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생중계된 정부 부처별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재명정부의 정책 점검의 자리를 넘어, 대통령의 언어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되고 있는지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에게 외화 불법 반출 검색 가능 여부를 묻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언성을 높이며 공개 질타했다. “참 말이 기십니다” “옆으로 새지 말라” “지금 다른 데 가서 노시냐”는 표현이 연달아 나왔고, 임명 시기와 임기를 따지듯 묻는 장면까지 이어졌다.
같은 날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도 역사 교육에 대해 “무슨 ‘환빠’ 논쟁 있죠?”라고 질문했다. 박 이사장이 “잘 모르겠다”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그 있잖아요. 단군, 환단고기, 그 주장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을 비하해서 환빠라고 부르잖아요”라고 질타했다.
이 두 장면은 이 대통령의 통치 언어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송곳 질문의 형식을 띠고 있었지만 대화는 답변을 요구하는 토론이 아니라, 태도를 점검하는 심문에 가까웠다. 이때부터 회의는 정책의 문제를 따지기보다 얼마나 준비했는지와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묻는 자리로 바뀌었다.
이 대통령이 정책 집행의 미숙함, 보고 체계의 불완전성, 공공기관장의 준비 부족을 지적하려는 의도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대통령으로서 국정 운영의 속도를 높이고 관료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으려는 판단을 문제 삼기는 어렵다.
그러나 통치의 의도와 통치의 방식은 언제나 같은 평가를 받지 않는다. 문제는 ‘무엇을 말했는가’보다 ‘어떻게 말했는가’에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질타는 통치가 되기도 하고, 격노로 오해받기도 한다.
대통령의 질책은 일반인과 다르다. 그것은 단순한 의견 표명이 아니라, 권력의 방향을 명확히 각인시키는 신호다. 특히 국무회의와 업무보고라는 공식 공간에서의 발언은 정책 메시지이자 통치 스타일의 선언이다. 대통령의 언어는 국가 시스템 전체에 전달되는 명령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최근 발언은 행정의 책임성을 강조하려는 목적을 담고 있지만, 공개적 질타가 반복될수록 회의의 성격은 토론의 장이 아닌 긴장 관리의 무대로 인식된다. 질문이 많을수록 답변은 짧아지고, 질문이 강해질수록 보고는 방어적으로 바뀐다.
정책의 오류를 고치기 위한 회의가 아니라, 실수를 피하기 위한 회의로 전락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 국민은 자연스럽게 과거를 떠올린다. 윤석열 대통령 시절 반복적으로 회자됐던 ‘격노’라는 단어다. 당시의 격노는 특정 사안 하나에 국한된 사건이 아니라, 정치적 이미지로 축적됐다. 회의실에서 높아진 목소리, 감정을 실은 질책,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는 장면들이 언론과 정치권을 통해 반복 재생됐다.
윤 전 대통령의 격노는 정책 실패나 행정 오류보다 감정의 분출로 먼저 기억됐다. 사안의 타당성과 별개로 공적 공간에서 표출된 감정은 국정의 메시지를 압도했다. 여권은 이를 ‘결단력 있는 리더십’으로 해석하려 했고, 야권은 ‘감정 통치’라 비판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남은 것은 성과보다 장면이었다.
회의실에서 굳어진 얼굴, 위축된 보고자, 끊긴 설명의 흐름은 하나의 상징이 된다. 통치의 언어가 설득이 아닌 감정으로 소비된다는 것이다. 강한 어조는 일시적인 긴장 효과를 만들 수는 있지만, 지속적인 정책 신뢰로 이어지지는 못한다.
이 대통령의 최근 국무회의와 업무보고에서의 질타는 윤 전 대통령과는 그 맥락과 목적이 다를 수 있다. 대상도, 정책의 방향도, 정치적 지형도 윤석열정부와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 그러나 품격이라는 기준으로만 놓고 보면, 두 장면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지 않다.
감정을 실은 공개 질타가 반복되는 순간, 질타는 통치의 도구가 아닌 분위기의 연출로 변한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감정을 실은 질책을 반복할 때, 그 발언은 곧바로 ‘메시지’가 아니라 ‘분위기’가 된다. 분위기는 정책을 설명하지 않고, 사람을 설득하지도 않는다. 다만 위축과 방어, 침묵만 남긴다. 이는 행정의 속도를 높이기보다 판단을 늦추는 결과로 이어진다.
국무회의는 원래 대통령의 분노를 배출하는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 운영의 최종 조율 장치며, 이견을 정리하고 책임을 분담하는 제도적 창구다. 질문은 정책을 빈틈없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고, 토론은 오류를 고치기 위해 존재한다. 이 공간이 공개 질타의 무대로 굳어질수록 국무회의는 정상적인 답을 낼 수 없다.
기업에서도 사장의 질타가 계속되면 실패를 줄이기 위한 솔직한 보고 대신 무난한 보고가 늘어난다. 책임을 지기 위한 판단 대신 책임을 피하기 위한 포장만 늘어난다. 강한 지적이 항상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다. 오히려 질타가 잠시 효과를 낼 수 있으나, 반복될 경우 직원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소모시킨다.
대통령의 품격은 도덕적 우월감에서 나오지 않으며, 오히려 말의 절제에서 드러난다. 냉정한 언어는 흔들리지 않는 판단으로 이어지고, 절제된 표현은 신뢰가 된다. 반대로 감정이 앞선 언어는 일시적 쾌감을 줄 수는 있어도 통치의 깊이를 만들지는 못한다. 통치는 감정의 해소가 아니라 구조의 설계기 때문이다.
국민은 대통령의 정책을 평가하지만, 동시에 대통령의 태도를 기억한다. 특히 위기 상황일수록 지도자의 언어는 문제 해결 능력만큼이나 중요해진다. 말의 톤은 국정의 방향을 예고하고, 회의실의 공기는 행정의 문화로 전이된다.
윤 전 대통령의 격노 정치가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강한 어조가 강한 리더십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 공개 질타는 문제 해결보다 갈등의 이미지를 확대한다는 점이다. 이 교훈은 정권이 바뀌었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권력의 언어는 사람을 바꾸기보다 구조를 드러낸다.
이 대통령이 윤 전 대통령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책의 옳고 그름 이전에 통치 언어의 품격을 점검해야 한다. 국무회의에서의 한마디는 지지층을 향한 사이다 발언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 전체를 향한 신호이기 때문이다.
결국 대통령의 언어는 국정 운영의 설계도다. 그 설계도가 감정의 선으로 그려질 때, 행정은 흔들린다. 이 대통령이 정말로 이전 정부와 다른 길을 가고자 한다면, 질타의 빈도를 줄이고 질문의 밀도를 높여야 한다. 공개적 분노가 아닌 조용한 압박, 고성이 아닌 구조적 책임 설계가 필요하다.
이 대통령은 오는 16일부터 나흘간 정부 부처별 업무보고 2주 차 일정에 들어간다. 역시 생중계되고 송곳 질문도 예상된다. 지엽적 부분이 과도하게 부풀려져 해석되는 등의 일부 단점도 있지만, 국민께 직접 실시간으로 대통령의 국정 운영 철학과 앞으로 계획을 설명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오는 16일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 식약처, 문화체육관광부 및 국가유산청, 국민권익위원회 등의 업무보고가 진행되고, 17일엔 산업통상부, 중소벤처기업부, 지식재산처, 기후에너지환경부, 원자력안전위원회, 행정안전부, 인사혁신처가 업무보고를 할 예정이다.
산하기관 및 외청으로 기상청, 경찰청, 소방청의 업무보고도 함께 진행된다.
18일에는 국방부와 병무청, 방위사업청, 국가보훈부 등 안보 분야 부처의 업무보고가 이뤄지고, 19일에는 외교부와 재외동포청, 통일부,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법무부와 검찰청, 성평등가족부에 대한 업무보고가 이어질 예정이다.
2주 차 업무보고에서는 이 대통령이 질타가 아닌, 절제된 품격의 질문으로 국정을 점검하길 국민은 기대하고 있다.
질타나 송곳 질문은 통치의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절제되지 않은 질타나 송곳 질문은 언제든 격노로 변한다. 통치의 품격은 부드러움이 아니라, 절제에서 나온다. 바로 그 절제가 이전 정부와의 차이를 증명하는 진정한 다른 통치의 출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