 오전 7시쯤 경찰서에 직접 걸음 해 아내를 단순가출로 신고했다. 너무도 태연한 모습으로 가출신고를 마친 정씨는 박씨가 단순 실종사건에 휘말려 아내에 대한 청부살인은 영원히 풀리지 않을 미제사건으로 남길 원했다. 정씨는 원씨와 사건 당일 대포폰으로 정보를 교환하며 아내 살인과 향후 대책을 어떻게 세울 것인지 세세하게 의논했다.

이후 정씨는 원씨에게 박씨의 휴대폰을 사용할 것을 요구했고, 경찰 추적에 의심될 만한 사항들을 철저히 차단시켰다. 이를테면 원씨는 박씨의 휴대폰 위치를 수차례 옮겨가며 전원을 껐다, 켰다 반복하면서 아내 박씨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위장했다. 정씨의 알리바이는 박씨 측근들에게까지 이어졌다.

정씨는 원씨를 시켜 피해자 박씨의 어머니와 친구, 실종신고를 받은 담당 경찰관의 휴대폰에 “잘 있어요, 전혀 그런 일 없어요” “개인적인 문제로 얘기 중이예요” “나중에 들어가서 말씀 드릴게요, 걱정마세요” 등의 문자를 보내도록 했다.

문자 알리바이에 성공한 원씨는 CCTV가 설치돼 있지 않은 장소들을 사전 조사해 경기 수원 및 강남 일대에서 여성들이 주로 방문·소비하는 네일샵, 숙녀복 판매점, 선글라스 가게, 커피숍 등을 전전하며 박씨의 법인카드 및 개인 신용카드로 약 270여만원을 결제했다. 이는 박씨의 가출에 힘을 실을 중점적인 알리바이였고 경찰 측 수사의 혼선을 유도한 사전에 계획된 정씨와의 모략이었다.

알리바이 만들어
수사 혼선 유도

그렇다면 왜 정씨는 심부름센터에 2억에 가까운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아내가 죽기를 원했던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돈과 양육권에 있었다.

지난 2004년 박씨와 결혼한 정씨는 근로기준법위반을 포함한 범죄 경력 13범의 전과자였다. 그럼에도 정씨는 박씨와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원했고 서울 광진구의 한 아파트에서 박씨와 슬하의 자식들과 함께 화목한 가정을 꾸려나갔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정씨 가족은 말 못할 고민에 빠지게 됐다. 정씨의 사업이 생각보다 순탄치 않았기 때문. 정씨는 결혼 뒤 렌터카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사업결과는 절망적이었다. 렌트카 사업이 생각보다 어려운 상황에 놓이자 그는 지난 2008년 사업을 정리할 요량으로 아내 박씨에게 업체를 위임했다. 이후 같은 해 정씨는 서울 강남 일대에 유흥주점 및 노래방 등 3개 업체를 개업해 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정씨는 또다시 사업난에 허덕이는 고배를 맛보았다. 반면 남편으로부터 렌터카 사업을 물려받은 아내 박씨는 의외의 사업수완과 출중한 미모를 한껏 내세워 다 죽어가던 렌터카 업체를 보란 듯이 살려 놨다. 최근엔 월수입 2억에 다다르는 매출을 올리는데 성공했다.

아내의 사업이 날이 갈수록 승승장구하자 위기감과 자괴감에 빠진 정씨는 매일 술독에 빠져 살았다. 남편의 무능함과 의욕상실에 진저리가 난 박씨는 정씨를 향해 잔소리를 늘어놨고 둘의 싸움은 하루를 멀다하고 계속됐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싸움은 가정불화로 이어졌고 박씨는 남편 정씨에게 이혼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박씨는 지난해부터 줄곧 남편에게 “위자료 6억원을 줄테니 자녀 양육권을 달라”며 강력하게 이혼을 요구했다.  

정씨는 아직 어린 자신의 자식들을 빼앗기는 게 두려웠다. 연이은 사업부진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던 그는 아내가 자신의 무능함에 마음이 떠났다고 생각해 사업을 되살리려 부단히 노력하기도 했다. 사업을 되살리면 아내가 이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 정씨는 당장 급한 불부터 끄자는 생각에 아내와의 이혼에 구두 합의한 후 위자료 총 6억원 중 4억원을 미리 당겨 받았다.

이후 주점사업에 올인 했다. 그는 거액을 쏟은 주점사업이 전보다 성행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업은 여전히 부진했고 더 이상 회복되기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됐다. 남은 위자료 2억원을 더 받으면 그는 자식은 물론 재산까지 모두 잃게 되는 것이었다. 아내의 이혼요구도 이전보다 거세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그는 결국 ‘위험한 결정’을 하게 된다. 정씨는 자신이 위임했던 아내의 사업체를 가로채고 아이들 양육권까지 자신의 몫으로 돌려놓으려 아내 살해를 사주했다. 정씨는 자신의 주점에서 일하는 종업원에게 “심부름업체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해 경기도 수원에 자리한 한 심부름업체 사장 원씨와 접촉했다.

원씨는 범죄경력 15범의 전과자로 타인의 불륜관계 뒷조사와 인적사항 등을 주로 진행하는 흥신소를 운영하던 사람이었다. 정씨와 원씨의 만남은 훗날 파국을 몰고 올 위험한 만남이었다.       

지속된 이혼요구에
위기감 느껴 범행

박씨에 대한 실종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신고 당일 오전 7시경 위치추적을 시작했다. 위치추적 결과 박씨는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니며 카드를 결제하고 있었다. 경찰은 여러 차례 박씨 측에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매번 부재중이었고, 박씨는 “사정이 있어 잠시 나와 있다”는 문자만 보낼 뿐 묵묵부답이었다.

박씨의 소재파악이 힘들었던 당시 경찰은 아이를 돌보고 있던 박씨의 모친을 만나 가출경위에 대해 물었다. 박씨 모친은 “내 딸이 가출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제발 찾아달라”고 부탁했고, 이에 경찰은 박씨 주변인 등을 찾아다니며 수사를 촉구하기 시작했다.

박씨 측근은 “박씨가 남편에게 1년 여 전부터 계속 이혼을 요구했던 것으로 안다”고 진술했다. 주변인들의 진술을 토대로 실종당일 박씨의 행적을 낱낱이 조사했다. 그 결과 실종 전 날인 9월14일 2시경 사무실 인근 차량전시장 개업식에 참가한 후 혼자 유유히 떠나는 박씨가 포착된 CCTV 영상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박씨의 이후 행적은 오리무중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박씨의 휴대전화 사용내역과 금융거래내역을 조사한 결과 별다른 특이사항 하나 발견되지 않았다. 완벽한 알리바이 탓에 하마터면 미제사건으로 남을 수 있었던 이 사건은 경찰의 끈질긴 탐문수사 끝에 범인을 잡을 수 있었다. 

차량서 살해하고 야산에 암매장
가출신고·부인 카드 쓰며 위장


9월23일과 24일 양일간 약 7개 업소에서 박씨 소유의 법인카드 및 개인카드에서 270여만원이 결제된 사실을 확인한 후 현장에서 CCTV를 분석한 결과 한 젊은 남성이 동일하게 나온 영상을 증거자료로 확보할 수 있었다. 이후 10월14일 강남구 논현동 소재의 한 스파의 종업원으로부터 “우리 업소 회원과 매우 흡사하다”는 추가 진술을 확보한 뒤 원씨의 신원파악에 나섰다.

원씨가 심부름업체인 S기획의 대표임을 확인한 경찰은 원씨의 전 여자친구와 접촉했다. 그녀는 원씨가 최근 돈을 펑펑 쓰고 다닌 점과 “잘못되면 자신에게 돌아오라”는 얘기를 건넨 점, 결별선언 이후 카카오톡을 통해 지속적으로 구애를 해온 점 등을 진술했다. 경찰은 진술 확보를 마친 후 당일 오후 8시40분께 경기도 수원시에서 원씨를 긴급체포했다. 원씨는 체포당한 후 “살인청부를 받았지만 살인을 하지 않고 돈만 빼앗았다. 피해자 박씨는 남양주시 화도읍 부근에 숨어있으라며 보내줬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18일 오후 5시쯤 경기도 양주에서 피해자 박씨의 사체가 발견되면서 원씨의 거짓은 탄로 나고 말았다. 모든 증거가 확실시 되자 빼도 박도 못하게 된 원씨와 정씨는 결국 모든 사실을 자백했고 경찰은 정씨를 살인교사 혐의로, 원씨를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각각 구속했다.

그릇된 과욕
재앙 불러와

성동경찰서 관계자는 “수사 중 남편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본 결과 남편 정씨는 일반적인 가출 및 실종사건과 달리 경찰에 크게 협조적이지 않았고, 부인을 찾고자 하는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며 “경제난과 이혼요구에 시달렸을 정씨를 계속 주시한 결과 수상한 점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 점을 미뤄 탐문조사에 성실히 임했다”고 전했다.

위기감에 휩싸여 아내살해를 청부하고 완전범죄를 꾸미려 실종신고까지 했던 매정한 남편 정씨. 아내만 죽으면 모든 게 자기 몫이 될 것이라는 그의 그릇된 과욕이 결국 한 가정을 무너뜨리는 재앙을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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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