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절 대란’ 의약품 유통구조 실태

텅텅 비는 약국들 이유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아픈 몸을 이끌고 약국을 찾은 환자들은 문 앞에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약국 입구에 붙은 ‘항생제·해열제 품절’이라는 안내문 때문이다. 그 흔하던 감기약조차 재고가 끊기면서, 환자들을 돌려보내야 하는 약사들의 심정은 착잡하다.

전국 약국에서 감기약·항생제·혈압약 등 필수 의약품이 품절되는 사태가 몇 달째 이어지고 있다. 감기약과 항생제 같은 기본적인 치료제부터 ADHD 치료제·정신과 약까지 재고가 끊기면서, 약국과 환자 모두가 겪는 불편이 커지고 있다.

수급 불안정
회복은 아직

올해 들어 품절은 더욱 심화됐다. 수도권은 물론 지방 약국에서도 약을 구하지 못해 환자들이 발걸음을 돌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발생했던 의약품 수급 불안정 현상이 현재까지도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약사들은 “몇 군데 업체에 전화를 돌렸지만 전부 ‘없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품절 및 공급 중단 사태가 매년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 자료에 따르면, 의약품의 공급 중단 및 부족 보고 건수는 매년 급증하고 있다. 2021년 288건이었던 보고 건수는 2022년 315건을 넘어섰으며, 2023년에는 432건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약 37.1% 폭증했다.

최근 보건의료계에서는 이번 사태의 원인이 생산 부족이나 일시적 수요 급증 때문이 아니라 ‘의약품 유통구조 전반의 결함’에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계절성 겨울철 감기·호흡기 질환 유행으로 수요가 급증한 영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업계에서는 근본 원인이 수요 증가가 아니라 유통구조에 쌓여온 문제라는 것이다.

국내 의약품은 제조사가 만들었다고 해서 바로 약국으로 공급되지 않는다. 즉 대부분의 제약사가 약을 주문하면 도매업체를 통해 약국으로 공급되는 다단계 유통을 거친다. 약국은 수십에서 수백개 업체가 취급하는 의약품을 한곳에서 받을 수 없어, 필요할 때마다 여러 도매업체와 각각 거래해야 해야 한다.

먼저 제약사는 생산한 의약품을 도매업체에 공급한다. 일부 품목은 제약사가 직접 병·의원이나 일부 약국에 공급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도매업체를 통한다. 1차 도매업체는 제약사로부터 대량으로 물량을 확보한 뒤, 이를 다시 지역별 중소 도매업체나 약국으로 공급한다.

일부 품목은 2차·3차 도매를 거치기도 한다. 도매업체는 이 과정에서 물량을 배정하고, 특정 약의 재고를 먼저 확보한 뒤 약국에 나눠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도매업체 간 규모·자본·전산 수준에 따라 재고 확보 능력에 큰 차이가 있어, 같은 약이라도 어느 도매업체와 거래하느냐에 따라 공급 상황이 전혀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감기약·항생제 수개월째 모자라
의약품 공급 중단 사태 매년 급증

약국은 필요한 의약품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도매업체와 동시에 거래를 유지한다. 감기약, 항생제, 전문의약품 등 품목군마다 취급 도매처가 다르고, 도매처마다 확보하고 있는 재고도 제각각이라 한곳에서 모든 약을 조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약국이 아침마다 여러 업체의 재고를 확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의약품 재고를 한눈에 확인하기 어렵다는 데에서 발생한다. 현재 국내에는 통합된 의약품 재고 전산망이 존재하지 않는다. 의약품 생산부터 배송, 약국 도착까지 모든 단계가 분리된 채 운영되고 있어, 어느 도매업체가 어떤 약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국내에는 도매업체 간 재고 정보가 서로 공유되지 않는 구조기 때문에 특정 도매업체에 약이 없을 경우,  다른 도매업체에 재고가 남아 있어도 현실적으로 약국은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에 반해 해외 주요 국가들은 이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미 재고·유통 실태를 투명하게 관리하는 제도를 갖추고 있다. 미국은 2013년 ‘의약품 공급망 보안법(DSCSA)’을 제정해 처방 의약품의 생산부터 약국에 도착하기까지 모든 유통 과정을 전자적으로 기록하고 추적하도록 의무화했다.

제약사는 제품 포장마다 고유 식별번호를 부여하고, 도매업체와 약국 등 공급망 참여자는 거래 이력과 거래 정보를 전산 시스템을 통해 주고받는다. 이를 통해 특정 의약품이 어느 제조사에서 출고돼 어떤 도매처를 거쳐 어느 약국으로 이동했는지 확인이 가능하도록 했다.

위조약 방지 목적이 크지만, 자연스럽게 공급망 전체의 재고 흐름도 함께 관리되는 구조다.

유럽연합 역시 ‘위조 의약품 방지 지침(FMD)’을 시행해, 대부분의 처방약 포장에 2차원 바코드와 고유 식별번호를 의무적으로 부착하고 있다. 약국과 도매업체는 의약품을 취급할 때마다 이를 스캔해 중앙 데이터베이스에서 진위 여부와 유통 경로를 확인한다.

파악 불가
품절 심화

일련번호가 데이터베이스와 일치하지 않거나 중복 등록될 경우 즉시 경고가 뜨는 시스템으로, 유럽 내에서는 의약품의 이동 경로가 거의 실시간으로 관리되는 셈이다.

위조약 유통을 막기 위해 도입됐지만, 결과적으로 의약품 재고 파악과 공급 안정성 확보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공급에 차질이 생길 경우 어느 구간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빠르게 파악할 수 있고, 특정 지역의 공급이 부족하면 다른 지역 재고를 재배치하는 조치도 가능하다.

반면 한국에서는 의약품 추적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약국은 필요할 때마다 여러 도매업체 사이트를 각각 확인하거나 직접 전화를 걸어 재고를 묻는 방식으로 재고를 파악할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한국의 유통구조 특성상 재고 파악 문제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많다.

실시간 재고 파악이 어려운 이유는 유통 단계가 여러 겹으로 나뉜 구조 때문이다. 일부 품목은 1차 도매업체에서 2차·3차 도매업체로 넘어가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단계별로 재고 흐름이 따로 기록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실제 어느 단계에서 병목이 발생했는지 확인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구조적 문제 때문에 특정 지역에서는 품절이지만, 다른 지역이나 다른 도매처에는 재고가 남아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를 확인할 통합 시스템이 없어 약국은 매번 개별적으로 재고를 찾는 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유통 단계의 복잡성뿐만 아니라 도매업체가 제공하는 재고 시스템이 모두 다르다는 문제도 있다. 국내 의약품 유통시장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도매업체 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점이다.

국가통계포털(KOSIS) 기준 의약품 도매업체는 약 4000곳 수준으로, 같은 시기 의약품 제조소가 300여곳 정도인 것에 비교하면 10배 이상 많은 규모다.

이 때문에 각 업체가 사용하는 전산 방식·재고관리 방식도 제각각이다. 일부 대형 도매업체는 자체 재고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도 하지만, 중소 도매업체는 수기 관리·부분 전산화 등 수준이 크게 달라 재고 데이터를 표준화하기 어렵다.

시스템도
제각각

이처럼 도매업체가 급증한 이유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다. 그중 의약품 도매업 진입장벽이 낮다는 점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의약품 도매업은 일정한 시설 기준·전문 인력 요건 등 법적 조건을 충족하면 비교적 쉽게 영업이 가능하다.

제조업과 달리 설비투자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중소 규모의 업체도 시장에 진입할 수 있어, 도매업체 수가 꾸준히 늘어났다.

지역 단위의 공급 구조가 강하게 형성된 점도 도매 난립을 부추겼다. 약국은 대부분 인근 지역 도매업체와 거래를 유지해 왔고, 각 지역별로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도매업체가 세분화돼 설립됐다. 그 결과 전국에 소규모 도매업체가 촘촘하게 분포하는 형태가 만들어졌다.

병·의원·약국의 의약품 구매 구조가 도매 중심으로 고착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제약사로부터 직접 공급받기보다 도매업체를 통해 주문·결제·배송을 처리하는 방식이 오랫동안 유지되면서, 도매업체가 자연스럽게 시장의 핵심 공급망 역할을 맡게 됐다. 이 과정에서 신규 도매업체가 계속 시장에 진입했다.

유통 마진 구조가 도매업체 생존을 가능하게 한 점도 난립을 만든 배경으로 꼽힌다. 약국이 여러 도매업체와 동시 거래하는 관행 속에서, 도매업체들은 경쟁적으로 할인·물량 제공 등을 내세워 거래처를 확보해 왔고, 이 과정에서 규모가 작더라도 일정 수준의 거래만 유지하면 영업 지속이 가능했다.

이 같은 요인들이 누적되면서 국내 의약품 도매업은 제조업 대비 매우 많은 사업자가 존재하는 구조로 고착됐다.

이처럼 제약사에서 생산된 의약품이 약국에 도착하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치고, 각 단계마다 운영 방식이 달라 통합적인 관리가 어렵다는 점이 현재 의약품 유통 구조의 가장 큰 특징이다. 바로 이 구조적 특성이, 품절 사태가 반복되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도매업체 4000곳 재고 파악 어려워
유통구조 불투명해 편법행위 반복

의약품 품절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인기 품목을 둘러싸고 도매업체와 약국 간 ‘선점 경쟁’이 반복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특정 감기약·해열제·항생제처럼 수요가 몰리는 품목은 도매 단계에서 물량이 확보되자마자 바로 소진되는 경우가 많아 약국에서는 정상 공급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도매업체가 먼저 확보한 물량부터 우선 배정하면서, 일부 대형 거래처로 공급이 집중되고 중소 약국은 주문 자체가 어려워지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 이른바 ‘쟁여두기’, 즉 재고를 비축해두는 관행이다. 특정 약이 품절될 가능성이 높다는 소문이 돌면, 도매업체뿐 아니라 일부 약국까지 앞다퉈 평소보다 많은 물량을 주문해 보유하려는 경우가 생긴다. 수요보다 심리적 불안이 앞서면서 재고 편중이 더 심해지는 구조다.

의약품 품목별 공급 불안정이 길어지면서 이른바 ‘끼워팔기’ 문제도 다시 불거지고 있다. 끼워팔기는 특정 인기 약을 주문할 때 다른 약까지 함께 구매하도록 요구하는 방식으로, 업계에서는 오래전부터 문제로 지적되돼온 관행이다.

공급이 불규칙해지자 일부 도매업체가 흔한 품목이나 판매가 빠르지 않은 품목을 같이 구매해야만 인기 약을 공급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아진 탓이다.

지난 5월에는 GLP-1 계열 비만치료제 삭센다 공급이 부족해지자, 한 유통업체가 상대적으로 재고가 충분한 위고비와 묶어 판매했다는 논란이 있었고, 약사회도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이런 행위가 공급망 왜곡을 심화시키고, 정상적으로 약을 확보할 권리가 있는 약국에까지 불이익이 돌아가게 한다는 비판 목소리가 나온다.

심지어 최근에는 소문을 만들어 품절을 시키는 이른바 ‘가짜 품절’ 문제도 생기고 있다.

실제로 한 도매업체 영업사원이 “추석 이후 특정 진해거담제 시럽이 품절될 수 있다”는 문자메시지를 약국 여러 곳에 발송했다. 해당 문자가 발송된 뒤 약국 주문이 폭증했고, 이후 해당 제품은 실제로 품절됐다. 유통업체는 개인 일탈이라고 해명했지만, 약사회는 “소문이 품절을 만든 전형적인 가짜 품절 사례”라고 규정했다.

판치는
편법행위

이 같은 편법행위들이 발생하는 근본은 재고·유통 정보가 투명하게 공유되지 않는 데에 기인한다. 어느 도매처에 재고가 남아 있는지, 실제 공급이 중단된 것인지 약국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소문이나 문자 한 통이 시장 전체의 불안으로 이어지고 결국 품절 상황을 현실화시키는 것이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실제 품절인지, 일시적 부족인지조차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환경이 불필요한 혼란을 키우고 있다”며 “유통구조 문제만 해결된다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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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